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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코스타리카에 간다고 했을 때, 한국에 있는 친구들의 반응은 대개 "거기가 어디야?"였다. 하기사, 한국에서 코스타리카의 이름을 들어본 게 몇 번이나 됐을까. 월드컵 때 중남미의 축구 강국이라는 언급이 나오거나, 커피 전문점에서 에티오피아나 케냐산 커피 원두와 함께 만날 수 있는 게 코스타리카 커피였다. 심지어 "코스타리카? 그거 무슨... 나라 이름이야?"라고 물었던 친구도 있으니 말 다했다. 이렇게 나는, 보도 듣도 못했던 곳에 다녀왔다.

코스타리카는 중남미의 파나마와 니카라과 사이에 위치한 작은 나라다. 물리적인 거리가 먼 만큼이나 우리나라와 교류가 많지는 않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굉장히 흥미로운 면이 많다.

 중남미에 위치한 코스타리카
 중남미에 위치한 코스타리카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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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나라에는 군대가 없다. 헌법으로 군대를 폐지한 나라로는 세계 최초다. 국가 규모가 작고 변변한 지하자원이 없기 때문에 그닥 외세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국방에 쏟을 예산을 교육과 의료에 쓴다.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이 제공되며, 의료 역시 무상이다. GDP가 1만 불도 채 되지 않는 조그만 나라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말 잘못 꺼냈다가 빨갱이 소리 듣기 십상인 무상교육·무상의료를 버젓이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코스타리카는 관광 산업 비중이 굉장히 높다. 특히 국가의 25%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을 만큼 자연 보존에 신경을 쓴다. 그래서 자연을 되도록 훼손하지 않으면서 책임 있게 여행하는 생태관광(에코투어리즘)이 일찍부터 발전했다. 천혜의 자연 환경 덕에 인간이 밥 버는 걸 인지하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중화학 공업 따위는 아예 육성하지 않으며,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이 다른 중남미 국가 중에서 발달한 편이다. 그 외 커피와 바나나 등의 농업 비중이 높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중남미의 작은 나라 사람들이 세계에서 제일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코스타리카는 영국의 민간 싱크탱크 신경제재단(NEF)이 발표하는 국가별 행복지수에서 자주 1위에 오른다. 지표는 삶의 만족도와 기대수명, 환경오염 등을 포함한다. 신이 선물한 자연을 지키고 가꾸면서 유기농 음식을 먹고 여유롭게 사니까 행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조사에서 미국은 105위, 한국은 63위에 머물렀다. 역시 행복은 성적순도, 경제력순도 아니다.

행복지수 1위, 군대도 없는 평화의 나라 코스타리카

한국에서 코스타리카에 가기는 쉽지 않다. 다른 중남미 국가도 마찬가지지만, 국내에서 직항 비행기가 없기 때문에 미국 LA 등에서 환승해야 한다. 그만큼 항공권도 비싸지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하지만 나는 지난 1월부터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에 체류 중이었기 때문에, 훨씬 수월하게 코스타리카에 다녀올 수 있었다. 미국에서 코스타리카에 가는 건, 우리나라에서 태국이나 캄보디아에 다녀오는 정도로 가벼운 느낌이다. 실제로 그만큼 많은 미국인들이 코스타리카로 휴가를 간다. 캘리포니아 LA나 텍사스 휴스턴, 콜로라도 덴버 등에서 출발하는 직항이 있고 비행시간도 일고여덟 시간이면 충분하기 때문. 아, 일고여덟 시간이 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국내에서 동서를 횡단하는 데만 비행기로 네 시간이 걸리는 미국에서는, 이쯤은 날아야 비로소 외국 나가는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내가 코스타리카에 대해서 뭘 잘 알고서 간 건 아니다. 사실은 그냥 친구 따라 강남 갔던 여행이다. 학부 시절부터 캘리포니아에서 유학하고 있는 대학원생 친구가 간다기에 따라갔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시작한 겨울학기 내내 매주 백여 쪽이 넘는 리딩 숙제와 거의 매주 한 편씩 제출해야 했던 페이퍼에 시달린 터라, 어디 영어 안 들리는 데 가서(!) 푹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LA에 지사를 둔 한국 여행사의 패키지 투어로 코스타리카에 간다는 친구의 계획이 퍽 좋게 들렸고, 그렇게 우리는 기말고사를 마치자마자 짐을 꾸려 코스타리카의 수도, 산호세로 떠났다.

