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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을 따라 차를 몰고 가다가 애먼 곳에 도착한 일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입니다. 내비게이션을 업데이트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모두 함께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미래의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인생의 내비게이션을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왜냐면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한 인생 내비게이션은 우리를 애먼 곳으로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기자 말>

때는 1991년 봉천동에 위치한 모 고등학교의 수업시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20분 정도만 더 그 딱딱한 교실 의자에 앉아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습니다. 내 몸과 형태와 딱 맞게 만들어져 피부로부터 1밀리미터 정도의 여유밖에 없는 거푸집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이 바로 이럴까요?

아니면 자기 몸 하나 돌릴 수 없는 꽉 조이는 공간에서 달걀만 낳으며 삶을 사는 항생제에 절은 닭의 느낌? 살려면, 숨 쉬려면, 무조건 이 공간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임기응변으로 꾀를 냈습니다. 아마 제 기억이 맞으면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갔을 겁니다. 그리고 오른손 손바닥으로 이마를 세차게 문질러댔습니다. 그보다 조금만 더 힘을 줘서 문질렀다면 분명 이마의 살갗이 벗겨져서 피가 났을 겁니다. 곧바로 교무실의 담임선생을 찾아갔습니다.

'열이 나고 몸이 안 좋습니다. 아무래도 조퇴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은 이렇게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이 숨 막히는 공간에 20분만 더 있다가는 제가 미쳐버릴 것 같으니까 제발 조퇴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하지만 이렇게 얘기하면 그 어떤 교사가 조퇴를 허락해 줄까요? 게다가 당시 우리 담임선생은 몽둥이로 학생들과 소통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약간은 미심쩍다는 눈초리로 저를 바라보던 담임은 제 이마를 짚어보더니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을 애써 감추며 '음.. 열이 좀 있구먼. 알았어. 조퇴해'라고 말했습니다. 단언컨대 제가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허락을 했을 겁니다. 만약 공부를 못 하는 학생이었다면 이런 어이없는 꼼수로 조퇴를 얻어내기는 힘들었겠지요.

하지만 솔직히 그저 열이 좀 있는 정도의 상황이었다면 저는 오히려 조퇴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때까지 개근상을 달고 다녔던 저의 입장에서 열이 좀 있는 정도는 사실 아무 일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열은 없지만 정말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멀쩡히 공기가 있는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이 벅찬 그런 느낌을 아시나요? 분명 숨을 쉬고 있는데도 말이죠. 바로 그랬습니다. 그래서 죽지 않고 살려고 조퇴했습니다.

그때 학교 교문을 나가면서 마셨던 공기의 느낌을 저는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거기서 거기인 공기일 텐데 교문 1센티미터 안과 교문 1센티미터 밖의 공기가 너무도 다르게 느껴지더군요. 이것이 자유의 맛인가요? 그렇다고 조퇴해서 그 무슨 대단한 일탈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근처 오락실에 들러서 오락 몇 판을 한 후 그냥 집에 가서 쉬었지요.

사실 돌이켜보면 저는 성적이라는 객관적 지표만 빼고는 그다지 학교 측이 선호할 만한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나쁜 짓을 하고 다닌 것은 아니지만요. 솔직히 친구들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학교라는 공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기합도 심심치 않게 받았는데요. 1990년 그러니까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담임이 교련 선생이었는데,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담임에게 앉았다 일어났다를 1,000회 실시하는 기합을 받았습니다. 이거 해보신 분은 알겁니다. 다음날이 되면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허벅지 근육이 땅겨서 내리막길은 절대로 혼자서 내려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기합을 받은 다음날 담임선생이 저를 포함해 몇 명의 친구들을 불러 방과 후에 영화를 보자는 겁니다. 영화 제목은 무려 '죽은 시인의 사회'. 그러니까 너희들 제발 이 영화 좀 보고 사람 되라는 의미겠지요. 한데 제가 기합을 심하게 받은 탓에 내리막길에서 영화를 보러 가는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을 놓친 겁니다. 게다가 저를 부축해 주던 친구도 저 때문에 함께 놓쳤지요. 요즘이라면 휴대폰으로 연락이라도 할 텐데 그때는 그런 것도 없었으니까요.

