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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6일 오후 4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귀족노조가 파업을 하는 나라는 없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27일 오후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현안 점검회의에서 한 말이다. 대통령은 특히 "만도기계라는 회사는 연봉이 9500만원이라는 데 직장 폐쇄를 한다고 한다"면서 구체적 사실까지 보고받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노동조합 활동과 연봉이 무슨 관계?

이명박 대통령은 27일 국정현안점검회의에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귀족 노조가 파업하는 나라는 없다.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7일 국정현안점검회의에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귀족 노조가 파업하는 나라는 없다.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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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게 거꾸로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역사에서 연봉에 따라 노동조합 활동이 제한받는 경우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대통령이 고소득이라 말한 자동차 관련 기업의 연봉은 기본급에 그와 비슷한 수준의 잔업과 특근 수당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수치라는 점,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만도 노동조합이 주간연속 2교대 제도를 도입하려고 파업을 개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일까? 같은 맥락에서 이 대통령은 최근 한 대선 후보가 제시한 '저녁이 있는 삶'에 호응이 크다는 것은 알고 있을까?

27일 현대 기아차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대기업 만도와 중견기업 에스제이엠(SJM)이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최근 경기침체 우려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가장 선전하는 산업의 기업들이다. 금속노조 산하의 두 기업 노조들은 구조조정 반대와 주간연속 2교대 등을 요구하면서 부분파업과 하루 전면파업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두 기업의 사측은 시설물의 파괴나 심각한 경영상의 위기와 같이 지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방어적으로 사용해야 할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말하자면 법의 맹점을 이용한 교묘한 직장폐쇄인 셈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직장 폐쇄에 대해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은  채, 비난의 화살을 노동조합에게만 돌리고 있다.

부분파업과 하루파업에 직장폐쇄·용역 난입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 두 기업의 직장폐쇄를 위해 전국에서 1500여 명의 이른바 경비용역이 동원되어 에스제이엠 안산공장과 만도의 평택, 문산, 익산 공장에 있던 노동조합원을 몰아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경비용역들이 휘두른 폭력으로 조합원 약 35여 명이 부상을 입는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공격적 행위를 할 수도 없고 경찰에게 사전에 신고를 해야 하는 용역들이 명백한 불법적 폭력 행위를 한 결과이다.

7월27일 15시 부로 만도 사측은 직장을 폐쇄하고 평택, 문막, 익산공장에 용역을 투입해 공장을 봉쇄했다. 평택공장 정문을 용역들이 봉쇄하고 있다.
▲ 만도 평택공장 7월27일 15시 부로 만도 사측은 직장을 폐쇄하고 평택, 문막, 익산공장에 용역을 투입해 공장을 봉쇄했다. 평택공장 정문을 용역들이 봉쇄하고 있다.
ⓒ 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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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용역회사가 바로 컨택터스(Contactus)라고 하는 사설 경비업체였다. 이 업체는 '국내 최대 규모 시위진압 장비를 보유한 대한민국 시위·집회 해결사'라고 스스로를 홍보하고 있다. 원거리에서 시위대를 제지할 수 있는 독일산 물대포용 수력방어차량을 최초로 도입했다고 한다. 가장 공격적이라고 알려진 이른바 '히틀러 경비견', 방패, 헬멧, 진압복, 곤봉 1000세트와 지휘차량, 진압차량, 항공 채증용 무인헬기까지 갖췄다고 하니 가히 사설 무장경찰조직 수준이다.

더욱이 7월 30일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이 업체는 2007년 이명박 대통령 경호를 맡았던 곳이다.

지금 정치권에서 온통 경제 민주화 주장이 백화제방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에스제이엠의 안산 공장과 만도 작업장에서는 경제 민주화를 찾아볼 수가 없다. 불법적인 직장 폐쇄와 불법적인 용역 깡패 동원이라고 하는 원시적인 경제 '반민주화 사태'가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경제 민주화는 여의도에만 갇혀 있다. 오히려 대통령과 기업주들은 다시 '경제위기'를 이유로 들며 노동조합을 비난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우니 노동조합이 파업이나 단체행동 등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위기 논리 앞에서 경제 민주화는 사라졌다.

