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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에 있는 '지속가능 상생재단’이 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고구려 유적지 및 백두산 답사길에 나섰다. 상생재단은 비영리법인으로 당진에 입주한 현대제철에서 발생하는 수재 슬래그(금속 산화물 등이 쇳물 위에 뜨거나 찌꺼기로 남는 것의 총칭)가 당진 지역 내에서 처리되지 못하게 된 문제를 지역공동체와 협의를 통해 해결하다가 설립됐다. 상생재단의 이번 고구려 유적지 및 백두산 답사는 당진에 적을 둔 지역 대학생들 역사연수를 위해 기획됐다. [편집자말]
백두산 서파 코스 산문 앞
 백두산 서파 코스 산문 앞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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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4시다. 일행들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강행군으로 지쳐 있다. 어제(10일)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1시. 인천항-단동항 15시간, 단동-집안, 집안-통화 각각 5시간 등 모두 25시간을 이동했다. 숙소인 동북 교통의 요지인 통화(通化)에서 백두산 입구까지 버스로 또 5시간 거리다. 그런데도 다들 설레는 것은 백두산을 답사하러 나선 때문이다.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길을 재촉한 것도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걱정이 있다면 야속한 하늘이다. 단동항에 도착할 때부터 비가 내리더니 오히려 빗줄기가 거세졌다. 두 시간쯤 달리다 간이 휴게소에 들렸지만 빗줄기는 여전하다.

허름한 시골마을 도로변 휴게소에는 먹을 것 위주로 진열이 돼 있다. 말린 산나물과 약초가 즐비하다. 주인아저씨가 몸에 좋다며 삼지구엽초로 담근 술을 한잔 따르며 권한다. 일행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옥수수와 찐 계란이다. 가마솥에 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알이 통통한 옥수수다. 옥수수와 찐 계란은 아침대용으로 충분했다. 찰진 옥수수 알을 씹는 재미에 혼자 두통을 해치었다.

"앞으로 10분 후면 백두산 산문에 도착합니다"

백두산 금강대협곡
 백두산 금강대협곡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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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던 비, 백두산 산문 앞에서 '뚝'

현지 안내원의 마이크 소리가 선잠을 깨웠다. 어라. 비가 그쳤다. 먹구름 대신 양털 구름이 보인다. 백두산의 맑은 깜짝 환영인사에 차안이 소란스럽다.

오전 8시 경. 백두산 입구에서 입장권을 구입한 후 천지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백두산 탐방은 크게 북파, 서파, 서북종주 코스로 나뉜다. 북한을 통해서 가는 남파 코스는 언제쯤 열릴까.

<1박 2일> 팀이 갔던 곳은 백두산 산문으로 들어와 비룡폭포를 보고, 계단을 거쳐서 달문을 통해 천지를 대하는 북파 코스다. 우리 일행들에게 주어진 길은 서파다. 인천항(페리)-단동-집안-통화-백두산 서파-통화-환인-단동항(페리)-인천항 코스로 고구려 유적과 백두산을 둘 다 접할 수 있는 잇점이 있다. 

이 밖에 백두산에 오르는 길은 인천공항-대련-(기차)-연길-백두산-연길(항공)-대련(페리)-인천항/ 인천공항-심양-왕청문-통화-집안-통화-백두산 서파-통화-심양(항공)-인천공항/ 인천공항-장춘-(기차)-백하-백두산 북파-두만강 발원지-숭선세관-용정-연길-(기차)-장춘-인천공항/ 인천공항-연길-백두산 북파-용정-연길-인천공항 등이 있다.

마침 한국에 있는 지인들이 휴대폰 문자를 통해 '오늘 아침 백두산 천지에 괴물체가 나타났다는 뉴스가 나왔다'고 알려 왔다.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천지 괴물에 대해 중국 정부가 백두산 관광객 유치를 위한 계산된 유포라는 해석도 있다.   

약 20분쯤 달렸을까. 버스가 갑자기 금강대협곡 앞에서 멈춰 섰다. 안내원 말이 천지 쪽에 거센 바람이 불어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단다. 이때까지만 해도 누구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만큼 백두산 중턱의 날씨가 화창했고, 바람결마저 청량했다. 조금 있으면 바람이 잦아들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멀리 보이는 곳이 백두산 천지다.
 멀리 보이는 곳이 백두산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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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태풍이... 가로막힌 '천지 길'

우선 느긋하게 금강대협곡을 둘러보았다. 금강대협곡은 천지의 용암이 분출해 만들어진 'V'자 협곡으로 동양의 그랜드캐년으로 불린다. 깊은 용암계곡은 천지에 대한 갈망을 크게 했다. 금강대협곡을 보고 나오는데 길 중간 중간에 돌연 중국 인민군이 배치됐다. 천지 주변에서 아름드리나무가 바람에 뽑혀 넘어지자 안전사고 방지와 출입통제를 위해 군인들을 투입한 것이다.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하염없이 산 중턱에 앉아 바람이 멎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1시간, 2시간... 낮 12시를 넘어서자 오히려 천지 주차장에서 기회를 엿보던 다른 관광객들이 버스를 타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마저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일행들이 백두산 천지 쪽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더 이상 올라가면 안 된다'는 안내원의 통제 구역에는 해발 1600미터 이정표가 서 있다. 백두산 천지를 약 2,750m로 계산하면 1150미터를 앞둔 거리고 천지주차장까지 불과 버스로 10분 쯤 거리다.

