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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속에 어쩜 저리 꽃이 많이 피었을까?

벚꽃 화사한 난설헌 생가 주변
 벚꽃 화사한 난설헌 생가 주변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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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산교를 건너면 또 하나의 다리가 나오는데, 그것이 난설헌교다. 난설헌교를 지나면 솔밭이 나오고, 솔밭 사이로 길이 이어진다. 솔밭 안으로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고, 그 안쪽으로 커다란 한옥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솔밭의 푸르름, 벚꽃의 화사함, 기와를 얹은 한옥의 묵직함이 잘 어울린다. 한옥 앞으로는 넓은 마당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봄날의 오후를 즐기고 있다.

꽃을 감상하는 사람, 의자에 앉아 쉬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등 가지각색의 모습이다. 연인이 함께 타던 자전거를 세워 놓고 벚꽃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꽃과 나무를 사진 찍느라 바쁘다. 나도 이런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난설헌 생가 앞으로 간다. 이미 우리 팀 사람들은 난설헌 생가 구경을 마치고 나왔다. 생가 주변에도 벚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난설헌 생가 바깥채 대문
 난설헌 생가 바깥채 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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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깥채 가운데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간다. 바깥채 벽에는 2012년 난설헌 문화제의 일환으로 난설헌 국제작가전이 열리고 있음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4월 8일 시작되어 15일까지 계속된다. 그래서인지 대문에는 청사초롱이 걸려 있다. 마당 안으로 안채가 있고, 한 쪽으로 몸을 옆으로 누인 향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자목련
 자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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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당화
 산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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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안채 마루와 방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자연을 감상한다. 집안에는 온통 꽃들이 만개해 있다. 앵두나무꽃, 자목련, 산당화, 진달래가 피어 있다. 담장 너머로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나무들도 많다. 능소화가 있고, 사철나무가 있고, 모란도 있다. 배롱나무에는 구름을 만들어 달아 설치미술이 되었다.  

그 예술 작품들 속에 난설헌의 한이 숨어 있다

허난설헌상
 허난설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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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과 마당에도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꽃과 새를 그린 화조도가 보인다. 손연칠 화백이 모사한 허난설헌상도 보인다. 또 한쪽에는 난설헌의 한을 보여주는 것 같은 그림이 걸려 있다. 하나의 그림에는 조선 중기의 난설헌과 현대의 난설헌이 함께 표현된 것처럼 보인다. 다른 그림에서는 노란 저고리와 빨간 옷고름에서 한(恨)이 비오듯 쏟아진다.

이경신의 그림
 이경신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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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출신의 이경신이 그린 이 그림에 난설헌의 한이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이 치마저고리가 관노가면극의 소매 각시 옷과 같은 색이다. 노랑 저고리와 빨간 치마가 강렬해서선지, 더 많은 한이 느껴진다. 이들 그림이 안채의 방에 걸려 있다면, 안채 마당 한쪽에는 강릉 출신 양순영의 바람개비 설치미술이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바람개비가 아니라 꽃이다.

양순영의 설치미술
 양순영의 설치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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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사줄에 천으로 만든 꽃을 달아 붙였다. 이들 꽃은 난설헌의 한으로 보이지 않고, 염원으로 보인다. 그렇게 꽃으로 피어나길 원했는데, 꽃을 다 피우지도 못하고 한 맺힌 스물일곱의 삶을 마감했으니 말이다. 그는 강릉에서 태어났지만 15세에 안동김씨 김성립(金誠立: 1562-1592))에게 출가한 후 불행한 삶을 살았다. 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겠지만, 난설헌은 조선 땅에 태어난 일, 여자로 태어난 일, 김성립에게 시집간 일 세 가지를 한탄했다고 한다.

난설헌, 그녀는 어떤 사람인가?

허난설헌 생가
 허난설헌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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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1563-1589)의 본명은 초희(楚姬)이고 자는 경번(景樊)이며 호가 난설헌(蘭雪軒)이다. 당시 동인의 영수이던 아버지 허엽(許曄)과 어머니 강릉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허엽은 화담 서경덕의 영향을 받은 문장가였으며, 난설헌의 오빠와 동생인 허성, 허봉, 허균도 모두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다. 난설헌은 바로 위의 오빠인 허봉으로부터 문장을 배웠다.

이들은 모두 문집을 남겨 허씨 5문장으로 불린다. 허엽은 <초당집>을, 허성은 <악록집>을, 허봉은 <하곡집>을, 허난설헌은 <난설헌시집>을, 허균은 <성소부부고>를 남겼다. 난설헌은 15세에 김성립과 결혼했으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80년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친정아버지 허엽이 죽고, 1583년에는 오빠 허봉도 율곡 이이를 탄핵하다 갑산으로 유배된다.

