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나라 전통 사회제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남아선호사상을 가지게 했다. 남아선호사상은 가부장제도와 맞닿았다. 그리고 여성들은 고부간의 갈등이라는 말을 낳았고 세계적으로 특별한 가정 문화가 되었다.

잎과 줄기에 가시가 돋아있는 며느리밑씻개꽃
▲ 며느리밑씻개꽃 잎과 줄기에 가시가 돋아있는 며느리밑씻개꽃
ⓒ 류형

관련사진보기


시어머니와 며느리에 관한 일화는 수없이 많다. 가문의 대를 이어갈 자손의 생산자 인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는 가문의 아들을 낳은 존재라는 말에 일맥상통한다. 이러란 여인들끼리 우애감보다 시샘이 앞서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얼마나 며느리가 미웠으면 꽃이름의 세계에도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배꼽 등 따갑고 불편한 풀꽃에 며느리란 명칭을 달았을까? 하는 의문도 생겨난다. 이렇듯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밥이었던 시대가 있다. 시어머니가 낳은 아들과 함께 사는 며느리에 대한 시어머니의 유세는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의 피나는 눈물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호주제폐지와 함께 맞벌이부부가 살아가는 요즘 시대는 며느리 수난시대를 넘어서 시어머니 수난시대에 도달했다는 속설도 여기저기 들려온다. 과연 속설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현명한 시어머니? 라는 화두가 가끔 우스갯소리 속에 뼈있는 말로 들려오기도 한다.

꽃과 잎에 가시가 달려있는 풀꽃으로 며느리밥풀꽃이다.
▲ 며느리밥풀꽃 꽃과 잎에 가시가 달려있는 풀꽃으로 며느리밥풀꽃이다.
ⓒ 이연옥

관련사진보기


나의 시어머니 또한 전통적인 시어머니의 표본이셨다. 그런데 연세가 팔십 후반이신 시어머니는 가끔 찾아오시는 친구 몇몇 분들과 텔레비전 속에서 시대의 변화를 느끼신 걸까? 아님 같이 늙어가는 며느리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겨서일까? 어쨌든 어떤 연유에서인지 조금씩 부드럽게 변화하는 모습이 보여서 측은지심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겨우내 병원신세를 지는 동안, 시어머니는 병원을 찾아오기도 하시고 퇴원을 하고도 자주 내 방을 찾으신다. 그런데 얼마 전 위쪽 치아 하나 남은 게 아프다고 하시며 내 방에 오셨다.

"어머니, 다른 때처럼 그냥 두지 말고 내일 아침 병원에 가세요."

다음날 아침, 시어머니와 차에 막 오르시는데 아들이 마당으로 나선다.

"엄마, 오늘 위 내시경 예약했다고 아침 금식을 하더니 할머니하고 어딜 가세요?"
"응, 할머니 치과에 모시고 가려고, 이가 많이 아프시대."
"그럼 제가 모시고 갈 게요. 엄마는 아빠랑 시간 맞추어서 내시경하러 가셔요."
"그래, 네가 가면 할머니도 더 좋아하실 테고, 그러면 좋겠다." 

치과에서 검진을 받으시는 시어머니
▲ 치과 검진 치과에서 검진을 받으시는 시어머니
ⓒ 이연옥

관련사진보기


그러자 시어머니는 "아니다. 난 에미랑 갈련다" 하신다.

"어머니가 그러시다면 그래요." 하고 차에 시동을 거는데 남편이 밭에 다녀오다가 보더니
"내시경 검사 하는 날인데 어디 가는 거야? 하고 묻는다.

"어머니 치과에 모시고 가려고요. 이가 많이 아프시대요."

그러자 남편이 "내가 다녀올게. 당신은 검사하러 갈 준비나 하고 있어요" 한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얘, 난 에미랑 갈 거야" 하신다. 이건 정말로 의외의 사건이다.

차를 타고 치과에 가는 동안,
"이빨 빼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니? 얼른 하고 와서 너도 병원 가거라" 하신다.

시어머니는 그동안 이가 부서지고 빠져도 식구들이 치과를 가자고 하면 치과는 무서워서 못가겠다고 하시면서 한 번도 안 와보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집에서 아무리 이를 빼려고 해도 빠지지도 않고 하니 너무 아파서 그 무서운 치과를 며느리하고 오신 것이다.

치과에서 시어머니는 두려워하시며 진료실 의자에 앉으신다. 안정하시라고 곁에서 지키고 있는데 아주 작고 초라한 노인이다. 그렇게 차고 팔팔하던 시어머니인데 세월은 이렇게 나약하고 작고 힘없는 노인으로 만드셨다. 지켜보는 마음이 자꾸 안스러워지는 건 무엇인지 모르겠다.

혈압을 안정시키고 있다.
▲ 치과 검진 혈압을 안정시키고 있다.
ⓒ 이연옥

관련사진보기


시어머니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하지 못해서 혈압이 점점 높아진다. 간호사들이 혈압이 내리기를 기다려 다시 혈압을 재도 내리지 않는다. 혈압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 마음 푹 놓으셔요. 여기가 우리나라에서 이를 제일 잘 빼는 병원이에요. 그리고 아까 보신 의사선생님이 제일 안 아프게 이를 빼는 선생님이시구요. 그러니까 맘 푹 놓으셔요"하면서 마음을 안정시켜드렸다. 간호사들과 의사선생님이 몇 번을 들여다보고 혈압을 재도 내리자 않자 다음에 진정을 하고 다시 오시기로 하고 결국은 그냥 집으로 돌아오셨다.

며칠 후 다시 병원을 가서 발치를 한 후에도 시어머니는 며느리와 함께 치과를 다녀오신 걸 대단히 뿌듯해하신다.

며느리배꼽꽃
▲ 며느리배꼽꽃 며느리배꼽꽃
ⓒ 류형

관련사진보기


전통사회제도가 바뀌면서 변화한 이 사회의 반영이 우리집에도 반영된 걸까? 라고 의문을 하고 싶지만 그건 아닐 것이다. 하는 추론이 제기된다. 오랜 시간 치이고 닦인 몽돌들이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면서 냇가의 풍경이 아름답듯이, 오랫동안 공존하면서 치인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시간이 가정이라는 냇가에 몽돌이 되었다면 이제쯤 남은 세월은 서로 구르면서 어루만지는 일일 것이다.


태그:#고부간의 갈등, #치과검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흥시민뉴스에 기사를 20 건 올리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오마이 뉴스에도 올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올렸던 기사는 사진과 함께 했던 아이들의 체험학습이야기와 사는 이야기. 문학란에 올리는 시 등입니다. 이런 것 외에도 올해는 농촌의 사계절 변화하는 이야기를 사진을 통해서 써보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