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을 앞두고 각팀 공격력을 프리뷰하는 글들을 올리면서 두산 베어스의 공격진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고영민의 부활이 필수적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빠른 기동력에 재치 있는 주루, 그리고 뜬금없이 터지는 장타력은 속된 말로 상대 수비진과 배터리의 '멘붕'을 유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들이다.

2006년 시즌부터 경기 출장수가 늘어난 그는 2007년 12홈런, 66타점, 36도루, 2008년 9홈런, 70타점, 39도루를 기록하면서 베어스의 공격을 주도하였다. 고영민의 최대 장점은 어느 타순에 배치해도 자기 몫을 충분히 해낸다는 점이다. 장타력과 기동력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경문 감독 시절 고영민은 클린업 트리오에 배치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고영민의 3번 타순 기용은 당시로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파격적인 실험이었다. 클린업 트리오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은 철저히 타점을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중장거리형 거포들이 배치되는 순번이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잘 달리고 작전 수행능력이 좋은 타자들이 1번부터 3번까지 배치되면서 베어스는 이른바 '육상부'로 불리우면서 상대 수비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독특한 타순이 가능하게 만든 핵심에는 바로 고영민이 있었다.

수비에서도 고영민은 2루수이면서도 내야를 벗어난 잔디 그라운드 위에서 수비를 보면서 안타성 타구를 걷어내는 폭넓은 수비범위를 과시하면서 이른바 '2익수'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타고난 손목 힘을 바탕으로 한 송구능력은 그의 빠르고 폭넓은 수비를 가능케한 또 다른 원동력이었다.

가장 단적인 사례가 2008 베이징 올림픽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마지막 병살타구를 처리하는 장면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악송구를 범할 것같은 송구동작이었지만 고영민의 타고난 손목힘은 정확한 송구로 연결되어 대한민국 야구 역사에 새로운 금자탑을 쌓게되는 장면을 연출하게 하였다.

공격과 수비에서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킨 고영민은 2008년까지만 하더라도 거칠 것 없는 탄탄대로를 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09년 WBC 대회 참가 이후 그의 컨디션은 급격한 하락을 겪게 되고, 타격은 좀처럼 회복하지를 못했다. 공격이 안 되니 수비에서도 가끔씩 어처구니 없는 플레이로 팀 전체에 '멘붕'을 가져오는 경우가 늘어났다. 어느덧 그의 출장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그의 빈자리는 오재원이라는 새로운 허슬플레이어가 메우기 시작한다. 고영민의 존재가치는 이렇게 잊혀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올 시즌 고영민은 서서히 본색을 되찾아가고 있다. 지난 7월 27일 잠실에서 펼쳐진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고영민은 패색이 짙어가던 8회말 1사 후 안타로 출루하면서 기회를 만들더니, 후속타자 오재원의 평범한 중견수 플라이 타구 때 상대방 수비진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2루까지 진루하는 기민한 플레이를 펼친다. 결국 김현수의 안타로 고영민은 극적인 동점 득점을 뽑아냈다. 고영민의 영리한 주루 플레이가 승부의 흐름을 바꿔놓은 것이다. 결국 9회말 이종욱의 결승타로 베어스는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게 된다.

31일에 펼쳐진 삼성 라이온즈와의 대구 경기에서 고영민은 원맨쇼를 펼쳤다. 4회말 라이온즈 최형우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하면서 1-0으로 끌려가던 베어스는 6회초 2사 후 고영민의 천금같은 적시타로 균형을 맞추는 데 성공한다. 양팀은 팽팽한 투수전을 지속했고, 결국 승부는 9회초 베어스 공격에서 갈리게 된다.

베어스 선두타자 김재호가 중전안타로 출루한 이후 상대 투수 정현욱의 폭투가 이어지며 무사 2루의 찬스를 맞이하고 동점타의 주역 고영민은 또 다시 결승타를 쳐내면서 팀이 올린 2타점을 모두 올리는 만점 활약을 펼친다. 붙박이 리드오프 이종욱을 대신해 1번타자로 나선 고영민은 다시 한 번 어느 타순에 배치되도 충분히 자신의 몫을 해낼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후반기들어 베어스가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의 중심에는 바로 고영민이 자리하고 있다. 고영민이 2007년, 2008년 당시와 같으 모드로 돌아올 경우 베어스는 올 시즌 대권도전을 충분히 꿈꿔볼 만하다. 그리고 올 시즌 압도적인 1위를 굳히고 있는 라이온즈를 상대로 베어스는 상대전적 9승 3패의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다. 여러모로 베어스에게 긍정적인 시나리오들이 탄생될 조짐이 보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프로야구 두산베어스 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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