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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래공원의 '박정희 흉상'. 박정희 소장이 5·16 쿠데타를 모의했던 제 6관구 자리에 들어서 문래공원에는 '박정희 흉상'이 있다.
 문래공원의 '박정희 흉상'. 박정희 소장이 5·16 쿠데타를 모의했던 제 6관구 자리에 들어서 문래공원에는 '박정희 흉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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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7일 낮 12시 6분]

지난 3일 서울 낮 온도는 35.5도로 8년 만에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푹푹 찌는 날씨 때문인지 서울 영등포구 문래공원은 한산했다. 나무 그늘 아래서 몇몇 노인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서울에 있는 공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을 뒤로 하고 기자는 '박정희 흉상'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문래공원 옆 아파트에 5년째 살고 있는 진아무개(68)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흉상을 가리키며 "저 분을 존경한다"며 "우리 민족의 가난을 면하게 해줬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진씨가 기자에게 "50대 넘은 우리 세대는 다 저 분을 존경한다"고 하자, 손녀딸인 전아무개(8)양이 끼어들어 "우리 아빠는 싫어해"라고 외쳤다. 이에 진씨는 "너희 아빠는 젊으니까 그렇지"라고 손녀를 나무랐다. 하지만 전양은 "흉상이 누군지 모르지만 밤에 보면 무섭다"고 했다. 진양의 동생 전아무개(6)양도 "무섭다"며 몸을 움츠렸다.

진씨는 "비슷한 연배 주민들과 흉상 앞을 산책하다 보면 1960년대 못살았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며 "경례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박정희 흉상 설치 장소는 5·16 쿠데타 모의했던 곳

 수도방위사령부는 사이버역사관에 '5·16 혁명'이라는 용어를 썼다. 현재 수방사 홈페이지의 사이버역사관은 '부대개편에 따른 사이버역사관 보완중'이라는 문구가 떠있고 내용은 볼 수 없는 상태다.
 수도방위사령부는 사이버역사관에 '5·16 혁명'이라는 용어를 썼다. 현재 수방사 홈페이지의 사이버역사관은 '부대개편에 따른 사이버역사관 보완중'이라는 문구가 떠있고 내용은 볼 수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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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설치된 박정희 흉상의 얼굴은 육군 소장 시절의 그처럼 젊어 보였다. 군복차림의 박정희 흉상은 1.8m 높이 좌대에 자리하고 있다. 총 높이는 2.4m. 표정에 긴장감이 서려 있어 5·16 쿠데타 당시 긴박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흉상 아래 좌대 정면에는 한자로 쓰인 '5·16 혁명 발상지' 동판이 걸려 있다.

문래공원은 박 전 대통령이 군사쿠데타를 모의했던 곳이다. 1961년 봄, 제6관구 박정희 사령관은 흉상에서 약 10m 떨어져 있는 '박정희 벙커'에서 5·16 쿠데타를 모의했다. 그리고 거사 당일 새벽, 야전점퍼 차림에 선글라스를 낀 박 소장은 3500여 명의 장병들과 이곳을 떠나 한강을 넘었다.

제6관구는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의 전신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시에 수도권의 방어를 담당하는 핵심부대다. 즉 '마음만 먹으면' 중앙정부를 장악할 수 있는 위치다. 5·16 쿠데타 전 박 전 대통령이 제6관구 사령관였던 것도 우연은 아니다.

놀랍게도 수방사는 여전히 5·16 군사혁명이라는 용어를 쓴다. 수방사 홈페이지의 사이버 역사관에 가면 '5·16혁명'이라는 용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수방사 공보장교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건 아니다"며 "1963년의 법률 제1193호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적시했다"고 설명했다.

5·16 쿠데타는 성공하고, 박 전 대통령은 민간정부에 정권을 이양한다는 등 6개항의 혁명공약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는 1963년 육군 장군으로 예편한 뒤 그 해 민주공화당에 입당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제6관구 사령관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된 지 3년 후인 지난 1966년 3월 제6관구는 '5·16'를 기념하기 위해 최기원 교수(77)에게 흉상제작을 의뢰했고, 그 해 현재의 문래공원 위치에 설치됐다. 최 교수는 1957년 홍익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한국 조각계의 원로다. 대표작으로 동작구 현충원의 현충탑이 있다.

최 교수는 "제6관구에서 내가 자율적으로 제작하게 했다"며 "군복도 표정도 내가 정했다"고 말했다. '직접 박 전 대통령을 보면서 만들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몇몇 행사에서 박정희 소장을 보기는 했다"며 "그 때 본 이미지와 사진을 보면서 제작했다"고 답변했다.

