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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 희망식당 3호점 셰프 김풍년씨. 그는 유성기업 해고노동자다.
 충북 청주 희망식당 3호점 셰프 김풍년씨. 그는 유성기업 해고노동자다.
ⓒ KBS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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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고질병이 또 도졌다. 항상 '비즈니스 프렌들리' 증세에 시달리고 있는 건 익히 알려졌지만 때만 되면 중증으로 번진다. 특히 본인이 CEO로 있던 '현대'와 관련된 일에 격렬하게 반응한다. 그 증상은 바로 "고소득노동자 파업" 타령이다.

지난 19일 이 대통령은 현대자동차의 부분파업에 "고소득노동자 파업은 우리밖에 없다"며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강조했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사회악'으로 규정하는 이 대통령의 'CEO유전자'가 또다시 작동한 것이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지난 13일 단체협상이 결렬돼 법적 쟁의절차를 거쳐 4시간 부분파업을 벌였다.

이 대통령은 1년여 전에도 똑같은 말을 했다. 그는 지난해 5월 라디오연설에서 "연봉 7000만 원을 받는다는 근로자들이 불법파업을 벌였다"고 말했다. 그 즈음 있었던 유성기업의 파업을 두고 한 말이다. 대통령이 대기업도, 공기업도 아닌 직원 600명 정도의 중소기업에서 벌어진 파업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일이 있던가? 유성기업은 자동차 엔진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다. 납품받는 곳은 물론 현대차다.

아무튼 그렇게 유성기업은 대단한 곳이 됐다. 쌍용자동차에서 3000명 가까이 해고되고 22명이나 죽어가는 동안에도 말 한 마디 없던 대통령, 김진숙 지도위원이 309일 동안 크레인 농성을 벌이고, 수만 명의 시민이 구호를 외쳐도 침묵하던 대통령이 라디오연설로 전 국민에게 알렸으니 얼마나 대단한가. 그 후 공권력에 철저하게 짓밟힌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공장 밖으로 쫓겨났고 27명이 징계해고됐다.

"해고되고 나서도 맞교대 여전하다"

지난 18일 오후, 유성기업 해고노동자들이 농성 중인 서울 삼성동 유성기업의 서울사업소 앞을 찾았다. 기둥도 없는 파란 천막이 위태롭게 세워져 있었다. 태풍이 접근하고 있던 터라 바닥에서 올라온 습기가 천막 안을 채웠다. 해고자 신기병(43)씨가 홀로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 이날은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탄압 등으로 투쟁 중인 사업장들이 공통행동을 벌이는 수요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콜트콜텍 노동자 복직 투쟁현장에 갔다.

보여야 할 김풍년(35)씨도 자리에 없었다. 최근 청주에 문을 연 희망식당 3호점 셰프(주방장)인 그를 인터뷰하러 왔는데 말이다. 희망식당은 해고노동자와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을 돕기 위해 1주일에 한 번 문을 여는 식당이다. 대개 다른 식당의 휴일을 빌려 영업을 한다. 밥값은 5000원. 서울 상도역에 1호점, 상수역에 2호점이 있고 모두 해고노동자들이 직접 밥을 짓는다. 3호점은 격주로 일요일에 문을 연다.

희망식당 3호점은 충북 청주에 문을 열었다. 유성기업 해고노동자들이 주방장을 맡고 격주 일요일마다 밥을 먹을 수 있다. 밥 값은 역시 5000원.
 희망식당 3호점은 충북 청주에 문을 열었다. 유성기업 해고노동자들이 주방장을 맡고 격주 일요일마다 밥을 먹을 수 있다. 밥 값은 역시 5000원.
ⓒ KBS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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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신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 역시도 희망식당에서 일한다. 김씨가 주방, 신씨가 홀을 맡고 있다. 격주로 문을 여는 희망식당 3호점은 이제 두 번 장사했다. 이번 주말 세 번째 '오픈'을 준비한다. 희망식당 이야기는 김씨가 올 때까지 조금 뒤로 미루고 사는 이야기부터 물었다.

"법원 판결로 월급은 나오고 있지만, 아내는 생계 걱정을 계속해요.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많이 남은 거 같은데, 나한테 전화가 오면 놀란다고 해요. 무슨 일이 또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하는 겁니다. 그래서 밤에는 전화를 못하고 낮에만 해요. 그래도 낮이면 좀 괜찮으니까. 해고는 그 당사자만이 아니라 그의 가족들, 그 주변까지 모두 힘들게 만드는 거 같습니다."

