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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수처럼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현충원 수양벚꽃
 폭포수처럼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현충원 수양벚꽃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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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오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는 수양벚꽃이 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 폭포수처럼 보인다. 뿐만 아니라 현충원에는 갖가지 꽃들이 생생하게 피어난다. 그중에서도 수양벚꽃은 단연 압권이다.

현충원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충성분수대가 나온다. 충성분수대 양편 길에는 휘휘 늘어진 수양벚꽃이 애국선혈의 영혼을 위로라도 하듯 만장처럼 펄럭인다. 때 마침 현충원에는 호국영령의 충의와 위훈을 기리고, 유가족들에게 위로와 감사를 전하기 위해 '수양벚꽃과 함께하는 열린현충원 행사(4월 14일~21일)'를 개최하고 있다.

동작구 공작봉 기슭에 자리 잡은 현충원에는 수양벚꽃, 개나리, 목련, 리기다소나무, 잣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팥베나무, 밤나무 등과 초본류 172종이 자라고 있다.

이 중에 특히 수양버들처럼 양 옆으로 축 늘어진 수양벚꽃은 조전시대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효종이 북벌정책의 일환으로 활을 만들기 위해 심었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세자매 폭포수처럼 흘러내니는 현충원 수양벚꽃
 세자매 폭포수처럼 흘러내니는 현충원 수양벚꽃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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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총칼을 들고 나라를 지키는 모습을 하고 있는 충성분수대 사이로 비추어 보이는 수양벚꽃이 더욱 의미가 깊게 보인다. 수양벚꽃은 옆은 연분홍 홍조를 띄고 있다. 더욱이 태극기와 함께 만장처럼 휘날리는 수양벚꽃은 길을 걷는 자로 하여금 저절로 숙연한 느낌을 들게 한다.

현충원 입구 충성분수대와 벚꽃
 현충원 입구 충성분수대와 벚꽃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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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처럼 휘날리며 호국영령을 위로하는 현충원 수양벚꽃
 만장처럼 휘날리며 호국영령을 위로하는 현충원 수양벚꽃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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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마당 좌측으로 걸어가면 작가의 팬사인회와 함께하는 북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현충원에서 열리는 북페스티벌도 퍽 이색적으로 보인다. 북페스티벌이 열리는 바로 옆에는 현충지가 있다. 아, 현충지에 비치는 수양벚꽃의 반영이 너무나 아름답다! 휘휘 늘어진 연분홍 색깔이 나라를 지키다 순국한 선열들의 영혼처럼 물속에 투영되어 숙연한 느낌마저 든다.

기존에 있는 웅덩이를 살려 만든 이 연못은 사방에 잔디와 화수목이 식재되어 있고, 등나무, 정자, 벤치 등 휴게시설이 아늑하게 설치되어 있어 사색을 하며 휴식을 하기에 매우 적합한 휴식처이다. 이 연못은 전 묘역 잔디에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스프링클러의 용수원이 되기도 한다니 참으로 유익한 연못이다.

현충지에 비친 수양벚꽃의 반영
 현충지에 비친 수양벚꽃의 반영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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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지를 지나면 바로 묘역으로 연결된다. 수양벚꽃 펄럭이는 벚꽃터널을 지나 현충문 옆에 있는 학도의용군 무명용사 앞에서 잠시 묵념을 해본다. 이름도 성도 밝혀지지 않는 48위의 무명사탑 후면에는 "이곳에 겨레의 영광과 한국의 무명용사가 잠드시다"란 말이 새겨져 있어 못다 핀 청춘을 조국을 위해 이슬처럼 사라져간 그들의 영혼이 더욱 빛나 보인다.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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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벚꽃은 현충탑을 돌아 육각형으로 된 충무정에 주변에서 절정을 이룬다. 하늘을 찌를 듯 거대한 수양벚나무에 치렁하게 매달린 벚꽃의 포말이 명멸하는 폭포수처럼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고 있다.

오래된 고목에서 피어난 수양벚꽃은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벚꽃 사이사이에 피어 있는 목련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풍경이란 말과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절경이다. 이 주변에 사진가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다.

충무정 정자에 앉아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마치 앳된 소녀의 표정처럼 상기되어 있다. 사람들은 쏟아지는 수양벛꽃 아래서 입을 벌리며 떠날 줄을 모른다. 만개한 수양벚꽃 사이에 세워진 육사7기특별동기생추모탑이 묘한 분위기를 풍겨주고 있다.

충무정을 둘러싸고 있는 수양벚꽃
 충무정을 둘러싸고 있는 수양벚꽃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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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양벚꽃 터널을 지나면 바로 일반 장병들의 묘역으로 연결된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수많은 젊은 영혼들의 묘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한 마음이 절로 들게 한다. 수많은 비가 도열해 있는 묘역 바라보자니 문득 영화 <금지된 장난>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의 공습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소녀 폴레트는 죽은 강아지를 안고 헤매다가 어느 농가에서 미셀이란 소년을 만난다. 소녀는 죽은 강아지를 땅에 묻어주고 그 무덤에 십자가를 세워준다.

영화 금지된 장난을 연상케하는 묘역
 영화 금지된 장난을 연상케하는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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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이 죽었을 때는 이렇게 묻어주는 것이라고 알게 된 폴레트는 새든, 벌레든 죽은 동물을 모아 무덤을 만들고 그 무덤 앞에 십자가를 세워준다. 무덤은 점점 늘어가고 십자가가 필요해지자 미셀은 교회 제단의 십자가을 훔치려 하고 동네 공동묘지에서 십자가를 뽑아온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순진무구한 아이들이 십자가를 훔치는 장난이 아니라, 어른 들이 일으킨 전쟁이다. 이곳 현충원에도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꽃다운 젊은이들이 수없이 무고하게 죽어가 묻혀있지 않은가!

노란 개나리꽃 사이로 희뜩희뜩 보이는 일반 장병들의 묘역
 노란 개나리꽃 사이로 희뜩희뜩 보이는 일반 장병들의 묘역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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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 중앙으로는 흘러내리는 냇물 사이로는 노란 개나리가 아름다운 새악씨들처럼 피어 있다. 개나리는 결혼도 해보지 못하고 숨져간 젊은 영혼들을 위로 하듯 수줍게 피어나 있다. 개나리꽃 사이로 희뜩희뜩 보이는 망자의 묘비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유 없이 죽어간 저 망자들의 영혼을 그 무엇으로 위로하고 보상을 할 수 있을까?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려 하는 위정자와 어른들은 할 수 없다. 오직 온 힘을 다하여 저 순수한 꽃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묘역은 위로 올라 갈수록 계급이 높은 사람들이 점점 넓게 차지하고 있다. 묘역 중앙에는 별을 단 장군들의 영혼이 잠들고 있고, 그 전후좌우로 대통령들의 묘가 엉청나게 많은 평수를 차지하고 포진하고 있다. 도대체 독재자의 묘를 왕릉처럼 이렇게 크게 쓴 묘지가 세계 어느 나라에 있을까? 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망자의 영혼처럼 뚝뚝 떨어져 내리는 목련
 망자의 영혼처럼 뚝뚝 떨어져 내리는 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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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수많은 생명을 희생과 인권을 유린하고, 죽어서도 나라의 위해 목숨 바쳐 죽어간 호국영령들을 위에 군림하고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독재자의 대통령 묘역에는 하얀 목련이 통탄을 하며 죽은 자의 영혼처럼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국립서울현충원, #현충원수양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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