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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주인공 서연과 승민의 즐거운 한 때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주인공 서연과 승민의 즐거운 한 때 ⓒ 명필름


[기사보강 17일 13시 15분]

멜로영화 <건축학개론>의 흥행세가 심상치 않다. 개봉 3주째인 13일 현재 270만명을 넘어섰다. 이번 주말이 지나면서 280만도 넘볼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름 '보수적으로' 계산해본 결과, 여러 기대작들이 개봉하는 26일까지 상영한다고 했을 때 300만 돌파도 가능하다. 그렇게되면 건축학개론은 '여운 멜로'(보고나서 여운이 오래 남아 10년 후에도 기억되는 멜로영화를 뜻한다. 해당 영화로 <8월의 크리스마스> <접속> <봄날은 간다> <번지점프를 하다> 등이 있다)가 기록해온 흥행기록을 넘어서 한국영화사에 새로운 흔적을 남기게 된다.

보통 멜로영화는 크게 흥행하지 못한다. 지난 10여 년간 지금의 <건축학개론>처럼 화제가 되고 흥행도 잘되는 멜로영화가 흔치않았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나온 '여운 멜로', <건축학개론>이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있는 현상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아마도 순수한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바램을 이 영화가 대신 이루어주고 있어서일까. 혹자는 멜로영화면서도 재미도 있고, '기억의 습작'과 같은 추억의 아이콘들이 영화 속에 적절히 쓰여서 좋다고도 하는데, 인기가 많은 만큼 이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궁금증도 많다.

이 영화에 대한 궁금증 7가지를 뽑아 나름의 답을 내려보았다. 이 역시 정답은 아닐 것이며, <건축학개론>을 재밌게 본 이들이 재미로 봐주셨으면 한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승민이 서연을 강의실에서 처음 본 순간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승민이 서연을 강의실에서 처음 본 순간 ⓒ 명필름


1. 대학생시절 승민은 순진했는가, 나름 선수였는가?

이에 대해서는 관객에 따라 '학설'이 엇갈린다. 순진하게 보는 이들은 대부분 여성관객들이거나 자신이 승민과 같은 '찌질한' 경험을 했었던 남성관객들이다.

반면 승민과 같은 경험이 없었던 이들은 정릉 빈집에서 서연의 마음을 떠보는 거나, '압서방파(압구정-서초동-방배동)' 선배 자취방에서 서연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 그리고 납뜩이와의 대화 내용 등에서 미루어볼 때 완전 순진이는 아니고 나름 선수적인 면도 있다고 보기도 한다.

개중에 조금 승민에게 열받은 관객들은 승민을 '븅신'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역시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도 서연과 그렇게 이별한 승민이 '븅신'이라 여겼고, 그리하여 택시 기사아저씨에게 두들겨 맞은 게 참 '꼬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도 누군가 그렇게 때려줬으면 마음이 편해졌을 텐데. 현실에선 그렇게 맞을 일이 없더라.

 영화 <건축학개론>, 서연과 압서방 선배가 동침했을까?

영화 <건축학개론>, 서연과 압서방 선배가 동침했을까? ⓒ 명필름


2. 서연이 압서방 선배와 잤을까?

이는 별 중요한 게 아니지만, 그래도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연이는 술에 취했지만 길에서 압서방 선배가 입맞추려하자 두 번 거부할 정도로 의식이 있었다. 집에 들어가서도 거부했을 것이고, 압서방 선배는 그렇게까지 거부하는 서연을 덮칠 정도로 미친 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서연에게 홀딱 반해있지도 않았고, 그저 괜찮다 정도로 생각하는 자였으니까. 그리고 설령 잤다한들 서연이 압서방 선배랑 그렇게 자는 거에 뭔 의미를 두겠나 싶다. 압서방 선배가 계속 거부하는 서연이를 집에 두고 그냥 씁쓸히 집을 나가 차에 가서 담배 한대 피우고 차 몰고 갔다는 생각이다.

허나 이를 두고 일부 관객 중에서는 당연히 서연이 압서방 선배와 잤을 거라 판단 내리고, 그런 상황을 그냥 두고 가버린 승민을 질타하는 반응들이 있기도 했었다. 어찌 그리 판단을 지레 내렸는지에 대해선 이 리뷰를 떠나 대한민국 사회의 성담론적인 토론이 오고가야할 문제이기에 일단은 묻어두고 넘어가기로 한다.

여하튼 분명한 건, 어찌됐든 간에 서연은 압서방 선배와 안 잤다. 이 영화의 분위기를 미루어봐도 그렇고, 둘이 잤다는 쪽으로 생각하는 건 왠지 다른 영화같은 느낌으로 이 영활 보는 생각이 아닐까 싶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승민과 납뜩이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승민과 납뜩이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 ⓒ 명필름


3. 납뜩이는 첫사랑이 없었을까?

