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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오 경찰청장이 9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에서 지난달 수원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살해사건 관련 유가족을 면담한 후 고개숙여 사죄하고 있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9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에서 지난달 수원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살해사건 관련 유가족을 면담한 후 고개숙여 사죄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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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생한 수원 20대 여성 살인사건을 보면서 내내 답답했습니다. 우선 한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가슴아팠고요. 범인 오씨의 범행수법이 너무도 잔인한 것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를 힘들게 만든 것은 이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의 성범죄에 대한 인식수준이었습니다.

처음 이 사건이 보도될 때 언론에서는 가해자 오씨의 말만 듣고 우발적 범행이라 보도하였습니다. 경기경찰청 역시 사건은 축소·은폐하면서 가해자의 진술에만 의존한 채 사건을 파악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거의 바닥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지요.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는 성범죄 가해자의 말을 듣고 범행일체를 파악하지 않습니다. 물론 가해자들의 진술도 중요하지만, 범행 패턴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를 이용해 사건을 기본적으로 파악하고 그외 과학수사 기법을 통해 객관적인 자료를 보강하곤 합니다. 

만약 이번처럼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는 피해자의 증언을 들을 수 없기에 더욱 객관적인 자료를 중시하게 되지요. 특히, CCTV 가 있다면 이것은 아주 중요한 증거자료로 여겨지게 됩니다. 그 외 범인의 DNA나 알리바이 등을 확인하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하지만 이 사건에서 경찰은 CCTV와 목격자 확보 등에 소홀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을 보면 가해자의 계획성과 의도성을 확실히 알 수 있었음은 물론 목격자 역시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범죄 피해자의 입장에 공감해야 한다

사실 저같은 성교육 전문가나 민간단체 사이에서 상식 중의 상식인 명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폭행 사건은 십중팔구 계획된 범죄'라는 것이지요. 성범죄의 80% 이상은 아는 사람의 소행이며 이들은 피해자의 나이나 직업, 외모 등과 상관없이 성범죄를 저지릅니다.

그러나 경찰은 사건 초기 가해자의 진술만 믿고 '우발적인 범행'이란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사건을 접근하는 자세부터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니 CCTV 확인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지요.

피해자를 수십 조각으로 잔인하게 살해한 사람이 말다툼 끝에 우발적으로 살인을 했다는 것을 믿었다면 정말 바보인 것이고, 만약 그게 아니였다면 의도적으로 사건은 축소·은폐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이에 경찰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112 신고접수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특히, 현장 경험이 많은 분들을 모시려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습니다. 일반 범죄의 경우는 현장 경험이 많으면 사태 파악이 잘 될 수도 있지만 성범죄는 조금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범죄는 강력범죄입니다. 그러나 일반 강력범죄와 다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강도, 살인 등의 경우는 수사관이 객관적인 입장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하지만 성범죄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피해자의 입장을 '공감'하는 것입니다.

성범죄를 이렇게 처리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사건의 재구성이 가장 합리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성범죄 피해자는 일시적으로 운이 없었다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신의 전 인격이 유린되고, 찢기는 경험을 합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진술은 일관성을 갖기 어렵고, 신고 순간 자체에도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성범죄 대응에 미숙한 경찰, 안타깝다

따라서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장 경험이 많은 분을 모시는 것 뿐 아니라 이들에 대한 성인지능력을 높이고, 현장을 정확히 파악해 즉각적으로 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먼저라 할 수 있겠습니다. 피해자의 비합리적인 대화를 받아들이는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현장 감각, 그리고 현장에 즉각 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하나가 되어야 이런 사건이 재발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최근 몇 년간 꾸준히 보도되었던 경찰의 미숙한 성범죄 대응을 보면서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 분들의 열의와 정의감이 성범죄에 있어서 빛을 발하지 못할 때가 종종 보였기 때문이지요.

물론 이것도 문제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이 분들에 대한 교육을 소홀히 하고, 현장 출동 시스템을 명확히 구축하지 못한 경찰 수뇌부에 대한 지적 역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이런 사건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하늘바람몰이(http://kkuks81.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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