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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번 송전탑 자리 움막에서 밤을 보낼 노인들이 앉아 있다.
▲ 움막에 앉아 있는 80대 노인들 127번 송전탑 자리 움막에서 밤을 보낼 노인들이 앉아 있다.
ⓒ 이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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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 속 움막을 지키는 노인들 "마음이 씨여서 그냥 못 있겄어"

6월 18일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저물녘, 팔순의 노인들이 움막을 쳐 놓고 고압 송전탑 공사를 막고 있다는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화악산으로 찾아갔다. 밀양의 진산(鎭山) 화악산 자락이 부드럽게 팔을 펼쳐 아담한 마을을 감싸 안고 있다. 화악산으로 오르는 평밭 고갯마루에서 산길을 따라 움막을 찾아갔다. 어두운 산 속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비가 내리는 이런 밤에도 움막을 지키고 있을까 싶었다. 127번 송전탑이 들어선다는 자리, 나무를 엮어 지어 놓은 움막에 노인 네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밤 당번인 김아무개 할머니(85)와 박아무개 할머니(80), 취재를 온다는 소식을 듣고 올라온 윤여림(74) 할아버지와 정임출(71) 할머니 부부가 그들이다. 제일 연장인 김 할머니가 말문을 터는데, 말에 가시가 섰다.

"오래 살다보니 참 좋은 거 보네요. 좋은 구경도 하고 이런 좋은 데서 잠도 자고."

젊은 사람도 만만치 않을 일인데 팔순의 노인들이 산 속에서 밤을 새운다고 하니 걱정이 앞선다.

"자식들은 뭐라고 합니까?"
"자식들이 알면 안 돼. 제발 가만히 계시라고 하지. 그런데 마음이 씨이서(쓰여서), 불안해서 그냥 못 있겄어."
"우리 아들한테서 좀 전에 전화가 왔어. 산에 있다카이, '엄마 못 도와드려 죄송합니다.' 그래."

지난해 11월, 송전탑이 들어설 자리에 나무를 베어내는 공사가 시작될 때부터 주민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낮없이 이곳을 지켜왔다.

76만5000볼트(V) 송전탑 반대 싸움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에 고리 핵발전소 1~4호기가 있다. 한전은 그 옆에 신고리 1호기를 건설해서 가동하고 있고, 2·3·4호기를 건설 중이다.
또 신고리 핵발전소가 건설되면 새로운 송전선로가 필요하다며 76만5000V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에 들어갔다. 한전은 부산 기장군, 울산 울주군, 경남 양산시·밀양시·창녕군 등에 송전탑 161기를 세울 예정이다. 이 가운데 밀양에 건설할 송전탑은 69개로 가장 많다

그런데 한전은 주민설명회를 할 때부터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몇 사람만 모아 놓고 해치웠다. 밀양시 상동면의 경우 2005년 8월 열린 설명회에 주민 3500여 명 가운데 38명이 참석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높이만 해도 100미터가 넘는, 40층 아파트와 맞먹는 철탑에는 76만5000V의 전압이 흐른다. 주민들은 전자파 위험 때문에도 그곳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송전탑 전자파가 휴대폰보다 약해? "그럼 당신 집 앞에 세워라"

129번 송전탑 자리에 설치한 컨테이너 앞에 놓인 보관함
▲ 765 송전탑 결사반대 129번 송전탑 자리에 설치한 컨테이너 앞에 놓인 보관함
ⓒ 이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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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들은 송전탑 전자파가 휴대폰 전자파보다 약하다 카거든요. 그런 인간들이 어디 있습니까?"

전자파 이야기가 나오자 정 할머니는 분통을 터뜨렸다. 김 할머니가 매섭게 한마디 보탠다.

"전자파 괜찮다카마 송전탑을 저그 집 대문 앞에 세우라카지. 그러마 우리 방 안에 세워도 내 절대 군담(군소리) 안 하꾸마."
"우리도 송전탑 들어선 데 견학 다 댕깄어예. 철탑 밑에 가니까 속이 미식미식하고, 위잉 하고 큰 비행기 가는 소리가 계속 나요. 주민들 피해 증언도 다 듣고 했어요."