난설헌 생가 뒤의 벚꽃
 난설헌 생가 뒤의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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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난설헌의 딸과 아들 또한 한 해 차이로 병에 걸려 죽는다. 더욱이 뱃속에 있던 아이마저 유산한다. 이때 난설헌은 '죽은 자식을 곡하노라(哭子)'는 절절한 시를 쓴다. 조선 땅에 여자로 태어나 자신을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한 난설헌은 1589년 3월 세상을 떠나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경수산 자락에 묻혔다. 그리고 이처럼 난설헌의 삶과 문학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동생인 허균이 1608년 <난설헌시집>을 펴내면서다.  

   죽은 자식을 곡하노라.              哭子

지난해 귀여운 딸애 여의고            去年喪愛女
올해는 사랑스런 아들을 잃다니      今年喪愛子 
서러워라 서러워라 광주 땅이여      哀哀廣陵土
두 무덤 나란히 마주하고 있구나.    雙墳相對起
백양나무 가지엔 쓸쓸한 바람         蕭蕭白楊風
도깨비 불 무덤에 어리 비치네.       鬼大明松楸
지전으로 너희 혼을 불러               紙錢招汝魂
너희 무덤에 현주라도 부어 놓으니  玄酒奠汝丘
알고 말고 너희들의 혼이란 것을     應知弟兄魂
밤마다 서로 서로 어울려 놀테지.    夜夜相追遊
아무리 아해를 가졌다 한들            縱有腹中孩
이 또한 잘 자라기를 바라겠는가     安可期長成
부질없이 황대사를 읊조리면서       浪吟黃臺詞
애끓는 피눈물에 목이 메인다.        血位悲呑聲

그럼 허균은 다른 곳에서 태어났나?

난설헌 생가 평면도
 난설헌 생가 평면도
ⓒ 디지털 강릉 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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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생가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방과 마루 부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안채 뒤로는 장독대가 마련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곳에는 장이 담겨있지는 않다. 전시용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장독 뒤로 넓게 벽이 둘러쳐져 있다. 정원과 후원이 넓은 편으로 나무와 꽃 등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집 바깥은 초당의 소나무숲이 감싸고 있어 건축과 자연의 조화가 두드러진다. 요즘은 화사한 벚꽃이 기와집과 소나무의 짙고 어두운 색과 멋진 대비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곳 난설헌 생가에서 허균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그럼 허균은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는 말인가?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생가터에서 남서쪽으로 100m쯤 떨어진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을 찾아야 한다.

난설헌 생가의 징독대
 난설헌 생가의 징독대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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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이들 오누이의 삶과 문학세계가 일목요연하게 전시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은 거기까지 갈 수가 없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 강릉 바우길 제5구간 바다호수길 걷기지, 허씨 자매 문학 탐구는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허균도 이곳 난설헌 생가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지만 여성인 난설헌의 삶이 더 구구절절하고 애틋하기 때문에 난설헌 생가라 이름붙인 것이다.

현재 이 집의 공식명칭은 이광로 가옥이며, 강원 문화재자료 제59호로 지정되어 있다. 집을 나오면서도 난설헌에 대한 생각이 마음 속을 떠나지 않는다. 난설헌이 이처럼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그녀의 뛰어난 시 때문이다. 그녀의 시가 임진왜란 후 중국과 일본에서도 간행되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한 시인을 우리는 그동안 이름만 기억했지, 시세계를 알려는 노력은 등한시 한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난설헌의 시세계를 좀 더 공부해야겠다.

난설헌 생가 앞 송림
 난설헌 생가 앞 송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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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난설헌 생가를 나와 송림을 지나 다시 교산교를 건넌다. 그리고 이번에는 경포 호수길이 아닌 경포천을 따라 걷는다. 이 길은 잔디광장을 끼고 조류전망대와 경호교로 이어진다. 경호교에 이른 다음 우리는 경포호수길을 따라 300m쯤 간 다음 바닷가로 간다. 경포해수욕장 모랫길을 따라 가면서 우리는 바다의 호연지기를 즐긴다. 시원한 바다를 감상하는 사람, 보트를 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다음 목적지는 경포 해변 남쪽의 강문 해변이다.


태그:#허난설헌 생가, #난설헌 국제작가전, #허씨 5문장, #<난설헌시집>, #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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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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