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찜! e시민기자'는 한 주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 시민기자 중 인상적인 사람을 찾아 짧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상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편집부를 울리거나 웃기거나 열 받게(?)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편집부의 뇌리에 '쏘옥' 들어오는 게 인상적인 겁니다. 꼭 기사를 잘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경력이 독특하거나 열정이 있거나... 여하튼 뭐든 눈에 들면 편집부는 바로 '찜' 합니다. [편집자말]
편집기자로 살다 보니 다른 이의 글을 끊임없이 만진다. 특히 시민기자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오마이뉴스>니 더욱 그렇다. 시민기자들의 기사에는 꼭 그 머릿수만큼의 다양한 삶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그 이들이 마주한 정치가, 사회가, 경제가, 그리고 사는이야기가 있다.

그런 풍경을 활자와 사진으로 간접적으로 마주할 때, 가슴이 쿵쾅거릴 때가 있다. 기사 속에 그 사람이 아니면 가볼 수 없는 현장이 담겨 있을 때 특히 그렇다. 이런 기사를 다듬고 있노라면 가슴이 미묘하게 뜨거워진다. 그런데, 최근 이런 마음에 불을 질러버린 기사가 있다. 그 기사의 묶음 제목은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사람이 사는 곳임에도, 동북아 이슈의 중심이 되고 있음에도 제대로 조명받지 않은 곳, 북한. 그곳의 민낯을 여행기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는 시민기자가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부는 6월의 마지막 '찜! e시민기자'로 신은미 시민기자를 찜했다. 다음은 그녀와의 일문일답.

"통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성 안내원 '설경이'와 함께 찍은 사진. 설경이는 후일 우리 부부가 평양에 두고 온 딸이 돼버리고 만다.
 여성 안내원 '설경이'와 함께 찍은 사진.
ⓒ 신은미

관련사진보기


- 기사로만 만나다가 지면을 통해 보게되니 새롭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제 고향은 대구고요, 일곱 살 때부터 서울에 살았습니다. 1986년부터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교(University of Minnesota)에서 음악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예술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 연주활동을 했습니다."

- 미국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제 미국에 가시게 됐는지 듣고 싶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는 방학 때만 미국에 있었어요. 2002년 이후부터는 줄곧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고요.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지요."

- 최근 '재미교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라는 여행기를 <오마이뉴스>에 송고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UCLA 교환교수로 오신 한 지인으로부터 적극 추천을 받았습니다. 북한에 다녀온 뒤 제가 느낀 것을 함께 말씀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분께서 "<오마이뉴스>에 글을 써보는 건 어떻겠냐"고 하셨지요. 그래서 <오마이뉴스>에 글을 송고하기 시작했어요."

- 북한 여행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다면.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돌아와서 기행문을 쓸 것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그 여행 중 가장 내키지 않았던 것이 지난해 10월의 북한 여행이었어요. 그런데, 여행을 다녀오고 난 뒤, 지금껏 살아온 인생 여정을 되돌아 보게 함과 동시에 소중한 뭔가가 마음에 새겨졌어요. 그 경험과 느낌을, 그리고 여행 중 찍은 귀중한 사진들을 동포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북한 여행기를 쓰게 됐어요.

북한을 다니면서 제가 늘 생각했던 것은 '과연 북한의 동포들은 오랜 세월 떨어져 살았음에도 우리와 같은 정서를 소유하고 있을까, 또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로 함께 살 수 있을까'였습니다. 제가 '그렇다,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 경험을 여행기로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 기사 앞머리에 기자말을 보면 북한에 세 번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어디어디를 다녀왔는지 소개해달라.
"평양을 중심으로 남포, 원산, 금강산, 개성, 사리원, 삼지연(백두산), 묘향산, 나진, 선봉 등에 다녀왔어요. 평안도, 강원도, 황해도, 함경도 등지를 다녀온 것이죠. 지난 4월에는 평양에만 열흘 정도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5월에는 3주 동안 북한 전역을 여행했어요. 특히, 경제특구인 나진과 선봉에 들렀습니다. 그곳에서 본 '장마당' 구경은 북한 서민들의 삶을 그대로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앞으로 여행기를 통해 전해 드릴게요."

"북한 사람들, 참 수줍어했어요"

 평양의 아침, 아이의 얼굴이 환하다.
 평양의 아침, 아이의 얼굴이 환하다.
ⓒ 신은미

관련사진보기


- 북한을 여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나 순간이 있었다면?

"일반 북한 서민들을 가까이에서 접촉하고 대화를 통해 민족애 같은 정서를 나눌 수 있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앞서 언급한 '장마당'이나 곳곳의 크고 작은 공원, 그리고 우리의 여행지 중간 중간 예정 없이 스쳐 지나간 사람들과의 인연 역시 인상 깊었습니다."

