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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길에서 플래카드를 보게 됐다. 내용인 즉은 "경축! 새마을운동 창립일의 국가기념일 제정!". 대단히 놀랐다. 도대체 신문을 매일매일 유심히 보는데, 내가 듣도보도 못하는 사이에 새마을운동 창립일이 국가기념일이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들을 만날 때마다 몇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나한테 오히려 '그러냐'고 되묻곤 했다. 그래서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을 뒤지고 사람들에게 문의해 보았다.

 

이 과정에서, 국가기념일은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결정을 하되, 통상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더 조사를 해보니, 2011년 2월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 296명, 재석 209명, 찬성 191명, 반대 5명, 기권 13명으로 통과됐고, 그것을 받아 국무회의에서 결정을 해서 시행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4월 22일 새마을의 날은 국가기념일이 됐다.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 의원 거의 전원이 찬성·묵인하고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만 반대했을 것으로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보면, 결국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이를 추진했고, 국회에서 당시 민주당 지도부가 이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았거나 묵인·적극 찬성함으로써 국가기념일이 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물론 거의 언론에 보도되지도 않았으며, 그래서 정작 경축의 주체인 국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최소한 그에 대해 반론이나 논란을 할 계기도 없이, '도둑처럼' 통과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일요일인 4월 22일이 두 번째 국가기념일로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등 관련단체들과 소속원들이 이를 경축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박정희 정권에게 탄압받은 정신적 후유증과 국가기념일

 

나는 어떤 시각에서 보더라도, 새마을운동 창립일이 국가기념일이 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박정희 정권 시대에 탄압받고 여전히 그 정신적·육체적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도 많다. 박정희 시대는 여전히 우리 시대에 논란의 대상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새마을운동 창립일이 국가기념일이 되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정권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확충하기 위하여 1972년 내무부 장관을 최정점으로 하여 추진한 위로부터의 관변운동이었다. 기록을 보면, 1970년 4월 22일에 박정희가 전국 지방장관 회의에서 '새마을 가꾸기 운동'을 제창한 것으로 되어 있다.

 

박정희는 새마을운동과 유신체제와 동일시하면서, 10월유신 이후 "10월유신이라고 하는 것은 곧 새마을운동이다. 새마을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곧 10월유신이다"라고 표현하기조차 했다.

 

이런 점에서, 새마을운동은 박정희정권의 정치적 기획과 분리해서 이해될 수 없다. 새마을운동은 시작 단계에서, 최소한 박정희 시대와 전두환 시기에, 독재정권의 면밀한 기획과 통제가 작용한 운동이었다. 실제로 1972년 3월 7일에 새마을중앙협의회가 출범할 때 내무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았고, 운동을 확산하기 위해 내무부·문화관광부 등을 비롯해 모든 정부 부서가 총동원되었다.

 

새마을교육담당관 혹은 담당장학사가 문교부를 비롯해 시·도 교육위원회와 시·군 교육청에 배치되었고, 각급 학교에는 이를 전담하는 교사를 배치하도록 의무화했다. 이처럼 새마을운동은 한편에서 농민의 자발성과 일정하게 결합된 점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사분란하게 국가적·행정적 동원의 프로세스로 진행되었다. 심지어 새마을운동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통·반장 1만 8000명이 해임되기도 했고, 그 자리에 박정희독재정권에 친화적인 인물들이 대거 충원되기도 했다.

 

"방송국에도 새마을운동 전담기구가 있었다"

 

새마을운동의 전국가적 동원을 위해 박정희정권이 장악하고 있던 공영방송을 적극 활용했음을 물론이다. 방송국에는 새마을운동의 전담기구가 있었고, 새마을운동과 관련된 고정 프로그램과 영화를 만들어 방영하였다. 우리 모두가 기억하듯이, 새마을운동에 대한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특별한 행사를 준비한 날에는 동사무소·면사무소·마을회관 등에서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하는 박정희 작사·작곡의 <새마을 노래>가 스피커에서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새마을운동이 농촌에서 성과를 보이는 듯하자, 박정권은 이를 도시새마을운동이나 공장새마을운동으로 확대되면서 많은 부작용을 낳았으며, 박정희정권에 의한 관변동원으로서 많은 저항을 받기도 했다. 박 정권은 1973년 무렵 상공부에서 공장 새마을운동을 구상했고, 1974년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그 후 직장 새마을운동, 학교 새마을운동 등 다양한 영역에 새마을운동이 일반화되었다.

