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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10일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한 뒤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10일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한 뒤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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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것이 아니고 공익법인인데, 제가 이사장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관계없는 저에게 (현재 장학회를 맡고 있는 최필립) 이사장을 그만두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는 것인가. 이건 법치국가에서 언어도단이다. 정수장학회는 노무현 대통령이 바로잡아야 한다며 5년 내내 힘을 기울였다. 그때 잘못이 있거나 안 된 것이 있다면 그 정권에서 해결됐을 텐데, 왜 지금 저한테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10일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한 발언이다. 대선 출마 선언 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수장학회에 대한 입장'을 묻자 그는 다소 언성을 높이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언어도단'이라고 표현한 그의 발언이 황당하고 듣기 거북하다.

부일장학회 강탈 주범 박정희 딸, 이사장 10년 해놓고 무관?

정수장학회가 무엇인가. 50여 년의 긴 세월이 흘렀건만, 지금도 '정수장학회' 소리만 들으면 치를 떨며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1961년 박정희가 주도한 5·16 쿠데타 직후 부정축재 혐의로 구속된 뒤, 이듬해 자신이 소유하던 '부일장학회' 재산을 국가에 기부하겠다는 승낙서를 쓰고 처벌을 면한 부산지역 기업인 고 김지태씨 유가족들이 그들이다.  

군부에 의해 강제로 빼앗긴 '부일장학회'는 이후 '5·16장학회'로 이름이 바뀌더니 결국은 박정희의 가운데 '정'자와 부인 육영수의 끝 '수'자를 합해 '정수장학회'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또한 박정희의 딸,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995년부터 2005년 3월까지 10여 년간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맡았다.

그런데도 박근혜와는 전혀 무관한 것일까? 정수장학회 얘기만 나오면 자신과 무관하다고 되풀이하는 주장을 과연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차라리 '과거를 잊고 싶다'고 솔직히 말하면 몰라도, '무관하다'고 고집하는 것은 유가족을 두 번 울리는 일이다.

박 의원의 말대로 정수장학회는 그나마 노무현 대통령 때 '바로잡아야 한다'며 힘을 기울였다. 박정희 독재정권 하의 서슬 퍼런 중앙정보부에 의해 부일장학회 소유권이 강제로 넘겨진 지 약 45년 만인 2005년 7월 22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원회)는 "부일장학회 재산 헌납이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언론장악 의도에 따라 강제로 이뤄졌다"고 조사결과를 처음 발표했다.

진실위원회는 ▲ 박정희 국가 재건 최고회의 의장의 지시에 의해 수사되었음이 당시 중앙정보부 지부장이었던 박용기씨의 진술에서 확인되었으며 ▲ 1962년 6월 20일 김지태씨가 구속 상태에서 강압에 의해 작성된 기부 승낙서에 서명을 했으나 이마저도 구속 중 기부의 의혹을 지우기 위해 석방 이후인 6월 30일로 변조되었음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감정에 의해 확인되었으며 ▲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대구사범 동기인 부산일보 주필 황용주의 석방을 빌미로 한 김지태씨에 대한 재산포기 종용이 사실로 밝혀졌으며 ▲ 경향신문의 매각과정에서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을 앞세워 몇 번의 간첩사건을 통해 압력을 행사하였음이 확인되었으며 ▲ 일련의 과정 속에 중앙정보부와 국가재건 최고회의를 비롯한 국가 주요기관의 조직적이고 치밀한 계획 하에서 이뤄졌다고 발표함으로써 오랜 의혹이 규명됐다.

"강제 헌납된 부일장학회 원소유주에게 돌려줘라"

그후 2년 후인 2007년 5월 29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1962년 국가에 의해 '강제 헌납'된 부일장학회 재산을 원소유주에게 돌려주라"고 국가에 권고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국가에 의해 저질러졌음에도 45년간 국가가 묻어온 사건, 그 사건이 다시 국가에 의해 햇빛을 보게 된 순간이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당시 진실화해위는 "부일장학회 소유이던 헌납토지(부산 서면지역 10만여 평)를 반환하되 민간매각 등으로 반환이 어려우면 그 손해를 배상하고, 땅을 돌려받아야 할 부일장학회가 이미 해체된 만큼 공익목적 재단법인을 설립해 출연하며, 헌납된 부산일보·문화방송·부산문화방송 주식(당시 3억4800만환 어치)이 정수장학회로부터 국가로 원상회복되지 않으면 국가가 원소유주인 김씨의 유가족들에게 대신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이어 진실화해위는 "부일장학회 재산으로 설립된 정수장학회가 특정 집단이나 개인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은 재단법인의 공익성에 반한다"며 시정할 것을 국가에 권고했다. 그러나 강제 아닌 권고라는 이유 때문에 정권이 바뀌자 다시 국가는 미적거리다가 유아무야되고 만다. 이에 대해 당시 박근혜 의원 측은 "정수장학회는 처음부터 공익법인이어서 사회에 환원된 것"이라며 "증인과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어거지를 쓰는 것은 정치공세"라고 해명했다. 이후 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박 의원은 초지일관 '모르쇠'로 응대해 왔다.