- 기사를 읽어보면 북한 안내원 '설경이'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앞으로 기사에서 또 나오겠지만, 설경이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짝 알려줄 수 있나.
"설경이는 영리하고 똑똑합니다. 무엇보다도 사고력이 깊고 마음이 넓어 어떤 말, 어떤 일도 지혜롭게 대처했어요. 어떤 특별한 일이 있었다기보다는 서로의 인생 전반을 얘기하고 서로의 고민거리를 논했어요. 마치 친구처럼 대해줬지요. 때로는 통찰력 있게 따뜻한 조언도 해줬습니다. 잠깐 만났지만, 오랜 세월을 함께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설경이를 통해서 북한에서의 삶도 세계 그 어느 곳에서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 기사도 기사지만, 북한의 지금 모습이 담긴 사진들도 눈에 띈다. 사진을 찍는데 특별한 제재가 없었는가.
"처음 미팅 시간에 몇몇 주의 사항을 전달받았어요. 예를 들어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싶을 때, 여행 스케쥴에 없는 곳을 가고 싶거나, 자유시간에 산책을 하고 싶거나, 바깥을 구경하고 싶을 때에는 사전에 허락을 받으라고 합니다. 간혹 숫기가 없어서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길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더군요. 그럴 경우 사전에 안내원이 정중히 부탁을 해 줍니다. '오신 손님들이니 거절 말고 찍어 주십사'라고요. 그러나 대개 북한 사람들은 안내원의 부탁 없어도 사진 촬영에 흔쾌히 승낙해줬습니다. 사실 북한 동포들은 남녀를 불구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데요. 그만큼 다정하기도 합니다. 여행 도중 만난 사람들은 농담도 잘했어요.

그리고 관광객을 혼자서 못 다니게 한 이유는 낯선 곳에서 불편한 일이라도 생길까 봐 우려해서라고 들었어요. 혹시 우리(관광객)끼리 밖에 나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겨 북한 체제에 대한 악선전에 이용하려 들기 때문이라고도 보이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진정으로 우리의 안전을 염려해서라고 생각했어요. 안내원들은 매일 우리의 건강상태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여행지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혼자서도 호텔 주위, 멀리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유로이 다니며 사진도 찍을 수 있게 해줬습니다. 처음에 사진을 찍을 때 조심스러워서 하나하나 물어가며 찍었는데, 조금 지나고 보니 지나친 노파심이었음을 깨달았어요.

안내원들은 '가끔 사람들이 찍어간 사진들이 북한체제 악선전 이용 사진으로 오용돼 문제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얼마든지 찍어도 된다'고 했어요. 외부에서는 북한을 (정치적인 이유로) 가장 위험한 나라라고 말들 하지만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악성 댓글에 가슴이 많이 아팠지만...

 평양시내, 다정히 손을 잡고 출근하는 부부의 모습.
 평양시내, 다정히 손을 잡고 출근하는 부부의 모습.
ⓒ 신은미

관련사진보기


- 현재 나가고 있는 기사를 보면 댓글의 반응이 뜨겁다. 그런데 몇몇 댓글을 보면 비하 발언이나 욕도 있다. 힘들지 않나.

"솔직히 말하면, 제 진심이 정치나 이념, 사상 등에 의해 왜곡·비하되기도 해 절망감이 생기기도 했어요. 단지 내가 느끼고 깨닫게 된 소중한 인간애를 사심없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되레 제 진심이 독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쳐 글을 나누는 의미가 없어진 게 아닌가 싶었어요. 기사 송고를 중단하는 편이 나을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같은 마음으로 글을 읽고, 간접 경험에 대한 고마움을 댓글이나 쪽지로 전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다시 희망을 품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간접 경험으로나마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저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면 우리 민족이 사랑으로 하나 될 수 있는 것도 조금씩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 그밖에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북한은 미우나 고우나 부정할 수 없는 우리 민족이요, 한 형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볼 때는 애정이 애증의 생채기로 변한 것 같아요. 하지만, '나'만의 상처에 아파할 게 아니라 '우리'의 상처를 깨닫고 서로 다독이며 치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형제를 내가 이해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누가 이해하겠어요.

저는 정치나 경제, 그리고 사상이나 철학 같은 모르는 평범한 주부요, 엄마입니다. 여행기에서 글쓴이의 의도가 뭔지, 철학이 뭔지, 사상이나 이념이 뭔지 찾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냥 이기적인 삶의 방식에 익숙한 사람이 마음의 장벽을 조금씩 허물어 가고 있다는 걸 봐주셨으면 해요. 또한, '사랑'이란 상대방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함께 공유하면 좋겠습니다.

남편과 제가 북한을 여행하는 동안 저희는 북한 동포들로부터 진심 어린 환영을 받았습니다. 안내원들이나 각지의 해설원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곳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뜨거운 동포애를 보여줬어요. 앞으로 이어질 여행기 속에는 이와 관련된 일화들도 담길 것입니다. 종종 인터넷에서 한국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이 차별을 당한다는 글을 보곤 해요. 북한의 동포들이 저희를 대했던 것과 같이 한국에서도 탈북자에 대한 따뜻한 동포애가 꽃피길 바랍니다."

☞ 신은미 시민기자가 쓴 기사 보러가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