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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배들이 한가롭게 떠 있는 공지천유원지. 오른쪽 붉은 지붕 건물이 '이디오피아의 집'.
 오리배들이 한가롭게 떠 있는 공지천유원지. 오른쪽 붉은 지붕 건물이 '이디오피아의 집'.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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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무르익고 있다. 진달래꽃과 개나리꽃이 지고, 그 자리에 철쭉이나 개나리꽃만큼이나 노오란 애기똥풀이 자라고 있다. 나뭇잎은 연한 녹색에서 점점 더 짙은 녹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한낮의 기온이 때때로 30도 가까이 치솟아오를 때도 있어 벌써 여름에 다다른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봄은 봄이다. 아침저녁으로 싸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반팔 소매 옷을 입고 돌아다니기에는 아직도 어딘가 모르게 서늘한 기운이 남아 있다. 녹음이 짙어지고 날이 따뜻해져서인지 자전거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금이 바로 자전거여행을 떠나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일 년 사계절, 날씨 걱정하지 않고 자전거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날이 그렇게 많지 않다. 초봄에는 꽃샘추위와 황사에 시달려야 하고, 여름에는 수시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아야 하는 데다 비가 내리지 않을 때는 머리꼭지가 타들어가는 것 같은 불볕더위와 싸워야 한다.

가을 역시 자전거여행을 떠나기에 좋은 계절이기는 하다. 하지만 가을에는 태풍이라는 복병이 있어 날을 잘 골라잡아야 한다. 겨울에는 맘 놓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그런 반면에, 봄이 한창 무르익고 있는 요즘에는 언제든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공지천유원지에서 시작되는 단풍나무길. 오른쪽은 의암호.
 공지천유원지에서 시작되는 단풍나무길. 오른쪽은 의암호.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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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지로 거듭나는 호반의 도시, 춘천

춘천이 자전거여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서울에서 춘천까지 오가는 복선전철이 개통된 이후, 전철에 자전거를 싣고 강촌이나 춘천으로 자전거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부쩍 눈에 띈다. 지난 해 말 북한강 자전거길이 열리고 나서는 그 수가 더 많아졌다.

가평역에서 고슴도치섬으로 알려져 있는 위도 아래 신매대교까지 자전거도로가 깔렸다. 물길을 따라가는 자전거길이라 일반 도로 위를 달리는 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경쾌한 맛과 멋을 즐길 수 있다. 사실 이곳은 북한강과 의암호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북한강가에 자전거도로를 놓기 오래 전부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곳이다.

소양2교에서 바라다본 봉의산. 녹색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소양2교에서 바라다본 봉의산. 녹색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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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또 의암호를 순환하는 100km 자전거도로를 만들겠다고 해서 또 떠들썩하다. 의암호 주변 자전거도로 중 일부 단절구간을 연결하는 공사를 벌여 의암호 전체를 순환하는 자전거도로를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하면 강촌과 춘천을 연결하는 자전거도로가 모두 100km 가량이 된다.

이 자전거도로를 완성하겠다고 하면서, 춘천시는 올해 10억 원을 들여 의암공원에서 어린이회관까지 수상도로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소식은 좀 씁쓸한 구석이 있다.

올해 춘천시는 8억 원의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유치원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 강원도에 18개 시군이 있는데 그 중에서 유일하게 무상급식을 거부한 지역이 춘천시다. 그런데 10억 원을 들여 강물 위를 지나가는 자전거도로를 건설하겠다고 하니, 마냥 반가워 만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소양2교를 건너서 바라본 의암호. 아래 시멘트길은 소양2교 밑을 가로지르는 산책로 겸 자전거도로다.
 소양2교를 건너서 바라본 의암호. 아래 시멘트길은 소양2교 밑을 가로지르는 산책로 겸 자전거도로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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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천유원지에서 맛보던 커피 맛은 잊었지만...

북한강 강줄기를 따라 자전거도로가 놓이면서 관심을 좀 덜 받는 여행길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춘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여행 코스로 공지천에서 신매대교를 오가는 구간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강물 위로 자전거도로를 건설한다며 아무리 법석을 떨어대도, 이곳의 여행길에서 만나는 풍경만큼 정겹고 낭만적인 곳은 또 없을 듯싶다.