확실히 올해 들어서 경제 성장률은 전년 동기대비 1분기에 2.8%, 2분기에 2.4%로 극히 저조한 성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반기에도 유럽경기 침체가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3% 수준의 성장은 불가능하다. 수출부진과 가계부채의 덫에 갇힌 국내 민간소비위축, 부동산 경기조정 등 어느 것 하나 단기적 해법은 없다. 장기적 저성장과 불황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일치하는 해법은 '내수 활성화'이다. 맞다. 지금의 수출 부진은 품질 경쟁력이나 가격 경쟁력 때문이 아니라 글로벌 수요 자체가 위축되면서 생긴 문제이니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내수를 보강해야 한다. 내수 중에서도 정부소비나 기업투자보다 당장 핵심적인 것은 민간소비, 즉 국민들의 구매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뉴딜 정부는 대공황기 노동조합 적극 지원

알려드립니다
이 기사 와그너법 관련 내용은 강희원(1999) '와그너 법 체제와 미국의 노동조합', 김진희(2006) '뉴딜 단체협상법의 생성과 변형:와그너 법에서 태프트-하틀리 법까지' 논문 중 일부를 인용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새사연 리포트가 기사로 처리되는 과정에서 이 점이 정확하게 명시되지 않은 점, 두 논문 저자분께 사과드립니다. 
우리는 여기서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시기에 뉴딜 정책을 추진했던 미국 정부의 정책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국 정부는 대공황 탈출의 일환으로 노동자의 구매력 향상을 의도했으며, 이를 위해  노동조합과 노동조합의 단체협상을 장려했다. 사실 미국에서는 19세기는 물론이고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노동조합 활동이나 시위, 파업 등 노동자들의 단결과 단체행위 자체에 대해 법원이 '범죄적 공모죄'로 몰아 형사처벌을 할 만큼 노동자 무권리의 나라였다. 김진희 논문(뉴딜 단체협상법의 생성과 변형 : 와그너법에서 태프트-히틀리 법까지)에 따르면 "일부에서는 뉴딜 이전의 미국 노사 관계가 봉건제적인 '주인과 하인의 법'의 지배를 받았다"고 할 정도였다.

이런 미국에서 1929년 대공황이 터지면서 실업이 급증하고 공황이 장기화하던 시점인 1935년 7월 5일에 입법 서명한 '전국 노동 관계법(NLRA: National Labor Relation Act)', 일명 '와그너법(Wagner Act)'이 제정되었다. 이는 노동자에게는 노동조합을 자주적으로 결성하고 단체협상 할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고, 사용자에게는 노동조합에 간섭하거나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등 부당 노동행위를 엄격히 금지하도록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와그너법은 노동운동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미국 정부 주도아래 만들어졌다. 그럼 왜 미국 정부는 대공황의 한복판에서 노동조합 활동과 단체협상을 획기적으로 보장해주는 법안을 통과시켰을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수요부족을 타개하기 위한 노동자의 구매력 향상이 필요했다. 김진희 논문에 따르면 법안을 발의했던 와그너 상원의원은 "경제 침체 극복을 위해서는 구매력이 향상되어야 하며, 구매력 향상을 위해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단체 협상권이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취지는 와그너법 전문에 다음과 같이 명확히 들어가 있다.

"완전한 결사 자유 또는 실질적인 계약자유를 가지고 있지 않는 근로자와 회사, 또는 여타 형태의 소유자 연맹체로 조직된 사용자 간의 교섭력 불평등이 임금 및 임금 소득자의 구매력을 억압하며, 산업 간의 경쟁 임금과 근로 조건의 안정을 방해해서 거래에 악영향을 미쳐서 계속적인 기업불황을 악화시킨다."

둘째는 더 나아가 와그너 상원 의원은 와그너 법이 보다 나은 경제적 균형을 창조해서 보다 나은 경제적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와그너 상원 의원은 단체교섭이 임금 상승과 국민소득의 보다 나은 분배를 촉진하며, 올바른 단체교섭은 사용자의 지배가 없는 노동조합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달리 말하면 와그너 법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노동운동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와그너 법의 취지는 2012년 세계경제와 한국경제 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현재의 장기침체 국면은 부채축소와 함께 극도의 소비위축 등에 비롯된 바가 크므로, 노동자의 임금소득을 포함한 소득과 구매력 증진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협상력을 강화해서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 활동과 단체협상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이제 우리도 지난 15년 동안 신자유주의적 노동 유연화로 인해 체계적으로 해체되었던 각종 노동자 보호 제도와 장치를 복원해야 한다.

