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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드디어 인간 구실을 하는구나."

올해 대학에 합격하고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을 때 내가 들었던 말이다. 어릴 때부터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손에서 키워졌던 나의 대학 입학은 그분에게 조금 더 특별한 의미이기도 했다.

교무실 책상 위로 자퇴서를 집어던지며 고등학교를 박차고 나왔을 때, 할머니는 거의 쓰러지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학교로 돌아가란 말씀을 하셨지만, 나는 학교를 나온 이후 청소년인권운동에 올인했다. 할머니는 내가 자퇴를 하셨을 때보다 더 기겁하셨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여자애'가 벌써부터 집회 현장을 기웃거리고, 어디 국가 기관에 점거 농성이나 하고, '불온한' 생각만 품는 모습이 꽤나 위태로워 보이셨겠지.

할머니는 하루 빨리 내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부처님께 매일 매일 비셨지만, 부처님의 '약발'도 망나니 같은 막내 손녀의 '끗발'에는 못 미친 것 같다. 그렇게 나의 10대를 청소년 운동에 쏟아 부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손녀가 대학에 간다니, 그것도 명문대라니 할머니가 기겁하셨을 만하다. 만약 내가 스무 살이 되고서도 대학에 가지 않았다면, 그것도 '서연고~'로 시작하는 한국대학순위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대학이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인간구실 못하는 '불쌍한 중생' 밖에 못됐을지도 모른다.

술로 시작해 끝이 나는 '새터'... 불편한 명문대 우월의식과 애교심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의 심볼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의 심볼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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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대학을 가야한다는 생각을 깊이 해본 적이 없다. 청소년 운동을 하면서 '학벌'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않는 세상을 너무나도 간절히 원했고, 대학에 가지 않고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랐다. 내 스스로가 그런 삶을 살며 행복하기를 바랐다. 내게는 그런 삶이 더 행복할 거라는 확신이 분명 있었다. 내 스스로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청소년 운동을 통해 나름대로의 저항을 해왔고, 그 과정 자체가 내게는 행복이었다.

하지만, 어느 새 나는 대학생이 되어버렸다. 남들과 다를 거 하나 없이 수강신청 때문에 온 몸의 피가 바짝바짝 말라가는 경험도 했고, 과제를 할까? 아니면 좀 더 놀까? 하는 고민도 수없이 해봤다. 새터(새내기 새로 배움터)에 가서 술을 죽기 직전까지 마셔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대학이라는 공간이 너무나 불편하고 낯설다. 마치 스스로가 그 공간에 속하지 못하고 겉도는 이방인 같다고 느껴졌다.

내가 처음 대학에 들어와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대학 안의 문화였다. 2월쯤에 학교에서 진행하는 새터에 다녀왔다. 사실 나의 첫 대학 새터의 기억은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버렸다. 아직도 내게는 너무 어려운 술 게임이 몇 번 돌고, 선배들은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을 술로써 증명했다. 먹기 싫은 술을 억지로 먹어야 하는 것은 거의 고문과 다름없었다.

대학 문화를 이야기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흔히들 고연전, 혹은 연고전이라 부르는 두 대학 간의 정기 대항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응원 문화였다. 새터에서도 일부러 시간을 할당해 거의 2시간을 넘는 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못하고 응원가와 안무를 배워야했다. 사실 그런 응원 문화 자체가 싫은 것보다는 그 아래에 숨어 있는 몇몇 지점들이 불편했다. 대학 서열이 비슷하며 명문사학의 쌍벽이라 불리는 두 학교가 각자의 학교를 두고 '누가 더 잘났네'하는 식의 이야기는 명문대 자부심과 그로인한 우월의식을 거리낌 없이 표출해 내는 그들만의 축제였다. 또한 과격하기까지 한 응원 몸짓은 그것을 소화할 수 없는 장애인 학생들이나 체력이 약한 학생들을 소외시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교심을 요구해왔다.

학교 공동체 안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이런 문화들이 내게는 참으로 불편했다. 내 나이와 학번으로 인해 '어떤 처우를 받아도 마땅한 사람'이라고 규정되어진다거나, 대학의 이름으로 인해 나의 가치가 올라간다 거나 하는 것들이 내게는 상처 그 자체였다. 그래서 소심하고 별 거 아니지만 대학에 오고 난 후 내게는 몇 가지 다짐거리들이 생겼다. 내 나름의 저항이었다. 페이스 북 학력 기재란에 학교 이름 대신 '출신학교와 학번을 밝히지 않습니다' 혹은 '공부'라고 기재하거나, 두 학교의 정기 대항전에 참석하지 않는다거나, 학교의 로고와 이름이 새겨진 잠바를 입지 않는 것과 같은 소심한 저항. 물론 혼자만의 발악으로 끝을 맺었지만 말이다.

