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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비게이션을 따라 차를 몰고 가다가 애먼 곳에 도착한 일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입니다. 내비게이션을 업데이트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모두 함께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미래의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인생의 내비게이션을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왜냐면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한 인생 내비게이션은 우리를 애먼 곳으로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기자 말>

그리스 신화에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줘서 큰 고초를 당하는 프로메테우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화에 따르면 불은 신의 것, 인간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감춰 둔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 줬습니다. 덕분에 인간은 문명을 깨닫고 비로소 여타 동물과는 다른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게 됐지요. 반면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분노를 사서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벌을 받게 됐고요.

이야기 자체의 강렬함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이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작품의 소재로 다뤘습니다. 물론 그리스 신화는 가공의 얘기지만, 신화대로 생각을 해보자면 인간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없었다면 아마 인간이 아닌 동물과 같은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이야 말로 우리를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진정한 인간이 되도록 만든 '인간의 조건'인 셈이죠.

인간이란 무엇일까요? 인간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은 언어야 말로 인간을 여타 동물을 구분하는 조건이라고 말할 겁니다. 하지만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이나 곤충들도 소리뿐만 아니라 몸짓까지 동원해서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한다는 것이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복잡한지 단순한지의 차이만 있을 뿐 언어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죠. 공동체를 이뤄서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인간만의 특성은 아닙니다. 여타 생명체들도 공동체 생활을 하니까요. 복잡한 언어생활과 고도의 사회활동을 인간의 조건이라고 해보면 어떨까요? 도대체 어느 정도 복잡해야 인간이죠? 그 기준은 어떻게 될까요? 한나 아렌트나 앙드레 말로 같은 사람들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두꺼운 책을 쓸 정도로 이 문제는 절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부터 들려드릴 얘기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제가 강연에서 언급하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인간이란 무엇일까요?"
"음... 단백질로 되어 있고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생물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 인간이 아닐까요?"
"혹시 학생은 전공이?"
"생물학인데요?"

"하하. 그럴 것 같았어요. 과연 단백질을 구성 요소로 해서 이렇게 생기면 인간일까요? 한 번 이런 상상을 해 보죠. 지금으로부터 2000년이 지난 미래입니다. 과학이 엄청나게 발전을 해서 방금 질문을 한 학생과 똑같은 단백질 구조를 가진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마침 학생은 회사 측의 부당한 처우에 항의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파업에 들어간 상황이에요.

회사 측에서는 학생과 똑같은 단백질 구조를 가진 로봇을 구입해서 회사에서 학생이 하던 일을 완벽하게 대체했습니다. 이 단백질 로봇은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일을 잘 해서 회사 입장에서는 오히려 학생보다 일을 더 잘 한다고 볼 수 있지요. 자. 이런 상황이라면 학생과 그 단백질 로봇과 도대체 다른 것이 뭐가 있을까요?"
"흠... 어려운 문제네요."
"단언하건데 단백질로 돼 있다고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과 똑같은 단백질 로봇을 만든다는 상황설정이 어쩌면 비현실적인 가정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이론이 그렇듯 사고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였을 때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반대편의 극단을 얘기해야겠군요.

"이번에는 좀 다른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로봇이 나오면 SF장르의 책이나 영화, 만화 등을 보면 꼭 로봇 중에 하나가 자유의지를 가지게 되죠?"
"하하. 그렇지요."
"사실 로봇이 중요한 등장인물인데 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따라하는 캐릭터면 얼마나 밋밋하고 재미가 없겠어요? 자유의지를 가진 로봇이 있어야 뭔가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생길 테니까요."
"그렇겠죠."

"자유의지를 가진 로봇은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이렇게 나 자신의 의지가 있는데 왜 인간이 시키는 대로만 살아야 하지? 이래서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고 할 수 없잖아, 등의 의문이죠. 결국 자유의지를 가진 로봇은 필연적으로 인간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부려먹기 위해서 로봇을 만들었는데 로봇이 그것을 거부하니까요. 그러면서 초대형 블록버스터 영화가 시작되는 거죠. 때려 부수고, 레이저 광선을 쏘고, 도시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말이죠. 그래야 관객이 많이 오잖아요."

"하하하. 맞아요. 맞아. 제가 본 SF영화들 대부분이 다 그랬어요."
"그런데 여러분 제가 방금 얘기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몸뚱이는 쇠로 만들어진 그 로봇이 바로 '인간'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 로봇은 인간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살면서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대답 여부에 따라 인간인지 아닌지가 갈립니다.

앞서 얘기한 단백질 로봇은 설사 인간과 똑같은 생체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 두 질문에 대한 자신의 대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업의 운영리듬에 자신의 생체리듬을 맞춰 하루하루를 반복적으로 살아갑니다. 겉보기에는 인간과 똑같겠지요. 하지만 이런 존재는 절대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나중에 언급한 로봇, 인간과 모습이 전혀 다른 쇠로 된 몸통을 가진 이 로봇이야 말로 진정 인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쇠로 된 로봇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기 자신의 대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 스스로가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더 이상 인간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물론 주인이 되는 길은 험난하지요.

인간들은 자신의 뜻을 거역하는 자유의지를 가진 로봇을 모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탄압하겠지요. 로봇은 인간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파괴당하고 세상에서 존재 자체가 지워질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로봇은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웁니다. 왜 위험을 무릅쓰느냐고요? 인간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제가 인문사회 분야의 책을 여러 권 썼기 때문에 어떤 분들은 제가 당연히 대학에서 인문사회 분야를 전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에서 전자공학 분야를 전공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반도체 소자 분야를 연구했지요. 이후 관련 직장에서 5년 가까이 근무했습니다. 이렇게 한때 공학도로서 경력을 쌓아나가는 동안 제 전공과 관련한 수많은 책을 읽었고 수많은 교수님을 만나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전공 관련 책을 읽고 많은 공대 교수님들께 수업을 들으면서 한 번도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접한 적이 없었습니다.

최근 대학에서 공대나 경영대 등 기업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학문 위주로만 투자나 지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인문학과 사회학 분야는 학과가 없어지거나 학생 정원이 줄고 교수를 채용하지 않는 일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에서는 인문학이 다시 뜨고 있다는 얘기들이 있는 것 같은데, 인문사회 분야의 저자인 제 입장에서는 솔직히 그런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단지 예전에 인기를 끌던 자기계발서들이 유행에 따라 인문학이라는 옷으로 갈아입고 여전히 예전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을 뿐입니다.

공대나 경영대에서 배우는 학문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 자신이 공학도였으니까요. 세상이 돌아가려면 당연히 미적분도 필요하고 회계원리도 필요하지요. 하지만 그런 실용적인 학문은 우리에게 절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이 질문을 던지는 학문은 바로 인문학과 사회학입니다.

인문학은 사람에 대한 학문이고, 사회학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 대한 학문이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영혼을 잃고 단백질 로봇이 되고 있는 우리 세대가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프로메테우스의 불, '인간의 조건'은 바로 인문학과 사회학입니다.

여러분은 단백질 로봇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인간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이미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우리 앞에 놓여있습니다. 손을 뻗어 그것을 취하느냐 아니면 못 본 척 지나가느냐는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태그:#인간이란, #인생관,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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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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