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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 오른 대게
 식탁에 오른 대게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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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조대의 아름다운 겨울 경치에 취해 있다가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점심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모두들 배가 출출하다고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거늘 배가 고프면 아무리 멋진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내 고향 주문대게가 한창일 텐데 주문진으로 갑시다, 지금 어쩌면..."

일행의 부인이 주문진으로 가잖다. 그녀의 고향이 주문진이라 했다. 물론 고향을 떠난 지는 오래되었지만 고향근처에 왔으니 마음이 그쪽으로 향하는 것은 당연할 터, 모두 군말 없이 동의한다.

승합차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풍경은 여전했다. 차가운 강풍에 몰려오는 파도, 파도, 파도,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모래톱과 바위절벽에 부딪쳐오는 바다의 절규와 함성, 몰려오는 파도에 압도당한 걸까, 일행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이 없다. 조금 전까지 수다스럽던 아내들까지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주문진항 풍경
 주문진항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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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달려 주문진항에 들어섰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항구에 정박 중인 어선들, 바닷바람이 거세어 출항을 못한 때문이리라. 어선들 앞 공터에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물을 정리하고 꿰매는 손길들이 분주하다. 바다에 나가지 않아도 어부들은 여전히 바쁜 모습이었다.

항구를 반 바퀴 돌아 안쪽에 있는 노상 판매장으로 들어섰다. 날씨도 춥고 가린 것도 없어 찬바람이 쌩쌩했지만 비릿한 냄새 속에 시끌벅적한 풍경이 생기가 넘쳐난다. 누군가 말했었지, 살아가다가 생활에 지쳐 삶에 의욕을 잃으면 시장을 찾아가보라고, 정말 그랬다. 외치고, 흥정하고, 조금은 거칠고 투박해도 장바닥은 발랄하고 역동적이었다.

생선 사진 찍으면 재수가 없다고요?

좌판에는 각종 생선들이 풍성했다. 대구. 명태, 복어, 문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양미리, 그런데 동해가 주산지인 오징어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값이 비싼 편이다. 많이 잡히지 않아 몸값이 귀해진 것이다. 대신 그 귀하다는 대게가 많다.

좌판 위의 생선들
 좌판 위의 생선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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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가 어디 영덕에서만 잡힙니까? 이게 바로 진짜 영덕 대겝니다."

대게를 파는 아주머니는 영덕대게가 틀림없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다른 일행들이 시장을 둘러보는 동안 이곳 주문진이 고향이라는 일행의 부인은 영덕대게를 흥정했다. 영덕대게는 그녀에게 맡기고 시장을 조금 더 둘러보기로 했다.

"사진 찍지 말랬잖아? 재수 없게 스리.."

그때 앞쪽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생선을 파는 아주머니가 뾰족하게 날선 목소리로 소리를 꽥 지른 것이다. 카메라로 생선 사진을 찍으려던 40대로 보이는 여행객이 머쓱한 표정으로 서있다.

수북하게 쌓여 있는 양미리
 수북하게 쌓여 있는 양미리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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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은 사지도 않으면서 왜 사진은 찍고 그래? 재수 없단 말이야!"

50대 중반이나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생선아주머니가 다시 한 번 쐐기를 박았다. 대부분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던 여행객들이 그 자리를 피한다.

"아주머니 사진을 찍으면 장사가 안 되기라도 하나요? 다른 분들은 모두 아무말씀 없으시던데."

엉겁결에 한 방 먹었던 40대 여행객이 아무래도 억울하다는 듯 한마디 한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난 재수 없어요, 찍지 마세요."

말씨는 조금 누그러졌지만 눈은 여전히 매섭게 쏘아보며 다시 한마디 툭 던진 생선 아주머니가 고개를 휙 돌리고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이날 장터에선 더 이상 사진을 찍지 못했다. 공연히 망신이라도 당할 것 같아 마음이 움츠러들었기 때문이다.

오징어를 손질하는 여인들 조형물
 오징어를 손질하는 여인들 조형물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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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은 오징어 몇 마리와 대게를 사들고 요리해주는 음식점을 찾아들었다. 음식점으로 가는 길가에는 소쿠리에 담긴 오징어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손질하는 두 명의 아낙네 상이 이곳이 오징어 명산지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음식점에서 대게를 삶아 익히는 동안 먼저 오징어 회가 나왔다. 출출하던 일행들이 맛있게 먹는다. 따로 주문한 생선매운탕은 구수한 냄새를 솔솔 풍기며 끓기 시작했다. 우리가 요리용 생선을 사들고 들어간 음식점이어서 특별한 다른 맛보기 음식은 나오지 않았다.

동해 대게가 맛있다고? 아니야, 서해 꽃게가 최고야!

잠시 후 삶아 익힌 대게가 나왔다. 등껍질을 벗겨내자 속이 텅 빈 상태다. 이곳 주문진 출신 일행이 가위를 들고 대게 다리를 적당히 잘라준다. 속살을 꺼내먹기 좋도록 배려하는 것이었다. 뭐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그런대로 맛이 있다.

항구에 정박중인 어선
 항구에 정박중인 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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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난 동해대게 먹을 때마다 별로더라, 값만 비싸고, 영덕에 가서 먹어봐도 그렇고, 몸통 속살도 먹을 게 없고, 게 맛은 역시 서해 꽃게가 최고지."

