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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12년차면 이제는 농촌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을 법하다. 더군다나 그 사이 마을 이장 되어 있을 정도면, 귀농에 성공했다고 말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귀농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귀농에 성공했다'고 하는 말은 그렇게 한마디로 딱 잘라 언급하고 넘어갈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귀농 12년차, 황토구들마을의 김동하 이장이 말하는 귀농은 "여전히 어렵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어떤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귀농은 단순히 농촌으로 내려가 농사만 짓고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귀농은 한 마을에 정착해 그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어느 마을에 귀농을 했다고 해서 그날로 갑자기 그 마을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꽤 많은 우여곡절이 뒤따른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귀농 12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려운' 귀농 생활을 하는 김동하 이장을 만나 그가 말하는 마을 이야기, 귀농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30대에 귀농 감행한 서울 청년, 집짓는 일에 몰두하다

 한 실습생에게 엔진톱 사용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는 김동하 이장(사진 왼쪽).
ⓒ 통나무흙구들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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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하 이장은 서울 토박이다. 서울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랐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도, 그의 할아버지도 서울 출신이다. 그러니까 그는 농촌 경험이 거의 없다. 귀농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 배경을 가졌다. 그런데도 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일찌감치 귀농을 결심했다. 김 이장의 지금 나이는 45세다. 귀농은 상당히 젊은 나이인 33살에 감행했다.

귀농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됐다. 음악이 계기가 됐다. 시골에서 '개인 다실'을 갖고 음악 활동을 하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직장 생활을 했다. 회사에서는 교육과 기획 업무 등을 담당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귀농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대학 시절부터 꿈꾸던 일을 실행에 옮겨야겠다는 생각은 점점 더 강해졌다.

그런 생각이 어떻게 보면 상당히 낭만적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혀 실현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그는 회사에서 쌓은 교육과 기획 능력을 십분 발휘해 귀농을 기획했다. 그 능력으로 아내와 아내의 부모인 장인 장모까지 설득했다. 친가도 아니고 처가를 설득하다니, 대단한 일이다. 그러고 나서 귀농할 장소를 물색했다.

여러 지역을 물색했지만, 마땅한 장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지금 거주하고 있는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곳에 먼저 귀촌한 사람이 있어 집 짓는 일을 도와주러 왔다가, 이곳이 바로 자신이 귀농해 정착할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곳은 무엇보다 날씨가 선선해 좋았다. 평창군은 상당수 마을이 해발 700미터의 고원지대에 형성돼 있다. 낮은 곳이 해발 500미터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비해 기온이 낮은 편이다. 

 황토구들마을,통나무로 집을 짓는 과정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
ⓒ 김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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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그는 봉평면에 세를 살면서, 이 마을에 먼저 땅을 사서 통나무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집 짓는 일에는 가족 모두가 동원됐다. 집 짓는 일은 하나의 모험이었다. 그때만 해도 무서운 게 없었다. 그가 그때까지 집짓는 일을 배운 것은 귀농 전에 귀농귀촌본부에서 '구들'과 관련한 교육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 그때는 그게 그의 인생에 큰 전화점이 될 줄 몰랐다.

그러고는 책을 주로 보면서, 다른 사람이 집을 짓는 현장에 찾아가 어깨 너머로 배우고 들은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집짓는 일에 남다른 열의를 보였다. 집을 짓기 시작한 이후로 "만 5년 동안 눈을 뜨고 있거나 잠을 자거나 매일같이 집짓는 꿈을 꾼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집짓는 일에 몰두했다.

귀농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집짓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농사는 더 더욱 어려웠다. 머루 농사 외, 다른 농사는 모두 실패했다. 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은 현실과 맞지 않았다. 그는 그 사실을 "아주 빨리" 깨달았다. 귀농은 애초 꿈꿨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음악 대신 집을 짓는 일이 있었다.