주민들은 송전탑이 들어서서 피해를 입은 지역을 다 답사했다고 한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한 마을은 변전소와 송전탑으로 인해 주민들이 암 발병을 호소했다고 한다. 송전선이 지나가는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읍 청수리에서는 송전선 밑에 위치한 축사의 송아지들이 죽어나갔고, 화성면 용당리의 한 사슴목장에선 눈동자가 없는 새끼 사슴이 태어나기도 했다.

그런데도 한전은 '송전선로 주변의 전자파는 833밀리가우스(mG) 이하로 안전하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제시한 833mG는 단기 노출 기준이다. 지속적으로 전자파를 접할 경우 4mG 이상을 넘지 말라고 WHO는 권고했다. 하지만 송전선 주변은 24시간, 365일 전자파에 노출된다. 냉장고 전자파(3.3mG)의 약 252배에 달하는 전자파를 매일 접하는 것이다.

주민들이 대안 내놨지만... 한전은 공사 밀어붙이기에 급급

그동안 주민들은 대책위를 구성해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 기존 선로를 보강하면 새로운 송전탑을 세우지 않아도 되니 비용도 절감되고 주민 피해도 없다. (지난해 1월 신고리 1호기가 가동되면서 송전선로가 없어 어찌 되었나 했더니 기존의 34만5천 볼트 선로로 전기를 보내고 있었다.) ▲ 이미 실용화 단계에 들어간, 전력 손실이 제로라고 자랑하는 초전도 케이블을 이용해 지하에 매설하자. 지하 매설 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올해 착공 예정인 함양-울산 고속도로를 이용하자.

주민들의 이러한 제안에 한전은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그저 공사를 밀어붙이는 일에만 급급했다.

"지난해 11월 저하고평밭마을 사는 한 여사하고 지싯골 곽 여사하고 몇이서 산으로 들어서는 삼거리 거기서 사흘 저녁을 시멘트 바닥에서 밤이슬을 맞고 지켰어요. 공사 기계 못 들어가게. 나흘째 되는 날, 시공사 (주)한백에서 파쇄기를 산으로 가져가려고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왔더라고요. 남자들이 여자 하나를 양쪽 다리 잡고 머리 잡고 들어내는데, 감당할 수가 있습니까? 처음에는 안 붙들려 나가려고 발버둥치고 하다가 팔이 시퍼렇게 멍이 들었어예.

저놈들이 끄집어내면 기어 들어오고 또 끄집어내면 기어 들어오고, 나중에는 맥을 놓고 쓰러졌는거라예. 그렇게 우리를 끄집어 내놓고 파쇄기를 산으로 가져갔어예. 둘이는 밀양에 있는 병원에 실려가고 나는 쓰러져 정신을 잃어서 119 구급차에 실려 마산에 있는 병원으로 갔어요. 이튿날 밀양에 있는 병원으로 왔지요. 사흘째 되는 날, 우리가 이래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은 거라예. 병원에 저녁밥이 나올 시간인데, 지금 저녁이 당키나 하나 일이 급한데 싶어 저녁도 안 먹고 마을로 와서 사람들한테 도와달라고 했지예."

정 할머니가 그 말끝에 울먹인다.

"세상에 병원에서 주삿바늘을 빼내던지고 와서 도와 달라고 하는데, 그때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 그냥 있을 수가 있나."

박 할머니가 말을 이었다.

"한겨울에 직원들이 와서 나무를 비는데(베는데) 못 비도록 아침 여섯시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나무를 끌어안고, 이 나무 저 나무로 이놈들 따라 다니다 보면 나중에는 손이 얼어서 끊어지는 것 같애."

