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못할 때가 많아 안타까운 인생의 주인공. 그들은 직장인이다. 직장에 묶여 있는 것도 안타까운데 상사와 함께 밥 먹는 것도 편치 않아 돌아가실 지경인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은 지옥 같은 감정을 동반한다.

 

황금 같은 주말에 친구, 애인, 가족과의 여유로운 식사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과연 직장인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주말의 식사시간을 당할 시간이 있으랴. 이렇게 행복하기만 해도 모자랄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괴로운 건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바람 들어간 풍선처럼 올라만 가는 음식 값은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을 외롭게 만든다. 지갑에서 돈 냄새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직장인, 그 모든 이들을 독려하며 이글을 써 본다.

 

핸드폰 시계 확인하는 그 찰나의 행복

 

학교에 가면 '딩동댕동' 울리는 종소리에 맞춰 일순간 분주하게 움직이며 활기를 띠는 학생들이 보인다. 그것은 쉬는 시간. 좀 더 지켜보면 시간이 흘러, 똑같은 종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절실하고 빠르며 생기까지 높아진 학생들이 보인다. 그것은 점심시간이었다. 학생들에게 점심시간은 쩍쩍 갈라진 논에 찾아온 물이라는 선물과도 같은 것. 그 들의 점심시간을 축복이라도 하듯 음식냄새는 삽시간에 퍼지곤 했었다.

 

직장인들의 점심시간도 별반 다를 것 없다. 하루 중 가장 평온한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점심시간은 특별한 의미가 된다. 특히 아침을 굶고 출근한 이들에게는 점심 식사 때가 거의 다 다가온 그 찰나의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된다. 그렇지만 행복했던 그 찰나의 행복한 순간만큼 점심시간 전부가 행복해지리라는 것은 큰 착각이다. 그 착각에서 빨리 벗어나 나름대로의 꾀를 부리고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짜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상사가 사주는 밥에 비록 체할지언정

 

빨리 빨리, 약속 있다고 얘기하고 먼저 나가야만 하는데 이놈의 상사 벌써 내 곁으로 다가와 있다.

 

"오늘은 나랑 나가서 먹자."

"뭐, 먹을까?"

"먹고 싶은 거 있어?"

"(전 약속이 있어서… 라고 말하지 못하고…) 전 다 괜찮아요."

 

먼저 선수 치지 못했다면, 괄호안의 말을 삼킬 수밖에 없는 직장인. 직장의 상사와 밥 먹는 것도 괴롭지만, 그것을 거절했을 때 오는 후폭풍도 괴로운 건 매한가지이다. 그렇게 체할 것 같은 밥일지언정, 가끔씩이라도 밥 사주는 상사는 그나마 낫다. 꼭 얻어먹으려고만 하는 상사가 있단 말이다. 연봉도 훨씬 세면서!!! 보너스도 더 많이 받으면서! 그런 상사에게 걸리면 최악이다. 꼭 구실을 만들어서 밥을 얻어먹으려 한다. 들으면 어처구니없는 구실일지라도 그들은 집요하게 부하직원의 지갑을 파고든다.

 

"오늘, 성사된 건 내가 많이 도와준 거 알지?"

"그런 의미에서 한턱 쏘지 그래?"

 

"와 오늘 의상 멋있는데? 요즘 옷 사 입을 돈도 있나봐."

"그런 돈 있으면 나한테 밥 좀 사라."

 

이런 식으로 덫을 놓는다. 한 번 걸리면 두 번 걸리고, 계속 걸린다. 그들에게 만만한 부하직원의 지갑은 계속 만만한 것이 된다. 가장 좋은 대응책은 누구 눈치 아랑곳하지 않고 점심시간 시작! 하자마자 약속 있다고 먼저 나가는 것이다. 진짜로 약속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 약속이 없어도 차라리 혼자 먹는 밥이 더 편하고 맛도 좋다.

