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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빵집이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에 잠식당한 것처럼 헌책방은 알라딘 중고서점에 먹힐 수밖에 없다."
알라딘 중고서점은 헌책 시장의 파이를 키웠다는 칭찬과 함께 헌책방을 잠식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알라딘 중고서점 신촌점 알라딘 중고서점은 헌책 시장의 파이를 키웠다는 칭찬과 함께 헌책방을 잠식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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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중고서점 덕분에 중고책 시장이 커졌다. 알라딘은 알라딘대로 헌책방은 헌책방대로 헌책 시장을 키우면 된다."

'헌책방'하면 어지럽게 쌓인 책 더미, 끝없이 쌓아올린 서가의 책들이 떠오른다. 그 사이에서 골동품 같은 책을 싸게 만날 수 있다는 매력! '흠흠' 코를 벌름거리면 세월의 흔적, 곰팡이의 '향긋함'은 덤이다. 이 모두 헌책방이 주는 선물이다.

이런 헌책방 업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반짝거리는 책장을 갖추고 바코드까지 찍혀 나오는 헌책. 기업의 유통망을 갖춘 알라딘 중고서점이 오프라인 서점을 낸 것이다. 알라딘은 지난해 9월 서울 종로에 첫 오프라인 서점을 낸 후 올해 1월부터 차례로 경기 성남 분당점. 서울 서대문 신촌점, 부산 부산진구 부산점을 냈다.

알라딘 중고서점을 두고 헌책방 업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대형마트가 동네 상권을 위협하는 것처럼 자본력과 유통망을 갖춘 온라인 서점이 동네 헌책방 시장을 위협한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알라딘이 헌책방의 고유 영역과 달리 자기계발서, 신간 등 대중서적 위주로 판매해 다른 영향이 크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알라딘이 헌책 모두 싹쓸이... 매출 30~40% 줄어"

헌책방 업계는 알라딘 중고서점의 부정적 영향을 두 가지 꼽는다. 매출이 감소한다는 것과 책 매입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매출 악화는 중소 규모 헌책방이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다. 이미 지난 2월 알라딘 신촌점이 문을 연 후, 인근의 '도토리 중고서적' 신촌점은 매출 악화로 경기도 안양으로 매장을 옮겼다.

강영성 도토리중고서적 안양점 사장은 매출 부진 이유를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찾는다. 강 사장은 15일 전화 통화에서 "알라딘이 들어선 2월 이후, 월매출액이 30~40% 줄어 월세도 못내는 상황이었다"며 "전체 경기 사정이 좋지 않은 탓도 있지만 분명 알라딘의 개점 이전과 이후 (매출 차이가) 뚜렸했다"고 답했다.

15일 찾아간 서울 신촌역 인근의 ㄱ서점 사장도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에만 매달려 있는데, 알라딘은 마케팅도 하고 책 매입도 대규모로 한다"며 "(알라딘이) 이곳저곳 지점을 내기 시작하면 손님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매출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책 매입에 끼치는 영향도 크다. 이는 장기적으로 헌책방 경쟁력에 큰 타격이 된다는 주장이다. 온라인 헌책 등록망과 운송시스템을 갖춘 알라딘이 온-오프라인으로 전국의 헌책을 '싹쓸이' 한다는 것이다. 알라딘 중고서점 신촌점에만 오프라인으로 평일 1000권, 주말 1500권 가량의 헌책을 매입하고 있다. 대부분 고객들이 자신의 집에 있던 책을 직접 방문해 팔거나 온라인으로 등록해 택배로 운송받는 시스템이다.

이같은 알라딘의 책 매입에 대해 강영문 '도토리 중고서적' 서울대입구점 사장은 "헌책을 배달해주는 담당 택배기사가 고물상에서 우리에게 보내려던 헌책을 언제부턴가 알라딘으로 보내더라"며 "결국 우리는 좋은 책을 못사니까 서서히 말라 죽어갈 거다. 인근에도 (알라딘이 지점을) 하나 낼까 두렵다"고 말했다.