그는 먼저 아래채를 지었다. 그 집을 짓는 데 꼬박 1년 6개월이 걸렸다. 그러고는 지금 살림방으로 쓰고 있는 위채를 지었다. 위채를 짓는 데는 채 6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 뒤로는 집 짓는 일이 좀 더 수월해졌다. 위채 뒤로 다시 다실과 사랑방 두 채를 더 지었다. 그렇게 자기 손으로 집을 지으면서 그에게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자신이 집 짓는 일에 상당히 소질이 있을 뿐 아니라, 재미까지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은 남의 집을 지어주고 귀농과 귀촌을 원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생태주택을 짓는 교육과 강의까지 해주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렇게 해서 '건축 일'이 그의 또 다른 직업이 됐다. 그리고 그 일이 나중에는 황토구들마을을 만드는 기틀이 되기도 했다. 물론 그가 집을 짓기 시작할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황토구들마을 산골음악회. 만돌린오케스라와 아카펠라 그룹 등이 참여하는 자선공연으로 5회째 개최했다.
ⓒ 김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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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느린 사업 진행, 적응이 쉽지 않았던 마을 문화

황토구들마을이 원래부터 황토구들마을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정착한 마을이 오늘날 황토구들마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그가 귀농을 전후해 쌓아온 건축 이력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귀농 7년차 되던 해, 당시 마을 이장이 그를 찾아왔다. 이장은 그에게 '새농어촌건설운동'에 참여하려고 하는데 서류 만드는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때는 한창 집짓는 일에 재미를 붙여 전국을 바쁘게 돌아다닐 때였다. 그런데도 그는 그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마을의 발전 방향을 정하는 데 지나치게 오랜 기간 논의를 거듭했다.

일은 매우 느리게 진행됐다. 마을 사람들에 비해 나이가 한참 어린 그는 그런 과정이 몹시 답답했다. 다수결은 통하지 않았다. 반대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회의를 거듭하면서 싸움도 벌어졌다. 그 자신 사무장으로 일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욕도 먹었다. 그는 그때 왜 일이 그토록 더디게 진행되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황토구들마을, 구들 실습장 일부.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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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마을 사람들의 의견도 점차 한 방향으로 모아졌다. 그 결과 마침내 '황토구들마을'이라는 브랜드가 생겨났다. 다른 마을들이 별다른 특색을 갖추지 못한 소재를 가지고 농촌테마마을을 만들고 있는 데 반해, '황토구들'은 확실히 차별화되는 소재라는 판단이 들었다.

일단 마을을 황토구들마을로 만들자는 의견에 접근하자, 일은 비교적 순조롭게 풀려 나갔다. 전시장과 체험관을 짓는 데 마을에서 사놓은 땅이 적절하게 사용됐다. 그 땅은 수십 년 전 마을 어른들이 공동으로 사놓은 땅이었다. 그런데 그 땅이 오랜 세월이 지나 황토구들마을을 만드는 초석이 된 것이다.

그 땅을 설명하면서 김 이장은 "마을 어른들의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말했다. 황토구들마을은 그처럼 오랜 세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만든 작품이다.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마을을 만드는 데 상당히 강한 의지와 열의를 보였다. 그런 배경 덕분에 그가 내놓은 '구들'이라는 아이디어도 빛을 볼 수 있었다.

사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농촌체험마을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그 또한 황토구들마을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마을 전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길고 답답했던 과정 역시 마을 어른들의 혜안이 담긴 노력이었다.

'황토구들'은 여러 모로 유용한 소재였다. 황토구들마을은 바로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2009년에는 도 우수마을로 선정돼 5억 원의 상금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시기 농림수산부가 공모하는 교육사업에 응모해, '귀농교육기관'으로 지정됐다. 그 후로 지금까지 4년째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친환경모델마을로도 지정되고, 친환경지구조성사업으로 받은 지원금을 투자해 친환경 법인도 만들었다. 최근에는 농림수산부에서 공모한 '지역리더 양성과정'에 마을 이름으로 응모한 프로그램이 뽑혀, 마을 체험관에 마을 이장 등 지역리더들을 모아놓고 교육을 실시하게 됐다.

'황토구들마을'에서 즐길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들
황토구들마을에서는 몇 가지 체험프로그램과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하나가 어린이들이 있는 가족을 대상으로 한 '가마솥 감자 구출기'다. 이 프로그램은 먼저 구들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나서 체험객들이 직접 황토와 적벽돌 등을 사용해 불을 지피는 함실을 만든 다음 가마솥에 감자를 쪄먹게 되어 있다.

함실은 기본 원리를 알고 난 다음, 체험객들이 각자 창의력을 발휘해서 만든다. 그리고 그 함실에 가마솥을 걸고 장작을 패서 불을 지피는 과정 모두 직접 한다. 가족끼리 머리를 맞대 보드라운 진흙과 벽돌로 함실을 만들고 감자를 익혀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불장난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불을 때는 과정이 좀 길고 지루하다 싶으면, 그 시간에는 따로 활을 쏘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다른 체험마을에서 체험프로그램들이 10분에서 15분가량 걸리는 데 반해 이 체험 프로그램은 장장 1시간 30분에서 2시간가량 걸린다. 가족당 3만 원으로 이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이 외에도 황토나 석고 등에 손도장을 찍는 프로그램과 잡곡으로 콜라쥬를 만드는 체험 등이 있다.

