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유나이티드 GK 유현이 상주 미드필더 고차원의 왼발 슛을 달려나와 막아내는 순간(2012. 6. 23)

인천 유나이티드 GK 유현이 상주 미드필더 고차원의 왼발 슛을 달려나와 막아내는 순간(2012. 6. 23) ⓒ 심재철


K리그 17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 FC - 상주 상무'의 경기를 직접 구경하기 위해 지난 토요일 저녁 6시경 인천 축구전용경기장 E석 앞자리에 앉았다. 킥 오프까지 약 1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기에 양 팀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양쪽 골문 앞에는 각각 두 명의 선수들이 나와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인천과 상주의 문지기들이었다. 필드 플레이어들은 경기 시작 40분쯤 전부터 나와서 본격적인 준비 운동을 시작하는데 문지기들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나와서 온몸에 땀을 쏙 빼야 한다. 충분히 준비하지 않으면 감각적인 몸놀림은 커녕 어이없는 실점으로 경기 결과의 모든 책임을 혼자서 뒤집어쓰기도 하기 때문이다. 골문 앞에서 장갑을 끼는 포지션은 그만큼 어려운 자리다.

월요일 이른 아침 저 멀리 우크라이나 키에프로부터 이탈리아의 준결승 진출 소식이 들려왔다. 마지막 승부차기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탈리아 문지기 부폰이 왼쪽으로 몸을 날려 잉글랜드 수비수 애슐리 콜의 왼발 슛을 잡아냈다. 허무하게도 그 순간이 진정한 승부의 갈림길이 된 셈이다.

공교롭게도 최근 사흘 동안 벌어진 K리그와 EURO 2012 중요한 경기들에 문지기들의 수퍼 세이브가 여러 차례 눈에 띄었다. 실질적으로 그들이 팀을 위기에서 구했기에 귀중한 승리나 승점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문지기들이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세 경기 사례를 들춰본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유현'

지난 토요일 밤 9시경 도원역 앞에 있는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그 불빛이 꺼질줄 몰랐다. 홈 팀 인천 유나이티드가 FA컵 일정을 빼고 정규리그에서만 12경기 무승(7무 5패)이라는 불명예를 마침내 털어낸 순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후반전 추가 시간 3분쯤 터진 설기현의 극적인 결승골이 단연 스포트 라이트를 받아야 할 경기였지만 그 못지 않게 골문을 지킨 유현에게도 찬사가 쏟아져야 할 경기였다. 유현은 경기 전 몸풀기부터 특유의 탄력 넘치는 몸놀림을 자랑했기에 무실점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 보였다.

유현의 뛰어난 판단력과 탄력을 바탕에 둔 놀라운 반응 속도는 경기 시작 27분만에 빛났다. 인천의 실점 위기였다. 상주의 측면 미드필더 고차원이 수비수들의 뒤로 묘하게 빠져들어가는 것을 놓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침착하면서도 빠르게 각도를 줄이며 몸을 날린 문지기 유현은 슛 각도를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막아냈다.

후반전에도 김정빈의 찔러주기를 받은 고차원이 비슷한 지점에서 또 한 차례 결정적인 슛 기회를 잡았지만 왼쪽 기둥을 때리고 말았다. 전반전의 그 상황이 떠올라 급하게 슛을 시도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만큼 문지기는 상대 공격수에게 어떤 인상을 남기느냐에 따라 예상 밖의 결과를 얻어낼 수도 있는 자리다.

인천 유나이티드가 최근 여러 경기를 치르면서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승점 1점이라도 챙길 수 있었던 것은 문지기 유현의 공이 컸다. 그리고 끝내 12경기 무승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기까지 유현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 셈이다. 문지기의 숨은 노력이 없었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김영광과 김용대의 명품 선방 맞대결

하루 뒤 일요일 저녁에는 2만5천 653명의 많은 관중들이 한눈을 팔 수 없는 명승부가 펼쳐졌다. 24일 저녁 7시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FC 서울과 울산 현대의 맞대결이었다.

양 팀 골문은 전현직 국가대표 문지기가 지켰다. 그래서 더 골문 앞에서 벌어진 여러 장면들이 감탄사를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득점 기회가 펼쳐졌지만 결국 경기는 1-1로 끝났다. 외형상으로 싱거워 보이는 결과지만 내용면에서는 유럽 빅 리그의 어느 경기 못지 않게 박진감이 넘쳤고 그 중에서도 문지기들의 수퍼 세이브는 보는 이들을 여러 차례 놀라게 만들었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 벌어진 2012 K리그 17라운드가 신기록을 만들어냈기에 두 선수의 선방은 더욱 가치가 빛나는 것이었다. 8경기 29골이라는 기록은 올 시즌 한 라운드 최다 득점 기록이었다. 역대 기록을 놓고도 공동 2위에 해당할 정도이기 때문에 더 말할 것 없는 골잔치였다.

