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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에서 지난 6월 발표한 '2011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결과'에서 한국수자원공사(수공)는 'A등급'을 받았다. 김건호 사장도 기관장 평가에서 'A등급'을 받으며 올 7월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2008년 19.6%(1조9623억 원)에 불과했던 수공의 부채비율은 2011년 116.0%(12조5809억 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투자비 8조 원에 이르는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뛰어든 결과였다. 4대강 살리기 사업 참여를 결정했던 내부 주역은 김건호 사장이다. 

그런데도 수공과 김 사장이 경영실적 평가에서 각각 A등급을 받자 일각에서는 '보은평가'라는 지적이 나왔다. 4대강 살리기 사업에 참여한 대가로 받은 A등급이라는 것이다. 특히 평균 부채비율 20%의 건실한 공기업을 3년여 만에 빚더미에 올려놓은 김 사장 등에는 '업무상 배임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2.8조원 선투자에서 8조원의 직접투자로 변경

정부는 지난 2009년 6월 8일 '4대강 살리기 마스터 플랜'을 확정해 발표했다. 한반도 대운하가 국민의 강한 반대에 부딪치자 '4대강 살리기'로 방향을 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같은 해 6월 29일 "임기 내에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국민의 불신은 여전했다.

4대강 살리기 마스터 플랜이 확정되자 정부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국토해양부는 지난 2009년 6월 12일 수공에 "한국형 녹색뉴딜사업인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 추진·시행과 관련하여 귀공사에서 시행할 사업내용을 붙임과 같이 통보"하는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 딸린 '4대강 살리기 사업 내용(수공 소관)'에 따르면, 정부는 수공에 댐(1조2056억 원), 홍수조절지(2785억 원), 하천(1조2874억 원) 등 총 2조7715억 원 규모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위임했다. 여기에는 한강의 강천보, 낙동강의 함안보·강정보 건설이 포함돼 있다.

특히 국토해양부는 이 공문에서 "국가사업비 보전은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보전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정부가 국가사업비 보전방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수공에 4대강 살리기 사업에 선투자하라고 지시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2조2458억 원의 경인운하(아라뱃길)사업에 이어 2조7715억 원의 4대강 살리기 사업까지 맡을 경우 수공의 부채비율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이후 정부는 수공이 8조 원을 투자해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직접 시행하도록 했다.

수공의 4대강 살리기 사업 참여 과정을 추적해온 국회의 한 관계자는 "처음에는 2조7715억 원을 선투자하라고 했는데 그것은 국가에서 예산으로 보전해 주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며 "하지만 나중에 수공에서 직접 투자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고, 그 규모도 5조 원에서 8조 원으로 크게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부는 같은 해 9월 15일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고 수공이 4대강 살리기 사업에 직접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단기간에 집중되는 재정 부담을 완화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부자감세' 논란이 커지면서 정부의 예산투입이 어려워지자 수공의 직접 투자로 방침을 바꾼 것이다.

이러한 결정이 이루어진 지 열흘 뒤인 9월 25일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정책조정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는 수공이 공사채를 발행해 8조 원의 자금을 조달한 뒤 이를 4대강 살리기 사업에 투자한다는 방안이 최종 확정됐다. 이에 따라 수공은 2009년부터 2012년 6월 현재까지 총 6조7037억 원의 공사채권을 발행했다.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 수공 참여 방안'이 확정되자 수공도 사흘 뒤인 9월 28일 이사회를 열고 4대강 살리기 사업 시행계획을 원안대로 의결했다. 이날 이사회에는 이길재 부사장이 불참한 가운데 김건호 사장과 4명의 본부장, 7명의 이사 등 재적 임원 13명 중 12명이 참석했다.


정부법무공단조차 "4대강 사업 수공의 사업범위에 포함 안돼"

문제는 수공이 법률검토를 통해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직접 시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하고 있었고, 8조 원에 이르는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는 방안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채 사업 참여를 결정했다는 점이다.

국토해양부는 지난 2009년 8월 26일 수공에 공문을 보내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일부를 수공의 자체사업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법률적으로 검토해 결과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수공은 국가로펌인 정부법무공단과 법무법인 우현지산·한길, 수공 자문변호사 등에 관련법령 검토를 의뢰했다.

관련법령을 검토한 결과 '수공이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직접 시행하는 것은 하천법과 수공법에 위배된다'는 판단이 나왔다. 즉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수공의 고유목적사업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자체사업으로 시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하천시설에 대한 시설관리권 등이 없는 하천관리청과 같은 지위에서 하천공사를 자체사업으로 시행할 수 있다고 해석하기 어렵고,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수공의 독자적인 사업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정부법무공단)

"수입없는 하천사업의 자체시행은 수공의 설립 취지 및 경영상황에 어긋난다. 수입없는 하천사업을 자체사업으로 시행할 수 없다."(법무법인 우현지산)

"수공의 사업범위를 정하는 공사법 제9조의 '그밖에 수자원의 개발·이용시설' 범위에 치수시설은 해당되지 않는다. 국토해양부장관의 대행 의뢰없이 수공이 치수사업을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위법·부당하다"(법부법인 한길)

수공의 자문변호사조차도 "공사법과 하천법의 해석상 4대강 살기기 사업은 공사법에서 규정한 사업목적에서 제외된다"고 판단내렸다. 심지어 "민법의 해석상 원칙적으로 법률 및 정관으로 정한 목적범위 외의 사업을 하는 경우 이에 대한 법률적 효력은 무효이기 때문에 수공이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자체시행하면 최악의 경우 이러한 법률적인 쟁점대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하고, 정부가 금융비용 지원을 중단해도 수공이 법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수공은 "자체사업 추진 곤란"이라는 결론이 담긴 법률검토 의견서를 같은 해 8월 27일 국토해양부에 보고했다. 당시 작성된 수공의 '하천사업의 자체사업 가능 여부 검토'라는 문건에는 이렇게 기술돼 있다.

