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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진보신당의 후보로 19대 총선 구로을에 출마한 심재옥씨는 "내 이웃이 국회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역주민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했지만 선거기탁금때문에 출마를 몇번이나 고민해야 했다.
▲ 19대 총선 구로을에 출마한 진보신당 심재옥 후보 진보신당의 후보로 19대 총선 구로을에 출마한 심재옥씨는 "내 이웃이 국회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역주민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했지만 선거기탁금때문에 출마를 몇번이나 고민해야 했다.
ⓒ 심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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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옥(48, 여)씨는 이번 19대 총선에 진보신당 후보로 서울 구로을에 출마했다. 그는 "노동자의 삶을 살아온 내가 국회에서 노동자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자신"이 있어 총선에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1500만 원의 선거기탁금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심씨는 후보등록 하기 전까지 후원금이 충분히 모아지지 않아 등록을 고민했다. 그는 며칠간 지인들과 지지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가까스로 모은 후원금으로 기탁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탁금을 내니 선거운동 자금이 얼마 남지 않았다. 포스터나 현수막 같은 기본적인 것만 제작하고 최대 16페이지까지 만들 수 있는 공보물은 4페이지만 만들기로 했다. 다른 후보들이 하는 광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선거를 잘 치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19대 총선에 청년당 비례대표로 출마한 우인철 후보는 "청년들의 문제를 내 손으로 해결 한다"는 각오로 출마를 결심했다. 하지만 "자금이 부족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청년당을 알리지 못해 아쉬웠다"고 말했다.
▲ 19대 총선에 출마한 청년당 우인철 후보와 당원들 19대 총선에 청년당 비례대표로 출마한 우인철 후보는 "청년들의 문제를 내 손으로 해결 한다"는 각오로 출마를 결심했다. 하지만 "자금이 부족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청년당을 알리지 못해 아쉬웠다"고 말했다.
ⓒ 우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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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인철(27, 남)씨는 새로 창당한 청년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이번 총선에 출마했다. 우씨는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손으로 해결하고 싶다"고 도전 이유를 밝혔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는 컸지만 27살인 그에게 1500만 원의 돈은 부담이었다.

기탁금 1500만 원 내고 나니... 선거운동할 돈 없다

우씨는 과거 아르바이트로 벌어 둔 돈과 부모님께서 빌려주신 돈으로 절반 정도를 마련하고 나머지 절반은 그 또한 주변사람들에게서 구했다. 후원을 받는 대신 그들에게 돈을 빌리는 방법을 택했다. 청년당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선거운동을 위해 현수막은 직접 달고, 포스터는 직접 그렸다. 공보물은 전국 가정의 10% 밖에 보내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청년당을 알리고 싶었지만 금전적인 어려움이 컸다.

두 사람은 모두 선거에서 낙선했다. 그들은 십시일반 모은 소액 후원으로 다른 후보들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금액으로 선거를 치러야 했는데, 그중의 3분의 1을 기탁금으로 내야 했다. 그래서 그들 같은 군소정당 후보자와 무소속 후보자들은 선거기탁금제에 문제를 제기한다. 선거기탁금이 너무 비싸 출마하는데 부담이 된다는 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기탁금제가 "후보자의 난립과 선거과열을 방지하고 입후보의 성실성 담보 한다"고 말한다. 성실성이 담보되지 않은 후보가 선거분위기를 망쳐놓거나, 선거관리비용·업무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정당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후보자의 성실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탁금이 없으면 후보자 난립으로 인해 선거 관리비용이 더 들어가고 선거판이 혼탁해진다"라며 기탁금이 필요하다는데 힘을 보탰다.

하지만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후보들이 많은 것 자체로 크게 폐해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며 "유권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많아지는 장점이 있고, 선거 관리 입장에서는 투표용지를 더 많이 인쇄하는 것 말고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후보자가 난립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후보자 난립막기 위해 필요?

