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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유 광장에 인접한 거리에서 한 가족이 리본을 바람에 날리며 축제 분위기에 빠져 있다.
 바스티유 광장에 인접한 거리에서 한 가족이 리본을 바람에 날리며 축제 분위기에 빠져 있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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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떠났다"... 파리 지하철은 축제의 도가니

6일 오후 9시, TV에서 프랑소와 올랑드 사회당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모습을 확인한 후 거리로 나섰다. 이미 2시간 전부터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는 바스티유 광장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바스티유를 경유하는 지하철 5호선에는 수많은 젊은이들로 발을 디딜 틈이 없이 들어차 완전 축제 분위기였다. 평소 파리 지하철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무룩한 파리지엥들의 표정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하철 구석에 그룹을 형성하고 있던 젊은이들은 좌파전선기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멜랑숑을 지지했던 젊은이들 같은데, 모두 합창으로 "il est parti, il est parti(그가 떠났다, 그가 떠났다)"를 외치고 있었다. 그러자 반대쪽 지하철 안에 있던 흑인 여자가 맞장단을 치면서 "이민자 만세, 이민자 만세"라고 외치며 흑인식의 독특한 멜로디로 담아냈다.

젊은이들 쪽에서 다시 'Revolution(혁명)'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고 인터내셔널가가 합창으로 불려졌다. 지하철 안은 갑자기 공동의 적을 힘들게 몰아낸 후에 가슴을 쓸어내며 기쁨의 환성을 지르는 한 가족이 된 듯한 분위기였다.

각 정거장 역마다 새로운 인파가 쏟아져들어와 지하철 승객은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이 중의 2/3가 바스티유역보다 한 정거장 앞에서 다들 내렸다. 아마 바스티유역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어 미리 내리는 듯 싶었다. 기자도 따라 내렸다.

적색기와 유럽 연합기를 흔들며 환호를 지르는 젊은이들.
 적색기와 유럽 연합기를 흔들며 환호를 지르는 젊은이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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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 깃발 흔들며 군중에 환호하는 아파트 주민들

5월이지만 프랑스의 봄은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차가운 밤 공기가 느껴지는 오후 9시 30분, 바스티유 광장으로 향하는 모든 거리거리마다 인파로 붐볐다.

가까스로 광장에 근접했으나 콘서트 무대가 차려진 광장 중앙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할 수 없이 바스티유를 등지고 시청 쪽으로 향하는 셍-앙투완느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수많은 인파가 이 거리에서도 속속 모여들고 있었는데 "on l'a vire (우리가 그를 몰아냈다)"라든가 "사르코 살인자" "사르코 끝장났다" 등의 구호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일부 아파트에서는 주민들이 창가에 적색기를 흔들며 나름대로 거리 집회에 참여했는데 많은 군중들이 집 앞을 지나면서 이들에게 답하는 흐뭇한 광경이 이루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자도 꿈 꾸듯 한참을 가고 있는데 보도 위에 앉아서 구걸하는 노인네가 한 분 보였다.

무심코 지나치다가 이런 축제 분위기 속에서 혼자 구걸을 해야 하는 노인네가 안쓰러워 되돌아가서 동전 한 잎을 넣어주었다. 그런데 기자뿐만이 아니었다. 젊은 여학생 둘이서 가던 길을 되돌아 오면서 동전을 넣어 주고 가기도 했다. 분위기가 인간이 원래 지니고 있는 선심을 되찾게 해준 걸까.

