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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정순철의 모습.
 1935년 정순철의 모습.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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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평삼거리에서 버스터미널 쪽으로 이어지는 청산면 시장통에는 간판이 잘 정리되어 있다. 크기가 일정할 뿐 아니라 상호 옆에는 캐릭터와 악보가 그려져 있다. 캐릭터의 인물이 동요작곡가 정순철이고, 악보가 바로 그가 만든 동요다. 그리고 간판 옆 빈 공간에도 정순철을 소개하는 자료들이 붙어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색동회 창립회원 사진이다. 색동회는 1923년 5월 1일 일본 도쿄에서 방정환, 손진태, 정순철, 고한승, 진장섭, 정병기, 조재호, 윤극영이 창립했다. 이들 중 방정환이 회장이었고, 정순철과 윤극영이 도쿄 음악학교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작곡을 담당했다.

간판에 보이는 정순철의 대표곡은 윤석중이 작사한 '짝짜꿍'이다. 그리고 해방 후 작곡한 '졸업식 노래'가 보인다. 이 곡 역시 윤석중이 작사하고, 정순철이 작곡했다. 그리고 1935년 피아노 앞에 앉은 정순철의 사진이 걸려 있다. 그 옆에는 정순철의 연보도 적혀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KGB택배 간판이나 란제리 가게인 부산양품 간판에도 정순철이 작곡한 노래의 가사와 음표가 적혀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청산은 정순철을 사랑하고, 정순철을 알리려 한다. 그러나 정순철이 이렇게 살아나게 된 것은 시인이자 교사인 도종환의 노력에 의해서다. 청산중학교 교사로 부임한 도종환 선생은 정순철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동안은 정순철이 6·25사변 때 납북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쉽게 언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한 연구 결과가 2011년 <정순철 평전>으로 집대성되었다.

교평리서 만난 이상한 간판들... 정순철이 청산서 태어나게 된 사연

정순철의 '짝짜꿍'이 그려진 간판.
 정순철의 '짝짜꿍'이 그려진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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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철의 아버지는 정주현이고 어머니는 최윤이다. 아버지는 옥천관아의 아전이었고, 어머니는 해월 최시형의 딸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동학교주 해월의 포교와 피난 여정과 관련이 있다. 1893년 8월 해월은 청산현 현내면 장위리(현재: 한곡리) 문바위골로 이사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아들 봉조를 잃는다.

1894년 3월 20일 전봉준이 전라도 무장에서 기포하였고, 해월도 5월 6일 접주회의를 열어 기포하기로 결정한다. 해월은 전국의 동학도들에게 동원령을 내렸고, 충청도와 경상도 지역의 동학군이 보은 장내리를 거쳐 청산에 집결하였다. 그러나 5월 14일 무력의 확대를 반대한 해월의 명령으로 동학군은 해산했다.

그리고 9월 18일 다시 기포하여 손병희가 이끄는 북접 동학군이 청산을 출발, 논산으로 진출 전봉준이 이끄는 남접과 연합군을 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10월 14일 보은 장내리가 정부군 수중에 들어가고, 11월 5일에는 옥천이, 11월 6일에는 청산이 일본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때 해월의 딸 최윤이 관군에 잡혀 옥천감옥에 투옥되었다. 그리고 해월이 1898년 3월 원주에서 체포되어 6월 교수형에 처해졌고, 최윤은 관아의 아전인 정주현에게 보내졌다.

이렇게 해서 1901년 정순철이 태어나게 되었고, 청산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래선지 정순철의 얼굴에는 해월 최시형의 모습이 있다. 그러나 어린 시절 그는 행복하지 못했다. '아버지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 부드러운 웃음소리, 재미스러운 말소리'를 그리워하며 자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해월의 뒤를 이어 천도교를 이끌던 의암 손병희의 도움으로 서울에 있는 보성중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정순철 '음악이야기'

정순철.
 정순철.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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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철은 보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린이 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21년 5월 1일에는 방정환과 함께 근대적 어린이 운동단체인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하여 어린이 교육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당시 방정환은 손병희 선생의 사위였다. 정순철은 손병희의 도움으로 1922년 도쿄 음악학교로 유학할 수 있었고, 이듬 해 5월 1일 도쿄에서 색동회를 결성하게 된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이들 색동회 멤버들은 1923년 3월 창간된 잡지 <어린이>에 동시와 동요를 발표할 수 있었고, 동요 보급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순철의 동요곡집 <갈닙피리>가 1929년 발표되었다. 이곳에는 '나뭇닙배', '갈닙피리', '우리애기행진곡' 등 10곡의 동요가 실려 있다. 그 중 '나뭇닙배'와 '우리애기행진곡'은 지금도 많이 불려지고 있다. '우리애기행진곡'은 윤석중의 동시 '울든 애기 웃는다'에 곡을 붙인 것으로 후에 '짝짜꿍'으로 곡명이 바뀌었다.

