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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를 기다리는 사람들
▲ 언제 나오시려나? 아웅산 수치를 기다리는 사람들
ⓒ 원석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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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일 아침. 벌떡 일어나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30분... 늦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에 모처럼 일기장을 뒤적거리다가 늦게 잠자리에 든 탓입니다. 오전 6시쯤 일어나 오전 7시 전에 게스트하우스를 나설 생각이었습니다. 오늘은 '그녀'를 만나는 날. 마을 서쪽으로 2km 남짓 떨어진 공항까지 오전 8시까지 가야 합니다. 마음이 급해 지난 두 달 동안 좀처럼 신지 않았던 등산화를 신었습니다. 여차하면 달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허겁지겁 공항에 이르니 도로에서 경찰들이 교통통제와 간단한 검문검색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를 만나러 나온 사람은 나뿐만이 아닙니다. 똑같은 티셔츠를 입은 이들, 얼굴에 스티커를 붙이고 다양한 현수막을 든 이들, 몇몇 스님과 수십 명의 서양인, 각양각색의 사람이 하나같은 마음으로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사람들 수가 좀 적다 싶었는데... 오전 8시 반이 지나자 마을 반대편 국경 쪽에서 트럭을 타고 사람들이 도착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교복 입은 학생과 아이를 업은 엄마, 아빠들도 가세합니다.

왼쪽 검은색 차량에 흰색 옷의 희미한 모습이 아웅산 수치입니다.
▲ 매솟 공항을 나오는 아웅산 수치 차량 왼쪽 검은색 차량에 흰색 옷의 희미한 모습이 아웅산 수치입니다.
ⓒ 원석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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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가 넘도록 기다리는 이는 나타날 기미가 없지만 우리는 구호를 외치고 인증 사진을 찍고 웃고 떠듭니다. 즐겁습니다. 좀처럼 인물 사진을 찍지 못하는 내가 얼굴에 스티커를 붙인 예쁜 아이의 주변을 서성거리자 아이의 엄마는 자청해서 사진 모델이 돼주기도. 아이에게 손가락으로 승리의 브이(V) 자를 만들라고 강요하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평화의 어머니'라고 적혀 있는 현수막과 내가 읽을 수 없는 더 많은 현수막을 들고 있던 사람들은 "까마마세"라고 외칩니다. 무슨 뜻인지 몰라 옆 사람에게 물어보니 'long live'라고 합니다. '오래 사시라는 얘긴가?' 조금 더 과격하고 격렬한 구호일 거로 생각한 내게는 다소 의외입니다.

오전 9시 30분쯤 공항 정문 쪽에서 자동차가 보이고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호위 차량 몇 대가 지나가고 뒤따르던 검은색 자동차의 뒷좌석 창문이 내려갑니다. 그녀! 흰색 옷을 입은 그녀가 사람들에게 손을 흔듭니다. 사람들은 소리치고 질서정연하던 대오는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사람들은 검은색 자동차를 따라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녀, 아웅산 수치를 향해서.

비키니 입은 금발 여성이 없는 이곳... 참 좋다

지난해 연말에 시작한 여행.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를 지나 166일째 되던 날, 태국 북서부 미얀마 국경지대 매솟(Mae sot)에서 아웅산 수치를 봤습니다. 매솟은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도시로 군부독재의 탄압을 피해서 태국 국경을 넘은 미얀마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입니다.

그들을 도우려고 많은 외국인이 NGO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목욕 수건을 두른듯한 '롱기'를 입은 미얀마 아저씨, 얼굴에 '타나카'라는 노란색 가루를 칠한 미얀마 아이와 여인, 전통의상을 입은 고산족, 턱수염을 기른 이슬람교도와 동서양 NGO 활동가들이 그렇게 모여 삽니다.

아침은 이슬람교도 찻집에서 달콤한 차와 담백한 빵을 먹고, 점심엔 태국 볶음국수(팟타이)나 미얀마 찻잎 샐러드를 먹고, 저녁엔 중국식 볶음밥을 먹거나 태국 맥주에 피자나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습니다. 홍대 앞 일본 라멘집의 5분의 1 가격으로 소유(간장) 라멘이나 돈코츠(돼지 뼛국물) 라멘도 먹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 같이 큰 가방을 메고 숙소를 찾으러 어슬렁거리는 여행자, 거의 비키니 차림의 옷을 입고 맨발로 거리를 활보하는 금발미녀, 저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상점 주인이 없어서 좋습니다.