산업 민주주의 촉진으로 사회정의 추구해야

그런데 와그너법이 가지는 의미가 하나 더 있다. 대공황을 민주주의 함양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는 데 커다란 의의가 있다. 와그너 상원의원은 경기회복 못지않게 산업 민주주의(industrial democracy)의 정착을 중시했고 심지어 그는 노동자의 민주적 동의와 실질적 자유의 성취를 거시 경제적 안정과 성장보다 우선시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경제 안정은 바람직하지만 사회정의는 불가피하다"고 했던 와그너 의원의 발언이 이를 잘 보여준다.

어쨌든 와그너 법 지지자들은 와그너 법이 노동자들의 생활에서 민주적 절차를 앙양시킴으로써 정치적 민주주의의 보다 깊은 뿌리가 마련됐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단체 교섭을 통해 그들의 노동생활 규범과 조건을 결정하는 데 효과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인간적 완전성과 존엄성을 높은 수준으로 성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진희 논문에 따르면 와그너 의원은 권위주의 정부와 자유시장이라고 하는 두 가지의 폭정을 종식시킬 정당하고 민주적인 대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한다. 권위주의 정부도 자유 시장도 거부했던 그가 생각했던 대안은 공적 이익을 보호하는 민주 정부였고 그 일환으로 와그너법을 생각한 것이다.

와그너법이 만들어진 후 80년이 지난 지금 한국사회는 어떠한가? 경제 민주화라는 깃발 뒤에서 단지 부분파업만으로도 직장폐쇄가 이루어지고, 용역깡패가 난입하여 폭력을 휘두르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민주통합당 이용섭 박기춘 홍영표 은수미 의원 등이 당론으로 발의한 경제민주화 관련 6개 법안을 12일 국회에 제출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이용섭 박기춘 홍영표 은수미 의원 등이 당론으로 발의한 경제민주화 관련 6개 법안을 12일 국회에 제출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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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는 극단적인 시장 자유화로 인한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가 적절하고도 민주적으로 시장에 개입하여 경제의 균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정부의 민주적 시장개입에서 중요한 핵심은 경제 권력이 집중된 재벌을 규제함과 아울러 노동자와 소상인, 중소기업, 소비자와 시민 등 다른 경제주체들의 권리와 힘을 강화시켜 그들 스스로 협상력을 높이고 대자본과 재벌 경제 권력으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제도적, 법적, 행정적 개입을 하는 것이다.

최근 시민사회에서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 시민연대'를 구성하려는 것도 노동조합이 약한 우리 여건에서 경제권력에 대항하는 시민적 힘을 키우기 위함이다. 이런 여건에서 특히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을 더 용이하게 해주고 단체협상 적용범위를 확대할 수 있도록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경제 민주화에서 권위주의적 개입과 민주적 개입을 나누는 하나의 기준점일 수 있다. 특히 보수적 박근혜 후보의 경제 민주화가 박정희식의 권위주의적 국가 개입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경제 민주화인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일 수 있다.

대선 후보들이 경제 민주화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가 있고 경기 회복에 대한 진정한 의지가 있다면,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고 보호하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특히 이번 만도와 에스제이엠 사태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이제 경제 민주화는 당연히 자본시장의 주주들의 테이블에서 벗어나야 함은 물론, 해당 기업을 뛰어넘어 외연으로는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내적으로는 노동자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덧붙이는 글 | * 홍찬표(2008) '미국 노사관계의 역사적 발전과정에 관한 연구', 강희원(1999) '와그너 법 체제와 미국의 노동조합', 김진희(2006) '뉴딜 단체협상법의 생성과 변형:와그너 법에서 태프트-하틀리 법까지'를 참고하여 썼습니다.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연구원입니다.



태그:#경제민주화, #재벌개혁, #와그너법, #만도기계, #S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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