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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소성(68)이 7년이라는 오랜 침묵을 깨고 새로운 장편소설 <설향 雪鄕>(시와에세이)을 펴냈다
▲ 작가 정소성 작가 정소성(68)이 7년이라는 오랜 침묵을 깨고 새로운 장편소설 <설향 雪鄕>(시와에세이)을 펴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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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나는 30년 넘게 봉직해오던 대학을 퇴직하였고, 정년 직전에 좀 심한 신병을 얻어 조금 고생을 하였다. 지금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였다. / 소설가가 소설을 펴내지 않는 것보다 심한 고통은 없다. 2,3년간 신작이 없으면 조금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5년이 넘어서면 체념의 시선으로 변한다. 이 정도가 되면 나를 아껴주는 분들은 화까지 낸다" - '책 앞에' 몇 토막

작가 정소성(68)이 7년이라는 오랜 침묵을 깨고 새로운 장편소설 <설향 雪鄕>(시와에세이)을 펴냈다. "소설가가 소설을 펴내지 않는 것보다 심한 고통은 없다"라고 말하는 작가가 7년이라는 세월 동안 소설을 쓰지 못한 까닭은 대학을 정년퇴직할 무렵 뇌경색으로 쓰러져 고통 심한 병과 힘겹게 싸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나온 장편소설 <설향>에서는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사랑, 가슴앓이 같은 사랑을 열병에 빗댄다. 사랑의 씨앗과 그 사랑이 싹을 틔워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 사랑이라는 행복한 병에 걸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젊은이들, 그들 속내 깊숙이 새겨진 아름다운 사랑의 상처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고 있다. 

이 장편소설은 모두 11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장 '동해안의 젊은이들', 제2장 '마음의 행로', 제3장 '숲 속의 통나무집', 제4장 '분열', 제5장 '졸업 후-절망을 넘어', 제6장 '군 입대', 제7장 '시련의 세월', 제8장 '같은 날의 휴가', 제9장 '충격적인 비극', 제10장 '돌아서 가는 길', '제11장 기항지'가 그것.

지난 2일(월) 저녁 7시. 인사동에 있는 한 음식점에 만난 작가 정소성은 이번 장편소설 <설향>에 대해 "이번 소설은 열두 번 이상 고치고 다듬기를 거듭했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그는 "나는 7년이라는 오랜 공백 기간 동안 내 졸작들에 대해서도 일관된 독자군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지금 나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나는 다시 쓰고 또 쓸 것이다. 정년으로 자유로워진 탓일까, 한결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필의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라며 "나이가 들어보니 소설은 어쩌면 자기의 이상과 진실된 희원으로만 살 수 없는 실제의 인간의 삶을, 인간의 상상력 속에서나마 작가 자신의 열정과 희망, 그리고 진실로 살아보고자 하는 생명 존재로서의 간절한 소원을 추구하는 작업"이라고 못 박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밤이야, 혜란과 미라가 아름다워 더 취해"

이번에 나온 장편소설 <설향>에서는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사랑, 가슴앓이 같은 사랑을 병에 빗댄다
▲ 정소성 새 장편소설 <설향> 이번에 나온 장편소설 <설향>에서는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사랑, 가슴앓이 같은 사랑을 병에 빗댄다
ⓒ 시와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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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학 중 혜란을 깊이 사귀었다. / 그녀는 나의 원룸을 가끔 찾아오기도 했다. / 동쪽으로 난 넓은 유리창으로는 멀리 관악산이 보였다. / 혜란은 경우에 따라서는 나와 함께 저녁도 짓고, 커피도 끓이곤 했다. / 그녀가 지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그리고 작업 중인 작품을 보고 서로 평하곤 했다.

그리곤 실제 붓을 들어 그녀의 의견대로 작품을 조금 고쳐보기도 했다. / 가정형편이 괜찮은 편이었던 혜란은 아버지로부터 전세아파트를 한 채 받았다. 그것은 양화대교가 내려다보이는 강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반짝이는 수면 위로 선유도가 그림처럼 떠 있었다. / 나도 가끔 혜란의 아파트를 찾아가곤 했다." -13~14쪽, '동해안의 젊은이들' 몇 토막

이 장편소설을 이끌고 있는 주인공은 일인칭으로 이야기하는 '현우'다. 사랑에 목말라하고, 그렇게 얻은 사랑 때문에 울고 웃고 하는 이 소설이 지닌 모든 이야기, 그 이야기는 현우(나)가 바라보는 눈으로 그려지고, 그 앞뒤 또한 현우가 부는 풍선처럼 팽팽하게 불어났다 줄었다 하면서 이어진다.

'나'는 미술대학을 다닐 때 가까운 벗이었던 '혜란'을 사랑의 핵으로 내세운다. 그 핵을 둘러싸고 있는 마그마와 용암은 남자 '태현'과 여자 '미라'다. 이 장편소설은 화가를 꿈꾸는  젊고도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이 네 사람 사이를 둘러싼 여러 가지 복잡 미묘하면서도 운명처럼 다가오는 사랑이야기로 수놓고 있다.