매주 금요일 영남루 아래서 송전탑 문제 해결을 위한 촛불 미사가 열리고 있다.
▲ 촛불을 밝혀든 미사 매주 금요일 영남루 아래서 송전탑 문제 해결을 위한 촛불 미사가 열리고 있다.
ⓒ 이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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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의 무리한 공사 진행으로 지난 1월 16일 산외면 보라마을의 이치우 할아버지(74)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할아버지는 자기 한목숨의 희생으로 송전탑 문제가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장례를 치르고 100일을 넘겼지만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다. 그동안 주민들은 분신대책위를 꾸려 매주 수요일이면 영남루 앞에서 송전탑 문제를 알리고 해결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어왔고, 매주 금요일에는 가톨릭 신부님들이 주관하는 미사를 열고 있다.

6월 7일 '한전 규탄 및 주민단결대회'가 개최된 뒤, 산외면 약산사 법성 스님이 주지로 있는 사찰에 ㄷ전기 직원들이 낫을 들고 사냥개를 몰고 들이닥쳤다. 스님은 그 자리에서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갔다. 스님은 지난해 11월 10일 산외면 공사 현장에서 ㄷ전기 직원들로부터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듣고 주먹으로 음부를 폭행당한 바 있었다.

지난 13일 영남루 앞 촛불 집회에서는 병원에 있는 법성 스님이 공사 현장소장과 한전 관계자, 지경부장관에게 보냈다는 처절한 문자메시지가 소개되었다.

개에게 물려 죽고 싶지 않다. 차라리 내 스스로 죽음을 택하겠다.

"이 땅에 손 못대도록 하는 게 소원... 돈을 돌라카나 은을 돌라카나"

송전탑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으면 좋겠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우옛든지 이 땅에 손 못 대도록 하는 게 우리 원이라. 돈, 보상, 이런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안 하고."(김 할머니)
"돈이 무슨 필요 있습니까? 여기 (송전탑) 안 들어오면 돼요. 요대로만 살도록 놔 두면 돼요. 저거한테 돈을 돌라카나 은을 돌라카나."(박 할머니)

이제 이들에게 보상은 먼 나라 이야기다. 지금 자신들이 살고 있는 터전이 파괴되지 않고, 지금처럼 살다가 죽게 되기를, 송전탑 백지화를 바랄 뿐이다.

돌아서 나오는 발걸음이 너무나 무겁다. 평밭 고갯마루 129번 송전탑 아래에 있는 컨테이너 막사에 잠시 들렀다.

129번 송전탑이 들어설 자리에 설치한 컨테이너에 불이 밝혀지고 있다.
▲ 129번 송전탑 지키는 컨테이너 129번 송전탑이 들어설 자리에 설치한 컨테이너에 불이 밝혀지고 있다.
ⓒ 이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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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우 부북면 대책위원장이 손을 잡고 호소한다.

"우리가 보상 더 받으려고 이런다는 사람이 있어요. 꿈에도 없는 소리로 우리를 호도하면 됩니까? 속이 터집니다 터져!"

이남우 위원장 부부가 막사로 들어서 늦은 저녁밥을 먹는다. 이곳의 오늘 밤 당번은 노아무개(77) 할머니와 박아무개(72) 할머니 두 분이다. 저녁밥 자리이지만 연방 밥술을 뜨면서 오늘 있었던 일, 내일 일들을 챙긴다. 당번인 두 할머니만 남고 오후 8시반쯤 모두 일어섰다. 내일을 위해 다들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밖은 이미 캄캄한 어둠에 묻혔다. 산 속의 밤길을 내려오면서, 어둠 속에서 밤을 밝히고 있을 어른들의 모습이 밟혀 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한전은 20일부터 공사를 재개하겠다고 한다. 내일 아침이면, 비 그친 뒤 맑은 햇살에 상수리나무와 서어나무 잎이 빛나듯, 어른들의 온갖 근심도 깨끗하게 사라져 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돌아보니 산은 어둠뿐이다.

1차 탈핵 희망버스 행사 때, 129번 송전탑 자리 나무를 베어낸 곳에 새로운 생명의 나무를 심었다.
▲ 생명의 나무를 심었노라! 1차 탈핵 희망버스 행사 때, 129번 송전탑 자리 나무를 베어낸 곳에 새로운 생명의 나무를 심었다.
ⓒ 이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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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송전탑, #765,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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