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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백남준 사진. 에릭 안데르시 아카이브 컬렉션.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어디 거칠 것이 없는 그의 패션이 백남준답다
 1980년 백남준 사진. 에릭 안데르시 아카이브 컬렉션.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어디 거칠 것이 없는 그의 패션이 백남준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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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관장 박만우)에서 7월 20일 세계적인 세기의 예술가인 백남준 탄생 80주년을 맞아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전을 내년 1월 20일까지 연다. 이 제목은 백남준이 1992년도에 쓴 <말(馬)에서 크리스토까지>에서 인용한 것으로 '노스탤지어'가 미디어아트와 만날 때 더 큰 깨달음을 준다고 보는 해석이다.

백남준은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듯 그는 자신의 시대를 넘어 다음 세기를 내다봤다. 이번 전시도 그런 맥락에서 예술에 하이테크가 도입해 21세기 비전이 담긴 통합된 세계관을 보여준다. 국내외 13팀이 참가했고 로봇조각, 사이버공간, 백색소음 등 소주제로 나눠 전시된다.

인간, 기계, 자연이 하나가 되는 세상

백남준 I '마르코 폴로(Marco Polo)' 1993.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소장
 백남준 I '마르코 폴로(Marco Polo)' 1993.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소장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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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인간, 자연, 기계'를 하나의 동급으로 본다. 마치 동양에서 천지인 즉 우주의 삼요소가 공존할 때 아름다운 세상이 온다는 것과 비슷한 관점이다. 위 작품만 봐도 그렇다. TV와 로봇(인간), 자동차와 화초(자연)가 아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폴크스바겐으로 만든 작품 '마르코 폴로'는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으로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길을 상징한다. 이는 백남준이 1974년에 이미 언급한 '전자초고속도로'를 구현한 작품이다. 현장에서 이 작품을 본 백남준의 유치원친구인 이경희 여사는 "유구한 역사 속에 동서양을 잇는 통로를 걷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그 감회를 털어놓았다.

전자초고속도로, '베니스'에서 '울란바토르'까지

백남준 I '이지 라이더(Easy Rider)' 1995(왼쪽)'. '칭기즈칸의 복원(The Rehabilitation of Genghis-Khan)' 1993(오른쪽)
 백남준 I '이지 라이더(Easy Rider)' 1995(왼쪽)'. '칭기즈칸의 복원(The Rehabilitation of Genghis-Khan)' 1993(오른쪽)
ⓒ 백남준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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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칭기즈칸의 복원' 역시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으로 그 제목에서 보듯 백남준이 30살인 1962년에 선언한 "황색 재앙은 바로 나다"라는 기백이 담겨있다. '베니스에서 서울까지'가 아니고 '베니스에서 울란바토르까지'라고 한건 한반도에 갇혀있지 않은 드넓은 초원의 몽골후손이라는 정체성에서 나온 것이다.

백남준은 문화를 통해 세계를 호령하는 칭기즈칸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런 모습을 정보수송과 관련된 자료를 그득 싣고 삼천리 자전거를 탄 칭기즈칸으로 위트 있게 형상화했다. 서구역사에서 지워진 몽골제국의 칸을 복원하며 21세기의 중심은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임을 선언한 셈이다.

로봇에게 숨 불어넣고 사람처럼 대화하기

백남준 I '당통(Danton)' 1989. 프랑스혁명 200주년기념작품.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소장
 백남준 I '당통(Danton)' 1989. 프랑스혁명 200주년기념작품.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소장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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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또한 성서의 창조신화에서 조물주가 흙에 호흡을 넣어 사람이 되게 하듯 로봇에 숨을 불어넣어 사람처럼 소통할 수 있게 했다고 할까. 그의 로봇을 보면 그 표정이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아 말을 걸고 싶어진다. 이런 방식은 이미 백남준이 TV를 생명체로 보고 장난을 친 '자석 TV'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번에 선보인 로봇가족을 보면 백남준이 좋아하는 히포크라테스, 데카르트, 슈베르트, 당통, 채플린, 율곡 등 과학자, 예술가, 사상가, 혁명가를 형상화시킨 것이다. 자신의 철학과 사유를 대변하는 '사이버적 인간(Homo Cyberneticus)'을 구현한 것으로 이것은 백남준의 또 다른 자화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이테크의 인간화, 과학의 예술화 추구

백남준 I '즐거운 인디언(Happy Hoppi)' 1995. 대림문화재단 소장.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관개관전에 출품된 작품
 백남준 I '즐거운 인디언(Happy Hoppi)' 1995. 대림문화재단 소장.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관개관전에 출품된 작품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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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이렇게 하이테크의 인간화와 과학의 예술화를 추구했다. 사실 첨단기술로 만든 미디어매체는 그 금속성으로 차갑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백남준은 고체덩어리인 물체에 사람의 체온과 감정을 불어넣었다. 그래서 21세기형 인간은 자연뿐만 아니라 기계와도 융합해서 살아야 하는 생존법을 제시하고 있다.

