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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드라마 <무신>의 몽골족 장수들.
 MBC 드라마 <무신>의 몽골족 장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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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에 나오는 동아시아 북방민족들은 흉포하고 야만스러운 이미지를 띠고 있다. MBC 드라마 <무신>에 나오는 몽골족도 마찬가지다. 몽골족 장수로 분장한 배우들은 어떻게든 그런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다. 

그런 이미지만큼이나, 북방 유목민들은 이름에서부터 천한 냄새를 풍긴다. 몽골을 지칭하는 한자어 몽고(蒙古)에서 '몽'은 '어리석다'란 뜻이다. 기원 1세기 이전까지 초원지대를 지배했던 흉노(匈奴)족도 그렇다. 흉노의 '노'는 노예나 노비를 의미한다.

당나라를 코너로 몰아붙였을 뿐만 아니라 라마불교라는 고도의 정신문화를 향유한 토번(吐藩)족을 지칭하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입 구(口)자가 들어간 데서 알 수 있듯이, 토(吐)라는 글자는 '토하다'란 뜻이다.

부여와 고구려의 선조인 예맥(濊貊)족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예'에는 '더럽다'란 뜻이, '맥'에는 '짐승'이란 뜻이 담겨 있다.  

예맥·몽골·흉노·토번족이 스스로 그런 글자를 만들었을 리는 없다. 중국 한족이 각각의 발음에 맞는 글자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일부러 혐오스러운 단어만 골라낸 것이다. 한족이 가장 압도적인 분량의 역사기록을 남겼기에, 그들이 만들어낸 표현들이 오늘날까지 통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보면, 동아시아 북방민족들이 그렇게 불리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까지 순수한 한족 출신으로서 동아시아 패권을 장악한 나라는 진나라·한나라·명나라 정도였다.

그 외의 패권국들은 북방민족 출신이거나 아니면 북방민족과 한족의 혼합국가였다. 게다가 역사상 최대·최강의 제국을 건설한 것은 몽골족이었다. 북방민족들도 한족처럼 풍부한 역사기록을 남겼다면, 후세 사람들은 그들을 '스마트함과 젠틀함'의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문화의 우열 가리는 기준, 상당히 '편파적'

 몽골초원의 풍경. 사진은 유목민들이 제사를 지낸 곳인 아오바오.
 몽골초원의 풍경. 사진은 유목민들이 제사를 지낸 곳인 아오바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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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 유목민들이 강력한 국가를 건설한 것은 그들이 군사력이 강했기 때문이지, 문화가 강했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문화의 우열을 잴 때 사용하는 기준의 상당수가 지극히 편파적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컨대, 화려한 건축물이 많은가 적은가를 잣대로 농경민과 유목민의 우열을 평가한다면, 이것은 매우 공정하지 못한 태도다. 건축물에 별다른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는, 농경민의 화려한 건축물은 오히려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일 뿐이다.

만약 농경민과 유목민 양쪽에 똑같이 통할 수 있는 잣대를 사용한다면, 유목민의 문화가 농경민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판단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런 기준의 하나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위생 수준이다.

유목민들의 위생관념이 상당한 수준을 자랑했다는 점은, 13세기 후반에 몽골을 여행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도 나타난다. 다음은 마르코 폴로가 증언하는 몽골의 궁중연회 장면이다.

"여러분은 카칸(몽골 황제)에게 음식과 음료를 바치는 사람들 가운데는 신하들도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 말하건대, 그들은 비단과 금실로 만든 아름다운 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린다. 그것은 그들의 숨과 냄새가 밖으로 나와 카칸의 음식과 음료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카칸에게 먹을 것을 바치는 사람들은 고급 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려야 했다. 자신들의 숨과 냄새가 음식에 밸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음식을 바치는 사람들도 이렇게 조심했다면,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보다 훨씬 더 조심했을 것이다.

이런 장면은, 보이지 않는 공기를 통해서도 위생적으로 나쁜 영향이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을 몽골인들이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도의 위생 관념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리석을 몽(蒙)자를 갖고 몽골을 비하한 중국 한족의 황실 연회가 이보다 더 깔끔했을까.

몽골인들이 '깔끔'을 떠는 민족이었다는 점은 그들이 흰색을 유난히 숭상했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몽골인들은 신년 축제 때는 흰옷을 즐겨 입었고, 선물을 고를 때도 흰색을 선택하곤 했다. 흰색을 유지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청결 관념이 필요하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19세기 초 프랑스, 분뇨 때문에...

 몽골초원의 천막집인 바오. 사진 속의 바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부분적으로 개조한 것이다.
 몽골초원의 천막집인 바오. 사진 속의 바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부분적으로 개조한 것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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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은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샤워 장면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 서양인들은 꽤 청결한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받은 것이다.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목욕을 했던 당시의 한국인들로서는 그런 느낌을 가질 만도 했다.

요즘 실정을 보면 서양인들이 한국인들보다 청결하다고 보기도 힘들지만, 서양인들이 이 정도로나마 깔끔해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서양인들, 특히 유럽인들이 과거에 얼마나 더러웠는가를 살펴보면, 공기가 음식에 미치는 영향까지 걱정했던 몽골인들이 얼마나 청결했는지를 절감하게 될 것이다.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유럽인들은 분뇨를 길가나 하천에 그냥 내다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프랑스 파리의 경우에는, 주민들이 버리는 배설물 때문에 거리가 검게 빛날 정도였다. 그래서 여성들은 거리를 지날 때 치마를 걷어 올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모습은 분뇨를 비료로 재활용한 동아시아의 풍경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유럽인들이 분뇨의 분리 처리를 추진한 것은, 분뇨로 인한 식수 오염이 콜레라 유행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한 19세기 중반부터였다.

또 19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인들은 씻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씻는다 해도, 물을 끼얹어 샤워를 하는 수준이었다. 몸을 물속에 담그는 목욕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1856년 현재, 프랑스 파리의 인구는 110만 명이었다. 파리 시내에서 공중목욕탕을 갖춘 건물은 130개였다. 한 해 동안, 이런 시설의 이용 횟수는 216만 8500회였다. 1인당 2회밖에 목욕을 하지 않은 것이다. 자기 집에서 목욕을 했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런 시설을 갖춘 가정집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1인당 2회가 된 것은 극소수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목욕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생활수준이 높은 도시 상공업자들이 평균을 높인 것이다. 대부분의 파리 시민들은 1년 내내 목욕을 하지 않았던 셈이다.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유럽에서 향수가 특히 발달한 것은 이처럼 몸 씻기를 기피하는 문화 때문이었다. 몸에서 나는 악취를 숨기려고 향수를 뿌렸던 것이다.

19세기까지도 유럽인들의 위생수준이 형편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공기와 위생의 상관관계에 주목한 동아시아 북방민족들의 위생관념을 다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수준이 형편없는 사람들이었다면, 그런 고도의 위생관념을 갖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몽골족을 비롯한 동아시아 유목민들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흉포하고 야만스러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이 오랫동안 동아시아 패권을 장악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극에서 몽골족을 연기하는 배우들도 앞으로는 좀더 스마트하고 좀더 젠틀한 이미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유목민들이 고려를 침공한 것은 분한 일이지만, 그렇더라도 동아시아와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지배했던 그들의 객관적 역량을 좀더 올바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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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101.9 (목)11시25분경. (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노비들,왕의 여자,철의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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