'1500만 원'이라는 액수가 적정한 수준인가에 대한 논란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1년 7월 2000만 원 기탁금 조항에 대해 "현행 선거법상 2000만 원의 후보자 기탁금은 일반 국민의 경제력으로는 쉽게 마련할 수 없는 돈이고, 반환기준도 지나치게 높아 후보자의 입후보를 가로막고 있다"며 "기탁금은 국민의 피선거권을 제한하지 않는 범위에서 불성실한 입후보 차단을 위한 최소한의 액수로 결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판결로 인해 기탁금을 1500만 원으로 낮췄다. 그러나 500만 원을 낮춘 법에 대해 다시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그러자 헌법재판소는 2003년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에 관한 위헌 확인소송에서 "(기탁금은) 어느 정도 부담을 느껴 선거에 입후보할 것인지의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달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1500만 원은 다른 재산이 전혀 없는 통상적인 평균임금을 수령하는 도시근로자가 그 임금(2003년 당시 251만1545원)을 6개월 정도 저축하면, 어렵지 않게 모을 수 있는 정도"라면서 '적정'하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의 이 같은 결정을 두고 2000만 원은 문제고 1500만 원은 괜찮다는 것이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 영국은 약 500파운드(우리나라 돈으로 약 92만 원)이고, 미국은 등록비용(filling fee)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주별로 50달러(약 5만7000원, 켄터키)에서 3400달러(약 385만 원, 델라웨어) 정도다. 또한 캐나다는 1000캐나다달러(약 115만 원), 호주는 상원의원의 경우 700호주달러(약 81만 원)만 내면된다. 해당국가의 임금 수준이 우리나라와 다른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우리나라는 후보자나 정당의 경제력을 무시하고 모든 후보자가 일괄적으로 1500만  원을 선거기탁금으로 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정당이나 후보자들은 이에 큰 부담을 느끼고, 선거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돈 자체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정치적 기반이 없고 인지도가 낮은 후보자와 정당은 선거유세나 공보물, 광고 등을 통해 유권자들과 보다 많은 접촉을 해야 득표가 늘어난다. 하지만 자금이 부족한 후보들은 이런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표의 확장의 한계가 있다. 이는 새로운 정치 신인이나 정치 집단의 성장을 가로막는 한 요인이 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실험적인 정당이 출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기탁금 반환 기준도 높다. 선거법에는 '유효투표총수에서 15% 이상을 득표한 경우에는 기탁금 전액', '유효투표총수에서 10% 이상~15% 미만을 득표하면 기탁금의 절반'을 반환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득표율이 10% 미만이면 기탁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 비례대표의 경우는 후보자 중 한 명이라도 당선되면 나머지 후보들도 선거기탁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정치적 조직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는 군소정당의 후보나 무소속 후보는 기탁금 반환기준 이상으로 득표하기가 쉽지 않다. 19대 총선 후 선관위에 지역구 후보자 선거비용 보전 청구를 한 사람은 전체 출마자 927명의 절반 수준인 574명이다. 한편 비례대표에서 당선자를 낸 정당은 전체 20곳 중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등 4곳에 불과하다.

심씨와 우씨 같은 군소정당의 후보들은 결과적으로 '선거비용의 부족 → 표의 확장 한계 → 기탁금 반환 요건 미달 → 경제적 위기'이라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힌다. 어렵게 마련한 기탁금을 돌려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후보자는 출마에 훨씬 큰 부담을 안게 되고, 출마한다고 하더라도 10% 득표 이하로 탈락하면 더 큰 경제적인 위기를 맞고 지속적인 정치 활동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경제 능력 없는 후보의 피선거권 위축

선거기탁금 제도는 경제적 능력이 없는 후보의 피선거권을 위축시킨다. 심씨의 "이웃의 평범한 사람이 국회로 들어가는 모습을 주민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을 이루기에 1500만 원의 기탁금은 이 돈을 마련하기 어려운 사람들, 특히 비정규직 근로자나 청년들에게 정치의 높은 문턱으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도 위에 언급한 같은 판결에서 "기탁금을 납부하지 아니하면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선거에 자유로이 입후보할 자유가 제한"된다며 이 같은 점을 인정한다.

19대 총선은 끝났다. 하지만 이번 선거가 마지막 선거는 아니다. 비정규직 해결, 보편적 복지, 경제민주화 우리 국민들이 원하는 정책들은 너무나 많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취업하지 못한 청년 같은 대다수의 국민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우리의 대표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돈이 없다는 이유로 선거에 참여하기도 어려운 현재 상황은 곤란하다. 정치의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


태그:#19대 총선, #선거기탁금, #청년당, #진보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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