배낭 여행자들의 천국이라는 라오스의 방비앵과 루앙프라방, 태국 치앙마이와 빠이, 캄보디아 씨엠립와 시악누빌 해변 그리고 베트남에서 주로 여행자들만 이용하는 '오픈 버스'가 저는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저렴한 숙소와 식당들, 볼거리 풍성한 각종 시장과 수공예품은 반갑습니다. 하지만 여행자들이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주요 도로를 점령해버린 도시, 여행자의 구매력에 의존해서 잔뜩 어깨와 가슴을 부풀린 도시, 특히 서양 여행자의 수요에 최적화된 다양한 편의 시설과 시스템이 불편했습니다.

현지인들의 언어와 생활방식보다 영어를 더 많이 듣고, 서양인들의 음주 유흥문화를 배울 기회가 더 많은, 어찌 보면 거대한 롯데월드, 에버랜드가 돼버린 것 같은 도시에서 우리는 저렴한 동남아 노동력을 착취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조금씩 허물며, 최소비용으로 최대만족을 얻는 법을 익히면서 흐뭇해하고 있는 거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현지인의 불친절하고 무성의한 태도에 기분 상하고, 외국인에게 다른 가격을 매기려는 상점주인들과 기싸움을 하면서 씩씩대다가도 혹시 내가 손님이 왕인 나라, 손님이 물건값으로 주인의 간과 쓸개까지 요구하는 한국의 각박한 서비스 정신을 다른 나라에서 원하는 것은 아닌가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한낮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뜨거운 태양에 시달리다가 돌아온 숙소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좋다가도, 추워서 잘 때 이불을 덮어야 할 지경이 되면 죄책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이런 불편한 감정은 저의 짧은 영어실력 때문에 더욱 과장됐을지도 모릅니다. 숙소와 식당에서 현지인이 사용하는 유창한 영어를 제대로 못 알아들을 때는 난감하고 창피했고, 친절한 서양 여행자들의 호의와 관심에 제대로 응대하지 못할 때는 자신이 한심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전형적인 관광도시에서 제가 느끼는 감정은 현란한 메뉴판이 있는 커피전문점이나 고급 외식업체에 들어가서 제대로 주문을 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아메리카노나 뭔지도 모를 세트 메뉴를 고를 때의 기분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결핍과 모자람은 강요된 평범한 정답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부족함이 없는 이들이 그냥 지나치는 것을 살필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짧은 영어 실력이 안타깝고 그래서 지치고 힘들어질 때, 저는 그렇게 자신을 다독거립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수치의 일정

여전히 아웅산 수치 여사를 기다리는 사람들
▲ 매타오 클리닉에서 여전히 아웅산 수치 여사를 기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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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 여사를 태운 차량을 떠나보낸 우리는 공항 근처 '매타오(Mae tao) 클리닉'이라는 곳에서 그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매타오 클리닉은 미얀마 난민들의 의료와 각종 교육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곳 같았습니다. 수치 여사가 매솟에서 60여 km 북쪽으로 떨어진 매라(Mae la)라는 마을의 난민캠프를 방문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곳에 들르길 바라면서요.

간단한 식사를 하고 대형 현수막 아래서 사진도 찍으며 햇살이 뜨거워질 때는 우산으로 그늘을 만들었습니다. 오전 8시부터 수치 여사를 기다리는 그 마음 그대로, 아니 오히려 더 간절한 마음으로 말이죠. 자동차 유리창 너머로 잠깐 얼굴만 보는 게 아니라 그이의 미소와 목소리를 제대로 보고 듣기를 원했습니다. 누구는 오전 11시면 돌아온다고 했고 누구는 낮 1시는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누구의 장난이었는지 단순한 실수였는지 그녀가 도착했다는 소리에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했고요.

