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은교>는 한 늙은 문학가의 벌거벗은 몸으로 시작한다. 거울 앞에 선 이적요(박해일)는 상의와 하의를 차례로 벗어 놓는다. 주름 투성이의 몸은 이미 그가 노쇠했음을 말해준다. 더군다나 남근을 상징하는 그의 성기는 바짝 쪼그라져 있다. 그의 몸은 어느새 거울 속 모습처럼 젊음과는 멀리 벗어나 있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 역시 이적요의 모습이다. 처음 발가벗은 모습과는 상반되게 그는 겹겹이 옷을 입고 있다. 하지만 역시 술취해 쪼그려 엎드린 모습 속에선 싱그러움이란 없다. 젊은 제자 서지우의 말처럼 더러운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는 병들고 바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몸, 즉 육체에 지나지 않는다. 육체는 거울에 보이는 것처럼 세월의 덧없음을 이야기하지만 그의 상상하고 느낄 수 있는 정신의 힘은 청년만큼 파릇파릇하게 살아있다.

<은교>의 주인공 이적요는 그렇게 늙었지만 정신만은 살아있는 문학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 70대 국민 시인 이적요는 10대의 소녀 '은교'(김고은)를 만나고 그녀의 육체의 기대어 소설을 써내려 가기 시작한다. 불가능함으로, 상상으로나 가능한 어린 소녀에 대한 욕망을 원고지 위에 술술 풀어 나간다. 생생히 살아 있는 여린 소녀의 몸은 소설 속에서 이내 아름다운 육체가 된다. '아름다움'에 대해서 함부로 논하는 것을 금기시하던 늙은 문학가 이적요에게 '은교'는 소설 속 아름답고 사랑스런 소녀인 것이다.

 현실 속에서뿐 아니라 소설 속에서도 사랑스러운 존재 '은교'

현실 속에서뿐 아니라 소설 속에서도 사랑스러운 존재 '은교' ⓒ 렛츠 필름



이적요와 대비되는 인물은 그의 오랜 제자 서지우(김무열)이다. 그는 대학생 이후부터 이적요의 작품에 매료되어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의 곁에서 보좌한다. 하지만 그는 그저그런 소설들을 생산하는 평범한 작가일 뿐이다. 그런 그가 이적요의 도움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이내 비밀스레 숨겼던 이적요의 단편 '은교'를 자기 것으로 탈바꿈하여 꿈에 그리던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기까지 이른다.

대학시절 '별'이 가진 숨겨진 의미도 몰라 헤매던 서지우는 스승 이적요의 등을 업고 대중의 지지뿐 아니라 작가로서의 명성도 획득한다. 뻔뻔스럽게 거짓으로 자신의 재능을 키운 그 앞에 은교만이 진실을 알게 된다. 소설 '은교'는 그녀의 이야기이자 그녀만이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흥한 자가 쉽게 망한다는 말처럼 서지우의 명성은 다시 그의 충동으로 인해 소멸하게 된다. 세간의 부러움을 독차지했던 그조차 한가지 얻지 못했던 것으로 인해서 자멸하게 된다. 그것은 무엇일까?

<은교>를 읽는 키워드는 '탐닉'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서로에 대해서 탐닉한다. 이적요는 은교의 젊음과 싱그러움으로 대변되는 육체를 탐닉한다. 이적요가 서지우를 처음 본 순간부터 서지우의 발과 다리, 허리와 가슴 등의 몸덩어리는 그에게는 리듬을 탄 소설 구절이 된다. 은교의 입에서 나오는 숨소리조차 그를 설레게 만들고 70대의 몸에서 30대의 정신을 발견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반면, 그의 제자 서지우가 탐닉하는 것은 이적요의 문학가로서의 재질이다. 공대생인 그로서는 결코 넘을 수 있는 선이 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채취되어지는 글의 흔적은 이제 신인인 그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이적요를 만나는 것을 통해서 애증어리게 그의 작품을 탐닉하고 그의 작품 속 세계뿐 아니라 현실 속 세계에서도 그의 그림자가 되려고 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이적요를 따라갈 수 있는 재능은 없다. 문학의 힘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가 진정으로 얻고 싶었지만 얻지 못했던 것이다.

 늙은 문학가 이적요, 허나 정신만은 생생하게 육체를 꿈꾸는 작가

늙은 문학가 이적요, 허나 정신만은 생생하게 육체를 꿈꾸는 작가 ⓒ 렛츠 필름



마지막으로 은교가 탐닉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을 대부분의 관객들은 다른 쪽으로 해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적요에 대한 존경, 동경 혹은 사랑에 대한 갈구라고 이해할 여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내가 본 은교는 이적요의 '시'를 탐닉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는 자주 이적요에게 말을 걸고 말을 듣는다. 이적요를 할아버지라고 생각하는 은교에게 그의 말들은 하나하나 살아 움직이는 시 구절이 된다. 그러면서 이것저것 묻고 답한다.