다른 여성 일행이 대게 다리 몇 개인가를 골라 속살을 꺼내먹고 나서 하는 말이다. 표정도 역시 맛이 별로라는 눈치가 뚜렷하다.

"그래? 난 맛이 괜찮은데, 언제 어디서 먹어봐도 게 맛은 역시 동해 대게가 최곤데, 왜 아니야?"

이번엔 이곳으로 안내하고 대게를 직접 구입한 친구부인이 동해 대게 맛이 좋다며 거들고 나선다. 그러자 다른 친구가 서해의 꽃게 맛이 더 좋다고 거들고 나섰다.

"솔직히 말해서 서해에서 잡은 꽃게, 그거 맛이 최고지 않나? 꽃게탕, 꽃게찜, 어떤 요리를 해도 난 꽃게 맛을 당할 만한 요리가 별로 없던 걸, 속살이 통통한 꽃게 맛, 그게 최고야 최고!"

이 친구는 완전히 꽃게 마니아였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는 처음 대게 맛이 별로라며 꽃게 맛이 좋다고 한 여성 일행의 남편이 되는 친구였다.

복어
 복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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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그러고 보니 서해 쪽 출신과 그 짝은 꽃게 맛이 최고라 하고. 동해 쪽 출신과 그 짝은 대게 맛이 좋다는 것이잖아? 하하. 난 꽃게 맛도 좋고 대게 맛도 다 좋은데."

이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공교롭게도 서해 쪽인 충남 서산이 고향인 친구 부인은 꽃게 맛이 좋다고 했고. 하조대에서 대게 맛을 기대하며 이곳으로 안내한 주문진 출신의 친구 부인은 대게 맛이 최고라고 우긴 것이다. 게 맛도 역시 입맛에 익숙하기에 따라 선호도가 다른 것인가 보았다.

"대게 맛도 좋고 꽃게 맛도 좋지만, 난 이 우럭매운탕이 최고더라 하하하."

대게 맛 파와 꽃게 맛 파가 서로 맛있다고 우기고 있는 동안 빙그레 웃고 있던 친구다. 이 친구가 우럭매운탕을 한 숟갈 떠먹으며 하는 말에 모두들 폭소를 터뜨리며 게 맛 다툼은 끝났다. 여행의 즐거움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식 맛을 즐기는 것이다.

꽃게 맛이 최고라느니, 대게 맛이 최고라며 우긴 것은 그냥 실없는 농담이었을 뿐이었다. 즐겁고 맛있게 늦은 점심을 먹은 일행들은 다시 차에 올라 강릉으로 향했다. 강릉에선 경포대를 한 바퀴 돌아보고 홍길동전의 허균과 그의 누이 허난설헌의 생가를 잠깐 둘러보았다.

생가 앞에 있는 난설헌 허초희상
 생가 앞에 있는 난설헌 허초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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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의 문학적 재능을 보였던 허균 난설헌 남매의 생가에서 느낀 소회

경포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소나무 숲 속에 자리잡은 허균 남매의 생가는 찾아온 여행객이 별로 없어 쓸쓸한 풍경이다. 연전에 들렀던 이율곡, 신사임당의 오죽헌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아무리 겨울철이라지만 찾는 사람이 너무 적어 초라하게 느껴지는 허난설헌의 생가, 그 이면에는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을까.

그녀의 아버지는 허엽으로 조선 선조임금 때 당쟁의 한 축인 동인 쪽에 서있었던 사람이다. 양심적이고 청렴한 생활로 청백리로 녹선되었고, 중추부동지사가 되었지만 상주 객관에서 객사하여 불행한 삶을 마감했다. 그녀를 아끼고 존중해 주었던 둘째 오라버니 허봉도 벼슬길에 나아갔지만 금강산에서 객사하여 불행한 최후를 마쳤다.

허난설헌의 어린 시절은 유복했다. 그러나 결혼한 후에는 불행한 결혼생활과 어린 두자녀의 죽음, 성차별에 의한 편견 때문에 문학적 재능을 펼칠 수 없었던 시대적 절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27세에 요절한 불행의 장본인이었다. 그녀의 동생이며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 역시 역모사건 가담자로 몰려 처형당한 불행의 주인공이었다.

생가 안채
 생가 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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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뒤 소나무밭
 생가 뒤 소나무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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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세상을 비판적으로 그려낸 소설의 저자 허균. 조국에선 폄하되고 대접받지 못했지만 이웃 명나라에까지 명성을 날렸던 시인이요 문장가였던 누이 허난설헌, 모두 당대 최고의 문학적 재능을 가진 남매였지만 시대의 주류가 되지 못하고 몰락한 가계와 불행한 삶을 마친 허난설헌과 허균의 옛 생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오죽헌과 비교되는 허난설헌가의 쓸쓸한 풍경은 어쩌면 이 시대 우리사회상을 말해주는 자화상 같다는 생각에 입맛이 씁쓸했다. 쓸쓸한 옛 고택을 돌아보고 발길을 돌리는 뒤편에 서있는 우람한 소나무들만 추위 속에서도 청청한 모습이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해 12월 20일에 다녀온 주문진항 이야기입니다



태그:#주문진항, #대게와 꽃게, #홍길동전, #허난설헌, #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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