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얼마 전 한 신문사의 여론조사에서 자가주택 소유자의 48%가 '나는 하우스푸어'라고 응답했다. 이는 2년 전 조사보다 20%P 높아진 숫자다. 집을 가지고 있더라고 가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듯 같은 조사에서 능력이 있더라도 당장 집을 구입하겠다는 사람들은 4명 중 1명(25%)에 그쳤다고 한다. (서울신문 2012.6.9일자)

지금은 보편적 현상이 된 '하우스 푸어'. 그러나 "내 집이 있어도 가난하다"라는 이 말은 4~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전혀 받아들이지 않던 개념이었다. 내 집이 있다는 건 설령 그것이 담보대출을 받아서 샀을 망정 부의 상징이었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아래 그래프가 말하는 것처럼 2004년 평당 600만 원이었던 수도권 아파트는 2008년 1000만 원에 육박하며 60%가 상승하였다. 2억을 주고 산 집이 4년 만에 3억2000이 된 것이다. 집만 있으면 가만히 앉아서 1, 2억 벌었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넘쳐났다. 대한민국은 무조건 부동산, 부동산 불패라는 믿음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했다. 여기에 저금리환경은 1억이라는 빚을 내도 한 달에 60만 원 이자만 부담하면 된다는 생각을 만들며 이러한 집값 상승을 더 부채질했다.

2000년에서 2010년까지 연도별 아파트 평당 가격
 2000년에서 2010년까지 연도별 아파트 평당 가격
ⓒ 이지영

관련사진보기


2007년 재무상담에서 만난 한 부부는 하루가 다르게 오르기만 했던 집값 상승의 대열에서 나만 소외되었다는 위기감을 이렇게 말했다.

"남편이 하루는 퇴근해서는 회사 휴식시간이 너무 싫다고 하더라구요. 2004년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동료 중에 빚을 내서 집을 산 사람이 있거든요. 저희는 대출을 1억 가까이 내야 하는 상황이 너무 부담스러워 전세를 선택했구요. 그런데 몇 년 후 집을 산 동료는 휴식시간마다 집값이 3000만 원 올랐다, 5000만 원 올랐다며 자랑을 한다는 겁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집을 안 산 게 후회되고, 이제는 1억이 아니라 2억을 대출받아야 집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그 동료와 이야기하기도 싫고 밤에 잠도 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집이 있어도 가난합니다"라는 말은 집 없는 사람들의 시기 정도로 치부되었다. 2008년 3월쯤 "강남 10억 아파트 주인? 축배는 이르다"라는 유주택 빈민(당시에는 하우스푸어라는 단어가 없었다.)의 실상에 대해 <오마이뉴스>에 글을 기고한 적이 있었다.

그 기사의 댓글을 보면 "집값이 떨어지는 거 걱정하는 것 보다 운석충돌이나 걱정하는 게 낫지", "대박을 맞은 사람을 놓고 뭘 주장하려고 해"라는 식으로 집값 올라서 부럽기만 한데 뭐가 문제냐 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 때는 분명 집을 가진 사람이 부자처럼 보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처럼 보였다.

'집값 상승=자산 증식'은 틀린 공식

그런데 집값이 올랐다면 정말 부자가 된 것일까? 흔히들 우리는 집값 상승=자산 증식이라고 생각하고 내 자산 계좌가 불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자산계산에서 비롯된 오류이다. 부동산은 내가 지금 사용하는 자산(사용자산 또는 심리적 자산)이지 쓸 수 있는 돈으로서의 자산(실제자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값이 올랐다고 해도 현실통장에는 돈이 불어나지 않는다. 집은 내가 주거용도로 사용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단순한 사용자산일 뿐이다. 자산은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지만 집은 그렇지 못하다. 1평만 떼서, 화장실만 떼서 팔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만이 가능하다. 집값이 올라도 내가 돈이 필요하면 빚을 내야 하는 현실은 집이 있으나 없으나 같다는 뜻이다.

