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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11일 오후 영등포 당사에서 굳은 표정으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11일 오후 영등포 당사에서 굳은 표정으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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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역사적 패배로 기록될 것이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민심은 준엄했고, 막연한 기대는 무너졌다. 4.11 총선 결과, 새누리당이 원내 제1당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여대야소 정국이 계속 유지될 것으로 알려지자, 트위터에서는 민주통합당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한명숙 대표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4.11 총선 직후 정국은 또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 태세다.

박선숙 민주통합당 선대본부장은 이날 밤 A4용지 반쪽 분량도 안 되는 12줄짜리 짤막한 메시지를 읽으며 무려 4번이나 "죄송하다"고 밝혔다. 그래도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때부터 4년을 기다려온 총선거. 야권지지 성향의 유권자들은 이 결과를 있는 그대로 믿기 어려워하는 눈치다. 페이스북엔 "아무리 술을 마셔도 잠이 안 온다"는 탄식이 쏟아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민간인 사찰 파문이 한달간 지속됐던 선거 국면, 밑바닥 정서엔 '심판론'이 거세다는 평론이 주류였는데, 그 예상을 깬 이번 선거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담담하게 표정관리 해오던 민주통합당 당직자들도 당혹을 넘어 침통한 기색이 역력하다.

[# 쟁점1] 한명숙의 리더십...무능력의 결정판?

"수도권 성적표는 좋은 편이다. 그 밖의 지역에선 대패했지만."

개표방송에 비친 지도는 온통 '빨간 나라'다. 서울 수도권과 전남북, 제주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대부분 새누리당 차지가 됐다. 무엇보다 강원과 충청에서 대패했다. 특히, 지난 지방선거 이후 줄곧 '야도' 공식을 이어왔던 강원도를 또 다시 '여도'로 돌려놓는 우를 범했다. 충청권에서 자유선진당이 힘을 쓰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통합당이 그 의석을 얻어오지도 못했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어떻게 이렇게 말아먹을 수가 있을까 정말 헛웃음이 나온다"며 "한명숙 지도부가 이 결과를 어떻게 책임질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투표율이 핵심이었다"며 "55%에도 못 미치는 투표율에다 우호적인 지자자들마저 투표장으로 이끌어내지 못한 민주통합당은 이 역사적 과오 앞에 그 어떤 책임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총체적 난국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라는 것.

가장 먼저 지적되는 것은 리더십 문제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이명박정부와 차별화 하면서 정당쇄신에 박차를 가했다. 근 한 달간 새누리당 공천쇄신이 신문 머릿기사를 장식했다. 국민들 사이에 박근혜 위원장은 원칙과 신뢰, 강단 있는 리더십으로 평가받았다.

반면, 한명숙 대표 리더십은 초반부터 문제로 지적됐다. 이인영 최고위원이 "이제 허니문은 끝났다"고 선언한 그때부터 지도부 잡음은 계속됐고 공천파문으로까지 확대됐다. 야당임에도 18대 마지막 국회를 쟁점 하나 못 만들고 마감한 원내전략의 총체적 부실은 말할 것도 없고,' 486섭정'에 휘둘려 중심을 잡지 못한 리더십은 한 대표의 위기를 점차 심화시켰다.

한귀영 연구위원은 "한 대표가 쇄신의 주도권을 완전히 박근혜에게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공천과정에서 아무런 정책도 의제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무능력의 결정판을 만들었다"며 "4년 농사를 거둬들여야 하는 판에 오히려 망쳐버린 결과를 내놓았다"고 말했다.

민간인 사찰파문에서 김용민 막말파문까지 위기의 고비마다 승부를 걸고 도전하기보다는 수세적 대응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민주통합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한명숙 대표의 리더십엔 승부사적 기질이 없다"며 "평시의 관리형 리더십이지, 전시의 야전사령관 스타일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민주통합당 박선숙 선대본부장이 11일 밤 4.11 총선 결과에 대해 "민주통합당은 여러 미흡함으로 인해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 여론을 충분히 받들지 못했다"며 "실망시켜 드려 죄송하다" 패배를 인정한 뒤 상황실을 나서고 있다.
 민주통합당 박선숙 선대본부장이 11일 밤 4.11 총선 결과에 대해 "민주통합당은 여러 미흡함으로 인해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 여론을 충분히 받들지 못했다"며 "실망시켜 드려 죄송하다" 패배를 인정한 뒤 상황실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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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막말 파문이 터졌을 때, 한 대표가 보여준 리더십 실종도 큰 문제로 지적됐다. 정봉주 전 의원을 당이 지켜내지 못했다는 부담과 정 전 의원을 지지하는 미권스 회원 20만 명, 그리고 <나꼼수>에 휘둘렸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민주통합당 고위 관계자는 "김용민 문제는 처음부터 매듭을 짓고 갔어야 했다"며 "초장에 자진사퇴시키거나, 아니면 끝까지 함께 가는 모습을 보였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역시도 실기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평가했다.

