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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 "오늘 밤 죽을 수도..." 가자지구 소녀의 절박한 트윗

벨라타르의 마지막 작품 <토리노의 말>을 본 그 밤은 돌이킬 수 없는 악몽과도 같았다. 마치 세상을 시험하러 애써 지구로 찾아온 악마를 만난것 처럼 온몸이 쑤시고 마디마디가 저려온다. 온통 어둠으로 가득차 있었던 146분이 흘렀을 때 정말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암흑이 머리에 박힌 것처럼 스산한 심정이었다.

황량한 벌판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부녀의 서사조차 표현하기 힘든 이야기는 적어도 내게는 충격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보는 이를 힘들게하는 작품을, 그것도 마지막 작품으로 남긴 작자의 몰골이 궁금했다. 과연 벨라타르가 악마는 아닐까?

파멸에 이르기까지 발생하는 소멸들

아직까지 귀 속을 파고드는 폭풍소리가 끔찍하게 들린다. 온통 <토리노의 말>에서 마지막 날을 제외하고 찾아오는 이 거친 바람의 소리는 작품의 분위기를 장악한다. 집안을 삼킬 것 같은 그 폭풍을 맞으며 부녀는 매일같이 똑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그런 모습이 몇 번씩 반복되어질 때 지루함보다는 처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폭풍소리보다 더 끔찍한 부녀의 변화없는 행위는 그것을 스크린으로 보고 있는 모두를 지치게 만든다. 난 무엇보다 이 무서운 폭풍이 그들을 그 황량한 곳에 묶어둘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그 굉장한 소리가 그들을 파멸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 말하고 싶다.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변화없는 삶
ⓒ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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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영화는 계속해서 부녀가 파멸에 이르게 될 것임을 그들의 지극히 반복적인 일상속에서 작은 변화들로 보여준다. 식량등을 구하기 위해서는 말을 움직여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말은 꿈적도 하지 않는다. 우물은 마르고, 불은 그 빛을 잃게 된다. 곧 그와 그녀(부녀)는 파멸에 이른다.

그러는 동안 그들의 변화 없는 일상들이 하나둘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말을 타고 먼 곳으로 갈 수 없게 되며, 딸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행위를 할 수 없게 된다. 더불어 아버지를 위해 옷을 입혀준다거나 식탁에 마주앉아 유일한 식량인 감자를 먹는 행위조차 할 수 없게 됨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니 파멸에 이르는 과정엔 하나둘씩 일상적인 것들이 소멸되어 간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부녀는 지극히도 '변화'되는 것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들이 반복하는 일상의 행위를 통해서 '변화없는 삶'이 그들에게 얼마나 깊게 전염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중간 이후, 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서 그들의 '변화없는 삶'이 곧 '변화할 수 없는 삶'으로 전이됨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저 자고 먹고 하는 공간인 부녀의 낡고 추한 집
ⓒ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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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날,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아버지가 딸과 함께 마차를 끌고 곧 무너질 것 같은 집에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언덕을 지나자마자 다시 돌아오고만다. 더 나아가지 못하는 이들의 삶은 그대로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왔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상태로 그저 놓아둔다.

부녀이외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이웃주민과 집시들이 한 말을 그들은 전혀 듣지 않는다. 이것은 그들을 더욱더 고립되게 만드는데 그들(이웃주민과 집시들)이 한 말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 이웃주민과 집시들은 예언자가 된다. 예언자들은 부녀에게서 변화를 요구하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예언자들의 말처럼 부녀는 파멸에 이르게 된다.

성경의 말씀을 뒤집는 어둠의 과정

<토리노의 말>은 부녀가 파멸에 이르는 6일을 그리고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제 7일째 안식하시고 또한 인간들도 이날에 안식하라고 하신 성경의 말씀을 영화는 뒤집는다. 점점 더 행복한 세상이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소멸과 파멸은 깊어진다.

6일째 되던 날, 모든 것이 소멸되고 어두움이 찾아온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안식하여야 할 7일은 화면에조차 나타나지 않는다. 순간 그렇게 몰아치던 바람소리마저 사라진다. 그러면 부녀의 삶의 무게는 어떻게 되었을까?

 단절된 공간에서 열린 공간을 움직임없이 바라보는 딸
ⓒ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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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호기심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부녀는 번갈아가며 의자에 앉아 창문밖의 풍경들을 본다. 카메라는 앵글을 바꾸어가며 아버지와 딸의 무거운 어깨를 비춘다. 그리고 그 앞 창문으로 보이는 무서운 현실을 비춘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순간 부녀의 그렇게도 참을 수 없었던 삶의 무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하지만 영화는 아무런 해답도 힌트도 남기지 않은채 또한, 사라진다.

벨라타르는 그렇게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아무런 표시도 남기지 않은채 어둠으로 마무리하였다. 물론 그의 다른 작품을 보지 못했지만 이 작품만으로 그가 느꼈을 영화찍기에 대한 무게감이 얼마나 지탱하기 힘든 것이었음을 알 수 있을것만 같다. 그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려고 했지만 그의 작품을 보는 것, 본 이후 돌이킬 수 없는 악몽처럼 느껴지는 것은 니체가 죽는 순간의 고통처럼 당분간은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1일 1회 상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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