'박정희 흉상'이 6년간 '뭉개진 코'로 지낸 이유

 '박정희 흉상' 주변에는 이중펜스와 적외선 탐지기가 있다. 하지만 이중펜스 문은 열려있고 적외선 탐지기는 2001년부터 작동하지 않았다.
 '박정희 흉상' 주변에는 이중펜스와 적외선 탐지기가 있다. 하지만 이중펜스 문은 열려있고 적외선 탐지기는 2001년부터 작동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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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 교수가 5개월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박정희 흉상'은 '철거'를 당했다. 지난 2000년 11월 5일 낮 2시께 민족문제연구소, 민주노동당, 홍익대민주동문회 등 5개 시민단체와 정당의 30여 회원들이 기습적으로 흉상을 철거한 것이다. 그 해 김대중 정부가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에 105억 원의 예산을 배정한 데 따른 반발이었다.
이들은 준비해간 욱일승천기를 박정희 흉상에 덮어씌우고 오랏줄을 흉상 목에 감았다. 이들은 밧줄을 당겼고 박정희 흉상은 그대로 땅에 곤두박질쳤다. 이 때 흉상의 코가 뭉개졌다. 현장에 있던 홍익대 민주동문회 회원들은 '홍익대 근정'이라는 동판을 뜯어내고 흉상을 홍익대로 옮겼다. 결국 '홍익대 근정' 동판은 분실되었다.

이에 경찰이 발빠르게 대응했다. 영등포 경찰서는 같은 해 6일 즉각 37명으로 수사전담반을 구성하고 강도상해 혐의로 영장을 발부받았다. 공원관리인 윤용덕씨의 왼손가락에 전치 2주의 찰과상을 입히고 박정희 흉상을 가져간 혐의다.

결국 김용삼 전 민족문제연구소 위원장, 방학진 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46), 이중기 홍익대 민주동문회 사무국장(48) 등 총 7명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사건은 마무리됐다. 이틀 만에 박정희 흉상은 문래공원으로 돌아왔다. 공원이 개장한 1986년 이래 26년 동안 이틀 동안의 외출이었다.

2000년 늦가을부터 2006년 초겨울까지 박정희 흉상은 '뭉개진 코'로 6년을 보냈다. 이에 박정희를 지지하는 시민단체들이 나섰다. 2005년에는 박정희 바로 알리기 모임(박알모)이, 2006년에는 박정희 대통령 흉상 보존회(흉상보존회)가 정식 발족했다.

2006년 박알모 김동주 대표(46)와 흉상보존회 박계천 회장은 사비 400만 원을 들여 박정희 흉상의 코를 복원했다. 김 대표는 "각하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며 "각하한테 죄스러운 마음이었는데 고치고 나서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말했다.

박알모는 2005년부터 '박정희 흉상' 앞에서 매년 5·16 기념행사를 한다. 김 대표는 "혁명 50주년인 지난해 2000여 명의 인파가 모였다"며 "박정희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박정희 흉상 보호했던 적외선 탐지기는 2개월만 작동

'흉상철거사건' 4개월 만인 2001년 3월, 영등포구는 940만 원을 들여 적외선 탐지기와 이중 펜스를 설치했다. 흉상주변을 24시간 감시할 수 있는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설치는 고려했다가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봄 박정희 기념관 반대 국민연대 회원들은 '박정희 흉상 복원 규탄 대회'를 열고 준비해간 날계란 30여 개를 흉상에 던졌다. 이 '계란세례'로 '흉상수난사'는 끝났다.

그 뒤로 11년이 지난 지난 3일 기자는 '박정희 흉상'을 보러 갔다. 그런데 펜스로 들어가는 문은 열려 있었고 적외선 탐지기도 작동하지 않았다. 기자는 시험삼아 문을 열고 펜스 모서리에 달린 4대의 적외선 탐지기 앞에서 팔을 휘휘 저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흉상 앞 펜스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흉상을 훼손하거나 주위시설물을 손괴하는 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엄중 조치함'이라는 경고판이 걸려있다. 하지만 이 흉흉한 문구가 무색하게 10분여간 펜스 안에 있는 기자를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에 기자는 S보안업체 고객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어 적외선 탐지기가 작동하는지 물었다. 사측은 "문래공원(박정희 동상)이라는 계약명으로 2001년 3월 23일부터 2001년 6월 5일까지 저희가 관리했다"고 밝혔다. 딱 두 달 반 관리한 것이다.

이진호 영등포구청 푸른도시과 주무관은 "현재 흉상은 영등포구 소유지만 관리비로 나가는 돈은 없다"며 "요즘도 가끔 흉상 관련한 민원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는 "흉상을 없애라며 화내는 사람도 있고, 왜 성역화하지 않냐고 화내는 사람도 있다"며 "구청이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지난 1966년 제6관구가 설치한 박정희 흉상은 20년 뒤인 1986년 흉상이 설치된 장소에 문래공원이 조성되면서 영등포구 소유로 넘어갔다. 일부에선 박 전 대통령을 '산업화를 이끈 지도자'라고 평가하지만 4·19혁명을 뒤엎은 군사쿠데타임이 명백한 '5·16'을 '혁명'으로 명시한 박정희 흉상을 구청에서 소유·관리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규정 기자는 <오마이뉴스> 16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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