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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기도회를 마치고 서재에 올라왔더니 진안에서 작은 생태공동체를 하고 있는 아우 최종수 신부한테 장문의 문자가 왔네요. 마음이 아파서 다 읽지 못하고 중간에 울음보가 터졌습니다. 일단 한자도 빠트리지 않고 전재합니다.

영구놀이를 하는 최종수 신부. 사진 오른쪽이다.
 영구놀이를 하는 최종수 신부. 사진 오른쪽이다.
ⓒ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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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오늘 단비가 와서 그런지 가뭄 때문에 힘들었던 마음이 하소연으로 분출하는가 봅니다. 자급자족의 꿈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요? 함께 미사하고, 함께 기도하고, 일하고 식사하는 단순소박한 공동체가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요? 농촌에서 희망찾기 4년, 만나생태마을 공동체 일구기 3년, 뒤돌아보면 하느님의 은총이었지만 남몰래 흘린 눈물과 고뇌가 많고 깊었습니다. 유기농업이 얼마나 힘든지 매일 몸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블루베리 수확을 시작했지만 마땅한 판매처가 없습니다. 신부님들께 수녀님들께 부탁할 수 있지만 사제가 무얼 사달라고 하기가 참 어렵네요. 신학생 때부터 알고 있는 아버님 같은 의사 신자에게 블루베리를 들고 갔습니다.

"신부님, 잘 살고 계시네요. 한두 해 농사짓다 포기하고 나오실 줄 알았는데 장하십니다" 하시더군요. "블루베리 판매처가 없어서 그런데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하는 말이 입속에서 맴도는데 입 밖으로 나오지 않더군요. "첫 수확입니다. 맛있게 드세요"하고 병원 문을 나왔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만 믿고 산골로 들어왔지만 자급자족의 꿈을 아직도 멀기만 합니다. 4년 동안 집 3채, 저온창고, 생태화장실, 여러 영농시설과 농자재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돈이 들어갔습니다. 투자는 코끼리 같은데 수입은 비스킷처럼 작습니다. 효소된장, 블루베리 등의 소득사업이 있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입니다. 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생각하면 절망할 때도 있습니다.

장마라는 단비가 내리는데 마음은 하염없이 눈물이 내립니다. 머리로만 알았던 세상살이 모두가 힘들게 산다는 것, 이제야 제대로 배우고 있습니다. 머리까지 아프니 더 처량해 집니다.

"하느님 왜 이 길을 가라 하십니까?"

누군가에게 전화라도 해서 울음보라도 터트리고 싶은데 힘들다고 말하며 품에 안겨 울고라도 싶은데 밤이 깊어 가듯 외로움도 깊어갑니다.

"하느님 어찌해야 합니까?"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형님이 계시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란 걸 알지만 오늘밤은 눈물만 축복처럼 내립니다. 이 또한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한 과정이기에 감사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형님이 계셔서 감사합니다.
- 2012년 6월 29일 아우 최종수 신부 드림.

최종수 신부. 팔복성당에서
 최종수 신부. 팔복성당에서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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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많아 '사랑수' 신부로 많이 알려진 최종수 신부는 2008년 8월 팔복성당 주임신부 직을 내려놓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에겐 오래 전부터 생태마을 공동체에 대한 꿈이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의 꿈이 전북 진안에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만 4년 동안 그의 글에 볼 수 있듯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나생태마을 공동체를 일구었지요.

그러나 세상에 어디 그 어느 것 하나 만만하게 있겠습니까? 최종수 신부가 지향하는 생태 마을공동체는 자급자족형 공동체입니다. 그동안 공동체에 필요한 건물을 짓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 쏟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블루베리를 생산했는데 판로가 만들어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지난 6월 15일에도 아우 최종수 신부한테 문자가 왔었지요.

"뻐꾸기 소리 들리는 아침, 철이 형님 생각하니 행복합니다. 블루베리가 익어갑니다. 6월말이나 7월초에 수확하니 그때 꼭 방문하셔서 맛보세요. 형님을 무척 사랑하는 아우 신부"

곧바로 답을 보냈습니다.

"지구별 한쪽에 아우 사랑수 신부가 있다는 사실이 나도 행복하다오. 건물은 다 지으셨소? 마음과 뜻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이 참 부럽소. 사랑수 신부처럼 나도 어디 진득하게 눌러 앉아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갈 날이 오기를 바란다오. 형 목사"

그때만 해도 나는 최 신부가 그리 절박한 상황인 줄 몰랐지요. 전화로 일단 몇 사람의 지인들과 함께 방문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장문의 글을 받고서야 나의 무심함에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최종수 신부가 많이 지쳐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지친 손이라도 잡아 주어야 하겠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급한 김에 <오마이뉴스>에 이 글을 올립니다. '아픔은 함께 나누면 작아지고 기쁨은 함께 나누면 배가 된다'는 경구가 생각납니다.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들이여! 이름도 생소한 저 전라도 진안 만나생태마을 공동체에서, 고운 꿈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최종수 신부의 눈물을 닦아주고 지친 손을 잡아 주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립니다. 블루베리 많이 드시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태그:#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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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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