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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건으로 국회에서 제명 논란이 일고 있는 이석기 의원이 얼마 전 "애국가는 그냥 나라를 사랑하는 노래 중 하나다, 국가(國歌)로 정한 바 없다"고 말해 논란을 빚은 바 있습니다. 정확히 말해 '애국가'는 법률로서 '국가(國歌)'로 규정돼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대통령훈령 제272호(2010. 7. 27)로 제정된 '국민의례규정'에서 중앙 행정기관이 행사 때 '의례로서 애국가를 제창하도록' 권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국기(國旗)'는 어떨까요? '태극기'는 정식 국기일까요? '대한민국 국기법'(법률 제10741호, 2011. 5. 30) 제4조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국기는 태극기(太極旗)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정식 '국기(國旗)'입니다. 애국가와는 달리 태극기를 두고는 별 논란이 없는데 이는 관련법에 정식 규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애국가를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정식으로 법 제정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태극기를 중국 국기인 줄 안 미국인

 양기백 박사(가운데)에게 한국어대사전을 기증하는 미주한국대표 유태희씨.
 양기백 박사(가운데)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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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집에서 묵은 파일을 뒤져 '문건'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니 햇수로 20년 가까이 된 것입니다. 그 무렵 필자는 미국 워싱턴으로 출장을 갔다가 평소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분이 있어서 미국 의회도서관을 찾았습니다. 그곳 한국과(課) 책임자로 계시던 양기백(93) 박사님이 바로 그 분입니다. 저 역시 대학에서 도서관학을 공부한 후학이자 양 박사님은 미국사회에서 한국학의 권위자로 불린 분이어서 평소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초면의 불청객이었지만 양 박사님은 저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게다가 도서관학을 공부했다고 했더니 일부러 지하에 있는 한국과 서고도 구경시켜 주셨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북한자료의 원전을 다수 소장하고 있었던 점입니다. 정부수립 후 '국비 유학생 1호'로 미국 유학을 떠난 양 박사님은 1949년 미국 의회도서관 직원으로 채용된 이래 2005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46년간 이곳에 근무하셨습니다.

며칠 뒤 두 번째로 찾아뵈었을 때 양 박사님은 보여줄 게 하나 있다며 개인서가의 파일에서 복사물 하나를 꺼내셨습니다. 그러고는 본인이 손수 제작한 우리나라 '국기'라며 한 번 구경하라고 보여주셨습니다. 다른 것도 아닌 '국기'를 일개인이 만들려고 시도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근 반세기를 미국서 살아오신 분이 어떤 연유로 국기를 새로 만들게 됐는지가 몹시 궁금했습니다. 양 박사님은 이내 제게 설명을 해주셨는데 그 연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젠가 옆방에 있는 중국과(課)에서 잠시 들러달라고 해서 갔더니 한 젊은 미국인이 태극기를 가지고 와서 기증하겠다며 맡기고 갔다는 거였습니다. 그 미국인은 2차대전(태평양전쟁)에 참전한 미군의 손자인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족들이 유품을 정리하던 중 태극기를 발견하고는 이를 중국 국기라고 여겨 중국과로 가지고 왔더라는 겁니다. 그 미국인은 태극기의 '태극문양'을 중국 문양으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양 박사님은 우리 국기, 즉 '태극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고 합니다. 우선 그 미국인이 태극기를 중국 국기로 인식한 것은 '태극문양' 때문인데 분명 오해의 소지가 있으며, 또 '태극기'가 그리기가 어려워 친근함을 주지 못하는 점도 국기로서 한번 생각해볼 문제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양 박사님은 '국기'를 나타내는 영어단어 가운데는 'colors'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국기가 그 나라를 상징하는 '색'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고로, '태극'이라는 용어는 중국의 4서3경 가운데 하나인 <주역>에 처음 등장하는데 태극문양은 송나라 때 주돈이(1017∼1073)가 펴낸 <태극도설(太極圖說)>에 처음 등장합니다. 그런데 태극문양만 놓고 본다면 우리가 더 빠릅니다. <태극도설>보다 약 400년 앞선 628년(신라 진평왕 50)에 건립된 감은사(感恩寺)의 석각(石刻)에 이미 태극도형이 새겨져 있으며, 1144년(인종 22)에 죽은 허재(許載)의 석관(石棺) 천판(天板)에도 태극문양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그리기 쉽고 친근한 '새로운 태극기'는 어떨까요