집을 파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3억짜리 집을 5억에 팔아서 2억을 벌었다라고 단순히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나는 주거를 위해 집이 또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집만 오른 것이 아니다. 비슷한 수준의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3억이 아닌 5억이 필요하다. 결국 나는 5억을 들여 집을 사야 한다. 내 통장에 남는 돈이 없는데 돈을 벌었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정말 돈을 번다고 한다면 3억으로 더 작은 집을 사거나 아님 전세를 살아야 하는데 과연 5억짜리 집에 살던 사람이 더 작은 집이나 전세에 살 수 있을까? 이렇듯 집처럼 반드시 필요한 자산 지금 사용하고 있는 사용자산은 그저 내가 사용하는 데 쓰일 뿐 그 값이 오르건 내리건 간에 실제 내 통장계좌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지금 하우스 푸어가 발생했는지도 모른다. 집값 상승=자산 증식이라는 생각이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착각이었다는 것, 집은 안전한 주거를 보장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 이 두 가지를 인지하는 것은 하우스푸어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집값이 올랐어도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할 필요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집값 상승분은 내 마음 속 심리계좌에 들어간 돈일뿐이고 내 통장에 현금으로 불어난 돈은 없어 내 일상은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빚을 내 집을 사고, 생활을 하는 악순환

개포동 주공아파트 1단지.
 개포동 주공아파트 1단지.
ⓒ 김동환

관련사진보기


집값 폭등 시대를 지난 2012년 지금 하우스푸어의 삶은 불행히도 더 악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1000조 원이라고 한다. 1000조가 어떤 숫자인가? 1000조를 5000만 인구로 나누면 2000만 원이다. 즉 국민 1인당 빚이 2000만 원이며 4인 가족 가계빚이 8000만 원에 달한다는 뜻이다. 특히 이러한 가계부채의 67.74%를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것은 관련통계가 만들어진 이래 최대치이다.(한국은행자료 인용, 2012년 1분기 기준)

문제는 부동산 거래는 계속 줄어들고 있음에도 대출에서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상환해야 하는 원리금으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돈 부족에 시달리게 되고, 이 일상적인 돈 부족은 주택구입용도로 받은 대출 이외에도 생활비나 자녀교육비로 인한 추가대출을 일으키는 악순환이 확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주택금융공사의 '2011년도 주택금융수요실태조사'에서도 이러한 점은 명확하게 보여진다. 이 조사에 따르면 주택담보 대출 평균이용금액은 8683만 원이며 이는 전년도에 비해 1200만 원이 늘어난 금액으로 사업자금이나 생활비충당을 위한 대출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득은 증가하지 않는 상황에서 매달 원리금상환 부담-생활비 부족함-다시 또 빚내기의 고리는 하우스푸어에게 생계형 대출을 계속 발생시키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보험약관대출도 1년 만에 잔액이 3조 원 이상 늘었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으로 바뀌어야 합니다"라는 광고가 있다. 우리가 집을 사는 것, 사서 이익을 보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집값 폭등을 부러워 했고, 언론과 재테크책은 이를 부추겼으며 그래서 빚을 지더라도 집을 샀다. 돈을 벌어야 겠다는 욕망, 부자고 되고 싶다는 바람이 나쁜 것은 아니다. 누구도 그 욕망과 바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집값 상승=자산 증식은 착각이라는 것, 집은 심리적 자산일 뿐 실제 자산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정확하게 인지했더라면 좀 더 냉정하게 판단하고, 무리하게 부채를 일으키며까지 집을 사는 일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 집 한 칸 가져보겠다는 것은 모든 집 없는 사람들의 소망이다. 그러나 집을 마련하는 것은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마련하여 내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집을 마련하는 순간부터 원리금 상환에 시달려 일상의 삶이 고달파지고, 그 때문에 생활비가 모자라 빚이 빚을 부르는 악순환을 감당해야 한다면 내 집 마련의 꿈은 잠시 접는 것이 좋겠다. 집값이 오른다 한들 내 마음속 심리계좌만 불렸을 뿐 정작 내 실제는 '하우스푸어'라는 달갑지 않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지영 시민기자는 현재 생활경제상담센터 푸른살림에서 지속가능한 경제적 자립을 돕는 교육활동가 및 생활경제상담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푸른살림에서는 후회 없는 소비, 새지 않는 돈관리, 잃지 않는 저축 방법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네이버 '푸른살림' 카페(http://cafe.naver.com/goodsalim)를 참고해주세요.



태그:#하우스푸어, #재테크, #자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