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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양재동 농협 하나로클럽을 찾은 쇼핑객들이 가지, 오이 등 할인 중인 채소류를 고르고 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농협 하나로클럽을 찾은 쇼핑객들이 가지, 오이 등 할인 중인 채소류를 고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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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여름세일 시즌이다. 특히 올해는 경기 불황으로 인해 유통업체들이 할인 규모나 폭을 대폭 확대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길거리에서나 볼 수 있었던 '땡처리'라는 용어를 백화점 세일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올 들어 매출 부진에 시달리는 백화점들은 사상 최장인 한 달 세일에 돌입했습니다. 세일 기간을 늘려서라도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겠다는 계산입니다.(SBS TV 뉴스, 6월 29일)

백화점들이 '땡처리'에 가까운 저가 기획행사를 앞다퉈 열고 있다. '백화점 입점 전(全) 브랜드 참여', '사상 최대 물량 방출' 등 홍보문구도 '품위'를 돌보지 않는다.(<조선비즈> 6월 4일 기사 <체면 다 팽개치고… 땡처리 나선 백화점>)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일은 소비자들을 위한 행사이며 더불어 세일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은 현명한 소비자라고 인식된다. 그래서 "싸게 잘 샀다"라는 만족감은 단순히 재화를 취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싸게 구매했다는 사실은 나를 능력 있는 사람, 똑똑한 소비자로 여겨지게 하고 자부심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세일은 물건뿐만 아니라 자부심까지 느끼게 해주는 아주 고마운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세일에서 느꼈던 자부심과 만족감이 시간이 지나면 허무함과 후회로 바뀌는 것을 쉽게 경험한다. 왜 사람들은 이런 이중적인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일까?

할인의 심리학, 물건보다는 기대감에 느끼는 쾌락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이성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지닌 소비자라고 생각하며, 눈에 보이는 현상들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올바른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물건을 구매하는 첫 번째 조건은 "필요해서"여야만 한다. 그러나 세일과 할인은 사람들에게 필요가 아닌 가격을 구매의 첫 번째 조건으로 바꾸는 마법을 부린다. 구매라는 행위가 사실은 사람들의 이성이 아닌 심리적 요소가 더 많이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행을 간다고 해보자. 막상 여행보다는 여행을 가기 전 기대감이나 흥분에 더 행복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공포영화를 볼 때도 그렇다. 가장 크게 공포를 느낄 때는 무서운 장면이 아니라 무서운 장면이 나올 것 같은 '공포기대'를 느낄 때이다. 여행 자체, 공포 자체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기대하는 기대감과 흥분이 사람들의 만족도에 더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세일로 물건을 구매하는 과정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세일을 한다는 광고나 간판 또는 홈쇼핑을 본다. 이 순간 우리에게는 '물건 그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싸게 산다'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과 흥분이 생긴다. 이러한 감정의 흥분은 곧이어 이 물건이 정말로 필요한지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이성을 교란하기 시작한다.

만약 세일 시간이 정해져 있기라도 한다면("타임세일", "홈쇼핑 방송 중에만", "오늘 하루만" 등) 이런 흥분과 교란은 극대화 되고,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한 소비자의 손에는 어김없이 쇼핑백이 들려져 있게 된다.

여기에 충동구매라는 후회를 방지하기 위한 적당한 자기 합리화도 빠짐 없이 등장한다. "이건 정말 필요한 물건이야. 아니 뭐 내가 정 필요하지 않으면 동생이랑 언니랑 나눠 쓰면 되지 뭐"라고 말이다.

손실을 이익으로 바꾸는 할인의 마법

할인마트에서 고객들이 물건값을 계산하고 있다.
 할인마트에서 고객들이 물건값을 계산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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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는 돈으로 필요한 서비스나 재화를 살 수 있고 돈의 힘은 그 어떤 물건보다도 강하다. 그래서 우리는 10만 원과 10만 원어치 물건 중 선택을 하라고 하면 당연히 돈을 선택한다. 또한 돈을 포기하는 상황을 나쁜 일로 생각하고 가능하면 회피하려 하고, 자신의 돈을 지키려 한다.

그런데 할인은 돈을 쓰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묘하게 바꿔놓는다. '물건을 구매하는 것 = 돈을 쓰는 것 = 손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세일은 '할인해서 사는 것 = 돈을 절약하는 것 = 이익'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손실이 이익으로 재구성되면서 사람들은 세일을 통해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을 합리화하게 된다.