정순철은 1930년 정인섭, 이헌구와 함께 '녹양회'라는 어린이극 단체를 만들어 <색동저고리><백설공주><에밀레종><허수아비> 등을 발표했다. 이들 어린이극은 아이들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서양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정순철은 1931년부터 중앙보육학교 음악교사로 일했고, 1932년에는 동요집 <참새의 노래>를 발표했다.

소파 방정환과의 인연.
 소파 방정환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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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39년부터 3년간 도쿄에서 다시 음악공부를 할 수 있었다. 1942년부터 정순철은 중앙보육학교 음악교사로 활동했고, 해방이 되자 무학여고 음악교사가 되었다. 해방 후인 1946년 <졸업식 노래>(작사: 윤석중)를 작곡해 더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이어 1948년에는 성신여고로 옮겨 음악교사를 했고, 1950년 9·28서울수복 때 인민군에 의해 납북되었다.

정순철이 북한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려진 게 없다. 정순철의 아들인 정문화씨가 제공한 자료를 토대로 도종환 시인이 <정순철 평전>을 썼기 때문에 그나마 그의 삶과 음악이 정리된 셈이다. 이제 그가 이 세상에 다시 알려졌으니, 좀 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연구가 진행되어야겠다. 잊혀진 삶의 부분을 찾아내고, 음악적 특성을 찾아내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벽화를 통해 부활한 작곡가 정순철

해월의 외손자 정순철.
 해월의 외손자 정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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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면 지전리와 백운리 곳곳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전통적인 우리 생활문화를 표현한 것이 있고, 정순철의 음악세계를 표현한 것이 있다. 그 중 정순철 관련 벽화만 논의해 보자. 첫 번째 벽화는 정순철의 출생에 관한 것이다. 청산면 교평리에서 태어났고, 해월 최시형의 외손자임을 알리고 있다. 이 그림의 정순철은 양복 차림에 모자를 썼다.

두 번째 벽화는 1922년 색동회 창립을 보여 준다. 그림 속의 인물은 소파 방정환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쳐주고 있다. 세 번째 벽화는 정순철의 동요작곡을 보여주고 있다. 1929년의 <갈잎피리>와 1946년의 <졸업식 노래>를 소개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 정순철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그림 속의 모습이 정순철보다는 슈베르트에 가깝다. 같은 작곡가여서 그렇게 그린 것일까?

갈잎피리.
 갈잎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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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벽화는 <갈잎피리>에 나오는 '까치야'를 그려놓았다. '까치야 까치야... 감나무 가지에 바람이 분다'로 이어지는 가사와 악보가 인상적이다. 다섯 번째 벽화는 '갈잎피리'를 그려놓았다. 이 그림에는 노랫말과 갈잎피리를 부는 어린이가 좌우에 배치되었다.

혼자서 놀려니 갑갑하여서
갈잎으로 피리를 불러 보았오.
뽀오얀 하늘에는 종달새들이
봄날이 좋아라고 노래 불러요.

고향집.
 고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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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벽화는 1932년에 작곡된 '고향집'을 그림과 노랫말로 표현해 놓았다. 가사에 걸맞게 세상은 온통 노랗고 붉다. 고향을 떠난 어린이가 산 너머 고향집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이들 벽화를 하나하나 관찰하면서 나는 정순철의 음악세계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정순철은 이제 이해의 차원을 넘어 새롭게 부각되고 부활되어야 한다. 초창기 동요의 세계에는 <반달>의 윤극영만 있지 않고 '짝짜꿍'의 정순철도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정순철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을 경우, 누리집 http://www.jsc2008.org/가 도움이 된다.



태그:#정순철, #해월 최시형, #색동회, #짝짜꿍과 졸업식 노래, #<정순철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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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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