한두 번 가보고 나서는 금방 잊히는 여행길이 있는 반면에, 이곳은 수차례를 오간 뒤에도 좀처럼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거리는 약 6km, 길이는 짧지만 춘천의 풍경을 상당히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여행 코스라고 할 수 있다.

공지천 유원지는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다. 춘천으로 여행을 온 연인들이 한 번쯤 들러가는 커피집 '이디오피아의 집'도 거의 옛 모습 그대로다. 이 집이 문을 연 것은 1968년, 올해로 44년째를 이어오는 매우 유서가 깊은 커피 전문점이다.

그때 이디오피아산 원두커피를 선보이면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1990년 후반 쇠락의 길을 걷다가 2009년 들어 외벽에 벽화를 그려넣는 등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건물 자체는 그대로여서 옛날 풍경을 떠올리기 어렵지 않다.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 기념관.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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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오피아의 집에서 20여m 떨어진 거리에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기념관'이 있다. 2007년 춘천시에서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한 에티오피아군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아주 소박한 박물관이다. 건물 모양은 에티오피아 전통가옥 양식을 본떴다.

건물 내부엔 에티오피아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 과정과 전공 등을 설명하는 그림판들과 에티오피아 커피와 관련한 문화와 풍습 등을 소개하는 물건과 벽화 등이 전시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에티오피아 정부는 황실근위대로 1200여 명 규모의 1개 보병대대를 편성해 한국에 파병했다. 이 보병대대는 미군 수송선을 타고 21일이나 되는 긴 항해를 한 끝에 1951년 5월 6일 아침 부산항에 도착했다. 대대 병력은 1년 단위로 교체됐고, 1965년 3월 1일 철군했다. 이 대대는 주로 강원도 지역에서 전투를 치렀다. 그것이 인연이 돼 춘천시에서 기념관을 건립했다. 춘천에 와서 한국전쟁 당시 에티오피아 군인들이 치른 희생을 기억하는 것도 뜻 깊은 일이다.

걸어도 좋고, 자전거를 타고 가도 좋은 의암호 나들길

의암호 나들길 표지판.
 의암호 나들길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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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천 유원지에서 못 보던 팻말 하나가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의암호 나들길' 표지판이다. '봄내길 4코스'라는 명칭이 덧붙은 걸로 봐서, 춘천시에서 공식적으로 내세운 도보여행 길로, 봄내길의 일부 구간에 의암호 주변 산책로가 포함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길은 여행을 하는 동안 내내 의암호를 끼고 달리는 데다 도로 한편으로 수령이 꽤 오래 된 단풍나무들이 길게 늘어서 있어 풍경이 꽤 아름답다. 호수 너머로는 호수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점점 더 짙은 녹색을 띠어 가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 광경이 파노라마 사진으로도 다 보여줄 수 없을 만큼 장쾌하다.

이런 길에서는 마냥 페달만 밟을 수는 없다. 속도를 줄이거나 때때로 자전거에서 내려 쉬어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 길은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겸한 곳치곤 도로가 그다지 넓지 않아 자전거를 탈 때 조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길은 한동안 의암호를 둘러싼 둑 위를 달리다가 중도선착장 부근에서부터는 도로 옆 인도 위를 달리게 된다. 인도와 자전거도로가 서로 분리가 되어 있지만, 쓰임새에는 별 차이가 없다. 그래도 길은 여전히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다.

중간에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소양강처녀 동산이 나온다. 언제 봐도 '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동상이다. 소양2교를 넘으면서 다시 호숫가에 바투 붙은 자전거도로가 나온다. 우레탄을 깔아 길이 아무 폭신폭신하다. 원래는 마을 주민들을 위한 산책로로 만들어진 길임을 알 수 있다.

이 길은 원래 호숫가로 하얀 목책이 서 있었는데 지난 해 쇠로 만든 봉으로 울타리를 고쳐 세웠다. 하얀 목책에서 약간 목가적인 풍경을 느낄 수 있었는데 조금 아쉽다. 예전에 중간 중간 나무토막이 부러져 나간 곳이 있곤 했는데 더 이상 관리가 어렵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도로 주변 주민들이 가꾸는 텃밭은 여전하다.