이 장편소설에서 현우는 아주 사려 깊은 모범생처럼 행동한다. 예술이라든지 생이라든지에 따른 진지함이 현우에게서 느껴진다.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자기 욕망을 스스로 억누르면서 자연스레 혜란과 가까워진다. 순간적인 돌발행동보다 상대를 폭넓게 배려할 줄 아는 그에게 싹트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몹시 순수하게 느껴진다.

"우리들은 아래채 정원의 의자에 앉아 삶은 오리고기를 안주 삼아 온밤 막걸리와 소주를 마셨다. 
'너무나 아름다운 밤이야, 술로도 취하지만 혜란과 미라가 너무 아름다워 더 취해...'
어쩌면 나와 혜란 그리고 미라와의 사이에 있었던 사랑의 행위가 그녀들과 태현 사이에서도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뇌리에 떠올랐다. 혹시 그들 사이에서는 더욱 절실한 사랑의 행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내 의식의 바닥에서 피어올랐다." -101쪽, '숲속의 통나무집' 몇 토막

현우가 지닌 삶은 어찌 보면 매우 현실적이다. 벗 태현을 위한 배려와 깊은 우정도 그러하고, 군대를 제대한 뒤 그가 선택한 미술교사라는 길도 평범한 자기 선택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현우는 이 소설에서 자기 속내 깊이 삶과 예술에 대한 진정성을 키워나간다. 혜란은 이 같은 현우 성격과 그럭저럭 어울린다.

처음에는 혜란을 친구이자 미술이라는 길을 함께 걸어가는 예술동반자라 여겼던 현우는 날이 갈수록 그 감정을 넘어선다. 혜란은 한 여성으로 현우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지만 두 사람은 서로 그 감정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다. 혜란은 그 때문에 현우가 군대생활을 거치는 동안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남편과 사별하는 고통을 겪으면서 다시 파리로 떠나는데...

"젊음이란 아름답지만 늘 충동적이다"

"눈 덮인 골짜기는 나에게 무한한 위무와 상상의 세계를 선사하였다. 나는 밤 새워 그림을 그렸다... 어느 날, 점심을 짓고 계시던 어머니께서 누가 날 찾아왔다고 하시면서 내 화실로 들어오셨다. 알 만한 사람이라면서 나가 보라고 했다. 화실 유리문을 통해 눈이 하염없이 뿌려지고 있는 마당을 내려다보았더니 아이 이게 누군가. 혜란이가 흐린 하늘과 눈발로 한껏 깊어진 마당의 공간 속에 큼직한 트렁크를 들고 서 있는 게 아닌가." -307쪽, '기항지' 몇 토막

작가 정소성 장편소설 <설향>이 지닌 특징은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 때문에 주인공들이 이리저리 부딪치고 빠지는 것이 아니다. 이 주인공 네 사람은 스스로 속내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사랑의 감정, 충동 혹은 욕망 때문에 사랑과 예술 또한 신기루로 흩어진다. 이 장편소설은 사랑과 예술을 하나로 잇기 위해 고민하고 아파하고 눈물짓는 우리시대 젊은이들 고된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권영민은 '발문'에서 "젊음이란 아름답지만 늘 충동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소설 <설향>의 이야기에 공감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 파괴적이라고 할 정도로 격정적이면서도 때로는 거기에 망설임이 또한 덧붙여지기 때문"이라며 "이 소설에서 그려내고 있듯이 젊음이란 거기에 포함되는 가장 격렬한 여러 가지 파격의 장면들을 빼놓고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쓴다.

그는 "장편소설 <설향>을 세 번이나 읽었다. 이 소설은 젊음의 이야기다. 여기서 젊음이란 단순한 세대적 감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새로운 예술을 향한 도전에는 좌절도 있고 실패도 있지만 자기 욕망을 따라가고자 하는 힘이 그 저변에 작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의 이야기 자체가 보여주는 젊음의 감각"이라고 적었다.

작가 정소성은 1944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1976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창작집으로 <아테네 가는 배>, <뜨거운 강>, <타인의 시선>,<혼혈의 땅>,<벼랑에 매달린 사내>가 있으며, 수필집으로는 <영원한 이별은 없다>가 있다.

장편소설 <천년을 내리는 눈>, <여자의 성>, <악령의 집>, <가리마 탄 여인>, <안개 내리는 강>, <제비꽃>, <사상의 원죄>, <최후의 연인>, <소설 대동여지도>, <운명>, <두 아내>, <소설 태양인>, <바람의 연인>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 윤동주문학상, 박영준문학상, 월탄문학상을 받았다. 지금은 단국대학교 대학원 명예교수, 일간문예뉴스 <문학in> 기획편집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설향 - 정소성 장편소설

정소성 지음, 시와에세이(2012)


태그:#정소성, #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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