역대 한 라운드 최다골 1위 기록은 지난 해 7월 9일부터 10일까지 벌어진 2011 K리그 17라운드 '32골'이다. 근래에 보기 드문 지금의 6월 폭염을 감안한다면 무더위 속에 문지기들이 집중력을 유지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역대 최다 득점 기록들이다.

여기서 문지기들의 활약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24일 경기에서도 김용대와 김영광의 자존심 대결은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사실 득점 기록으로 남은 두 골도 문지기들에게 결코 책임을 돌릴 수 없는 것들이었다.

39분에 나온 안방 팀의 선취골은 몰리나의 오른쪽 코너킥을 수비하던 울산 미드필더 고슬기의 자책골이었고, 후반전 시작 후 1분만에 이어진 울산의 동점골은 고슬기의 드리블을 막기 위해 달려나온 안방 문지기 김용대와 수비수 고요한이 온몸을 내던지며 충돌하는 사이에 흐른 공이 마라냥에게 곱게 전달된 선물처럼 굴러간 공이었다.

이렇게 1-1이 된 뒤 양쪽 골문 앞은 결코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78분, 동점골의 주인공 마라냥이 골문 바로 앞에서 이마로 역전골을 노렸지만 김용대의 놀라운 선방이 이어졌고 81분에도 김용대는 두 명의 센터 백(김진규, 김주영) 사이로 골을 노리고 찬 마라냥의 왼발 슛을 막아냈다. 시야가 가려져 있었지만 김용대의 방어 감각은 절정이었다.

83분에는 반대쪽 골문에서 김영광의 수퍼 세이브가 빛났다. 최태욱이 왼쪽 끝줄 앞에서 띄워준 공을 안방 팀 골잡이 데얀이 감각적으로 방향을 바꾸는 헤더를 시도했는데 김영광이 치타처럼 솟구치며 공을 잡아 골 라인 바로 앞에 안착했다.

종료 직전에도 안방 팀의 미드필더 하대성이 골문 바로 앞에서 왼발 슛으로 결승골을 노렸지만 침착하게 각도를 잡은 울산 문지기 김영광을 통과하지 못했다. 1-1이라는 결과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문지기들의 작품이었다.

이탈리아를 구한 '지안뤼지 부폰'

우리 시각으로 월요일(6월 25일) 새벽에 열린 EURO 2012 8강 토너먼트 마지막 경기에서도 노련한 문지기의 수퍼 세이브가 빛났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에 대전에 있는 퍼플 아레나에서 벌어진 16강 토너먼트 한국과의 경기(2-1 한국 승리)에서 이탈리아의 골문을 지켰던 지안뤼지 부폰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만 나이로 세른 넷이 된 이탈리아의 주장은 잉글랜드와의 8강 토너먼트 맞대결에서 놀라운 순발력을 자랑하며 경기 초반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겼다. 시작 후 4분만에 잉글랜드의 오른쪽 측면 공격이 빛났고 밀너의 연결을 받은 수비수 글렌 존슨이 골문을 노리는 슛을 시도했다.

이 순간 부폰의 노련한 판단력과 순발력이 빛났다. 글렌 존슨의 슛 방향을 섣불리 예측하며 몸을 먼저 내던졌다면 고스란히 선취골을 내줄 위기였지만 그의 두 눈은 끝까지 상대 선수의 발 동작을 응시하며 공을 잡아내고 말았다.

비록 동료 공격수들이 잉글랜드의 골문을 열지 못했지만 주장 완장을 찬 부폰의 노련한 경기 조율은 이 양보 없는 경기를 연장전까지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문지기에게 너무나 가혹한 승부차기가 이어졌다.

이 때 두 번째 키커로 나온 몬토리보가 먼저 킥을 실수했기 때문에 이탈리아는 벼랑 끝으로 몰렸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든든한 문지기 부폰이 있었다. 잉글랜드의 세 번째 키커 애슐리 영의 실축도 그 결과에 영향을 끼쳤지만 네 번째 키커로 나온 애슐리 콜의 왼발 꺾어차기를 왼쪽으로 몸날려 잡아낸 부폰의 수퍼 세이브는 압권이었다.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겨우 11미터 거리에서 빠르고 각도 크게 뻗어오는 슛을 막아내는 것도 모자라 손으로 잡아내는 일은 '신기(神技)'에 가까운 일이다. 이 짧은 시간의 반전 드라마를 부폰이 엮어낸 것이다.

지난 대회 우승 트로피를 스페인의 문지기 이케르 카시야스가 들어올렸던 것처럼 4강에 오른 부폰도 같은 꿈을 꾸고 있다. 4강에 오른 다른 팀들의 문지기들(독일-노이어, 포르투갈-파트리시우, 스페인-카시야스)을 보면 그 실력 대결이 더욱 치열하게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유현 김용대 김영광 부폰 골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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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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