다음날 담임에게 자초지종을 잘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등교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담임이 저와 저를 부축한 친구를 따로 으슥한 방으로 부르더군요. 게다가 우연의 일치로 저와 제 친구는 마침 둘 다 이발소에서 머리를 거의 백고 치는 수준으로 짧게 깎고 학교에 왔습니다. 둘의 머리가 동시에 이렇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는데, 담임은 우리의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보더니 반항의 의미로 해석하고 어이없어하며 몽둥이를 하나 들고 왔습니다. 담임이 평소에 이건 무슨 나무를 깎아 만들었기 때문에 내구성이 뛰어나다며 자랑했던 바로 그 몽둥이였습니다. 다행히 저와 제 친구가 사정을 정말 자세하게 얘기해서 두들겨 맞는 것은 모면하고 반성문을 여러 장 쓰는 것으로 마무리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저는 맞는 상황이 그렇게 낯선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맞는 것보다는 안 맞는 것이 나으니까요.

농장에서 사육하는 돼지는 꼬리와 이빨을 자른다고 합니다. 자기 몸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그 열악한 사육장에서 돼지들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서로의 꼬리를 잘라먹는 엽기적인 행동을 하기 때문인데요. 그런 환경에서 돼지들은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달걀을 낳는 닭들은 어떠한가요? 성인 손바닥 두 개를 이은 것 만한 공간에서 항생제 들어간 사료를 먹으며 끊임없이 알을 낳도록 강요당합니다. 알 계속 낳으라고 낮처럼 항상 환하게 불을 켜 놓습니다. 그러다보니 닭들은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근처에 있는 닭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재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사람들은 미리 닭의 부리를 자릅니다. 만약 우리가 돼지와 닭인데 이런 상황에서 평생을 보내야 한다면 어떨까요? 과연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요?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할 것 없이 학교라는 공간이 주는 스트레스는 매우 큽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할 것 없이 학교라는 공간이 주는 스트레스는 매우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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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의 동물들을 생각해 봅시다. 초원을 뛰어 놀고 드넓은 대양을 헤엄쳐야 할 동물들이 인간의 구경거리가 되어 좁은 우리에 갇혀 있습니다. 예컨대 동물원의 돌고래는 인간이 좋아하는 특정 행동만을 끊임없이 반복하도록 훈련을 받습니다. 과연 그들이 행복할까요? 전시 돌고래 반대 활동가인 리처드 오배리 씨는 한때 돌고래들을 사육한 조련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훈련시킨 돌고래 중 하나가 품 안에서 죽은 것을 계기로 동물 포획 반대 운동에 일생을 바치고 있다고 합니다. 오배리는 그 돌고래가 자살한 것이라고 믿고 있답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할 것 없이 학교라는 공간이 주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학생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집단적으로 한 명의 약한 학생을 괴롭히는 소위 '이지메'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돼지들이 서로의 꼬리를 물어뜯고 닭들이 부리로 서로를 쪼아대고 돌고래가 자살을 하는 그 상황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학교가 인간 사육장이라고 한다면 너무 과격한 비유일까? 최근에 동물 복지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동물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동물만도 못한가요? 동물에게 복지가 있다면 사람인 학생은 복지보다 더한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자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려 봅시다. 과연 그것이 정상적인 상황이었는지, 아니면 몸에 꽉 끼는 닭장에서 항생제 가득한 사료를 먹어대며 끊임없이 알을 낳아야 하는 닭의 처지였는지를 말이죠.

자! 이제 묻겠습니다. 학교가 싫은가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당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니까요.


태그:#학교, #폭력, #교육, #이지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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