"4대강 사업은 하천의 보존관리를 위한 종합적인 하천관리사업으로서 하천관리청의 책무에 해당하는 사업이므로, 수자원시설의 설치·관리를 통한 원활한 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설립된 수공의 사업범위에 부합되지 아니하고, 동 사업이 특정수혜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는 공공복리사업임에 따라 사업수입을 전제로 설립된 공기업인 수공의 사업으로 부적절."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검토 의견을 묵살하고 비상경제대책회의와 국가정책조정회의 등을 통해 수공이 8조 원을 투자해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직접 시행하도록 결정했다. 수공이 떠맡은 8조 원은 4대강 살리기 사업비 15조4000억 원(국토해양부 예산)의 51.9%에 해당하는 규모다.

국토해양부는 당시 법률검토를 지시한 사실을 숨겼다가 국정감사에서 밝혀졌고, 현재까지 법률 검토 원본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특히 수공의 법률검토 의견이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는 향후 수공의 재무부실에 책임을 묻기 위해서 반드시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지난 2009년 9월 28일 열린 수공 이사회에서도 8조 원 투자비 회수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2009년 9월 28일 열린 수공 이사회에서도 8조 원 투자비 회수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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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에서도 "친수구역 개발로 인한 수익 규모 확정되지 않아"

국토해양부에 "자체사업 추진 곤란"이라는 검토 의견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수공은 지난 2009년 9월 28일 이사회를 열고 '4대강 살리기 사업 시행계획'을 원안대로 의결했다. 재적 임원 13명 가운데 이길재 부사장만 불참했다. 

의결하기 전 김건호 사장은 "그동안 두 차례에 걸쳐 이사회에 4대강 사업 추진현황을 보고드린 바 있다"며 "그 자리에서 이사님들께서 정부의 지원 여부에 많은 우려를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김 사장은 "정부의 지원 약속이 9월 25일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결정되었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이 언급한 '정부의 지원 약속'이란 수공에게 친수구역조성사업권을 주고 투자비를 회수하는 것과 사업비 8조 원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금융비용을 지원하는 것을 가리킨다. 수공은 지난 2009년부터 2012년 6월 현재까지 총 6조7037억 원의 공사채권을 발행했고, 지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총 6753억 원의 금융비용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 하지만 협약서 등을 체결하지 않아 정부가 금융비용을 언제까지 지원할지는 불투명하다.  

8조 원의 투자비 회수 방안으로 제시한 친수구역조성사업은 부동산 침체 등으로 인해 수익이 불투명한 개발사업이다. 게다가 친수구역조성사업을 벌이기 위해서는 또다시 수조 원의 사업비를 조달해야 한다. 수공이 빚더미에 올라설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다.

당시 이사회에서도 투자비 회수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김연철 이사는 "4대강 사업비 이외에 추가적인 수변지역 개발비가 소요될 텐데 정부가 이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고, 송재우 이사는 "수변지역 개발이익 규모가 확정되지 않음에 따라 정부 지원 규모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4대강 사업 자체로는 수익이 발생하지 않고 수변지역 개발을 통해서 회수해야 할 수익은 확정되지 않았으며, 사업비가 현재는 8조 원이지만 향후 그 규모가 변경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특별법 제정 등 정부 협의 과정에서 수익 확보방안 등이 실현될 수 있도록 추진해주시기 바랍니다."(김병진 이사)

이러한 우려에 수공은 "정부도 수변지역 개발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고 있고, 수공도 전담팀을 구성하여 회수방안을 마련하고 있다"(안종서 조사기획처장) "투자비 회수 규모는 수변지역 개발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나와야 구체화될 것 같다"(변두균 수자원사업본부장)는 등의 답변을 내놓았다.

수공은 투자비 회수 방안으로 제시한 수변지역조성사업 계획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지도 않았고, 이에 따라 수변지역조성사업의 수익 규모(투자비 회수 규모)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 시행계획을 원안대로 의결한 것이다. 이사회에서조차 투자비 회수에 문제가 있다는 우려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수공이 정부의 밀어붙이기에 동조한 셈이다.

결국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직접 시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법률 검토 의견이 나왔고, 8조 원에 이르는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는 방안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 참여를 결정함으로써 수공은 '업무상 배임 혐의'를 자초했다. 수공의 부실이 현실화될 경우 사업 참여를 밀어붙인 국토해양부 장관과 이에 동조한 수공의 임원들은 부실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태그:#한국수자원공사, #4대강 살리기 사업, #김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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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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