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된 삶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다. 영화 스토리를 한 줄로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조금 부연 설명을 하자면 상류층 가문과 결혼해서 건실한 가장과 잘 자란 아들, 딸이 있고 부족함 없는 우아한 생활을 하는 여인이 있다. 그런데 선망의 백그라운드를 가진 여인이 한순간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고 이 모든 걸 내팽개친다.

이 역할을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바꿔도 영화나 소설, 드라마에서 숱하게 우려먹은 레퍼토리건만 질리지 않았다. 감독이 미술을 무척 잘 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색감의 멋진 조화와 영화 군데군데 심어놓은 예술작품들과 이미지를 활용한 배경과 심리묘사가 탁월했기 때문이다. 다소 고전적인 전개나 묘사방식이 뻔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단순한 애정 영화에 머물지 않는 고도의 연출력과 상징과 비유가 매혹적이다.

중년의 엠마를 격정에 빠뜨린 아들의 친구 안토니오는 평범하다. 멜로 영화의 정형화된 꽃미남이나 야수남도 아니고 물렁해 보이고 그냥 착하고 순박한 타입이다. 이런 안토니오가 무슨 필살기(?)가 있나 봤더니 요리를 기가 막히게 잘한다. 엠마가 안토니오에게 호감을 갖고 남성을 느끼게 된 건 바로 요리, 그러니까 식욕(食慾)이다. 그 다음에 성욕을 느끼고 관계를 발전시킨다. 성욕을 식욕(기타 대등한 욕망들)의 대체재냐 보완재냐, 독립재냐 종속재로 보느냐에 따라 영화 장르가 달라질 수 있는데 좋은 예가 있다.

에로 영화의 고전인 투문 정션<Two Moon Junction>에서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첫 장면은 울퉁불퉁한 상체를 자랑하듯 야수 같은 이미지의 웃통을 벗은 모습이다. 이걸 보면 잘만 킹 감독은 본능 중에서도 '성(성욕)'에 집중한 것 같다. 아마 성욕을 독립재로 보지 않았을까. 반면에 푸는 방식과 다른 결말로 나가지만 이안 감독의 <음식남녀>도 '아이엠 러브' 와 비슷한 담론을 품고 있다. 식욕과 성욕은 본능의 쌍두마차라는 화두를 멋지게 비주얼적으로 풀어냈고, <아이엠 러브>도 같은 류의 영화들과 비슷한 주제로 끝나는 것 같다. 사랑(원하는 것/본능)을 찾아, 본능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게 행복이라는.

그런데 유독 <아이엠 러브>가 여타 영화들과 다른 인상을 준 것은 엔딩씬의 모호함이자 감독의 이중 메시지라 본다. 엠마는 화려하고 럭셔리한 옷을 벗어던지고 간편한 추리닝 차림으로 가족, 명예, 친구, 재산 등 모든 것을 털어버린 채 집을 떠난다. 왜 추리닝일까. 드레스복이나 상류층의 옷은 스타일리쉬하지만 노출이나 옷매무새, 몸매에 항상 신경 써야 하는 '불편한' 옷이다. 반면 추리닝은 활동하기에도 편하고 몸이 편한 옷이다. 엠마가 추리닝을 선택했다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과 인식 대신 자기에게 맞는 옷(선택)을 골랐다는 의미다. 이거야 흔한 상징이라 누구나 쉽게 눈치 챘겠지만, 그 다음 장면이 예사롭지 않다.

동굴에서 엠마와 안토니가 같이 있다. 그것도 뿌옇게 안개가 쳐진 듯한. 동굴은 고대 이래로 인류에게 근원을, 여성의 자궁을 상징한다. 이것은 근원으로의 회귀일까. 한편으로는 엠마가 아들 뻘 안토니오와 오이디푸스처럼 근친상간을 범하는, 아들의 죽음으로 대체재를 찾으려는 근친상간의 욕망을 은연중 드러낸 건 아닐까. 아주 근원적인 공간에서 금기된 사랑, 자궁처럼 따뜻한 곳에서 어머니가 아닌 한 여성이라는 역설.

뿌연 안개가 낀 동굴은 어쩌면 엠마의 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의 주체는 선명하지 않다. 안토니오의 꿈일 수도. 아니면 엠마가 안토니오를 만나 추리닝 차림으로 가출하는 게 동굴에서 꾸는 꿈이라면? 이게 꿈이라면 장자의 호접몽처럼 일장춘몽의 불륜이고 엠마는 동굴에서 나오는 순간 가정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금기된 사랑이나 본능을 쫓는 것도 꿈에서나 가능하다는 얘기일까. 동굴 속의 연인은 아름답게 보일 진 모르지만 언젠가는 동굴에서 나와야 한다. 그러면 노곤한 현실의 삶이 기다린다. 스크린이 내리면 영화를 보며 꾼 꿈에서 깨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관객처럼.

우리는 같은 현실에 있다. 하지만 아무도 같은 현실을 사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같은 현실에서 함께 살고 있는 꿈을 꾸고 있는 거니까. 뭐, 이런 얘기인가. 감독의 의도를 따져보니 서늘하게 만드는, 꿈 같은 영화다.

영화 아이엠러브 I AM LOVE 근친상간 음식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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