그런 그가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본인과는 무관하다고 다시 선을 그으며, 과거 정부 탓을 늘어놓아 유가족은 물론 국민들을 당혹케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오는 14일은 '부일장학회'를 강탈해 '5·16장학회'로 이름을 바꾼 지 꼭 50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긴 세월동안 유감스럽게도 책임지는 사람은 고사하고 반성 없는 국가가 과연 21세기 민주국가이며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는 지난 2월 24일 고(故) 김지태씨 유족이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낸 주식반환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는 지난 2월 24일 고(故) 김지태씨 유족이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낸 주식반환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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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은 국가에 의한 장물을 되찾기 위해 수십 년간 법적투쟁을 벌여왔지만 나아진 게 별로 없다.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 민사 17부는 정수장학회 환수를 요구하며 법적투쟁을 벌여 온 김씨 유가족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 줬다. "<부산일보>와 MBC 등 박정희 정권 때 강탈당한 언론사 주식을 돌려달라"며 국가와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낸 주식반환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강압으로 주식을 증여한 사실은 인정되나 반환청구 시효가 지나 돌려받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반환청구 이유에 대해 당시 재판부는 "증여일로부터 10년 내 반환청구를 제기했어야 하지만 50년 가까이 시효가 지나 소멸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가족과 '독재유산 정수재단 환수와 독립정론 부산일보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법원이 강제 헌납을 인정한 것"이라며 "정수재단과 박근혜 의원은 법적으로 무관하다고 항변하지만 10년 동안 재단 이사장을 지내고 아직도 자신의 최측근 인사를 대신 앉혀놓고 소유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공대위는 "자신(박 의원)의 아버지에 의해 강탈한 재산으로 이 재단을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후속조치를 이행하지 않는 한 스스로에 떳떳하지 못한 것은 물론, 국민들의 마음을 얻은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수장학회는 12일로 파업 165일째를 맞는 공영방송 MBC와 무관하지 않다.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을 줄기차게 요구해 온 <부산일보>도 마찬가지다.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 주식 100% 외에도 MBC 주식 30%, <경향신문> 사옥(땅) 723평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언론과의 연결고리를 의식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박 의원은 공영방송 파업사태에 소극적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대선출마 기자회견에서도 MBC 파업사태와 관련해 "참 안타까운 일이고 국민들이 이것 때문에 많이 불편하게 계셨고 빨리 해결되길 바란다"며 "이것은 노사 간에 빨리 해결하는 수밖에 없는데 (국회가) 개원했으니까 어떻게 할 건지 상임위에서 논의가 있겠죠"라고 말했다. 자신과는 상관 없는 일이라는 태도다.

박근혜 의원을 향한 공대위의 3가지 공개질의

그러나 현재 진행상황을 보면 MBC 파업은 대선까지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때마침 박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던 날,  공대위는 국회 정론관에서 박 의원을 향해 공개질의를 했다. 공대위는 이날 박 의원에게 세 가지 뼈 있는 질문을 던졌다.

"정수장학회 강제헌납 판결 어떻게 생각하나?"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은 누가 앉혔나?"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국가권력을 동원해 이뤄진 수많은 민간의 인권과 재산권 침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 올바른 선택을 받고자 한다면 박 의원은 이 세 가지 질문에 명쾌하게 답해야만 한다. 자신과 무관하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 한다면 그의 대권가도에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

이날 회견에 참석한 이호진 <부산일보> 노조위원장(전국언론노동조합 부산일보 지부장)은 "2005년 현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이 노조와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대표가 내게 장학회를 부탁했다고 말했다"며 "박근혜 의원이 꿈꾸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모르겠지만 공개질의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의심하고 우려할 수밖에 없다"며 재차 대답을 촉구했다. 공대위의 "정수장학회 문제 해결 없인 대선에 나설 자격도 없다"는 비판을 겸허히 새겨야 할 때다.


태그:#박근혜, #정수장학회, #부일장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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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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