희망식당 3호점 셰프들. 왼쪽이 유성기업 해고노동자 신기병씨, 오른쪽이 김풍년씨다.
 희망식당 3호점 셰프들. 왼쪽이 유성기업 해고노동자 신기병씨, 오른쪽이 김풍년씨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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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안부를 묻는데 무거운 대답이 돌아왔다. 신씨는 일주일씩 서울과 대전 집을 오간다. 일 주일 동안 농성장을 지키고 매주 금요일 다른 해고자들과 교대를 한다. "여기서도 맞교대를 한다"며 웃었지만, 그가 나와 있는 동안 그의 집에서 불안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가 '맞교대' 이야기를 하며 웃은 건 그것 때문에 해고당했기 때문이다. 유성기업 노조는 지난해 5월 하루 10시간씩 주·야간맞교대로 운영되는 공장 시스템을 '주간연속2교대제'로 바꿔달라며 파업을 벌였다. 이미 2009년에 단체협약에서 체결한 내용을 이행하라는 것이었다. 맞교대 형태로 밤새 진행되는 작업은 노동자들의 삶을 황폐하게 했다. '야간노동은 다이옥신보다 강한 발암물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쳤고 결국 이들은 '우리는 올빼미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들고 일어나게 된다.

사측이 합의 사안을 깨며 협상은 결렬됐고, 노조는 2시간 부분파업을 벌였다. 쟁의절차를 밟은 합법 파업이었다. 그 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다. 사측이 전격적으로 직장폐쇄 조치를 내리고 공장문을 닫았다. 직장폐쇄는 단체행동(파업)을 하는 노동자에 사측이 쓸 수 있는 '최후의 카드' 같은 것이다. 회사는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직장폐쇄에 들어갔다. 이는 '주인'격인 현대자동차가 개입해 치밀하게 준비된 시나리오였음이 이후 폭로되기도 했다. (관련기사 : 민노총,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파괴 지시 문건 공개)

그 뒤로는 공권력과 용역의 폭력만 남았다. 직장폐쇄에서 맞서 공장 점거 농성에 들어간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무참하게 끌려나왔다. 그 과정에서 승합차에 치이고 곤봉에 맞아 부상자가 속출했다. 신기병씨 역시 진압 과정에서 머리에 큰 부상을 입었다.

"이 조그만 회사가 대통령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유명한가요? 현대 같은 대기업도 아니고, 대통령이 나서서 무슨 '귀족노동자' 타령을 하고 있데요. 연봉 7000만 원 받으면 '귀족노동자' 되나요? 저는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노동자가 일하고 그만큼 받는 건데 거기에 '귀족'이 어디 있데요. 유성기업은 꼭두각시죠. 현대자동차, 대통령, 공권력이 삼박자를 딱 맞춰서 이 작은 노동자들을 다 죽이려고 했어요."

신씨는 지난해 이 대통령 발언을 꺼내자 분노했다. 그들은 실제로 7000만 원 연봉을 받는 '귀족'도 아니었다. 당시 유성기업 노조가 공개한 입사 8년 차의 조합원의 급여명세서를 보면, 각종 세금과 건강보험 등을 제외하고 월급 251만 원으로 연봉 3000만 원 정도였다. 기본급은 123만4316원, 휴일 15시간, 평일 28시간의 잔업까지 해서 받은 금액이다.

유성기업 사태 이후 해고당한 27명은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 부당징계를 인정받아 복직 명령이 내려졌다. 천안지원에서 대전고법에서 진행된 소송에서도 노동자들이 승소했다. 하지만 유성기업은 어쩔 수 없이 월급은 주면서 복직조치는 이행하지 않고 있다. '불법'을 말하고자 한다면 허위사실을 유포한 이 대통령과 지역노동위원회의 복직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유성기업부터 반성해야 할 것이다.

희망식당 셰프들의 공통점... "웃게 됐다"

기다리던 '김풍년 주방장님'께서 오셨다. 본격적인 희망식당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에게도 안부를 물었다. 그는 "살 만하냐"는 질문에 대뜸 "살 만하지 않은데 살 만하다"고 말했다. 무슨 말이냐. 그는 "해고되기 전보다 바쁘고 일도 많아 살만하지 않다"며 "그래도 지금은 야간노동을 안 한다, 밤에 자니까 살 만하다"고 답했다.

"파업하고 공권력이 몰려 왔을 때, 다 죽이고 싶었어요. 저는 그때 사진을 찍고 있어서 동료가 피 터지고 짓밟히는 걸 다 눈으로 봤어요. 저놈들 다 죽이고, 사장 죽이고, 나 죽으면 이제 뒤에 싸우는 노동자들은 좀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렇게 한 번 난리 치고 나면 자본들도 겁을 내지 않을까 하고요."

파업과 해고로 지난 1년 동안 이어진 김씨의 고통은 '죽음'이라는 한마디로 압축됐다. 그는 지금도 종종 누군가를 죽이고 자신이 죽는 꿈을 꾼다. 그의 모습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호소하는 고통과 흡사해 보였다. 김씨는 "만약에 쌍용차 동지들처럼 임금도 받지 못하고 돌아갈 희망도 없이 계속 싸워야 한다면 나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단 두 번밖에 하지 않았지만, 희망식당은 이런 그에게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김씨는 "희망식당 3호점을 처음 열기 전날 잠을 못 잤다, '내가 이걸 왜 하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지금도 그런 걱정이 있지만, 그 공간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희망식당에서 한 음식은 집에 가서 꼭 다시 해본다, 아내하고 아이들에게 해주면 맛있다고는 하는데 진짜인지는 모르겠다"며 웃었다.

