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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컨설턴트'
 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컨설턴트'
ⓒ 권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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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컨설턴트 일 하고 있어."
"무슨 컨설턴트인데?"
"뭐, 구조조정 같은 거…."
일순간 시끌벅적했던 내부의 소음이 그치고 모두가 나를 봤다. 흔들리는 눈빛으로…
- <컨설턴트>에서

동창회의 친구들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주인공 '그'를 보았던 건, 회사원들이 느끼는 일종의 불안이었다.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 그러나 실상 '그'가 하는 일은, 동창들이 생각하는 그런 구조조정이 아니다. 사람의 인생을 구조조정 한다는 측면에서는 동창들이 생각하는 종류의 구조조정과 같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의 구조조정은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조정한다. '그'의 직업은 사람의 '죽음'을 컨설팅하는 컨설턴트이다. 의뢰인의 요구에 의해 죽음이라는 구조조정을 한다. 컨설팅 단계까지가 그의 역할이다. 뒤처리는 회사에서 다 알아서 한다. 제거대상의 목숨은 의뢰인, 회사, 그의 활약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 말하자면 그는, 제거대상의 목숨이 완벽하고 자연스럽게 끊어질 수 있도록 컨설팅하는 컨설턴트인 것이다.

그의 구조조정 작업에 섬뜩함과 동시에 슬픔을 느낀 것은 나만의 감정이었을까. 한 번쯤 구조조정 작업을 하는 그를 실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더라면, 처음엔 그저 섬뜩함과 공포에 기가 질렸을 것이라 장담한다. 그리고 나중엔 슬프고 외로워했을 것이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죽음을 컨설턴트'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바야흐로 죽음도 컨설팅 할 수 있는 시대이다. 돈만 있다면, 컨설팅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두뇌만 있다면, 컨설팅을 실행할 수 있는 기술력 등이 있다면 가능한 것이 된다. 물론, 사인이 컨설팅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 들통 나면 안 된다. 이 사회가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도록 철저한 기밀유지와 같은 보안력이 필요하고, 컨설턴트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죽음을 완벽히 짜여진 시나리오에 의해 이뤄낼 수 있도록 컨설턴트인 주인공 '그'는 바쁘고 외롭다.

그의 배후엔 회사가 있다. 또래 친구들이 자신의 앞날에 대해 걱정하며, 회사에서 구조조정 당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해 하며 충성하는 그런 회사가 아니다. 오로지 그를 위해 만들어진 회사라고나 할까? 그가 컨설팅하는 죽음에 이유가 있도록, 그리고 그 죽음에 필요한 각종 자료수집과 보조분석이 원활할 수 있도록 존재하는 회사이다. 또한 그가 컨설팅하는 죽음에 늘 존재하는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돈을 받고, 그에게 컨설팅에 관한 지시를 내리는 것도 회사이다. 어찌 보면 그 역시 회사에 충성해야 하는 것은 똑같다. 다만 회사에 출근을 주5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자신이 짠 계획과 하루 일과표에 따른 시간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 보통 회사원 연봉과 비교하였을 때,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다른 회사원들과 그의 차이이다.

죽음의 컨설턴트인 그가 벌이는 업무의 연속, 그 과정속의 사람들, 그리고 꾸준히 등장하는 위기와 그의 대처는 놀랍도록 잔인하고, 슬프고, 허무하다. 그리고 말미엔 늘 자기합리화가 등장한다.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보통의 회사원들이 자연스레 회사업무를 보듯이 사람 죽이는 일에 자연스러움만 따를 수는 없다. 주저함이 있기도 하다. 그도 망설임이 있고, 괴로워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때마다 통장에 입금되는 돈과, 절대권력 회사의 지시 앞에 그는 굴복할 수밖에 없어진다. 그에게 있어 돈의 존재는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근거이다. 돈은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살아야하는 삶에 뒤따르는 외로움과 허기를 채워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에게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종료시키라 지시하는 회사에게도 돈을 채워주는 누군가가 늘 존재한다. 의뢰인들은 끊이지 않고 번식한다. 인간의 종족번식과 의뢰인의 청탁번식은 함께한다. 먹이사슬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작년에 아버지가 돈을 들고 의뢰인으로 찾아왔었다면, 나중에는 그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돈을 들고 의뢰인이 되어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원한의 시작은 '꼭 죽어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으로 합리화 되어, 완벽한 이유를 가진 죽음으로 결론 난다. 의뢰인과 회사, 그리고 그 사이에는 돈과 합리화가 물 흐르듯 순환된다. 결코 편할 수 없고, 행복할 수 없는 순환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기합리화는 보통 자기가 불리하거나, 행복하지 않을 때 내보이는 표현 아닌가.

중요한 건, 자본주의가 세상의 합리화를 지탱하고 있고, 그로인해 비정상적인 죽음도 합리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소설일지언정,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회사는 자본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무섭게 와 닿는다. 충성을 바쳐 타인의 죽음을 구조조정 하는 대신 회사가 존재하는 한 영구히 구조조정 당하지 않을 그와, 언젠가는 구조조정을 당하겠지만, 일단은 회사를 향해 최선과 충성을 다하고 있는 보통의 회사원들 중 더 나은 존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회사는 죽음도 합리화 시킬 수 있을 만큼 무서운 존재라고 작가가 경고하듯 보이는 이작품은, 돈에 묶여 자신을 잃어가는 보통사람들의 내면을 주인공 '그'를 이용하여 적나라하게 들추고 있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매개체를 이용해서 말이다.


컨설턴트 - 2010년 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임성순 지음, 은행나무(2010)


태그:#컨설턴트, #임성순, #구조조정,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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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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