바스티유 광장으로 향하는 셍 앙투완느 거리에 몰려나온 인파.
 바스티유 광장으로 향하는 셍 앙투완느 거리에 몰려나온 인파.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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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웃음 산 사르코지의 패배연설

기자는 얼마 후 거리로 뛰어 나온 프랑스 친구들과 합류했는데 하나 같이 사르코지의 연설이 화제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사르코지는 대선 패배가 알려진 직후인 오후 8시 30분경 UMP(대중운동연합) 당원들을 모아놓고 일종의 패배 연설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연설을 했다. 요점은 "이번 패배는 모두 본인의 탓이다. 어려운 시기에 엄청난 직을 맡아야 하는 차기 대통령에게 행운을 빈다. 본인은 이제 대통령 직을 떠나지만 이제 여러분 입장에서 사랑하는 우리 나라를 위해 다시 일할 것이다" 등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친구들의 화제가 된 것은 사르코지가 마지막에 한 말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여러분들이 아낌없이 내게 준 모든 것을 생전 보답할 길이 없을 것이다"라고. 그런데 프랑스 친구들의 해석은 이랬다. "당연하지. 지난 5년 동안 서민들의 피땀 어린 돈을 세금으로, 이런저런 이유로 마구 걷어갔으니 그 돈 다 갚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프랑스인들의 유머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리볼리 거리를 통과해서 파리 4구 구청 앞에 이르니 대형 화면이 설치되어 있는데 대선 결과 방송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11시에 가까워가고 있었는데 기자가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던 바스티유 대광장에서는 콘서트의 열기가 한참이었다.

대선 결과 발표 당시 자신의 선거 지역인 프랑스 중부 지역인 튈에 있었던 올랑드 당선자가 비행기를 타고 막 파리에 도착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바스티유 광장에는 밤 12시 정도에 도착할 것이라고 알려준다.

갑자기 TV의 음향이 멎어지면서 파리 4구 구청 직원이 마이크를 잡고 4구 투표 결과를 알려준다. 투표율 82.98%로 올랑드의 지지율이 54.4%, 사르코지의 지지율이 45.6%였다. 우파가 집권하고 있는 현 정권에서도 들라노에 파리시장이 사회당 출신인 것처럼 파리는 좌파 인구가 가장 많아 파리 20구 중에서 13개구가 좌파이다. 그러므로 4구에서 사회당이 승리한 것이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파리 4구 구청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서 바스티유에 모인 군중과 막 파리에 도착한 올랑드의 비행기의 모습이 잡혀있다.
 파리 4구 구청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서 바스티유에 모인 군중과 막 파리에 도착한 올랑드의 비행기의 모습이 잡혀있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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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차가운 샤워'를 당하다

시각은 이제 밤 11시가 넘었다. 4구 구청의 대형 화면도 꺼진 상황에서 친구들과 밤 12시까지 기다려 올랑드가 바스티유 광장에 도착하는 걸 보나마나로 의견을 나누다가 일단 카페에 들어가서 다리도 쉬고 목도 축이자는데 합의를 보았다.

바스티유 근처에 위치한 모든 카페가 만원이어서 샤틀레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 카페에 들어가니 대형화면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음악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고 카페에 앉은 고객들도 선거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보였다.

불과 지하철 세 정거장 거리밖에 안 떨어진 곳인데 여기는 바스티유의 열광적인 혁명 분위기와는 전혀 상관 없는 재미없고 진부한 평상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맥주를 나르는 여종업원에게 대선 프로그램으로 바꾸어 달라고 부탁했지만 우리가 카페에서 나올 때까지 프로그램은 바뀌지 않았다. 불어 표현으로 '차가운 샤워'를 당한 느낌이었다면 과장일까?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프랑수아 올랑드가 7일 새벽(현지시각) 파리 바스티유 광장에 모인 군중 앞에 나서 연설을 하고 있다.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프랑수아 올랑드가 7일 새벽(현지시각) 파리 바스티유 광장에 모인 군중 앞에 나서 연설을 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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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틀레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하니 밤 12시 30분에 가까웠다. TV를 켜니 올랑드가 그제서야 바스티유 광장에 도착하고 있었다. 그 시각에도 무수히 운집한 군중을 헤치고 무대에 올라선 올랑드가 간단한 연설을 하였다. 그의 연설은 지금까지 그가 무수히 내놓은 공약의 반복에 지나지 않았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날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사르코지가 물러갔다는 데 우선 안심을 표했다.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된 올랑드는 그동안 물심 양면으로 많이 상처입은 프랑스인들을 어떤 정책으로 대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태그:#올랑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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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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