있었다고 보는 쪽과 없는데 다 경험한 것처럼 군다는 쪽, 두 '학설'이 있다. 나는 전자 쪽이다. 없는데 경험한다는 것처럼 군다고 보기엔 납뜩이의 속정이 크다. 없는데 경험한 듯 구는 게 아니라 실제 승민보다 앞서 첫사랑의 쓰라린 경험을 했던 거라 하는 게 더 '아구'가 맞다.

위대한 코미디언일수록 상처가 크듯이, 그렇게 보기만 해도 웃길 수 있는 납뜩이라는 것은 그 웃음의 아우라 뒤에 숨은 사랑의 아픔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좀 더 상상해보면, 아마도 첫사랑 때문에 재수를 했을 것이다. 시험을 앞두고 연애하게 되면 시험을 망치는 경우가 많으니까.

나는 반대였다. 시험을 망칠까봐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다. 결국 시험은 잘 봤지만, 그녀는 떠났다. '븅신'같은 나. 여하튼 그건 그렇고, 그래서 납뜩이는 고등학생인 싱숭이를 좋아하는걸 테고(자기가 고등학교때 첫사랑을 해서 고등학생인 싱숭이가 그 첫사랑을 생각나게 할테니), 어쩌면 생숭이가 중3인데도 마음에 두고있는걸 보면, 납뜩이의 첫사랑이 중3때였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더욱 확실하게 여겨지는 건 납뜩이의 첫사랑이 양서연처럼 이름이 좋고, '획수'도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며, 외모가 싱숭이와 비슷했을 거라는 점이다. 납뜩이는 강남패션을 은근히 추구하고, 마치 그 시절 대학의 복학생 오빠같은 느낌이 난다. 헤어스타일을 중시하는 것도 그렇고. 단추를 풀고 남방을 입는다든지 풍덩한 청바지를 입는 등의 모습이.

이걸 볼 때 납뜩이의 첫사랑은 강남에서 만났거나 강남을 선호하는 사람이었을 것이고, 대학생을 선망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이었을 거라면, 역시 고등학생 때 납뜩이가 고등학생끼리 사귀지 않았겠는가 하는 추측도 가능한 것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현재의 서연과 승연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현재의 서연과 승연 ⓒ 명필름


4. 불륜을 아름답게 포장한 영화다?

불륜을 포장했다기보다 색다르게 다룬 영화다. 포장이란 속은 그대론데 겉만 바꾸는 것이다. 이 영화는 겉도 속도 바꿨다. 마치 그 세련됨이 괜찮은 미국이나 유럽영화 같은 느낌이랄까. 불륜적인 부분을 단순히 포장해온 기존의 멜로영화와는 좀 다르게 뭔가 납득이 되게 다루었다.

특히 나중에 승민과 서연이 제주도집에서 키스하는 것에 논란이 많은데, 둘은 대학생시절에도 키스했던 사이고, 단지 두 번째 키스이자 마지막 키스일 뿐인데 왜 키스를 했어야 하냐는 건 이 영화를 너무 윤리적으로 본 것이다. 세상은 너무 문란하게 볼 것도 너무 윤리적으로 볼 것도 아니다. 세상은 그냥 세상이다. 그리고 그 세상을 담는 게 영화다.

다만 한가지, 과거 버스정류장에서 대학생 승민이 대학생 서연에게 첫 키스하려다 그냥 무산되도록 했더라면, 나중에 제주도 집에서의 키스가 좀더 설득력이 있었으리란 생각은 한다. 결말을 두고 이런저런 학설들('승민과 서연이 다시 만날 것이다'하는 식의)이 있지만, 그런 학설은 불륜적인 생각일 뿐이다.

그런 생각 드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동안 하도 불륜, 막장, 이런걸 영화나 드라마 등등에서 접하고 현실에서도 접하고 그래오다 보니 웬만한 건 다 불륜, 막장을 떠올리게 된다. <디센던트>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건축학개론>, 한국영화치고는 불륜스러울 수도 있고 막장스러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제법 색다르게 잘 만들었다고 본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 명필름


5. 서연이 'X년'인가?

서연이 'X년'이면, 승민도 'X놈'이다. 또한 X년이나 X놈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승민의 첫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사실은 서연의 첫사랑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여성관객들 중에 서연에게 공감하는 분도 있고, 못하는 분도 있다. 경험과 취향, 생각 차이다. 그동안 살아온 인생 차이다. 누가 맞고 틀린 건 당연히 없다. 한가지 분명한 건 우리 모두는 사랑에 서툴다는 것이다. 그 누가 사랑에 능숙할까. 사랑이란 어떤 기술이 아니다.

