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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후,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재개발 구역에서 추계예술대학교 학생들이 가상의 영화 '벌거벗은 부가현'의 설치 퍼포먼스 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재개발 구역에서 추계예술대학교 학생들이 가상의 영화 '벌거벗은 부가현'의 설치 퍼포먼스 를 진행하고 있다.
ⓒ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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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던 지난 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뉴타운 재개발 1-2구역에서는 추계예술대학교 미술대학 졸업생과 재학들이 참가하는 가운데 설치 퍼포먼스 '벌거벗은 부가현'이 펼쳐졌다. 가상의 영화 '벌거벗은 부가현'을 상영하는 가상 영화관을 설치하는 이날 퍼포먼스는 '부에 대한 인간의 탐욕이 평화롭던 마을을 없애고, 그 안에 둥지를 튼 생명들의 삶과 생계의 터전을 앗아가는 재개발의 실상'을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 빗대어 풍자한 것이었다.

10여 명의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학과와 판화과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은 이번 설치 행위예술 '벌거벗은 부가현'의 설치가 있기 하루 전인 24일에 뉴타운을 빗댄 가상의 공포영화 '벌거벗은 부가현'의 영화포스터를 북아현 재개발 구역에 붙이기 시작했다.

이날 25일 당일 참가자들은 영화관의 대형 그림 구조물 2개와 영화관 매표소 입구를 연상하게 하는 대형 스티커들을 준비해, 경인선이 지나는 굴다리 옆 도로변의 한 낡은 건물을 실제 영화관처럼 꾸미는 행위예술을 펼쳐 보였다.

이 설치작업을 진행한 이가은(25, 서양학과)씨는 "얼마 전 외국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이 아까운 건물들을 내버려 두지 말고 '뭐라도 해야 되지 않겠냐'는 제안에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음이 맞는 세 친구가 함께 고민하던 중 현재 북아현동의 재개발 의 모습이 마치 '상술에 능한 사기꾼들이 허영심 많은 임금님을 속여 결국 임금님이 벌거벗은 채로 거리를 행진하게 만든' 옛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과 같다는 데 동의하고, 가상의 영화관을 세우는 것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고 소개했다.

이씨는 "재개발 문제는 실제 예민한 문제고, 이곳에 언제 펜스가 세워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더 계획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진행하게 되었다, 이곳 북아현동은 원래 조용한 동네였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은 전쟁'을 치르고 있다"며 "이 자체만으로도 카메라만 없을 뿐 영화같아 앞으로 몇 개의 이야기를 담아 실제 영화로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북아현동에서 3년 동안 월세 주민으로 살며, 서로 친하게 지내던 주민들이 재개발 때문에 싸우는 것을 목격했다"며, "조용했던 마을이 전쟁터가 된다는 것이 제일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미술을 하는 입장에서 이곳의 공간은 그 자체로도 너무 아깝다, 재개발을 다르게 진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지난 25일,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재개발 1-2구역에서 추계예술대학교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가상의 영화 '벌거벗은 부가현'의 영화관 설치 퍼포먼스가 진행 중이다.
 지난 25일,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재개발 1-2구역에서 추계예술대학교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가상의 영화 '벌거벗은 부가현'의 영화관 설치 퍼포먼스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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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설치 퍼포먼스를 함께 진행한 유혜림(서양학과 4)씨도 "전부터 공간, 집 등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가, 이번 퍼포먼스에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고 참가하면서 철거민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유씨는 "3년간 아현동에서 자취를 하면서 스스로 주거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며 "관객들이 참여한 가운데 튜브에 펌프질을 계속 하면 안쪽으로 공간이 생기는 이동이 가능한 '움직이는 방'을 설치 작업한 경험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살던 지역이 철거되는 것을 보면서 항상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쉽게 시작하지 못하다가, 이번 설치작업에 참여하면서 '미리부터 제대로 계획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란 뒤늦은 후회가 들기도 했다"며 "이번 작업으로 다양한 주민들의 의견도 듣고 소통의 계기를 만든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 2월 22일, '학사모를 쓴 사람, 두꺼비를 만나다'에 참여했고, 이번 퍼포먼스를 공동기획한 이현정(26)씨는 "무엇보다 본인에게 이번 퍼포먼스를 할 수 있게 영감을 준 것은 아직 철거를 막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한 북아현 3구역과 2구역이었으며, 또 일부 주민들은 떠났지만 아직 주민들이 살고 있고 철거가 진행되지 않은 학교 뒤편의 1-1구역에서 발견한 재개발 반대 주민비상대책위에서 붙여놓은 주민들에게 호소하는 내용의 포스터들이었다"고 전했다.