사교육 시장의 최대 소비자 '대학생'... 나는 뭘하고 있는 걸까

연세대학교의 상징인 독수리상과 도서관 전경
 연세대학교의 상징인 독수리상과 도서관 전경
ⓒ 연세대학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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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는 학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등록금을 자랑한다. 그나마 등록금이 가장 저렴한 인문대, 그중에서도 경영학과와 행정학과에 비해 별 인기 없는 학과에 진학했더라도 나의 한 해 등록금은 1000만 원에 육박한다. 어디 그뿐인가. 하루에 두 끼만 먹고, 학교와 집만 오가는 생활을 한다하더라도 학교생활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책값, 활동비 같은 걸 더하면 '대학'에 다니기 위해 내가 지불해야하는 대가는 너무나도 크다. 그렇게 비싼 대가를 치룰 만큼 대학이 내게 줄 수 있는 것이 클까라는 고민이 깊어진다.

원래 저렴했던 서울 시립대의 등록금이 반값이 되었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이 사실을 보니 대학 수업의 원가가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다. 예전에는 대학을 두고 '학문의 전당'이니 '진리의 상아탑'이니 하는 말들이 제 값을 했다 하더라도, 지금은 아닌 것 같다. 교수와 학생들이 둘러앉아 서로 질문을 던지고, 토론을 하며 공부하는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개강 첫 날 들어간 강의실의 모습은 참 실망스러웠다. 200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이 좁디좁은 강의실에 빽빽하게 앉아있었고, 그로도 모자라서 늦게 온 학생들은 강의실 뒤편과 옆쪽에 서서 수업을 들었다.

강의실의 가장자리에서는 교수의 모습이나 PPT화면도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수강신청을 잘 못했던 터라 듣고 싶은 수업은 못 듣고, 그저 학점을 채우기 위해 흥미도 없는 수업을 듣고 있어야 할 때는 대학에 왜 왔나 싶기도 했다. 비싼 돈을 지불하지만 학생들이 제공받는 서비스의 질은 너무나도 낮다. 그럼에도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발버둥 치다보면, 토플이니 토익이니 하는 것들로 사교육 시장의 최대 소비자가 바로 대학생이라는 말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시장논리에 잠식되어 더 이상 '학문하지 않는 곳'이 되어버린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나 역시 경쟁을 강요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남은 시간들이 아득해진다. 

얼마 전부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거의 신드롬처럼 떠올랐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문구 중 하나다. 반짝반짝 빛날 것만 같은 수많은 청춘들이 감당해 내야 하는 현실은 사실 시궁창도 못 되는 것 같으니까 말이다. 밤새 아르바이트를 해도 제대로 된 방 한 칸 얻기가 힘든 이들에게 감히 누가 '그러니까 넌 청춘인 거야!'라고 말할 수 있나. 등록금이 없어 배우고자 하는 꿈을 꿔볼 수조차 없었던, 그렇게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던 이들에게 감히 누가 '그렇게 아프니까 청춘이야!'라고 할 수 있을까.

빛나는 명문대 졸업장이 없으면 인간다운 삶을 살기가 너무나도 힘든 사회에서 감히 누가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명문대 생이건, '지잡대(지방의 잡스러운 대학)' 생이건 간에 끝없이 경쟁하고 타인을 밟고 올라서야만 하는 모든 이들에게, 혹은 그 경쟁에서 낙오되어 배제되어가는 이들에게 누가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아픈 건 청춘이 아니라 그냥 고통일 뿐이다. 대학이라는 공간이 주는 달콤한 유혹과, 청춘이니 젊음이니 하는 진부한 단어들이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를 가로막지 않길 바란다. 20대를 두고 반짝반짝 잘 포장된 '청춘'이라는 단어를 이용해, 그들이 마주하게 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진짜 뼈 아픈 일인 것 같다.

사실 나는 대학에 애착을 가지고 그리 열심히 다니지도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해야지 하며 기를 쓰고 덤비는 패기도 없다. '즐길 수 없으면 피해라'가 삶의 모토이고, '못돼 쳐먹은' 대기업들에는 취직할 생각도 없다. 잘 먹고 잘 살 욕심도 없고, 딱히 스스로가 청춘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좋은 직장에 다닐 수 있고, 풍족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데, 그 희박한 가능성에 내 모든 것을 걸기엔 나는 너무 겁도 많고 게으르다. 절대 용감하지도 않고, 패기와 열정도 없는 그저 그런 대학생이지만, 그래도 단 하나 스스로에게 약속하고자 한다.

대학이 혹은 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정체성들을 내 스스로에게 덧씌우지는 말자고. 내가 가진 이런 고민들을 놓아버리지는 말자고. 결국에는 내가 가진 '학벌'이라는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고 또 내려놓으며, 내가 그토록 불편하고 힘겨워하는 이 학벌 사회를 무너뜨리는 힘이 되도록 하자고 말이다. 대학으로 인해 이런저런 고민을 그러안고 사는 시간들의 연속이고, 숨이 막히도록 답답한 공간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있지만, 오늘도 역시 나는 온전히 내 세상을 산다.


태그:#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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