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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님이 당선되고 나서 '마을'을 가장 중요한 시정의 방침으로 삼겠다고 했을 때 서울시 전역이 술렁거렸다. 놀랍기도 하고, '이제 우리의 가치를 알아주는구나' 기대감이 컸다. 동시에 걱정도 많이 했다. 숱한 아이디어와 엄청난 추진력을 가진 박원순 시장, 서울시 공무원들과 마을의 호흡이 부딪히지 않을까."

1994년 공동육아 협동조합 설립을 시작으로, 생활협동조합, 대안학교, 공동체 라디오, 마을극장, 의료생활 협동조합까지 '마을공동체 만들기'를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는 서울 마포구의 성미산 마을 '주민', 유창복 성미산 마을극장 대표의 말이다. 취임 이전부터 마을공동체 복원에 큰 관심을 기울여 온 박원순 서울시장식 '마을공동체' 사업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잘 보여준다.

서울시는 지난 2일 ▲ 마을공동체 육성을 위한 토대 만들기 ▲ 함께 돌보는 복지공동체 ▲ 함께 만들고 소비하는 경제 공동체 ▲ 신나고 재미있는 문화공동체 등 4개 시책, 35개 사업으로 구성된 '마을 공동체 지원 사업'을 발표했다.

급격한 도시화와 인위적인 개발 속에 사라져 버린 '사람'의 가치와 '신뢰의 관계망'을 되찾는 것이 사업의 목표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총 예산 725억 원을 투입한다. 오는 6월에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가 개관할 예정이다.

"담당 공무원, 5년쯤 근무하게 했으면"

박원순 서울시장이 8일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마을공동체 시민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8일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마을공동체 시민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서울시 언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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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대회의실에서는 서울시 마을공동체의 비전과 방향 설정을 위한 마을공동체 시민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유창복 대표, 구자인 전라북도 진안군 마을만들기 팀장을 비롯한 '마을 공동체 만들기' 전문가들이 패널로 참석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토론회를 경청했다. 토론회 사회는 정석 가천대학교 도시계획학과 교수가 맡았다.

전문가들은 마을공동체 만들기 과정에서 '민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구자인 팀장은 "우리 사회에 과연 민관협력이라는 토대가 있는가, 훈련과정이 있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여전히 소통이 잘 안 되고 있는 현실을 전제로 민관협력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구 팀장은 "공무원들은 주민을 불신하고 주민들 역시 마찬가지"라면서 "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왜 마을 만들기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창복 대표 역시 "민관이 협동한다는 일이 참 어려운 것 같다"고 말을 받았다. 유 대표는 "일 년에 서너 번 회의 몇 번 하는 게 아니라 부분별로 전문가와 주민들이 함께 모여서 제대로 된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마을공동체 지원 센터의 경우 활동가들 중심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은데, 공무원도 풀뿌리의 움직임을 잘 알아야 하지만 풀뿌리도 관이 움직이는 시스템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 대표는 또한 "그동안 민과 관과의 관계는 '거버넌스(협치)'라기 보다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면서 "마을공동체 사업 계획을 세울 때부터 주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윤혁경 A&U 디자인그룹 대표는 '민'과 '관'의 소통이 어려운 이유로 시간의 제약, 실적 위주 평가 등을 들었다. 서울시 공무원 출신인 윤 대표는 "1999년 마을 만들기 사업 당시 패션상가 주인과 음식점 상가 주인을 한 자리에 앉아서 대화하는 데 3개월이 걸렸다, 그것도 시민단체들한테 부탁해서 성사가 됐다"면서 "공무원과 주민이 대화하는 것도, 주민들 상호간의 대화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대표는 "공무원들 입장에서 너무 의욕을 갖고 덤비면 안 된다"면서 "조급증을 안 가졌으면 좋겠다"고 충고했다. 윤 대표는 박 시장에게도 "씨앗을 뿌리는 역할 정도만 한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면서 "결과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민관협력'을 위해 윤 대표는 '순환보직제' 문제 해결을 주장했다. 그는 "주민들은 담당 공무원을 기관장으로 생각한다"면서 "한 5년쯤 근무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순간, 토론회장에 있던 서울시 공무원들이 술렁였다.

박원순 시장 "마을공동체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

'예산지원'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구자인 팀장은 "돈이 독이 될 때가 있다"면서 "행정이 적절하게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민들이 꼭 필요할 때 예산이 지원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면서 "예산 규모를 가능하면 적게 하고, '상향식 방식'으로 예산을 지원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유나경 코레스 엔지니어링 건축사무소 소장은 "주민들을 만나보면 다양한 분야에 다양한 요구가 나온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을 진행하는 중에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포괄적으로 쓸 수 있는 예산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유창복 대표 역시 "마을 사업이라는 게 어디에서 어디로 튈지 모른다, 반찬가게에서 시작해서 학교로 갈 수도 있다"면서 "꼬리표가 붙은 예산도 필요하겠지만 바구니에 담아놓고 필요하면 필요한 만큼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회가 끝나자, 박원순 시장이 '총평'을 위해 마이크를 들었다. 박 시장은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회문제들은 결국 공동체가 붕괴되어 있기 때문"이라면서 "마을공동체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서울에서의 마을 공동체 사업은 삶의 질을 생각하기 보다는 아파트를 통해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고, 더 좋은 자동차를 탈 것인가 관심을 모았던 시대로부터 큰 변화의 첫 출발"이라면서 "풀뿌리가 중심이 되는 사업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그:#마을공동체, #박원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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