어른들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생태 집 짓기'가 있다. 이 교육 프로그램은 1인당 35만 원으로, 국가 보조금을 받으면 개인 부담을 9만 5천 원으로 줄일 수 있다. 직접 자신의 집을 지어보고 싶은 사람들이 참가해볼 만한 프로그램이다. 마을에서 몇 군데 황토구들을 놓은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 앞으로 금당계곡이 있다. 여름철 물놀이에 적당한 곳이다.

황토구들마을을 좀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마을 홈페이지(http://goodeul.go2vil.org/)와 김동하 이장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통나무흙구들학교'(http://cafe.naver.com/woodgoodeulhouse)를 방문하면 된다.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황토구들마을 안내도.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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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12년차'에게도 여전히 어렵고 힘들기만 한 귀농

그가 이장 직을 맡게 된 것은 3년 전이다. 황토구들마을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은 결과였다. 그 사이 그는 마을 사람들과 거의 완벽히 동화됐다. 서울에 있는 친구들보다 마을이나 읍내에 있는 친구들과 더 자주 만나게 되고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됐다. 사실상 귀농에 완전히 뿌리를 내린 셈이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귀농은 어렵다"고 말한다. 귀농해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일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은 금방 공감이 가지만, 귀농 12년차나 되는 사람의 입에서 아직도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는 그동안 수십 년을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과 나이가 들어 겨우 몇 년 전 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사람 사이에는 쉽게 뛰어넘을 수 없는 문화적 간극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 문화적 차이를 '정신적 이민'에 비유했다. 서로 같은 언어를 쓸 뿐이지,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전혀 모르는 마을에 와서 정착하고 사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귀농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생각에 귀농은 역시 잘한 일이다. 비록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때보다 소득이 절반으로 크게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런 손실을 농촌 생활에서 맛보는 행복과 맞바꿀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런 행복은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인 여유는 없어도 삶의 질은 이곳이 훨씬 더 낫다는 얘기다.

그 역시 그동안 마을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자신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삶의 방식에서부터 많은 차이가 있었다. 왜 그런 차이가 발생하는지 이제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나마 마을 이장을 맡으면서 마을이 돌아가는 형세도 좀 더 잘 알게 됐다. 그런 면에서 귀농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조급하게 서둘러서 되는 일이 없다. 그가 경험했던 대로라면, 귀농인으로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데는 오랜 시간에 걸쳐 그들의 생활 방식을 이해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황토구들마을 김동하 이장이 지은 책 표지. 현재 시중에서 살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이 책에 담긴 대부분의 내용은 네이버 카페 '통나무흙구들학교'에서 볼 수 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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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요즘도 건축 일로 무척 바쁘다. 여기저기서 집 짓는 일을 도와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홍천군으로 출퇴근을 했다. 교육과 강의도 수시로 진행하고 있다. 그런 그의 입에서 "땅을 사지 말고 큰 집을 짓지 말라"는 말은 뜻밖이었다. 그는 "땅은 그 지역에서 먼저 전세를 살든 월세를 살든 6개월 정도 살아본 뒤에 사도 늦지 않고, 집은 두 부부가 살 정도면 작은 집이 더 효율적이니 처음부터 턱없이 크게 지을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김동하 이장의 귀농이야기는 귀농의 또 다른 예를 보여준다. 귀농 이후에도 자기 계발은 꼭 필요한 부분 중에 하나다. 자기 계발은 어느 순간, 변화를 모색하는 데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귀농은 단순히 농사를 짓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마을에서는 농사 일 말고도 여러 가지가 기다리고 있다.

요즘 농촌은 예전의 농촌과는 많이 다르다.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추구하는 마을이 부지기수다. 그 안에서 귀농인이 해야 할 일이나 역할 또한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사실 그런 곳에서 농사만 짓고 살겠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더 적응하기 어려운 현실에 봉착할 수도 있다. 능동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이 정착한 마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귀농인으로서 단순히 농사를 짓기 위해 농촌으로 돌아간 사람으로 남아 있지 않고, 자신이 사는 마을을 새로운 마을로 만드는 데 자신이 가진 재능과 열정을 다 쏟아 부었다는 점에서 김동하 이장의 귀농 사례는 현재 귀농을 계획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황토구들마을, 한국전통구들문화 전시관.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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