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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렷! 경례! 충성! 바로! (악수하며) 2군단장입니다. 전선에 이상 없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충성"하는 것은 육군사관학교 생도들만이 아니었다. 별 3개를 단 현역 육군 중장을 비롯해 영관급의 부대장들이 '내란죄'를 저지른 그 앞에서 줄줄이 관등성명을 외쳤다. 지난 2009년 10월 19일, 전 전 대통령은 장세동 전 안기부장, 이기백·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 등 5공화국 주요 인사들과 함께 강원도 화천군 '평화의 댐'을 방문했다.

오정석 당시 2군단장(전 육군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 2012년 1월 예편), 2군단 기무부대장, 2군단 작전참모장, 7사단 기무부대장 등은 열을 맞춰 전 전 대통령을 맞이했다. 군인들뿐만이 아니다. 정갑철 화천군수, 김종관 당시 화천경찰서장,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등 지역 단체장과 기관장들이 나란히 섰다. 이들은 여전히 전 전 대통령에게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이날은 월요일로 평일이었으며 지역 군부대의 최고 지휘관들과 단체장들은 공적인 행사가 아닌데도 총출동했다.

당시 통신사를 비롯해 몇 개 언론이 전 전 대통령의 방문 사실을 보도했지만 단편적 보도에 그쳤고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인터넷매체 <참깨방송>에서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올린 당시 영상을 보면 전 전 대통령이 얼마나 극진한 '대접'을 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자유수호 대남방송'이라는 보수 성향의 이 매체는 5개의 동영상으로 나눠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전두환 향해 "전선에 이상 없습니다" 보고  

전두환 전 대통령 일행은 관광버스 3대에 나눠 타고 현장에 도착했다. 그 앞을 경찰차량이 사이렌을 울리면서 호위했다. 버스에서 내린 전 전 대통령은 김건호 수공 사장과 가장 먼저 인사를 나누고 도열해 있는 군인들 앞에 섰다. "전선에 이상 없습니다"라고 보고하는 2군단장에게 전 전 대통령은 "이상 없지?"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간담회 자리에서 전 전 대통령은 댐 건설 당시 있었던 논란에 "어떤 정치인들은 나보고 장기집권, 영구집권 하려고 한다고...그런 자식들이 지금도 살아있어"라고 말했다. 평화의 댐은 건설 과정에서 전두환 정권이 북한의 수공 위협을 과장하고 국민에게 불안감을 조성하여 댐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는 감사원 조사 과정에서 사실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후 브리핑 자리에 참석한 전 전 대통령은 "군인들은 고생한다는 걸 모두 인정하지만 여기 평화의 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고생한다는 걸 아는 사람이 자기네들밖에 없어"라며 "그래서 내가 알고 찾아 온 거야. 여러분을 위로해 드리려고..."라고 말했다.

이날 브리핑을 한 수자원공사 인사는 "(평화의 댐은) 대통령 각하께서 재직 시에 탁월한 선견지명으로 심혈을 기울여서 직접 진두지휘하시어 건설하신 후 오늘날 북한의 수공에 대비한 북한강 수계 및 수도권 지역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라며 "오늘 대통령 각하와 일행분들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드리오며 직접 보고를 드리게 돼서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브리핑을 마치면서도 "현 상황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정확하게 예측하시고 심혈을 기울여서 댐을 건설해주신 대통령 각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후 전 전 대통령은 밖으로 나와 '평화의 종'을 동행한 인사들과 함께 타종하고 화천 군수의 안내로 인근 시설을 시찰했다. 그는 관람객과 기념촬영을 하는 등 시종일관 밝은 모습이었다.

"정의롭지 못해도 시류에 편승해 살라고 가르치는 것"

이와 관련해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14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경찰차가 에스코트 하고 군 장성이 경례하는 걸 보니 기겁할 노릇"이라며 "그런 군 지휘관들이 공무가 아님에도 부대를 비워 놓고 그렇게 나와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지휘체계를 비워놓고 나온 거라면 근무태만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임 소장은 "독립운동을 했던 자손들은 비참하게 살고 친일파의 후손들은 떵떵거리고 사는 것처럼 손녀가 초호화 결혼식을 치르는 전두환 일가처럼 군사반란을 일으킨 후손들도 잘 살고 있다"며 "이런 상황은 정의롭지 못하더라도 그냥 시류에 편승해 살라고 가르치는 것과 다름없다. 이렇게 불의가 판치고 있는데도 우리가 용인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평화의 댐은 '거짓과 불신의 기념비'"라며 "낡은 이념의 상징으로 독재 세력에 의해 활용되는 현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평화의 댐 건설 명분 자체가 황당한 거짓이었고 그것을 추진하는 과정 자체가 폭력적이고 강압적이었다"며 "그것을 찬양하고 독재를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참담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화천군과 한국수자원공사 측에 따르면 당시 방문은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의 요구로 진행됐다. 두 기관은 "어떤 신분의 인사가 와도 댐을 관람하고 브리핑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화천군 관계자는 14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그 당시 북의 금강산 댐 방류가 이슈가 되니까 전 전 대통령 쪽에서 자발적으로 방문했다"며 "군수는 신분과 관계없이 지역을 방문해준 인사를 손님 차원으로 맞으러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도 "평화의 댐을 비롯해 어떤 시설물도 신분에 관계 없이 단체 관람을 오면 안내를 하고 브리핑이 필요하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김건호 사장이 참석한 것에 대해 "당시 북의 금강산댐 방류로 논란이 되고 있어 근처에 일정이 있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군 관계자는 "오정석 장군은 1월에 예편했기 때문에 민간인 신분"이라며 "오 전 장군과 직접 접촉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태그:#전두환, #평화의 댐, #쿠데타, #한국수자원공사, #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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