위 작품은 인디언 춤을 주제로 해서 그런지 백남준 미학의 근간이 되는 샤머니즘 요소도 풍부하다. 굿판에서 보는 그런 신명의 세계와 강력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전자 빛으로 그린 움직이는 그림 실험

백남준 I '촛불하나' MMK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소장 1989
 백남준 I '촛불하나' MMK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소장 1989
ⓒ 백남준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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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백남준은 전자 빛으로 그린 움직이는 그림(mobile painting) 실험에도 성공한다. 백남준의 키워드인 참여와 소통의 정신이 여기에서도 반영되고 있다. 이 그림 속에서는 관객이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관객이 참여한 만큼 그림이 움직이면서 달라진다. 전자 빛으로 그린 그림이 이렇게 낭만적이고 서정적일 수 있다니 놀랍다.

벽과 천장에 투사된 화려한 색채와 움직임으로 정중동의 분위기 속에서 관객을 깊은 사색에 빠뜨리기도 하고 격한 감정의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작품 역시 자연과 인간과 기계가 혼연일체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비디오 코뮌'에서 '위성아트' 그리고 'SNS'까지

백남준 I '손과 얼굴' 2012. 서울스퀘어에서 상영 중. 서울스퀘어 빌딩 미디어 캔버스에서 2012년 8월 20일까지 비디오 상영
 백남준 I '손과 얼굴' 2012. 서울스퀘어에서 상영 중. 서울스퀘어 빌딩 미디어 캔버스에서 2012년 8월 20일까지 비디오 상영
ⓒ 백남준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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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스퀘어에서 8월 20일까지 볼 수 있는 위 작품은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지구촌마인드로 만든 1970년 작 '비디오 코뮌(Video Commune)'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완결판인 '글로벌 그루브(Global Groove)'를 3년 후에 발표한다. 백남준은 TV를 이렇게 정치권력과 경제이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예술로 승화시켰다.

이런 정신이 80년대 들어와 위성아트인 '굿모닝 미스터오웰(1984년)'로 이어졌다. 백남준은 다시 90년대 와 앞에서 언급한 '정보초고속도로(1993년)'를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했다. 이는 지구촌이 하나일 수밖에 없는 인터넷사회를 열었고 21세기 SNS도 낳았다.

이렇듯 백남준은 공간예술에 시간마저도 다스릴 수 있는 비디오아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현재, 과거, 미래라는 시간에 갇혀 사는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시간을 편집하고 그 방향도 조율하고 뒤바꿀 수 있게 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검열문제 제기

안토니 문타다스(Antoni Muntadas) I '파일 룸(The File Room)' 1990/2012 작가소장
 안토니 문타다스(Antoni Muntadas) I '파일 룸(The File Room)' 1990/2012 작가소장
ⓒ 백남준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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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국내외 작가 13팀이 참가하고 있는데 지면상 외국 작가 2명만 소개한다.

우선 MIT의 미디어랩 교수이기도 한 안토니 문타다스 작가를 보자. 그는 국내기자와 인터뷰에서 한국에는 아직도 문화예술에 대한 검열이 있는지를 묻는다. '파일 룸'은 바로 커뮤니케이션 권력 중 하나인 '검열'이 주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세계 각국의 예술문화 분야의 검열사례를 수집하여 검색할 수 있게 했다.

작품 분위기가 과거 군사독재시절 중앙정보부의 취조실처럼 어두컴컴하다. 이런 닫힌 공간 안에서 컴퓨터를 검색한다는 것이 주는 메시지는 강력하다. 이 작품은 미국의 국립검열반대연합과 협업한 것으로 문화 민주주의자 백남준을 상기시킨다.

기계와 자연의 관계망 속에 생존하는 인간

카트린 이캄(Catherine Ikam) & 루이 플레리(Louis Fleri) I '원형의 파편들(Fragments of an Archetype)' 1980/2012 작가소장
 카트린 이캄(Catherine Ikam) & 루이 플레리(Louis Fleri) I '원형의 파편들(Fragments of an Archetype)' 1980/2012 작가소장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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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소개하려는 작품은 1980년대부터 미래주의적 관점에서 테크놀로지로 시도해 온 프랑스 팀 것이다. 제목은 '원형의 파편들', 신보다는 인본주의에 더 충실하려 했던 다빈치의 인간전형인 '비트루비우스'의 16군데 몸 부위를 16대 모니터로 재조합한 것이다. 인간이 자연과 기술의 긴밀한 관계성 속에 살아가야 함을 내비친다.