꼬박 30시간을 달려온 길. 일행들은 아쉬운 마음에 천지를 올려다보며 망연자실. 일행들의 마음을 아는 듯 지천에 핀 백두산 들꽃들이 바람결에 파르르 몸을 떤다. 그 때서야 일행들의 눈에 들꽃이 들어왔다. 붓꽃, 해당화, 산나리, 백봉초, 구절초....백두산 중턱에 지천으로 핀 들꽃들이 일행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백두산 들꽃 위로 받고 하산하다

백두산 들꽃
 백두산 들꽃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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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들꽃
 백두산 들꽃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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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 중 한 학생은 당시 헛헛함을 이렇게 노래했다.

'백두산 천지 목전에 두고/ 뒤돌아 회군할 제/ 다리는 천근이나 마음은 천만근/ 백봉초 들꽃의 위로가 없었다면 /돌아가지 않았으리'

오후 2시 경. 더 이상 천지로 향할 가망이 없어지자 하산을 시작했다. 하늘은 천지에 태풍이 분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맑기만 하다. 현지 안내원이 일행들을 다독인다며 한 마디 한다.

"백두산이 왜 백두산인지 아십니까? 백번 올라오면 두 번만 천지를 볼 수 있다고 해서 백두산이라고 합니다."

이튿날(12일) 새벽, 일행들은 다시 통화-환인을 거쳐 단동항으로 향했다. 당초 고구려 첫 도읍지인 환인에서 고구려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오녀산성(주몽이 나라를 세우고 쌓은 첫 번째 성)을 차창 관광을 하기로 했지만 이마저 짙은 안개와 빗줄기로 무산됐다. 대신 차에서 내려 눈에 보이는 주변 지형을 살피며 주몽에 얽힌 고구려 건국신화를 떠올렸다.

백두산 들꽃
 백두산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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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속에 남는 사람"-  "백두산마저 남의 땅 거쳐 가니"

단둥항이 가까워 질 무렵 3일 동안 한솥밥을 먹던 류평일(26) 현지 안내원이 섭섭하다며 직접 노래를 불러 마음을 표현한다. 북한 가요인 '심장 속에 남는 사람'이다. 류 안내원은 화교로 북한 평양에서 태어나 19살 때까지 평양에서 생활했단다. 틈틈이 그가 전하는 북한 단상도 흥미로웠다.   

'인생의 길에 상봉과 리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어진대도 헤어진대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아~ 그런 사람 나는 못잊어'  
'오랜 세월을 같이 있어도 기억 속에 없는 이 있고/ 잠깐 만나도 잠깐 만나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아~ 그런 사람 나는 귀중해'  ('심장 속에 남는 사람' 가사)

애잔한 목소리에 다들 '헤어진대도 심장 속에 남는 이'와 '잠깐 만나도 심장 속에 남는 이'를 생각하는 듯 차내가 숨 죽인 듯 고요하다.

4박 5일간의 고구려 옛 땅과 백두산 탐방기는 대학생들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을까. 동행한 상생재단 김봉균 이사장은 학생들에게 "짧은 시간이지만 젊은 대학생들과 함께 해 매우 뜻깊었다"며 "이후에도 많은 책을 읽어 어휘를 늘리고,  많은 곳은 여행하며 사색의 깊이를 채우라"고 당부했다. 

인천으로 돌아오는 배안에서 학생들 대부분은 '압록강 맥주'를 앞에 놓고 밤을 지새우며 얘기꽃을 피웠다. 이들에게 힘든 여정과 열리지 않은 천지 길은 재도전해야 할 이유가 됐다. 한 학생이 보내온 이번 고구려 유적-백두산 탐방 단상은 이렇다.

'단동 바닷길 열려/ 여진족 조선족 어울려 만났네/ 고구려 발해 요동치는 역사와 조우했건만/ 우리네 북녘 땅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눈으로만 / 백두산마저 남의 땅 거쳐 가니/ 서러운 마음 쌓이고/ 하늘이 천지 가는 길마저 막으니/ 이 내 설움 알아선가'

백두산 중턱에서
 백두산 중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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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백두산 , #상생재단, #고구려, #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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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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