한귀영 연구위원은 "자신의 과오는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성찰의 공간을 갖지 않는 <나꼼수>에 휘둘렸다는 평가는 줄곧 지속됐다"며 "진영논리로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식으로 '쫄지마' 형태로 일관하는 것이 처음에는 달콤 짜릿하지만 결국 그것이 자기편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쟁점 2] 제도개혁과 지역구 공천 실패가 부른 패배

지난해 12월 우여곡절 끝에 통합한 민주통합당은 통합 당시 '정당혁신'을 매우 강조했다. 시민사회 인사들이 대거 포함된 '혁신과 통합'을 통해 정치혁신과 정당개혁을 이루겠노라고 선언했다. 그 같은 노력은 실제 현실이 될 것처럼 보였다. 정파등록제와 국민참여경선, 모바일투표제, 시민배심원단을 통한 선출 등은 국민들에게 상당한 매력적 정치요소로 작용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은 이 같은 제도개혁에 실패했다. 지난 1.15 전당대회 때 80만 시민이 힘을 모아줘 흥행대박을 이루긴 했지만, 지역구 공천과정에서 진행된 국민참여경선은 '조직동원선거'로 결국 자살참극을 부르기도 했다.

선거법 개정을 통한 모바일 투표제도 좌절됐다. 옛 한나라당이 합의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민배심원단 토론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생략됐다. 결국 제도혁신을 통한 참여민주주의는 좌초했고, 경선만 복잡해졌다. 당내 경선과 야권연대 경선 과정을 거치면서 이변도 많이 발생했다. 기대를 모았던 후보들이 의외로 추락했다. 조직선거의 벽을 넘기 힘들었다는 후문이 돌았다. 선거는 인물도 크게 작용하는데 표심을 사로잡을 후보들이 전선에 서지 못하고 예선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많았다.

단수공천 파문에 경선불복, 무소속 출마까지 이어지는 총체적 혼란기에 민주통합당의 구심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한 연구위원은 "이 과정에서 민주통합당의 잠재적 우군이 지지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며 "민주통합당은 이미 여러 차례 강조했던 MB심판론 하나로 4.11 총선을 치른 격"이라고 지적했다.

11일 오후 영등포 당사에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던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모두 퇴장해 종합상황실은 썰렁한 모습이다.
 11일 오후 영등포 당사에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던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모두 퇴장해 종합상황실은 썰렁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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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점 3] 선거 내내 'MB심판' 하나로...쟁점 없는 선거

"의제의 리바이벌은 먹혀들지 않는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말이다. 민주통합당은 이번 선거의 초반 핵심 의제로 '민생'을 들었다. 반값등록금을 19대 국회 민생 1호 법안으로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이 내건 이 반값등록금 의제에 그 어떤 유권자도 반색하지 않았다. 의제가 먹혀들지 않자, 민주통합당은 민간인 사찰 파문과 함께 'MB심판론'을 들었다. 그러나 MB심판론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던 이슈다. 전혀 새로울 게 없었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여론지표상으로 나타나는 데이터를 볼 때 국민은 정말 사회경제적 이슈로 이번 선거를 심판하려고 했지만 정작 민주통합당이 선거의 쟁점을 전혀 만들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정 부소장은 이어 "민주통합당이 민간인 사찰 같은 정치이슈를 들어 네거티브 공세를 했지만 그것이 먹혀든 선거라고 보기 어렵다"며 "오히려 민주통합당이 네거티브 공세를 하는 동안 중도와 무당파층은 민주통합당 지지층에서 이탈하는 현상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정 부소장은 '정책실종 선거'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새누리당은 복지이슈 자체를 포퓰리즘이라 공격했지만, 선거 중반 들어 박 위원장이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말을 옮겼다"며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전통적으로 민주통합당 등 야권에게 이슈소유권이 있었는데 결국 이마저도 여권에게 빼앗긴 꼴"이라고 말했다.