재미 교포 패키지에 낀 수상한 이십대 둘

 코스타리카 일행과 함께 화산 온천에서. 이십대인 우리 둘을 빼고는 모두 육십대 이상이신데, 어찌나 정정하시던지 오히려 우리 기가 눌릴 지경이었다.
 코스타리카 일행과 함께 화산 온천에서. 이십대인 우리 둘을 빼고는 모두 육십대 이상이신데, 어찌나 정정하시던지 오히려 우리 기가 눌릴 지경이었다.
ⓒ 전숙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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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단체 패키지 투어를 좋아하진 않는다. 아무래도 인원이 많다보니 자유도가 떨어지는 탓이다. 게다가 복불복이 심하다. 어떤 일행과 가이드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더 즐거운 여행이 될 수도 있고 '내 돈 내고 왜 이러고 있나' 싶게 아쉬운 일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해서 이번 코스타리카 여행은 오히려 패키지로 오길 잘 했다. 여행사가 LA에 있다보니 대부분의 여행객은 한인 교포분들이었다. 연령대는 조금 높아서 대개 오십, 육십대고 팔십대 할머니까지도 계셨다. 이십대는 우리 둘 뿐이었다.

그러나 이 예순이 넘었다는 어른들이 어찌나 잘 노시던지! 진심으로, 이렇게만 나이 들수 있으면 세월이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람들이 특유의 흥이 있어서 무진장 잘 놀긴 하지만, 멍석 깔아주면 빼 발동이 걸리려면 좀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그런데 이 분들은 오랜 미국 생활로 스스럼이 없고 활달했다. 그러니까 조선의 풍류와 아메리카의 자유가 만나 최고로 잘 노는 투어 그룹이 탄생했달까?

화산 위에 드리워진 구름 그림자, 아레날 화산

 아레날 화산이 보이는 전망대 앞에서
 아레날 화산이 보이는 전망대 앞에서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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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그림자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지? 구름이고 그림자고 쳐다볼 여유가 없이 바쁘게 살던 한국에서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일. 수도 산호세에서 북서쪽으로 차로 두세 시간쯤 가면 아레날 화산(Volcan Arenal)이 나온다. 우리가 민족의 영산 운운하듯 아레날 화산은 코스타리카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머니 같은 느낌의 산이다.

아레날 화산은 세계 10대 활화산 가운데 하나로 규모가 굉장하다. 화산의 열기가 데운 온천이 관광객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거뭇거뭇한 화산재로 뒤덮인 활화산 위에 얼룩처럼 드리워진 진회색 그림자는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며 새로운 경관을 선사했다. 구름이었다. 시원하게 뻥 뚫린 하늘, 그 위를 떠다니는 몇 점인가의 구름이 햇빛을 가려 산 위에 그림자를 만들고 있는 거였다. 지리산에 갈 때마다 느끼던 그 푸근함이 되살아났다.

 아레날 화산 위에 드리워진 구름 그림자
 아레날 화산 위에 드리워진 구름 그림자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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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트를 타고 강 위에서 화산을 바라볼 수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과 구름 그림자가 늘 새로운 경관을 선사한다.
 보트를 타고 강 위에서 화산을 바라볼 수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과 구름 그림자가 늘 새로운 경관을 선사한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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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잔? 쇠줄 하나 타고 밀림을 질주하는 카노피 체험

코스타리카에서 할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 중 하나는 카노피 체험이었다. 카노피는 숲 속의 큰 나무들에 쇠줄을 걸어서 안전장치를 붙잡고 줄을 따라 내려오며 경치와 스릴을 즐기는 레저 스포츠. 워낙 관광산업이 발달했다보니 카노피뿐 아니라 승마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체험을 할 수 있다.

한국 가면 못 하는 거라는 생각에 대뜸 하겠다 나섰는데, 막상 줄을 잡고 내려오려니 발이 떨어지지 않더라. 리조트 내의 시설이라 구간이 열세 개 밖에 안되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카노피였는데도, 어찌나 비명을 질러댔던지. 열 살도 채 안 돼 보이는 꼬마들도, 예순이 넘으신 어르신도 신나게 잘만 내려가시는데, 굴욕이 아니 수 없었다. 그래도, 내려오면서 즐기는 밀림의 경치는 최고였다. 타잔이라도 된 기분이랄까?

 카노피 체험 중
 카노피 체험 중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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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아나, 도마뱀, 악어까지... 생태계의 보고 코스타리카

코스타리카에 가면 어렵지 않게 신기한 새들과 이구아나, 도마뱀, 심지어 악어까지도 만나볼 수 있다. 워낙에 천혜의 자연이 풍성한데다 국가 차원에서 생태계 보존에 신경을 쓰고 있다보니 가능한 일이다.

