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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의 결혼 원정기>의 한 장면.
 영화 <나의 결혼 원정기>의 한 장면.
ⓒ 나의 결혼 원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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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두 살, 나는 노총각이다. 세상의 시선은 복잡하게 내 삶을 훑는다. 그러면서 '왜 결혼 안 하느냐'고 성화다. 내 부모님과 친구 부모님을 비롯해 친구와 선후배, 지인 등이 들려주는 말을 정리하면 대충 이런 식이다.

"사지 멀쩡한 녀석이 결혼을 왜 못 해!" (죄송하지만, 사지 안 멀쩡해도 결혼해요.)
"너, 혹시... 여자보다 남자가 좋은 거 아냐?" ('커밍아웃'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어디가 모자라서 아직도 결혼 못 하냐?" (그 어디가 어딘데요, 콕 찍어보라고요.)

"연애와 사랑은 해 봤냐?" (이게 질문이야? 답을 해야 하냐고.)
"난, 친구들 중 네가 제일 먼저 결혼할 줄 알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형, 학교 다닐 때 인기 좋았잖아?" (인기와 결혼은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아, 아직 결혼 안 하셨어요? 왜요?" (이럴 땐... 그냥 웃고 말지요.)

그리고 간혹, 차마 글로 옮기기 어려운 물음도 있다. 20대 중반에 결혼해 결혼 10년 차에 접어든 여자 후배가 어느 날 대화 도중 생뚱맞게 이렇게 물었다.

"선배, 성욕은 어떻게 해결해?"
"……."

식욕과 배설욕 그리고 성욕. 여자 후배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에 대한 물음을 사뭇 진지하게 던졌다. 대답은 못 하고… 아, 그 때 그 얼굴 붉어지던 묘한 기분이란.

노총각에게 보내지는 이러한 따가운 시선과 질문들은 불편하다. 결혼을 못 했든 안 했든, 그 사실이 그렇게 이상한 일일까? 노총각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들에게 부탁한다. 노총각도 별 탈 없이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러니 제발, 오해하지 마시라!

"어, 오랜만이다. 결혼 하냐?"

간만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면 대번에 이런 질문이 돌아올 때가 있다. 노총각의 앞날을 걱정하며 미리 앞서가는 이런 반응, 고맙다. 그러나 섭섭하다. 하지만, 어쩌랴! 노총각으로 사는 게 죄라면 죄인 것을.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라! 그냥 안부 전화한 거니까. 끊임없이 이어지던 친구들의 결혼식과 아이들의 돌잔치도 이젠 거의 다 치렀고. 그나마 간혹 전해지는 소식에 얼굴을 볼라치면 좋은 일보다 슬픈 일이 더욱 많아졌잖아. 더욱이 너희들은 아이 돌보랴, 집안일 챙기랴 정신 없다고 전화도 잘 안 하잖아. 그러니까 평소에 잘 살고 있나, 안부 전화하는 거라고. 물론, 총각이라 너희들보다 시간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결혼하게 되면 미리 모임을 갖고 신부될 사람 소개시켜줄 거야. 설마 결혼식 일주일 앞두고서 도둑장가라도 들 듯 결혼식에 오라고 연락하겠냐? 나도 어여쁜 신부와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고. 그러니까 대번에 "결혼하냐?"고 묻지는 말아라.

부모님 "너 결혼시키면 축의금 걱정은 없다"

나는 결혼이 좋은지 나쁜지 아직도 모른다. 마흔 두 살, 노총각 소리를 듣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래, 맞다. 철이 덜 들었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어른' 대접을 못 받으니까. 철이 덜 든 나, 태어나서 지금껏 부모님과 한 집에서 살고 있다. 국방의 의무는 18개월 출퇴근으로 해결한 탓에 훈련소에서 보낸 시간을 제외하면 부모님 곁을 한 달 이상 떠나본 적이 없다.