정 부소장은 "민주통합당이 제1당이 못됐다는 것은 박 위원장이 줄곧 주장해온 거대야당심판론이 먹혔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정권심판론과 야당견제론을 동시에 갖고 있었던 상충적 유권자층이 38%나 됐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 층이 이번 표심에 크게 작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야권에 이렇게 유리한 조건이 조성됐는데도 민주통합당이 제1당을 못했다는 것은 무능한 야당의 모습을 그대로 민심이 평가했다고 볼 수 있다"며 "야당 심판론에 대한 철저한 자성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민주통합당이 집권여당으로서의 대안제시와 프로그램을 전혀 만들지 못한 상태로 이번 총선을 지휘했다는 게다.

한귀영 연구위원은 "정치와 결합된 정책으로 얼마든지 거대여당을 심판할 수 있는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데 정말 어이없게도 민주통합당이 그 정도의 실력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 선거였다"며 "결과적으로 민주통합당의 실패는 새로운 대안세력을 요구하는 형태로 진화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쟁점 4] 야권연대는 약인가 독인가

"1 : 1 단일화로 이명박근혜정권을 심판합시다!"

2010년 6.2 지방선거의 최대 슬로건은 '야권연대'였다. 전국적으로 야권연대의 토대가 마련되면 새누리당 그 어떤 후보와 맞붙어도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 야권 내 파다했다. 결과적으로 지난 지방선거와 마찬가지로 이번 총선에서도 '성공적인 야권연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이 '주술처럼' 흘러 다녔다.

통합진보당은 야권연대로 수도권과 일부 호남에서 상당히 선전했다. 지역구에서 노회찬(서울 노원병), 이상규(서울 관악을), 심상정(고양 덕양갑), 김미희(성남 중원을), 오병윤(광주 서을), 김선동(전남 순천), 강동원(전북 남원순창) 등 총 7명의 후보를 당선시켰다. 천호선(서울 은평을) 후보는 1000표 차이로 석패했지만 상당히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울산과 창원 등의 경남권과 인천에서는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문제는 부산-울산-경남지역이다. 옛 민주노동당 시절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상당한 기반을 갖고 있었던 통합진보당은 야권연대로 나섰지만 모두 패했다. 경남과 울산에서 전멸했다.

한귀영 연구위원은 "통합진보당이 외형적으로는 13석이라는 화려한 성적표를 얻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내용적으로는 실패한 성적표"라며 "울산과 창원 등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자당의 기반을 잃어버렸다"며 "비례대표 10%를 차지한 것도 2004년 총선 때와 비교하자면 썩 좋은 성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같은 결과를 초래한 당권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대중정서와 거리가 먼 정파와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공천을 한 이정희 대표와 당권파가 분명히 책임질 일"이라고 비판했다.

통합진보당 내부에서도 야권연대에 대해 "실패했다"고 자평했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이날 트위터에 글을 올려 "야권연대의 패배"라며 "국민의 선택을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국민의 마음을 얻기에는 아직 우리 야권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며 "무엇이 부족했는지 깊이 성찰하겠다, 아울러 제 자신의 부족함도 깊이 성찰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야권연대 성적표와 관련해, 정한울 부소장은 "야권단일화는 양날의 검"이라며 "정치공학적 차원에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각당의 정체성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경선룰 등을 정하느라 시간을 허비해 정작 해야할 정책준비 등을 전혀 못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 부소장은 "이제는 야권연대 전략에 대해 재검토할 단계에 왔다"며 "마치 야권연대가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해왔는데 정작 야권연대 하느라 민간인 사찰문제 하나 야권이 주도적으로 풀지 못한 채 새누리당 전선만 강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민간인 사찰 파문에 야권이 올인했지만, 결과적으로 '어설픈 실수'(숫자)를 하는 바람에 매우 쉬운 이슈를 아주 어려운 이슈로 만들었다는 게다. 민간인 사찰이라는 키워드만 있으면 되는데, '사찰'과 '감찰'의 차이를 구분해야 하고 따져야 하는 지경에 이르러 김용민 막말파문이 터져 결과적으로 유권자의 시선은 '쉬운 김용민 막말파문'에 꽂혔다는 게다.

민주통합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김용민 막말파문이 터졌을 때 가장 먼저 반응했던 곳이 충청과 강원이었다"며 "수도권에서는 김용민 막말파문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 있지만, 충청과 강원에서는 큰 영향이 있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태그:#민주통합당, #새누리당, #박근혜, #한명숙,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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