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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한인입양인대회가 지난 6월 28일부터 7월 1일까지 나흘 동안 파리에서 열렸다. 'Paris Gathering 2012'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 대회는 세계한인입양인협회(IKAA)와 프랑스입양인협회인 '한국 뿌리협회(Racines coreennes)' 주최로 개최되었다.

 

현재 세계에는 18만 명의 한국 입양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의 만남을 활성화하기 위해 미국에 위치한 세계한인입양인협회는 해마다 집회를 개최하는데 3년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미국과 유럽, 한국에서 열리고 있고 올해는 유럽 차례라서 파리에서 개최된 것이다.

 

이번 유럽한인입양인대회에는 15개 국적을 지닌 250여 명의 입양인들이 참석해서 각종 토론과 입양 관련 다큐멘터리 상영, 한식 시식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석하였다. 다큐멘터리는 최근 벨기에의 한인 입양인에 의해 만들어져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개봉된 <피부색 : 꿀색> 등이 상영됐다.

 

프랑스에 입양된 1만3천여 명의 한국 아이들

 

6월 30일 토요일 오전 파리 6구에 위치한 알리앙스 프랑세즈 강당에서 열린 토론에 참석한 프랑스 외무부 해외입양 담당 프레세 대사는 현재 1만3천여 명의 한국인 입양아들이 프랑스 내에 거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의 한국인 입양은 1980년대, 특히 1983년에서 1986년 사이에 최고를 이루어 이 기간 동안 한 해 800여 명에서 900여 명에 이르는 한국인들이 프랑스 가정에 입양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의 경제 발전과 한국 정부의 자국 내 입양 권장정책으로 인해서 한국인 입양의 수가 급속히 줄어들었다.

 

이제 한국인 입양은 한 해 10여 명 남짓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입양이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는 이디오피아, 콜롬비아, 러시아, 베트남, 중국 등으로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해 서양에 살고 있는 동양계 입양인들의 상당수가 일명 '바나나 콤플렉스'에 걸려있는데 이는 겉은 황인종이고 속은 서양인이라는 뜻이다. 수십 년을 양부모 밑에서 살고 서양식 교육을 받아 내적으로는 서양인이 되었어도 동양인이라는 외모는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상당수가 '아이덴티티(정체성)' 문제로 갈등하고 있다.

 

이날 행사를 크게 다룬 <르 몽드> 6월 29일자 기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들의 문제는 입양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친부모에게서 버려졌다라는 것이다. 결국 이들의 입양은 버림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게 되는 데 문제는 거기에 있다. 왜 나는 버려져야만 했을까?

 

많은 입양인들이 친부모를 찾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왜 내가 어린 나이에 버려져서 이 머나먼 타국 땅에까지 와야먄 했을까이다.

 

이 문제에 조금이라도 답을 찾기 위해 30일 행사에 참가한 기자는 입양아 3명을 인터뷰했다.

 

30대 여성 제니퍼 "나는 한국인 아닌 양엄마에게서 버려졌다"

 

브르탄뉴 지방의 소도시 켕페르에 살고 있는 33세 여성 제니퍼(Jennifer)의 한국명은 박손선이다. 생후 8개월 되는 해인 1979년 프랑스 가정에 입양되었다. 양부모는 몇 년 후에 다시 한국에서 남자아이를 입양하게 된다.

 

그런데 제니퍼와 양엄마 사이에는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다. 남동생과는 잘 지내는 엄마가 자기는 차별대우 하고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그래도 양아버지가 살아있을 때까지는 그런대로 지냈다. 그러나 1996년 양아버지가 사망하자 양엄마는 제니퍼를 집에서 쫓아냈다. 당시 17세이던 제니퍼는 집을 나가서 독립을 했다. 현재 미대생인 제니퍼는 그 이후 양엄마를 다시 본 적이 없다.