 

그것도 안 된다면 돈이 없다고 뻐튕기는 것. 일부러 미리 현금과 신용카드를 빼낸 텅텅 빈 지갑을 보여준다.

 

"나 이정도로 돈 없어요."

"다음에 사 드릴 테니까 오늘은 OO님이 사주세요."

 

능청과 연기가 필요하다. 굳은 뚝심이 필요하다. 절대 지갑을 열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내 지갑은 내가 스스로 지켜야 한다.

 

고군분투 점심시간

 

정말로 누구에게 점심을 사줄 돈이 없고, 심지어 내 점심값에 투자할 돈이 없을 때도 있다. 배는 고픈데 뭘 먹어야 할지 고민인 날들이 지갑에 돈이 없을 때도 이어진다. 고민의 끝엔 여러 방법들이 출몰한다.

 

제일 먼저, 집에서 도시락 싸오기 신공발휘! 집에 있는 밥과 반찬을 이용해서 도시락을 싸오기 때문에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 직장인들은 이 방법도 괜찮다. 물론 나 역시 써먹었던 방법이다. 그러나 집에서 먹는 음식의 식비도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나 홀로 족들은 도시락방법에도 고민이 많이 간다. 과연 이걸로 인해 점심값을 줄일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게다가 도시락을 싸려면 아침에 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일단 밥보다 잠이 더 보약이라 생각하는 직장인들이 더 많다. 한마디로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이 아니면, 도시락도 쉬운 방법이 아닌 셈이다. 또 바쁜 엄마를 둔 직장인들에게도 편치 않은 방법이다. 바쁜 엄마도 일찍 일어나 도시락 싸는 건 싫어하는 법이다.

 

편의점 도시락과 라면 옵션 신공! 요즘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파는 것을 아는 직장인은 많을 것이다. 가격도 식당가의 음식보다 저렴한 편. 하지만 단점도 있다. 식사량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것. 먹어도 배가 고픈 건 그 사람이 병에 걸려서가 아니다. 그냥 그 도시락이 양이 적은 거다. 이럴 때 컵라면을 곁들인다. 몸에 좋지 않은 라면이지만 소형컵라면은 편의점도시락과 꽤 잘 어울린다.

 

빌붙기 신공! 자존심 상하지 않을 정도로 빌붙어 얻어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동료든 상사든 그 곁에서 며칠 동안 일부러 불쌍한 행동들을 한다. 지갑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푹 쉰다던지, 일부러 대출담당 은행직원과 통화를 하며 어두운 인상을 보인다거나 하는 등의 행동 말이다. 눈치 있는 동료나 상사들은 몇 차례 정도 밥을 사주게 되어 있다.

 

빌붙기 신공을 이용하는 직장인들을 많이 봐왔지만 실패하는 경우는 별로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실제로 돈이 없기 때문에 절실한 연기를 펼칠 수 있다. 자존심이 상한다면 하지 않는 게 좋다. 밥 내놓으라고 하는 뱃속 사정 봐주려다가 정신건강 해칠 염려가 있으므로.

 

대학생 때는 학생식당이라도 있어서 돈이 없을 때 저렴하게 점심을 해결할 수도 있었지만, 이놈의 회사들은 사내식당이 있는 경우가 드물다. 대기업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그런 회사엔 사내식당이 있을 것 같아 내심 부러운 적도 많았었다. 일반 중소기업에 사내식당이 있다는 소리는 많이 듣지 못했었다. 나는 지금은 사내식당이 있는 직장에 잠깐 다니고 있다. 점심시간이 두렵지 않다. 골고루 짜여진 식단에 점심메뉴 고를 걱정이 없다.

 

앞서 언급했던 점심시간에 벌어진 모든 분투기는 모두 내가 겪었던 일들이다. 그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며 몸서리쳐진다. 그러나 나 역시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계약직은 현재에 충분히 만족하기가 어렵다. 늘 그 다음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계약직의 점심시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태그:#직장인, #점심시간, #점심메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