애기똥풀 흐드러지게 핀 자전거도로.
 애기똥풀 흐드러지게 핀 자전거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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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하늘, 내 마음을 빼앗아간 자전거도로

춘천 시내 유일의 놀이동산인 육림랜드 후문. '동물원 가는 길'이라고 쓰여 있다.
 춘천 시내 유일의 놀이동산인 육림랜드 후문. '동물원 가는 길'이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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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의 백미는 의암호와 육림랜드 사이를 지나가는 둑길에서 찾을 수 있다. 길 양편으로 가로수가 하늘 높이 솟아 있다. 나뭇잎이 우거지는 여름철에는 숲 속 오솔길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길이다.

날이 흐릴 때는 터널을 연상할 수 있을 정도로 길이 어두워진다. 언제 와도 피부에 스며드는 촉촉한 느낌이 좋다. 길 주변으로 애기똥풀을 비롯해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잔뜩 피어 있다. 이 길에서는 사람도 자전거도 모두 풍경이 될 수 있다.

육림랜드는 1975년에 문을 연, 매우 오래된 놀이공원이다. 어른들 눈에는 매우 낡고 좁은 놀이공원으로 보이겠지만, 아이들 눈엔 전혀 그렇지 않다. 회전목마 같은 놀이시설에 호랑이가 사는 동물원이 있는 데다 풀장까지 갖춘, 있을 건 다 있는 종합 놀이공원이다.

주중엔 놀이객이 별로 없어 마침 폐장한 지 오래된 공원처럼 보이지만, 주말이나 방학 땐 소풍을 나온 아이들로 제법 시끌벅적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조금 나이가 된 여행객들에겐 옛날 놀이공원에 놀러갔던 기억을 떠올리기 좋은 공간이다.

신매대교 부근에서 다시 되돌아선다. 이 길에서 돌아서지 않고 곧장 달려 제2보충대까지 가거나 신매대교를 넘어 호수 건너편 자전거도로를 탈 수도 있다.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좀 더 달려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의암호와 육림랜드 사잇길. 싱그러운 맛이 그만이다. 주말에는 육림랜드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웃음소리를 더해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의암호와 육림랜드 사잇길. 싱그러운 맛이 그만이다. 주말에는 육림랜드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웃음소리를 더해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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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천 유원지로 돌아왔을 때는 공지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자전거도로를 타보는 것도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다. 공지천은 도시 안을 흐르는 여느 하천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청계천 개조 공사 이후 도시 내 하천들이 변화를 몸살을 앓고 있는데 공지천 역시 예외는 아니다.

공지천 자전거도로 공사를 하다 만 구간. 별 생각 없이 달리다가는 큰 변을 당할 수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다리 위로 옛날 자전거도로 겸 산책로가 있다.
 공지천 자전거도로 공사를 하다 만 구간. 별 생각 없이 달리다가는 큰 변을 당할 수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다리 위로 옛날 자전거도로 겸 산책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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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공지천은 또 공지천만이 보여줄 수 있는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공지천은 하천치고는 폭이 비교적 넓은 편이다. 서울의 안양천만은 못하지만, 청계천보다는 훨씬 더 넓고 쾌적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빛도 비교적 맑고 깨끗한 편이다.

최근에 하천가에 조경석을 쌓으면서 자연스러운 맛이 많이 사라졌다. 조경석을 쌓고 하천 바닥을 파헤치기 전에는 모래 둔덕 위에서 아이들이 모래장난을 하며 놀던 모습을 보곤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된 것이 조금 아쉽다.

공지천유원지까지 왔으면, 공지천을 일부나마 들여다보고 가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듯싶다. 이디오피아의 집 앞 주차장에서 왼쪽을 보면 건물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공지천교 아래를 지나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공지천이다. 공지천 자전거도로는 약 5km, 왕복을 한다고 해봐야 10km다. 큰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거리다. 신매대교까지 다녀와서 뭔가 아쉬운 기운이 남아돈다면, 좀 더 땀 흘려 달려볼 만하다.

공지천 풍경.
 공지천 풍경.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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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천 호반교 다리밑 풍경.
 공지천 호반교 다리밑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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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공지천유원지, #공지천, #의암호, #자전거여행, #북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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