이 점에 착안하여 양 박사님은 '한국(인)의 색'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평소 한국학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던 양 박사님은 고금의 문서를 통해 우리민족을 상징할만한 색은 두 가지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흔히 한민족을 '백의(白衣)민족'이라고 하는 데서 착안하여 '흰색', 그리고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경탄해 마지않는 '푸른 하늘'에서 '푸른 색'을 우리민족의 색으로 결론내린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양 박사님이 고안한 '국기'가 바로 아래 사진에 나온 국기입니다.

 양기백 박사가 고안한 '청백 국기'. 위의 푸른 색은 푸른하늘을, 아래의 흰 색은 백의민족을 상징한다
 양기백 박사가 고안한 '청백 국기'. 위의 푸른 색은 푸른하늘을, 아래의 흰 색은 백의민족을 상징한다
ⓒ 양기백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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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처음 '양 박사님이 고안한 국기'를 봤을 때 생소한 감이 앞섰습니다. 어릴 때부터 태극기를 우리나라 '국기'로 익히 봐왔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우리나라 국기라면 가운데 태극문양과 네 모서리에 4괘가 그려진 태극기 외에는 상상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국기 그리기 숙제를 내주면 종일 낑낑댔던 기억이 납니다. 도화지 네 모서리를 대각선으로 접고 그 가운데 꼭짓점을 기준으로 도화지 세로 길이의 반 크기 만한 지름의 원을 그리고 다시 그 속에 두 개의 원을 그려 태극문양을 만들고… 태극기는 정확하게 그리자면 그리기가 어려운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런 반면 외국 국기들은 상대적으로 그리기도 쉽고 단순해 친근감이 드는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몇몇 나라는 국기에 한 가지나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색으로만 만든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국기는 세로로 3등분해서 왼쪽부터 청-백-홍 3색이며, 차드와 루마니아 국기는 청-황-적, 이탈리아 국기는 녹-백-적, 벨기에 국기는 흑-황-적으로 돼 있습니다. 또 독일 국기는 가로로 위에서부터 흑-황-적, 예멘 국기는 홍-백-흑이며, 폴란드 국기는 위아래 백-적 두 가지 색으로 돼 있습니다. 국기를 영어로 'colors'라고도 한다는 양 박사님의 말씀이 실감이 났습니다.

 문양보다는 색깔을 강조한 외국 국기들
 문양보다는 색깔을 강조한 외국 국기들
ⓒ 구글 검색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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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기 그리기의 규격도
 태극기 그리기의 규격도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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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태극기(太極旗)'는 100년이 넘게 이 땅에서 국기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구한말인 1883년(고종 20년) 3월 6일 '조선국기'로 정한 이래로 태극기는 국기가 되었습니다. 일제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2년부터 태극기를 국기로 부르기 시작했으며,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제헌국회는 태극기를 정식 국기로 채택하였습니다. 이후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이 제정돼 태극기의 제작 및 게양법 등이 지침으로 정해졌고, 2007년 1월 '대한민국 국기법'이 제정되면서 태극기가 법률로 국기로 지정되었습니다. 태극기는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국기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필자 역시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를 사랑하며 남들처럼 공식행사에선 예를 갖추는 데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로 국기를 새로 제정하는 문제를 공론화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100년 이상 태극기를 국기로 여겨왔기 때문에 정이 든 것도 사실이며 그 때문에 저항감도 적지는 않을 것입니다. 광복50주년을 맞아 그 이듬해 일제잔재인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고자 할 때도 '정이 들었다'는 이유로 반대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는 예상 가능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흔히 보수진영은 애국가, 태극기, 무궁화 등과 같은 국가의 상징에 대해 색다른 주장을 내면 이를 '성역'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겨 이념공세를 펴면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혹자는 무단히 불필요한 주장을 펴서 분란을 일으킨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양기백 박사가 이국땅에서 새로운 국기를 고안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국기'라고 해서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양 박사님이 고안하신 2색 국기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양 박사님을 대신해 우리사회에 새 국기 제정을 위한 공개토론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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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언론사에서 근무했고, 친일청산 등 역사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평소 그 무엇으로부터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갈망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