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방영한 KBS <적도의 남자> 19회에서 다윗 김선우(엄태웅 분)은 골리앗 진노식(김영철 분)이 자신의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를 향해 짱돌 던지기를 멈추지 않는다. 15년 전 선우의 양아버지를 죽인 노식과 용배(이원종 분)은 처참히 몰락했고, 자신의 아버지 범행을 감추기 위해 각목으로 선우 뒤통수를 내리친 이장일(이준혁 분)은 촉망받는 스타 검사에서 아버지를 포함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이렇게 선우의 계획대로 복수가 착착 진행되고, 그에 맞서 곧 선우에게 닥칠 비극의 전조가 막 시작될 찰나에 정지된 검은 화면은 곧 <적도의 남자> 주인공들이 겪게 될 지옥보다 더 큰 충격을 몰고 왔다. 정확히 15년 전 선우가 믿었던 장일에게 뒤통수를 맞았을 때 느꼈던 기분이 이런 것일까.

동시간대 최하위로 출발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킨 <적도의 남자>의 인기 비결은 매회 끊임없이 이어지는 '복수'였다. <적도의 남자>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이를 배신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친구도, 가족도 자신의 이익에 반한다면 일단 뒤통수부터 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한 때 친구였던 피해자와 반갑게 조우한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죄책감과 미안함은 없다. "그 땐 너의 뒤통수를 칠 수 밖에 없었어"라는 자기 합리화와 범행 은폐를 위한 또 다른 범죄가 이어질 뿐이다.

그렇게 등장인물 간에 판을 뒤엎는 뒤통수치기로 시청자들을 열광케 했던 <적도의 남자>가 하필이면 마지막 다 된 밥에 진짜 시청자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려칠 것이라고 예상했던 이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특히나 매 회 완성도 있는 대본과 연출, 그리고 주 조연 배역할 것 없이 흠잡을 데 없는 연기로 호평 받았던 드라마 <적도의 남자>에 최대 오점을 남긴 방송 사고는 <적도의 남자> 시청자 모두를 멘탈 붕괴로 만들어버리기 충분했다.


초유의 방송 중단 사고에도 적도의 남자는 14.3% 시청률(AGB 닐슨 미디어 리서치, 전국 기준)로 동시간대 1위를 굳건히 지켰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화면 정지에 '멘붕'이 찾아온 시청자들, 그리고 마지막까지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쓰던 작가, 배우, 스태프의 노고에 찬물을 끼얹은 이 무시무시한 방송 사고가 남긴 후유증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한편 <적도의 남자> 측은 방송사고 직후 즉각 공식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며, 제작 지연으로 인해 방송에 차질이 빚어진 점에 대해 사과문을 게재했다. 일정 지연에 따른 편집본 송달 문제가 야기한 방송 중단 사태. 생방송과 마찬가지로 진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드라마 제작 시스템 여건상 이번 <적도의 남자>에서 발생한 방송 중단 사태는 예견된 사고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욱 시청자를 두렵게 하는 것은 현재 드라마 촬영 현장에 만연한 '생방송 촬영'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이번 <적도의 남자>의 방송 사고에 버금가는 또 다른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까지 완성도 있는 드라마를 원했던 시청자들에게 의외의 복병으로 찾아온 생방송 촬영. 작품 내적의 문제보다도 무리한 제작 환경에서 빚어진 방송사고만큼 시청자를 허탈하게 하는 것은 없다.

2012.05.24 10:16 ⓒ 2012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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