"가족들과 관계가 많이 달라졌어요. 아내하고는 해고되기 전부터 조합 활동 때문에 많이 싸웠는데 한 번은 돈 적게 벌어 와도 되니까 그만 하면 안 되겠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억울해서 그만둘 수 없다고 했어요. 내가 잘못한 거 없는데, 열심히 일한 거 밖에 없는데 너무 억울하다고. 그랬더니 지금은 믿어주고 이해해줘요. 그리고 희망식당을 하고 나서는 더 웃게 됐죠."

"웃게 됐다"는 말, 앞서 인터뷰 한 2호점 셰프 임재춘씨와 같다.(관련기사 : 2년반 기다린 판결 10분만에..."당해보니 알겠더라") 김씨는 "평소에도 활발하고 잘 웃었지만, 가식이 많았다"며 "친구들과 만나 노조 이야기 하면 욕하고 싶을 때가 있어도 그냥 웃고 넘어갔다. 희망식당에서는 진짜로 웃는다"고 말했다. 이어 "찾아오신 시민들이 음식 맛있다고 해주고, 우리 이야기를 잘 몰랐던 사람들도 같이 공감하고 응원해주니 그게 큰 힘이 된다"고 덧붙였다. 신씨도 마찬가지다.

"첫날 12시에 문을 여는 데 11시 30분에 첫 손님이 왔어요. 좀 기다리시라고 했는데 가게 문 열어야 한다고 빨리 밥 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물론 희망식당인 줄 알고 오신 분이었어요. 아직 준비도 안 됐는데 부랴부랴 준비해서 상 차렸죠. 밥만 먹고 바로 가버리더라고요. 그런데 그분이 저번 두 번째 열었을 때도 왔어요. 그냥 말없이 묵묵하게 응원하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복직해도 어떻게 싸울까 고민한다"

지난 8일 두번째 문을 연 희망식당 3호점에서 김풍년씨와 신기병씨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8일 두번째 문을 연 희망식당 3호점에서 김풍년씨와 신기병씨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KBS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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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식당에 온 손님들에게 바라는 것을 물었을 때 마치 짜고 대답하는 것처럼 2호점 셰프와 같은 답변이 또다시 돌아왔다. 김씨는 "일단 밥을 맛있게 드시고, 해고노동자가 비정규직노동자가 왜 싸우는지 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노동자들이 거리 행진을 할 때, 시민들은 아무 관심이 없잖아요. 오히려 욕을 하죠. 일단 길이 막히고 통행이 불편하니까. 특히 차를 운전하는 분들은 난리가 나죠. 그런 인식이 바뀌면 세상도 달라질 거 같아요. 희망식당에 오는 분들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보고 무조건 손가락질하는 건 안 하시길 바라요."

신씨에게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밥을 짓는다는 건 무엇인지, 해고노동자들에게 '밥'은 어떤 의미인지를 물었다. 그는 "평등"이라고 답했다.

"밥은 평등이죠. 밥은 위아래가 없어요.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밥을 먹습니다. 물론 부자는 비싼 밥을 먹겠지만, 밥을 먹어야 한다는 건 똑같아요. 밥을 안 먹고는 살 수 없으니까, 밥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해지는 거죠. 희망식당에 교수도 오고 선생님도 오고 사장님도 오는데 다 평등하다는 걸 느낄 수 있게 해주죠."

이들은 사실 법적으로 해고상태가 아니다. 유성기업이 불법적으로 해고한 상태에서 또다시 불법적으로 이들의 복직을 막고 있다. 그들에게 복직 후 무엇을 할 것인지 물으니 "투쟁해야죠"라는 말이 돌아온다. 이들은 "내가 복직된다고 해서 싸움이 끝나고 달라지는 게 아니"라며 "비정규직이 없어지고 노동자들이 살만한 세상을 만들려면, 어용노조 없애고 조합원들과 어떻게 함께 싸울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사실 유성기업 사태에 현대자동차가 개입하고 대통령까지 나서게 된 이유는 분명하게 보인다. 보수언론은 이들이 주장한 주간연속2교대제를 놓고 "노동 혁명을 하자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맞다. 이것은 노동 혁명이다. 이미 이 싸움은 단지 유성 노동자들의 싸움이 아니라 하루 8시간 노동, 야간노동 철폐라는 큰 변화의 출발점이 됐다. 그들은 그 변화의 물꼬를 트는 일에서 한 번도 해고당하지 않았다.


태그:#희망식당, #유성기업, #이명박, #야간노동, #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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