심리학자들은 사랑의 기술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한다지만 그거야 연구하는 대상일 뿐이지 그런다고 사랑을 어떻게 하면 잘한다? 이런 게 나올 리가 없다. 사랑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 만큼 존재하는 게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다 다르다, 사랑법은.

그래서 서로 사랑법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는 게 좋고, 서로의 사랑법이 어떤지 아는 게 좋고,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사랑법에 맞춰서 사랑하는 게 좋은 거다. 서연이 X년이 된 건 납뜩이와 승민의 사랑법과 서연의 사랑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 다름을 이해하기 위해 서연과 승민은 서로가 얘기를 했어야 하는데 얘기가 부족했다. 승민이가 서연에게 해야할 얘기들을 납뜩이에게 너무 많이 했다. 아마도 승민이는 서연보다 납뜩이가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평소 우리가 친구에게 상담하는 연애의 모든 것은 사실 연애하는 그 상대방, 그 상대방에게 얘기해야 하는 것들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 명필름


6. 왜 다들 <건축학개론> <건축학개론> 하는가?

이에 대해서도 다양한 '학설'이 가능하다. 일단 앞서도 언급했듯 사람마다 사랑법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다 자기만의 사랑이야기를 하며 이 영화를 좋다고 하게 된다. 사랑은 사람에게 가장 사적인 영역이다. 커플끼리 문제는 제3자는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그리고 또 한가지는 이 영화가 워낙 군더더기 없게 잘 짜여져 있기에 '이런 첫사랑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도 마치 겪었던 사람처럼 만들어버린다'. 즉 영화에 완전 빠져들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다들 이 영화에 빠지게 되고 그래서 <건축학개론> <건축학개론>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떻게보면 이 영화는 무섭다. 없는 첫사랑의 추억이나 거의 잊혀져 없는거나 마찬가지인 첫사랑의 추억을 영화 보고 나면 마음속에 되돌려놓거나 되살려놔서 집에 와서는 '기억의 습작'을 무한 반복하게 하거나 밤잠을 늦게 이루게 하기 때문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 명필름


7. '기억의 습작'은 어떤 의미인가?

첫 번째 관람했을 때 엔딩 크레딧과 함께 '기억의 습작'이 나올 때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 당황스러움이란. 왜 하필 '기억의 습작'을 듣고 그랬을까. 이 영화에서 이 노래의 의미는 무엇일까. 혹자는 이 노래가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추억이 있을법한 노래라서 영화에 쓰인 거라 하기도 했다.

또 생각해본 바로는 역시, 그 가사와 그 노래에 담긴 정서 때문이다. 이 노래 가사를 보면 어찌나 가슴 아픈지. 사랑에 대한 가사인데 짝사랑이 아닌 경우와 짝사랑인 경우로 나뉜다. 먼저 짝사랑이 아닌 경우. 서로가 서로의 마음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데 '마음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면' 하고 얘기하는 거다. 이는 사랑에 대해 너무 많은걸 바래서다.

그 다음은 짝사랑인 경우. 서로가 서로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을 만큼 사랑하는 사이는 아닌데 그런 사이가 되고 싶어하는 거다. 이 경우든 저 경우든 간에 그래서 가슴아프다. 그 당시엔 그래도 서로 마음속에 서로가 조금이라도 들어가 있다는 걸 모르기에 말이다. 지나고 나선 알 수 있는데. 그래서 가슴이 아픈 것 같다.

언제나 영화는 그런 적은 없어도 그럴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루곤 한다. 그렇기에 <건축학개론>속 승민과 서연의 사랑도 시대와 사람을 막론하고 서로에게 있을 때 잘 하지 않으면 언제나 그렇게 겪을 수 있는 일이고, 그래서 관객들이 이 영화에 재미를 느끼는 게 아닐까싶다.

끝으로 덧붙인다.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신드롬 수준이다. <건축학개론> 신드롬. 과거 <고양이를 부탁해>처럼 여러 번 관람하는 관객들이 적지 않다. 멜로영화임에도 혼자 보는 관객들이 적지 않다. 조조로 보는 이들도 꽤 많다.

이 외에도 이 신드롬의 특징 중 하나가 관객들이 보면서, 혹은 보고 나서 각자 상상의 나래를 펴보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14년 후 승민과 서연의 딸과 아들이 서로 친해지면서, 다시 승민과 서연이 한국에서 만나게 된다는 내용의 <건축학개론2>를 생각해냈을 정도다. 이런 상상은 본 기자만의 상상이 아니다.

지금 당장 인터넷에서 '건축학개론'을 검색해보면 이 영화에 대한 감상과 상상들이 넘쳐날것이다. 사정상 이 글에 다 옮기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건축학개론>이 따뜻한 봄날을 외롭게 보내는 이들에게 특히 오래오래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무리한다.

건축학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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