이와 관련하여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적요가 은교에게 연필의 뭉뚝함에 대해 말을 할 때다. 은교가 왜 다 연필이 하나같이 뭉뚝하냐고 묻자 적요는 연필의 외로움에 대해서 말한다. 책보 안에 들어 있는 필통 속 외로운 연필들이 서로 부딧히며 소리를 낼 때 자신은 마음이 아픈 것처럼 느껴진다며 연필을 깎지 않아도 된다고 은교에게 말한다.

그런 말을 들은 후 얼마 뒤 은교는 자신의 엄마 이야기를 넌지시 이적요에게 말한다. 자신을 가끔씩 때리는 엄마는 때밀이를 하기 전까지 발뒤꿈치를 칼로 긁었다고 말하면서 그런 엄마의 발뒤꿈치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중얼거린다. 적요의 말이 그대로 은교에게 전이된 듯 느껴지는 부분이다. 은교는 그의 시와 삶을 통해 새로운 은교, 즉 진정한 아름다운 육체뿐 아니라 마음을 가진 여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적요를 사이에 두고 탐닉하는 은교와 지우는 그것이 비단 육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육체 이상의 그 무엇임을 영화는 은글슬적 전달하려 한다.

내게 이 영화가 흥미로웠던 것은 이 세 인물의 탐닉의 관계가 한국문학계의 현실을 상징하는 것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요즘 문학계는 수많은 작가가 나오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마치 반짝 아이돌 가수의 운명처럼 빛도 바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제는 무엇이냐면 재능도 가지고 있지 않은데 대중의 힘을 얻고 나온 작가가 금방 유명해지고 많은 권수의 책을 팔아 버젓히 생존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출판계의 생존전략과 맞아 떨어진다.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을 만한 작품들을 출간하고 그것이 과연 그 작가가 집필했는지 의심갈 정도로 색깔도 없이 겉모습만 포장하여 서점에 내보낸다는 것이다.

영화 속 서지우는 그렇게 작가의 역량도 없이 대중의 힘으로 살아가는 자의 메타포이다. 그가 실명으로 거론하는 교보문고, 알라딘, YES24뿐 아니라 문학동네와 이상문학상 모두가 우리가 알고 있는 문학계의 여러 단면이다. 서지우는 이 모든 것을 충족하는 작가지만 실제로 그의 문학적 소양은 형편없다. '대필', '모방', '훔쳐쓰기', '상업화', '청탁'으로 모순된 한국문학계의 현실을 서지우를 통해서 어쩌면 영화는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는지 모른다. 더 나아가 그를 대중적으로나 작가적으로 인정받는 소설가로 만든 독자들과 평론가들 또한 비판의 대상이다.

 문학계의 양면적인 모습안에서 갈등할 수 밖에 없는 대중

문학계의 양면적인 모습안에서 갈등할 수 밖에 없는 대중 ⓒ 렛츠 필름



국문과 재학 시절 시인이었던 늙은 교수는 한사코 우리 나라 문학계를 떠올리면 한숨이 난다고 했다. 난 그 시절에는 적어도 그것을 그의 편협되고 배부른 소리로 치부했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자 아닌 사람들이 문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 극중 서지우 또한 진정한 문학가라고 볼 수는 없다. 이건 단지 그가 공대를 나와서가 아니라 문학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문학에 대한 결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앞에선 떳떳한 작가일런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적요'처럼 국민시인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난 '은교'라는 인물이 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게 크다고 본다. 은교는 이적요와 서지우의 애증관계 사이에 놓인 인물이다. 그녀는 이적요의 시와 삶에 대해서 흥미를 느끼며 본받으려 하지만 더불어 자신의 외로운 감정을 서지우로 인해서 채우려는 마음도 있다.

이것은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지만 비밀스럽게라도 자신의 작품을 써 내려가는 진정한 문학가와 문학적 재능을 갈취해서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인정받으려는 젊은 문학가 사이에서 진실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독자의 모습과 닮아 있다. 결국 감독은 바란다. 은교는 자신의 이야기를 쓴 사람이 결국은 서지우가 아닌 이적요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쓸 사람은 할아버지밖에 없어요."라고 말한 뒤 그의 곁을 총총히 떠난다.

감독 정지우는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정받아야 할 사람이 늙음으로 인해서 도태되고 색깔도 없는 개성없는 작품이 번지르하게 포장되어 대중의 구미를 당기는 우리 문학계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생각할수록 똑똑한 연출가이다. <은교>는 그러기에 벌거벗은 육체를 온전히 보여주는 영화로만 해석하기엔 좀 부족하다. 이 작품은 발가벗겨진 문학계의 현실을 드러내는 비판의 소리를 담은 작품이자 이적요의 모습을 통해 발가벗겨진 채 젊음(대중) 앞에 선 늙은 문학가의 초상을 보여주는 영화로도 충분히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교 박해일 김고은 김무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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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전주국제영화제 관객평론가 2008 시네마디지털서울 관객심사단 2009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관객심사단 2010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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