 

그녀는 2009년 한국을 방문한 이후 한글을 배우고 있고 언젠가는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한국이라는 단어에서 제일 먼저 느껴지는 것은 '바캉스', '즐거움'이다. 한국과 한국인에 의해 버려졌다는 느낌은 없고 대신 양엄마에게서 버려졌다는 느낌을 강하게 갖고 있다.

 

부모님과 외할머니를 모두 기억하고 있는 에르베

 

10살 반이라는 상당히 늦은 나이에 남동생과 함께 입양된 에르베(Herve, 42세, 한국명 배현진)는 아주 행복한 케이스에 속한다. 그는 좋은 양부모를 만나 아무 문제 없이 프랑스 사회에 적응했다. 프랑스에 도착한 지 처음 6개월 동안은 당시 8세인 남동생과 둘이서 한국말을 썼으나 이후에는 한글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학교에서 배우는 불어가 대신 모국어가 되어버렸다.

 

늦은 나이에 입양이 된 에르베는 어린 시절 기억 뿐만 아니라 가정환경과 친부모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있었다. 뽕을 치던 부모님이 자신이 9살일 때 돌아가시고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러나 늙으신 외할머니가 더 이상 두 형제를 부양할 수 없게 되어서 입양시켰다고 한다.

 

에르베가 상당히 행복한 입양 생활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정체성에 대한 인지 여부는 입양인에게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있어야 미래의 설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에르베는 4명의 자녀를 둔 행복한 아버지이다.

 

한국 찾은 뒤 마음 편해진 크리스티안

 

올해 47세인 크리스티안(Christiane)은 스위스인이다. 한국명이 최미옥이고 4살 때인 1969년에 스위스 가정에 입양되었다. 양부모에게는 자기보다 한 살 위인 딸이 하나 있었고 4년 후에는 다시 한국 남자아이를 입양한다.

 

그런데 그녀의 어린 시절은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양엄마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받으며 18세까지 살았다. 양엄마는 자기만 학대한게 아니라 양아들, 심지어는 친딸도 학대했다. 교회 열심히 다니는 열성 신자인 엄마는 집안에서는 폭군으로 군림했다. 양아버지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내버려 두었다.

 

성인을 2년 앞둔 18세 때 그녀는 엄마가 자신에게 내리치는 몽둥이를 처음으로 막았다. 그리고는 집을 나왔다. 혼자서 어렵게 간호학교를 나와 지금 스위스 프리부르그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크리스티안은 당시 학대를 받을 때마다 친부모라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되뇌이고 되뇌었다.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현재 스위스한인입양인협회인 김치협회장인 그녀는 그 동안 한국을 4번 방문했다. 처음 3번은 오로지 친부모를 찾기 위해서였는데 그녀는 KBS TV <아침마당>에까지 나가서 친부모를 찾는다는 방송을 했다. 엄마를 찾으면 무엇을 제일 먼저 하고 싶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엄마 품에 안겨서 엄마가 불러주는 아리랑 노래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친부모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친부모를 찾기 위해 할만큼 다 했어도 결과가 없으니 포기하는 게 순리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한국 여행은 순전히 한국을 알기 위해서였다. 한국하면 '김치'와 '아리랑'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는 그녀는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존재여서 편안함을 느꼈다.

 

스위스에서는 자신이 일하는 병원에서도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환자와 동료로부터 일종의 인종차별을 받고 있다. 축구 팬인 그녀는 스위스와 한국이 같이 경기를 하면 오히려 한국을 응원한다고 한다. 이성적으로는 스위스인이지만 감성적으로는 한국인에 가깝다는 그녀는 한국에 가서 한 2~3년 살아보는 게 희망이다.

 

친부모에게서 어린 나이에 버림 받고 자신의 정체성을 모른다는 커다란 핸디캡을 딛고도 많은 한국 입양인들이 타국 땅에서 건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제는 이들이 가정을 이루어 부모 세대가 되고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에 살면서 누구누구가 한국 입양인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는 요즘이다. 내년 여름에는 한국에서 세계한인입양인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태그:#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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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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