이씨는 "이번 퍼포먼스를 진행하면서 성과라면, 지역의 재개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친구들이 많이 생겨난 것이며, 이후 다양한 추가 작업이 가능할 것 같다"고 전했다. 또 지역 분들 중에서 '이 영화를 진짜로 상영하는 거냐? 그렇다면 꼭 출연시켜 달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셨다며, 문제 많은 재개발에 '예술가로서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 '그 저항의 움직임에 씨를 뿌린 것'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또 이날 퍼포먼스에 참여한 이승훈(25, 서양학과 졸업생)씨는 "설치작업이 주민들의 이목을 끌어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 작업을 기획한 동료들이 자금 등의 문제를 극복하고 완성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작업을 할 때 어떤 시각이 '약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느냐,' 또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느냐'는 비판을 듣기도 하여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용기를 내어 마무리한 것에 큰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또 이날 설치작업에 참여한 박서진(24, 서양학과 졸업생)씨도 "작년 추계예술대학이 부실대학으로 분류되었을 때 활동하면서 친구들과 가깝게 되었다"며, "북아현동에서 1년을 살았는데, 개발을 한다고 집들을 바로 부숴버리는 것에 많은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옛 것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오는 특성이 있다"며, "삼청동처럼 지역의 특성을 살려 도시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보존의 가치'를 살릴 수 있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박 씨는 특히 "북아현동에서 살 때, 이곳의 옥상에서 바라보던 야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웠었다"고 회고했다.

지난 25일,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재개발구역에서 추계예술대학교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뉴타운 재개발을 풍자한 가상의 영화 '벌거벗은 부가현'의 영화관 설치 퍼포먼스가 진행 중이다.
 지난 25일,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재개발구역에서 추계예술대학교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뉴타운 재개발을 풍자한 가상의 영화 '벌거벗은 부가현'의 영화관 설치 퍼포먼스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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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지나가다가 학생들의 설치퍼포먼스를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주민 장용운(51, 북아현)씨는 아현동에서 30년째 살고 있다고 소개하며, "서울시의 재정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또 헌 집은 재개발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문석진 서대문구청장과 서울시장은 왜 (그 넓은 구역의) 새 집들을 재개발 구역으로 묶었는지 그 질문에 꼭 답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 새 집을 부수고 다시 아파트를 짓는다면 그 재정이 너무 아깝지 않냐"고 반문하며, "나는 처음부터 재개발에 호응하지 않았고 지금껏 반대하고 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국가 시책으로 멀쩡한 집을 허는 것은 절대 반대한다"고 말했다.

