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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금융위원회앞에서 투기자본감시센터, 금융소비자협회,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참여한 <금융수탈 1%에 저항하는 99%>가 주최한 '여의도를 점령하라!' 집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금융위원회앞에서 투기자본감시센터, 금융소비자협회,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참여한 <금융수탈 1%에 저항하는 99%>가 주최한 '여의도를 점령하라!' 집회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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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조작 파문'이 전 국민적 관심사로 확산되고 있다. 20일 낮 종로구 적선동에 있는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실엔 집단소송 문의 전화가 계속 걸려와 정상 업무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만큼 대출 이자 0.1%포인트에 목매온 채무자들이 많다는 얘기다.

시중은행에서 자금 조달 목적으로 발행하는 채권인 CD 금리가 큰 관심을 끈 것은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변동 대출 기준 금리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올해 5월 말 기준 가계 대출 642조7000억 원 가운데 CD 금리 연동 대출은 49.1%인 315조5657억 원에 이른다. 시중은행에서 단 0.1%P만 이자를 더 받아도 연간 3155억 원의 부당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가계 대출 절반 'CD 금리 연동'... 0.1%P만 올려도 3천억 원 이득 

시중은행에서 담합 등을 통해 CD 금리를 조작할 가능성이 높다는 건 이미 금융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최근 CD 발행과 유통이 크게 줄면서 은행이 자의적으로 CD 금리를 조작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서도 CD 금리를 대신할 단기 지표 금리 찾기에 고심해 왔지만 시기를 놓쳤다.

공정거래위원회가 CD 금리 결정 과정의 담합 혐의를 포착해 지난 17, 18일 증권사와 은행에서 현장 조사를 벌이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금융회사에서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자진신고자 감면 제도'(리니언시)를 통해 담합 사실을 가장 먼저 신고하면 과징금을 100% 감면해주고 두 번째 신고자도 50%  깎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조사 대상이 된 은행과 증권사에선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올 게 왔다"는 분위기다. 여경훈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원은 "은행 자금 조달시 CD 비중이 낮은 데도 CD 금리를 기준으로 대출 금리는 정하는 게 문제"라면서 "지금까지도 시중은행끼리 대출 금리 경쟁을 하지 않고 선도 은행 금리를 좇아가는 등 담합 냄새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역시 지난 15일 '리보 금리 조작 사태, 한국은 안전한가'라는 보고서에서 "(CD 금리는) 시중은행의 주요한 단기자금 조달 금리이면서 가계 및 기업 대출의 주요 기준 금리이기 때문에 시중은행들의 손익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라면서 "문제는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시중은행들이 CD 금리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이라고 금리 조작 가능성을 경고했다.

7대 시중 은행에서 단기 자금을 조달하려 CD를 발행하면 10개 증권사에서 하루 두 차례씩 금리를 평가하고 금융투자협회가 이 가운데 최고-최저치를 뺀 8개 수치의 평균값을 내 결정한다. 겉보기엔 직접 이해가 없는 증권사에서 금리를 결정하는 구조지만 최근 CD 발행 규모가 급감하면서 은행 영향력은 더 커졌다. 2008년 224조 원에 이르던 CD 거래량은 지난해 54조 원으로 줄었고 올해는 그 절반에도 못 미칠 전망이다. 아예 CD가 발행되지 않는 날도 많아 증권사 직원이 자의적으로 평가해 올리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2005년 이후 CD 금리와 회사채 금리 변동 추이. 최근 회사채 금리는 하락세지만 CD 금리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자료: 금융투자협회)
 2005년 이후 CD 금리와 회사채 금리 변동 추이. 최근 회사채 금리는 하락세지만 CD 금리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자료: 금융투자협회)
ⓒ LG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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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지난해 상반기 이후 회사채 수익률이 하락했지만 CD 금리가 크게 변동하지 않거나 오히려 오르기도 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12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기 전까지 수개월간 CD 금리가 3.54%로 고정돼 시장 금리 하락세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도 부당 이득 정황으로 지적돼 왔다.

여기에 최근 전세계 금융가에 충격을 준 '리보 금리' 조작 사건도 힘을 보탰다. 영국 금융청 조사 결과 7개 은행에 리보 금리 조작에 연루됐다고 밝혔고 지난달 바클레이스 은행에 4억5천만 달러(약 5200억 원)에 이르는 벌금을 부과했다.

전 세계 금융상품의 기준 지표 역할을 해온 리보 금리는 CD 금리와 마찬가지로 실거래가 아닌 은행권 '추정'에 따라 결정돼 자의성이나 조작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에 조영무 연구원은 실제 체결된 거래에 따라 결정되는 환매조건부채권(RP)매매 금리를 단기지표 금리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대출 금리 높이는 수단 악용... 서민 상대 짬짜미에 분노"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대행은 "지금까지 은행에서 CD 유통을 자금 조달 목적이 아니라 대출 금리를 높이는 수단으로 썼다"면서 "CD 금리 조작 의혹에 국민이 분노하는 건 공공성을 띤 은행이 국민을 기만하고 서민을 상대로 이자를 속였다는 것 때문"이라고 밝혔다.

금융소비자연맹 등 시민단체에선 일단 공정위 담합 결정이 확정되면 소비자 집단소송을 통해 부당이득반환소송을 낼 준비를 하고 있다. 조연행 회장대행은 "공정위 담합 결정 자체도 중요하지만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부당 이득 규모를 얼마로 볼 거냐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금융소비자연맹은 금리 조작이 0.5%포인트 정도일 때 부당이익 규모가 연간 1조 5000억 원, 5년 정도 지속됐다면 최대 7조 8000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조영무 연구원은 "리보 금리도 은행들의 높은 신용도와 믿음이 바탕이 돼 국제적인 지표금리가 됐지만 신뢰가 무너지면서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면서 "우리도 은행권 담합을 통해 인위적으로 CD 금리에 영향을 미친 게 확인된다면 은행권 신뢰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채무자 권익보호를 위한 시민단체를 준비하고 있는 제윤경 희망살림 상임이사는 "공정위 조사가 아니었으면 정보에서 소외된 금융 소비자들이 이런 사실을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이번 사건은 지금까지 금융회사들이 금융감독기관 비호 아래 범죄 수준에 가까운 영업 행위를 해왔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마련된 '금융소비자보호원'을 금융감독원 아래에 두면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금융소비자보호청'을 만들어서라도 독립 기구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태그:#CD 금리, #금감원, #은행,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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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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