 

1973년에 새마을 연수원이 만들어진 뒤부터 공무원·기업가·언론계 중진 등이 거의 강제적으로 그곳에서 연수교육을 받았다. 1975년부터는 대학교수들도 이 연수에 참여해야 했다. 1972~1979년까지 새마을운동과 관련되어 합숙 교육을 받은 사람이 68만여 명, 비합숙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약 7000만 명으로, 국민 한 사람이 2회 정도씩 비합숙 교육을 받은 셈이었다. 새마을운동은 이렇게 총체적인 기획과 통제 위에서 확산된 운동이었다.

 

또한 이 운동은 물량 위주의 획일화한 경제 운동에 치우쳐, 이전에 농촌사회가 간직하고 있었던 전통문화 내지 마을 문화를 상당 부분 파괴하였으며, 인정과 상부상조를 바탕으로 강하게 결합되어 있었던 공동체를 해체하는 데도 기여하였다.

 

더구나 80년대에는 전두환의 동생이 전경환이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회장으로 각종 권력남용을 하고 부패를 행함으로써 구속까지 된 일도 있었다. 80년대에 들어 새마을운동은 그 추한 모습들을 드러냈고, 독재정권을 정치적 하부기관으로 비판받기에 이르렀다.

 

김대중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을 '속임수'로 규정

 

일찍이, 김대중 대통령은 그의 자서전에서 새마을운동을 '속임수'로 규정한 바 있다. 1990년대 중반 조순 서울 시장·이해찬 부시장 시절에는 새마을운동기를 내리려고 시도했던 적도 있다. 80년대와 90년대의 전기간에 진보진영은 새마을운동에 대해 독재 유산이라는 점에서 극복의 시각에서 접근했다. 이런 시각은 현재도 근본적으로 동일하게 존재하고 있다.

 

물론 새마을운동은 이른바 '근면·자조·협동'이라는 정신 아래 농촌의 개발과 개선에 대해 일정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마을도로 개보수 및 확장, 농로 개설, 하천 정비, 마을회관 신축, 창고·작업장·축사의 개축 및 신축, 조림사업, 전화 및 통신시설 확충 등 농촌 환경개선사업에 일정하게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농한기에 노름이나 음주 등을 개선하는데도 기여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새마을운동 그 자체에 대해 근원적으로 부정할 생각은 없다. 비록 그 시대에 많은 부패와 관제적 성격을 보였다고 하더라도, 사회단체로서 그 존재론적 지위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단지 새마을운동 창립일이 국가기념일이 될 정도의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반대가 있고 아직도 저항이 많은 새마을운동 창립일이 '국가'기념일이 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지금이라도,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이를 추진했는지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많은 이슈에서 국민의 의사에 따르기 보다는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있는 집단들의 요구와 이해를 반영하여 '권력남용'에 해당하는 일을 해왔고 그것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현재 국민의 큰 불만으로 나타나 있다. 우리는 새마을운동 국가기념일의 제정이 이명박 정부의 무수한 '권력 사유화'의 한 행위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으로, 국회 통과과정에서의 불투명성에 대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자체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2011년 2월 국회에서 이루어진 국가기념일 제정 관련 상임위원회와 본회의 통과과정에 대해서 철저하게 조사작업을 진행하고 그것을 철회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박정희 시대와 그 일부로서 새마을운동은 '국민적' 합의의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쟁투의 유산'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라도 복기(復碁)하듯이, 새마을운동 국가기념일의 제정과정을 재조사하여, 철회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조희연님은 민교협 공동의장으로 성공회대 교수입니다. 


태그:#새마을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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