메달을 목에 걸고 귀국하진 못한다. 하지만 그녀들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김형실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배구대표팀은 11일(이하 한국시각) 영국 런던의 얼스코트에서 열린 2012 런던 올림픽 여자배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에게 세트스코어 0-3(22-25, 24-26, 21-25)으로 패하며 4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비록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의 동메달 신화를 재현하진 못했지만 한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세르비아, 브라질, 이탈리아 등 세계적인 강호들을 차례로 꺾으며 한국 여자배구의 투지와 근성을 마음껏 뽐냈다.

최악의 조편성 속에도 강자들 제압하고 4강진출

불과 3개월 전까지만 해도 한국 여자배구의 상황은 전혀 낙관적이지 못했다. 프로8년째를 맞은 프로배구는 외국인 선수에게 공격의 절반 이상을 의존하는 이른바 '몰빵배구'가 대세를 이루며 국내 선수들의 입지가 한층 줄어 들었다.

여기에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이 포함된 경기 조작 스캔들로 2명의 선수가 영구 제명을 당한 것도 큰 악재였다. 터키리그로 진출한 김연경이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득점왕과 MVP를 차지했다는 점이 배구팬들에게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하지만 김형실 감독은 런던 올림픽을 여자배구 부활의 발판으로 삼았다. 5개월이 넘는 V리그 일정을 치르면서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던 선수들도 올림픽을 위해 기꺼이 뭉쳤다.

한국은 지난 5월에 열린 세계 예선에서 일본, 도미니카 공화국, 태국 등을 차례로 제압하며 런던행 티켓을 따냈다. 프로 구기 스포츠 중 올림픽 본선 티켓을 따낸 종목은 남자 축구와 여자 배구 뿐이다.

본선에서의 조편성도 한국에는 최악이었다. 세계랭킹 1위의 미국, 2위 브라질, 3위 중국, 7위 세르비아, 8위 터키와 같은 조에 속한 것이다. 8강 진출은커녕 1승도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한국의 투지는 객관적인 기량 차이를 뛰어 넘었다. 한국은 지난 7월 31일 예선 2차전에서 세르비아를 3-1로 꺾으며 돌풍을 예고했다. 한국이 세르비아전 국제대회 첫승을 올림픽에서 이룬 것이다.

2일에는 세계 2위에 올라 있는 브라질을 세트스코어 3-0으로 꺾으며 배구계를 경악시켰고 터키와 중국을 상대로도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다. 이어진 8강에서는 이탈리아를 3-1로 제압하며 한국 여자배구의 선전이 우연이 아님을 증명했다.

'월드 스타' 김연경, 팀 전체의 수준을 높이는 진짜 에이스

한국 여자배구를 평가할 때 흔히 하는 이야기가 바로 '김연경의 원맨팀'이다. 사실 부정하기 힘든 말이다. 만약 한국 여자배구에 김연경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없었다면 한국은 올림픽 4강은커녕 올림픽 본선 진출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김연경이 코트에서 화려한 공격만으로 홀로 돋보이는 선수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김연경은 건실한 수비와 안정적인 서브리시브, 강한 서브를 겸비하며 팀 전체의 수준을 끌어 올리는 선수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김연경은 데스티니 후커(미국), 기무라 사오리(일본)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을 제치고 득점 부문 1위에 올랐고 작전 타임 때는 동료 선수들을 독려하며 에이스의 역할을 다했다.

한국 여자배구의 또 다른 성과는 미래를 이끌 수 있는 젊은 자원들을 대거 발굴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이미 리그 최고의 센터로 군림하고 있는 양효진은 이번 올림픽을 통해 '국제용'으로 재발견됐다.

소속팀 기업은행에서 센터로 활약하고 있는 대표팀의 막내 김희진은 이번 올림픽에서 오른쪽 공격수로 변신하며 김연경의 뒤를 이을 대형 공격수로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확인했다.

정대영, 이숙자, 김사니 등 30대 선수들의 투혼도 빼놓을 수 없었다. 이들은 사실상의 마지막 올림픽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공을 쫓아 온 몸을 던졌다.

이제 올림픽은 모두 끝났고 선수들은 각자 소속팀으로 돌아가 다가올 시즌을 준비할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올림픽 4강팀이다. 이제 한국 여자배구는 어렵게 얻은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한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런던 올림픽 여자배구 김연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