즉 '5만 원짜리 원피스를 산다'는 '5만 원을 쓴다 = 손해'라고 이해되지만, '10만 원짜리 원피스를 5만 원에 산다'라고 하면 '5만 원 절약이다 = 이익'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같은 돈 쓰기임에도 할인이 개입을 하면 사람들의 태도나 생각이 180도 달라지게 되고, 사람들은 주저함 없이 지갑을 열고 물건을 사게 된다.

그런데 세일을 통해 '좋은 물건'을 '싸게 샀다'는 만족감은 불행히도 오래가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싸게 산다'라는 감정적인 기대감과 흥분은 가시기 마련이다. 그럼 남는 것은, 처음 샀을 때와는 달리 지금 생각해보면 그다지 필요 없는 물건뿐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물건을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돈과 교환을 하지 않았던가? 물건을 사는 그 순간에는 할인을 받았기에 이익인 줄 알았던 거래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돈보다는 가치가 떨어지는 물건만 가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내 돈을 지켜내지 못했고 그 돈으로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게 되었다. 이런 허무함과 후회는 우리가 '필요'가 아닌 단지 '싸게 산다'라는 '거래'에 만족하고 세일의 유혹에 계속 넘어가는 한 피할 수 없는 감정들이다.

세일의 함정을 피해가는 두 가지 주문

세일은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교묘한 심리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 유혹을 이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세일이 우리의 뇌를 충동질하여 지갑을 열게 하는 순간, 아래의 두 가지 생각을 하면 유혹을 이기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이 물건을 대신할 수 있는 것들이 집에 있는지 생각해보기'이다. 세상에 전혀 새로운 물건은 없다. 지금 있는 물건들을 활용하면 굳이 새로 사지 않아도 되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

"5살 난 아이가 이불을 다 차내고 자요. 아이들이 이불 대신 입고 자는 수면조끼를 살까 하다가 그냥 남편 티셔츠를 입히니 수면조끼가 따로 필요 없더라구요. 그걸로 대신하기로 했어요."

"반찬 뭐 해먹나 고민하다가 매일 마트를 갔어요. 냉동실에 이미 먹을 것이 많은데 말이죠. 이번 달 목표는 냉동실에 있는 거 먹어 치우기입니다. 냉동실 음식들이 없어지는 것이 보이니까 돈도 절약하고 기분도 홀가분합니다."

두 번째 생각은 '미리 사지 말고, 다 쓰고 사자'이다. 세일을 할 때 사면 싸다는 이유로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나중에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구매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러다보면 불필요한 물건들을 사게 되고 집에 쌓아놓고 있으면서 결국 쓰지도 않고 자리만 차지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화장품을 사려고 하다가 화장대를 정리해보니 안 쓰는 샘플들이 너무 많더라구요. 새로 사는 건 포기하고 일단 이 샘플부터 다 쓰고 나서 사기로 했죠."

"맥주나 아이스크림을 많이 사면 싸니깐 묶음으로 미리 사놓고는 했어요. 그런데 이런 기호식품들은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냉장고에 있고 눈에 띄니까 그냥 먹게 되더라구요. 요구르트는 많이 사놓으면 유통기한 지나서 버리기도 하구요. 지금은 술이나 아이스크림은 먹고 싶은 때 슈퍼에서 먹을 만큼만 삽니다."

세일을 통해 할인을 받으면 사람들은 마치 '승자'가 된 것처럼 느낀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홈쇼핑채널을 보면서 쇼핑호스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세일 간판만 봐도 기대감으로 흥분을 느끼며 그곳을 끌려 들어가게 된다. 세일 때 샀으니 다른 사람은 받지 못한 할인은 받았다는 그래서 거래에 승리했다고 느끼는 그 만족감은 그러나 우리를 더 많이 소비하게 하고 결과적으로는 더 많이 후회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한다.

이제는 그 고리를 끊어야 할 때이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돈은 늘상 후회만 하고 있기에는 너무 부족하고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지영 시민기자는 생활경제상담센터 '푸른살림'에서 교육활동가 및 생활경제상담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네이버 푸른살림 카페 : cafe.naver.com/goodsalim)



태그:#세일,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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