ㄱ서점 사장도 "(매입이 줄어들어) 알라딘에서 취급하지 않는 중고교 참고서나 오래된 자료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며 "아니면 헌책을 더 싸게 팔아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헌책방에 가면 쌓여있던 책 더미에서 소중한 책을 얻을 수 있다는 매력을 느낄 수 있다.
▲ 헌책방 헌책방에 가면 쌓여있던 책 더미에서 소중한 책을 얻을 수 있다는 매력을 느낄 수 있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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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마니아에서 대중들로 헌책 시장 확대 효과도"

매출과 책 매입이 줄어든다는 의견과는 달리, 알라딘 중고서적이 헌책 시장을 키웠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위축돼 가던 헌책 소비를 대중적으로 확대했다는 것이다.

동교동에 있는 노동환 '숨어있는 책' 사장은 "단순히 대형마트가 동네상권을 잠식한다는 시각으로 알라딘을 바라볼 수 없다"며 "알라딘이 자기계발서. 대중서 등 시장의 파이를 키운 것은 맞다"고 말했다.

노 사장은 그 이유로 "헌책방마다 전문 분야가 달라 대중서 위주인 알라딘과 겹치지 않는다"는 점을 꼽았다. 헌책방은 인문, 사회, 철학 등의 분야 고서적을 다루는 책방과 초중고 참고서를 파는 책방으로 구분된다.

김의창 알라딘 신촌점 점장은 "초중고 참고서, 동화책 전집류, 주간 계간 월간 등의 잡지류는 받지 않는다"며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계발서, 소설 등 신간서적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ㄴ서점 사장도 "(알라딘이) 참고서를 팔지 않기 때문에 큰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김의창 점장은 "알라딘이 헌책방과 함께 (헌책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한 번 읽은 책을 선순환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알라딘 덕분에 헌책의 매력을 알고 기존 헌책방을 찾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 알라딘 신촌점에서 책을 구입한 정용우(23, 서울 서대문구)씨는 "알라딘에서 헌책 맛을 본 이후로 다른 헌책방에 두 번 가봤다"며 "알라딘이 싸고 헌책의 재미, 매력을 느끼게 한 탓이 크다"고 말했다.

"마니아 확보한 헌책방도 기득권 지녀"

헌책방업계 일부에서는 알라딘 중고서점이 "자본력과 유통망을 갖춘 대형서점이 동네 헌책방 시장을 위협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헌책방 헌책방업계 일부에서는 알라딘 중고서점이 "자본력과 유통망을 갖춘 대형서점이 동네 헌책방 시장을 위협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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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헌책방이 '로열티' 높은 단골 손님을 갖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알라딘이 대중서 위주 구성으로는 헌책 마니아들을 끌어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노동환 사장은 "헌책방은 전문 영역, 단골 고객 등 기득권이 있기 때문에 알라딘 중고서점이라고 위협적이지 않다"며 "알라딘은 알라딘대로 헌책방은 헌책방대로 헌책 시장을 키우면 된다"고 말했다.

헌책방 '숨어있는 책'에서 만난 '헌책 마니아'인 김대욱(32, 서울 도봉)씨도 "(알라딘 중고서점은) 곰팡이 냄새가 안나고 헌책방스러움이 없다"며 "가지런히 정리돼 있어서 그런지 헌책방에 왔다는 느낌이 안 든다"며 기존 헌책방 고객으로 계속 남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처럼 알라딘 중고서점 등장이 꺼져 가던 중고책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은 건 사실이다. 기존 동네 상권을 위협하는 대기업 빵집이나 대형마트와 직접 비교하기 곤란한 점도 이 때문이다.

다만 온라인을 떠나 오프라인 매장을 확대하고 헌책 공급 쏠림 현상이 발생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기존 헌책방에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온-오프라인을 넘다드는 알라딘 중고서점의 등장은 헌책방 업계에 위기이자 기회인 셈이다.


태그:#헌책방, #알라딘 중고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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