이밖에도 백남준의 기술조수이자 제자인 빌 비올라(Bill Viola)의 철학적 성찰이 담긴 작품 '지고의 존재'와 덴마크의 유명작가 올라퍼 엘리아슨(O. Eliasson)의 '당신의 모호한 그림자' 작품도 선보인다. 이 작품들도 자연과 과학의 결합, 작품과 관객의 교류, 예술과 사회의 소통을 지향하고 있어 백남준의 철학과 그 맥을 같이한다.

내한한 구보다 시게코 여사 인터뷰

백남준의 예술적 동지이자 삶의 동반자인 구보다 시게코(75) 여사
 백남준의 예술적 동지이자 삶의 동반자인 구보다 시게코(75) 여사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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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9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구보다 시게코 여사가 기자간담회를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백남준이 살아온다면 하고 싶은 말은, 그의 80회 생일 소감은?
"남준, 당신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당신도 여기 우리와 함께 있는 것 같아요. 백남준 어머니는 점을 잘 보셨는데 백남준은 집 없이 부랑아처럼 세계를 돌아다닐 거라고 무당이 예언했는데 어느 정도 맞췄어요. 백남준은 TV를 가지고 전 세계를 집시처럼 돌아다녔어요. 백남준은 공장 같은 곳에서 살았는데 지금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한 너무나 좋은 이 집에 모셔져 있느니 여기가 정말 백남준 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트센터 관계자분에게도 감사드리고 싶어요"

- 백남준은 어떤 예술가였다고 생각하는지?
"나와 백남준은 우선 플럭서스(fluxus) 멤버이자 같은 예술적 동반자였죠. 나와 백남준은 이미 행위미술에 공감하여 어려운 시절을 같이 동고동락했어요. 플럭서스 운동이 결국은 비디오아트로 발전한 거예요. 일본에 있을 때부터 백남준을 알았지만 처음 만난 것은 1964년 뉴욕에서고 거기서 슈아 아베도 만나 '456로봇'도 만들었어요. 비디오아트는 초반에는 그 TV자체가 이동하기 어렵고 무겁고 잘 망가져 정크아트(junk art)로 취급당했기도 했죠.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에 그것을 옮기느라 백남준이 고생도 많이 했어요. 지금은 인정을 받지만 당시에는 백남준의 존재 자체를 거의 몰랐어요. 비디오아트가 저급예술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고급예술이에요. 그는 남이 가지 않은 예술을 개척한 선구자로 21세기의 문을 열었죠"

- TV와 로봇에게 생명을 넣은 방식의 예술을 서구에서 어떻게 봤는지?
"백남준은 기술의 인간화를 지향했고 예술의 휴머니즘을 중시했어요. 기술은 단지 도구로 볼 뿐이에요. 그는 낡은 것은 파괴하는 창조자로 늘 새로운 것을 추구했어요.  TV정원이나 TV부처도 다 그런 정신을 발휘한 거죠. 하이테크를 그냥 도구로 이용했어요. 그리고 백남준은 샤머니즘 요소가 강했고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불교적인 것에도 심취했죠. TV를 부수는 행위가 그에게는 어떻게 보면 수행이나 명상이었을 거예요. 국가와 사회에 대한 급진적 사고로 사람들에게 많은 오해를 샀죠."

- 백남준이 어디엔가 살아있다면 뭘 할까?
"백남준은 아직도 마이애미 집 근처 어딘가 해변에 있을 것 같아요. 백남준은 50대가 되어서야 귀향했는데 그때 선친 묘지에 갔어요. 그 주변에 무명무덤이 많았고 너무 아름다웠어요. 하지만 백남준은 무명무덤처럼 초야에 묻혀 사는 식이 아니라 내 옆에 카트린 이캄 작가도 같이 지내 알겠지만 파리나 뉴욕파티에 즐겨 참가하는 축제주의자였어요. 여러 곳을 두루 다니는 것이 그의 방식이고 세상을 사는 프레임이자 소통방식이었죠. 그가 지금 살아있어도 역시 그랬을 거예요."

덧붙이는 글 | [관람료] 어른 4000원, 청소년 2000원. 031-201-8554 www.njpartcenter.kr
[특별강연] 강사: 쿤스트할레 브레멘 관장 1999년 백남준회고전 기획 장소: 백남준아트센터 시간: 2012.8.21(화) 2시
[국제학술심포지엄] 주제: 인간과 기계, 삶을 이중주하다 장소 경기도 박물관 대강당 시간 2012.10.12(금)
강연자: 그렌 와튼, 베른하르트 제렉세, 윌리엄 카이젠
[관련전시] 탄생 80주년 '광:선 백남준 스펙트럼'전 장소: 서울 소마미술관 시간: 9월16일까지



태그:#백남준, #구보다 시게코, #비디오아트,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칭기즈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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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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