30대 초반까지는 결혼 문제에 대해 그런대로 이해하셨지만, 30대 후반을 거쳐 40대로 접어들자, 부모님은 간절한 목소리로 내게 호소한다.

"다른 집 자식들 결혼식에 축의금 내려면 속이 뒤집힌다, 뒤집혀. 돈 때문이 아니라 마음이 아파."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한 장면.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한 장면.
ⓒ 싸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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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13살 동갑내기 아들을 둔 네 살 많은 형과 두 살 어린 여동생 사이의 둘째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속은 타들어 간다. 매일 나이 들어가는 내 얼굴을 맞대야 하는 부모님의 심정은 오죽하실까,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간혹 말씀 끝에 뜨끔한 여운을 남기시기도 한다.

"너 여우면(결혼시키면) 축의금 걱정은 없다. 엄마가 그 동안 너 생각해서 여기저기 보탠 돈이 얼마인데…. 빨리 정신 차리고 결혼해!"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상부상조의 미덕은 결혼식에서 더욱 크게 빛을 발한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멀쩡한(?) 자식이 노총각으로 늙어 가는 탓에 부모님은 상부상조의 미덕을 남에게만 베풀고 계신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시라. 부모님이 내신 축의금 돌려받고자 결혼을 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일은 결단코 없을 테니까.

조카 왈 "삼촌은 왜 맨날 야동을 봐?" 

평일이든 주말이든 저녁이 되면 습관처럼 TV를 튼다. TV 속 광고의 한 장면. 나보다 나이가 두 살 많은 전직 야구선수가 나와 한 마디 한다.

"나는 노총각이다. 왜 집에 일찍 들어가느냐고? 디지털 VOD, 나는 보고 싶은 걸 골라 본다."

시간 많은 노총각이 디지털 VOD로 프로그램을 선택해 맘껏 본다는 광고다. 유부남에게는 결코 쉽게 허락되지 않는 저녁 시간의 한가로움이 그대로 느껴진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저녁 시간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것이 된다. 그 수많은 저녁 시간 뭐 하며 보내느냐고? 어느 날, 초등학교 6학년인 조카가 내게 물었다.

"삼촌은 왜 맨날 야동을 봐?"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맨날 보잖아. 야구."

뜨끔했는데, 야구 동영상이란다. 휴~. 조카 녀석은 언제부터인가 친구와 통화를 하든가 게임을 하든가 할 때 '야동' 이야기만 나오면 '꺄르르' 웃기부터 한다. 언제 사춘기가 올까, 유심히 지켜보는 삼촌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무슨 야동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제는 나보고 야동 중독이란다. 매일 저녁, 이 방송 저 방송을 오가며 프로야구 경기를 쭉 살펴보고 있으니, 맞는 말이긴 하다.

그래도, 조카야 오해하지 마라! 마흔이 넘어서 네가 생각하는 '야동'을 찾아 밤마다 인터넷 바다를 헤매지는 않으니까. 물론 기회가 주어지면 야동을 마다하지는 않아. 너도 사춘기를 지나다 보면 삼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노총각의 삶,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나는 아직 결혼을 꿈꾼다. 그러나,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은 생각뿐이다. 부모님께 대한 최소한의 효도, 결혼 제도에 대한 순응, 종족 보존의 본능에 대한 동의 등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머릿속에 많이 떠오른다.

하지만, 3달에 2번 정도 찾아가는 동네 미용실의 원장님은 이런 내게 말한다.

"육상씨는 생각이 문제예요. 나이 먹어서 하는 결혼이라도 우선 사랑하는 여자를 만들어야하는데, 육상씨는 4년이 넘게 봤지만 여자를 만날 노력을 안 하는 것 같아요. 도대체 결혼할 생각은 있는 거예요?"

결혼할 생각? 물론 있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길 열정은 없다. 아무래도 내 노총각 생활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노총각의 삶, 별 것 없다. 그렇더라도 '왜 결혼 안 하느냐'고 묻지는 말아 주시길 부탁한다.


태그:#노총각,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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