북아현동에 사는 남아무개(70, 북아현동)씨는 자신이 조합원으로 있던 한 아파트의 재건축 과정에서 "조합추진위, 시공사, 법조계가 모두 한 통속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특히 법조계와 재개의 유착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씨는 "특히 한국의 법조계 출신들은 매년 발간되는 연감을 통해 동문, 연수원 출신 선후배 등의 연락처와 이름을 다 알 수 있다, 대기업들이 많은 돈을 들여 판검사 출신의 고문 변호사를 두는 것은 선후배 관계를 이용해 재판에서 후배 변호사들이 선배를 이기기 어려운 상황을 이용하는 것이며, 더러는 돈을 더 주면서 소송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또, 1-3구역 조합원이라고 소개한 한 주민은 "지난 5-6년 동안 조합이 쓴 돈이 100-200억 정도라고 알고 있는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자꾸 공사를 미루면 이미 나간 주민들을 다 죽이는 꼴"이라며, "처음 분담금 금액이 있는데 공사가 늦어지면 한 달이면 10억에서 20억까지 이자가 늘어나서 결국 아파트가 한 달에 몇 채씩이 날아가는 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지나가다가 학생들이 설치하는 영화관 그림들을 관심있게 지켜보던 윤아무개(62)씨는 이것이 추계예술대 졸업생과 학생들이 벌이는 설치 퍼포먼스라고 설명하자, "본래 남자들은 야한 그림에 눈이 가게 되어 있어"라고 웃으며 말했다. 재개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조합이 돈을 다 쓰고 이제 와서 돈 내놔라 한다"며 "재개발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본래 전통적인 조선의 정치형태는 아무리 왕이라 하더라도 혼자서 독단적으로 정책결정을 할 수 없었고 관리들이 참여한 가운데 긴 토론을 거쳐 의견을 조율하고 결론에 도달하도록 하여, 서로의 권력을 견제하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조선의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이것을 '당파싸움'으로 폄하했지만, 그것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극히 민주적인 절차였음에 틀림없다는 내용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근대화의 과정을 거치며 인간 본연의 모습을 상실하고 본래 가지고 있던 소중한 가치들을 잃어버린 요즘, 서로 다르지만 의견을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며 소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우리에게 주어졌던가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주민과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며, 그런 정직한 소통이 가능한 안전한 광장의 확보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양심을 가진 언론이기도 하고, 지역의 반상회이기도 하고, 따뜻한 봄 햇살이 내리쬐는 마을 골목의 언저리이기도 하다.

어떠한 정책이든 진실로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얻고자 한다면, 우선 주민과 국민의 정직한 소통이 가능한 소통의 공간부터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벌거벗은 부가현'이라는 가상영화의 임시 상영관은 짧게나마 거리에서 주민들이 모여 스스로의 의견을 내고, 소통할 수 있는 '작은 광장'이 되어 주었다. 여기서 '짧은 시간'이었다는 것은 영화관이 설치되고 나흘이 채 못 된 지난 29일 오전, 이 건물에 철거를 위한 철근 구조물들이 세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설치 퍼포먼스에는 북아현동 1-3 재개발구역에서 4개월째 노숙농성중인 상가세입자 이선형씨와 박선희씨도 참여했다.

지난 25일,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뉴타운 재개발 구역에서 추계예술대학교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뉴타운 재개발을 풍자하는 가상의 영화 '벌거벗은 부가현'의 영화관 설치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지난 25일,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뉴타운 재개발 구역에서 추계예술대학교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뉴타운 재개발을 풍자하는 가상의 영화 '벌거벗은 부가현'의 영화관 설치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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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욕망이 마을을 파괴하는 재개발의 실상을 고발하는 가상의 영화 '벌거벗은 부가현'의 가상 상영관에 설치된 광고그림.
 인간 욕망이 마을을 파괴하는 재개발의 실상을 고발하는 가상의 영화 '벌거벗은 부가현'의 가상 상영관에 설치된 광고그림.
ⓒ 이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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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 재개발'을 풍자한 가상의 영화 '벌거벗은 부가현'의 영화관 설치 퍼포먼스가 끝나고 완성된 영화관의 옆 모습이다.
 '뉴타운 재개발'을 풍자한 가상의 영화 '벌거벗은 부가현'의 영화관 설치 퍼포먼스가 끝나고 완성된 영화관의 옆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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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영화 '벌거벗은 부가현'의 영화관 설치 퍼포먼스가 끝나고 영화관의 옆면 입구에 붙여진 사진. 철거로 유리창이 사라진 건물 안에서 바라본 아직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모습이다.
 가상의 영화 '벌거벗은 부가현'의 영화관 설치 퍼포먼스가 끝나고 영화관의 옆면 입구에 붙여진 사진. 철거로 유리창이 사라진 건물 안에서 바라본 아직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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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추계대술대학교 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펼쳐진 뉴타운 재개발의 실상을 풍자한 가상의 영화 '벌거벗은 부가현' 설치 퍼포먼스의 포스터이다.
 지난 25일,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추계대술대학교 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펼쳐진 뉴타운 재개발의 실상을 풍자한 가상의 영화 '벌거벗은 부가현' 설치 퍼포먼스의 포스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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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북아현, #추계대, #재개발, #설치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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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동네의 성미산이 벌목되는 것을 목격하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이주노동자방송국 설립에 참여한 후 3년간 이주노동자 관련 기사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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