 이구아나
 이구아나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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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여운 거북이
 귀여운 거북이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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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어
 악어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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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타리카를 대표한다고 해도 좋을 새 뚜깡
 코스타리카를 대표한다고 해도 좋을 새 뚜깡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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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고추장 파티! 공항 청소부터 시작했던 이민사

코스타리카의 여유로운 생활 방식과 자연을 만끽하며 휴식하던 중 같은 방을 쓰던 어머니 한 분이 "우리 이따가 저쪽 방에서 파티 할 건데 놀러와!"라고 초대를 해 주셨다. 엥? 그러니까 나는 방금 우리 엄마뻘도 넘는 '어른'에게 파티 초대를 받은 셈이다.

사실 이십대인 내가 어른들을 대하는 건 어렵다. 한국에서는 더 어려웠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어른들을 대할 기회 자체가 별로 없었던 거 같은데, 어른들은 어른끼리, 애들은 애들끼리 노는 문화가 강해선지 "어른들 얘기하는데 끼어들지 말라"는 꾸중을 들었던 기억만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나이에 관계없이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주는 문화가 자연스럽다. 그래서 이 초대가 조금은 어색하면서도 반가웠다. 한편으로는 '어른들 노시는데 우리가 뭐하러 가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같이 재밌게 놀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결정적으로 라면과 밥이 있다고 해서(!) 찾아간 파티는 정말 신선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걸 다 가져오실 생각을 했는지, 미니밥솥에 쌀을 안치고 볶음고추장과 김 등 안주까지 차려졌다. 수학여행 때 선생님의 눈을 피해 늦도록 깨어 있었던 그런 밤들이 떠올랐다. 역시 노는 건 진짜 한국 사람들이 짱이라니까!

그렇게 안주와 함께 맥주병을 기울이면서 함께 우리는 떠들썩한 밤을 보냈다. 그저 예뻐라 하며 이것도 먹어라, 저것도 먹어라 챙겨주는 우리네 '정'이 얼마나 따뜻했던지. 하지만 그보다는 삼십 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 온 교포분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에 처음 도착한 이민자들이 첫 직업으로 시작하는 건 대개 청소일이란다. 서울에서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의 비전을 찾아 미국에 건너온 부부는 첫 몇년 간 '바닥에 등을 대고 편히 누워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밤낮 없이 일했다. 야간 공항 청소에서 시작해서 나중에는 은행 이사까지 하셨다는 아저씨는 "미국은 아직도 기회의 땅"이라며 자수성가한 사람 특유의 자신감으로 말씀하셨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마는, 맨주먹으로 남의 나라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인생역정에 유난히 굴곡이 짙은 건 당연지사다.

프라 비다! 행복하고 여유로운 삶 사는 코스타리카 사람들

"프라 비다(Pura Vida)!"

코스타리카에서 자주 쓰이는 인삿말이다. 직역하자면 'Pure life' 즉 순수한 인생 쯤이 될테지만 의미상으로는 '행복한 인생' 정도다. 마주칠 때마다 행복한 인생을 살라며 인사를 건네는 나라에서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푸근한 화산과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을 보면서 어찌 넉넉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마지막 날은 세계 최대 규모라는 뽀아스 화산을 보는 일정이었다. 전망대 위에서 내려다보면 발밑으로 무지막지한 지름의 화산 분화구가 펼쳐지는 거다. 그런데 워낙 안개가 심해서 이런 절경을 볼 수 있는 건 일 년에 오십 일도 채 안 된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운이 좋진 못했다.

가이드 아저씨는 연신 안타까움을 표했지만, 사실 나는 별로 아쉽지 않았다. 이도 저도 다 좋다는 식의 여유 충만한 코스타리카식 생활방식에 그새 물든 탓인지, 가이드북에서 미리 읽은 한 문장이 가슴에 깊이 남아서인지. "Nobody can argue with Mother Nature." 누구도 어머니 자연과 논쟁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날씨도 불운도 탓하고 싶지 않았고, 그저 이것이 자연의 섭리라면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했다.

행복지수 1위, 중남미의 천국은 지구 반대쪽 '빨리빨리 나라'에서 온 젊은이에게 오늘도 그저 행복하라 가르친다. 프라 비다!

 뽀아스 화산에서. 논쟁할 수 없었던 어머니 자연이 드리운 안개가 희뿌옇다.
 뽀아스 화산에서. 논쟁할 수 없었던 어머니 자연이 드리운 안개가 희뿌옇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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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공정여행 기사 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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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되는 거라고 믿는 사람. <청춘, 내일로>,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쓴 여행작가. 제4회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상(2010), 청춘 기자상(2013) 등 수상. 2016~ 제주도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