낮 2시쯤. 안내방송이 나오자 사람들은 마당 한가운데에 그녀가 지나갈 길을 만들고는, 다들 그 길 쪽으로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가려고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뒤 안내방송이 다시 나왔고 저는 알아들을 수 없는 그 안내방송을 들은 이들은 미련없이 흩어지며 매타오 클리닉을 빠져나갔습니다.

수치 여사는 난민캠프에서 바로 공항으로 가서 기자회견을 한 뒤 매솟을 떠난 듯했습니다. 자세한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매타오 클리닉에 방문하려던 계획은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사람들의 소망이 애당초 없던 일정을 만들고, 그것이 혹시라도 실현되기를 바라며 아침 일찍부터 오후까지 거의 한나절을 기꺼이 함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진정한 소망은 아웅산 수치라는 한 사람이 아니라 그이가 상징하는 미얀마 민주화 투쟁의 승리와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일 테고요.

사람들이 미련없이 자신의 집으로 일터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저는 한동안 허망한 마음이 들더니 이내 짜증이 났습니다. '얼마나 귀하신 몸이라고 그냥 공항으로 기자회견을 하러 가느냐? 그러려면 공항에서 단 1분이라도 제대로 모습을 보여주든지. 우리가 아이돌 가수 얼굴 보자고 모인 거냐? 상징이면 상징의 역할을 이런 기회에 제대로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이런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저야 신문 국제면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을 조금 더 제대로 보지 못한 게 아쉬웠을 뿐이지만 거기에 모인 미얀마 사람들은 더 허망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실망하거나 짜증을 내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한국에서 다양한 이유로 촛불을 들 때도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와야만 '촛불'이 더 즐겁고 신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촛불들은 항상 그 자체로 완전했고, 즐거웠고, 의미가 있었습니다.

왜 경계에는 꽃이 없을까요

매솟 공항에서 한 미얀마 사람이 현수막과 함께 든 꽃
▲ 모든 경계엔 꽃이 핀다 매솟 공항에서 한 미얀마 사람이 현수막과 함께 든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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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짧은 영어실력 때문이든 다른 무엇 때문이든,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라던 도시에서 느끼는 겉돌고 있다는 느낌, 시큰둥한 감정이 이곳 매솟에는 없습니다. 특히 매솟 공항과 매타오 클리닉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를 기다리는 동안은 더욱 그랬습니다. 물론 수치 여사 때문이 아닙니다. 그녀를 기다리는 마음 때문에 그랬고, 다양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어울림 때문에 그랬습니다.

매솟에서 서쪽으로 7km를 가면 타이-버마 우정의 다리가 있고 그 다리를 건너면 바로 미얀마입니다. 국경을 따라 큰 시장도 있고, 철망 사이로 초라한 집들과 남루한 옷의 사람들 사이에 군인이 서 있었습니다. 인력시장과 직업소개소로 보이는 곳에 수많은 미얀마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것도 봤습니다. 어떤 이는 국경 다리 밑에서 외국 담배와 성인용품들을 팔고 있었습니다. 근처를 걷다가 별로 할 게 없어서 조잡해 보이는 성인용품도 구경하고 스위스 담배도 하나 샀습니다.

어떤 시인은 '모든 경계엔 꽃이 핀다'고 노래했는데 사람들은 모든 경계에 철조망을 설치하고 보초를 세웁니다. 그동안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국경을 배와 버스를 이용해서 넘으면서도 항상 국경 근처에서는 긴장하게 되고 국경을 통과하면 안도의 마음과 함께 홀가분한 마음이 되곤 했습니다. 특별히 죄를 지은 것도 없고 밀수품을 소지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철조망과 보초를 세워도 경계엔 그런 것으로 막지 못하는 묘한 흥분이 있고 결국 꽃은 피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아웅산 수치보다 그를 기다리던 수많은 사람 덕분에 즐겁고 의미 있었던 매솟을 떠나 수코타이로 갑니다. 아직 5개월 넘게 남은 여행 중에 빠이나 방비앵보다는 더 많은 '매솟'을 만나기를 바라면서요.

덧붙이는 글 | '여행사연 쓰고 공정여행 가자!' 공모 응모 글입니다.



태그:#배낭여행, #아웅산 수치, #버마난민, #태국 매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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