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해 10월 15일 오후 서울 금융위원회, 서울역 등 도심 곳곳에서 30여개 시민단체가 모인 <99%행동준비회의> 주최 '1%에 맞서는 99%, 분노하는 99% 광장을 점령하다(Occupy 서울)' 집회가 열렸다.
 지난해 10월 15일 오후 서울 금융위원회, 서울역 등 도심 곳곳에서 30여개 시민단체가 모인 <99%행동준비회의> 주최 '1%에 맞서는 99%, 분노하는 99% 광장을 점령하다(Occupy 서울)' 집회가 열렸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대학가 주변에 대학생이나 혼자인 청년들이 살 수 있는 방의 종류는 무척 다양하다. 잠만 자는 방, 고시텔, 고시원, 고시원형 원룸, 원룸, 분리형 원룸, 1.5룸 등등. 2030세대 1인 주거 형태는 집주인의 성격만큼 다양하다.

뿐만 아니라 반지하인지 옥탑방인지, 옵션은 풀인지, 건물에 인터넷은 들어오는지, 벽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는지 아니면 합판인지, 화장실은 공용인지 단독인지, 싱크대는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방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다양한 방의 종류에 따라 같은 동네, 유사한 입지라고 하더라도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창문에 '소변보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는 15만 원짜리 반지하 방부터 인권적으로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14㎡ 크기의 월 60만 원짜리 풀옵션 원룸까지, 가격대도 다양하다. 1인가구의 주거형태와 가격만큼이나 4·11 총선에 뛰어든 각 정당들의 청년 주거 정책도 다양하긴 마찬가지다.

학생과 2030에겐 한줄기 빛과 같은 정책들

각 정당에서 들고 나온 청년주거정책은 화려하다. 기존에 진행돼왔던 도시형생활주택과 대학생 전세임대 주택 정책뿐만 아니라 ▲기숙사 공급확대 ▲대학가 하숙집 증축 및 개축 자금 지원 등의 대학생용 정책이 있다. 그리고 ▲고시원 및 공공원룸텔 건설 ▲1인 임대주택 확대 ▲소득별 임차료 지원 ▲기숙사 건립 확대 ▲35세 이하 1인 가구 주거 전세 지원 ▲공공임대주택 원룸형 확대 등 2030 청년들을 타깃으로 한 주거 정책도 나오고 있다.

자산이 없고 소득이 낮은 학생과 2030의 1인 가구에게는 한줄기 빛에 가까운 정책들이다. '대학생 전세임대 주택 정책'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이 높고, 월세로 전환되는 주택시장에서 전세방 구하기는 어렵다. 뿐만 아니라 원룸 주인들에게 가격을 올릴 수 있는 동기를 제공 해주는 등의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고시원, 반지하 방만 전전하던 청년에게 화장실과 에어컨이 있는 방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기숙사나 공공임대주택 건설과 같은 신축이 되었든, 월세·전세 지원과 같은 융자나 자금지원방식이 되었든 기본적인 생활환경도 보장받지 못해서 건강을 위협받는 모든 청년들에게 각 정당의 총선 정책은 즉각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청년들만을 위한 주거 정책은 없다는 점이다. 청년들의 주거정책이라는 것이 소득대비 부동산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문제에 대한 대응이라면 그 정책은 비정상적인 주택가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답해야 한다. 고시원, 반지하 방으로 대표되는 청년 1인 주거 문제가 급하긴 하지만 서울·수도권 중심의 비정상적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청년주거 문제도 근본적으로 풀리지 않는다.

이상한 경제현상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청년들

한 고시원 모습
 한 고시원 모습
ⓒ 김영경

관련사진보기


지은 지 30년 된 건물 반지하 방에서 월세 18만 원을 내고 살던 친구가 있었다. 그 집 주인은 어느 날 집을 헐고, 원룸을 짓겠다면서 친구에게 방을 비워줄 것을 요구했다. 몇 개월 뒤 30년 된 그 건물은 사라지고, 번듯한 원룸 건물이 지어졌지만, 50만 원하던 비싼 원룸 방들 일부는 1년이 넘도록 주인을 찾지 못했다. 방이 있는데 방에 들어갈 수 없는 이상한 현상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청년들에게 돈을 푼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주택시장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들이 많겠지만 청년주거 문제는 근본적으로 '청년정책'이 아니라 '주택정책'으로 해소될 수 있다(물론 '청년노동' 문제도 '비정규직 축소·평균 노동시간 축소·최저임금 인상 등과 같은 노동 일반의 문제로 풀어야 한다는 지적과 맥락을 같이한다).

지난 3월 21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48.2%가 1·2인 가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소형 주택 비중은 15년 전에 비해서 오히려 감소(방 3개 이하 주택 비중 34.3%→18.9%로 감소)했다. 1만 원이라도 싼 방, 그래도 최소한 방 같은 방은 매물과 동시에 팔려나가는데 수도권의 미분양 아파트는 늘어만 가고 있다.

집의 수는 이미 인구수를 넘어가고 있는데, 제대로 된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청년들의 대다수가 이처럼 이상한 경제현상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 이러한 주택시장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예산을 투입해서 청년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앞서 언급된 전세 자금 대출 지원 방식의 정책은 방 구하기를 어렵게 만들뿐만 아니라 전세가격 상승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전세는 2010년에 21.8%로 15년 전에 비해 크게 줄었지만 같은 기간 월세는 31.3%에서 42.5%로 크게 증가했기 때문에 정책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어설픈 민자 유도보단, 적극적 예산 투입이 '답'

인천 청자자이 아파트 전경
 인천 청자자이 아파트 전경
ⓒ 선대식

관련사진보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어려운 청년들을 위해 단기 처방이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단기 처방의 방향은 어설픈 민자 유도 방식보다는 적극적인 예산투입으로 잡아야 한다.

민간자본을 끌어오는 방식은 문제를 악화시키기 쉽다. 지난 5년간 각 대학교에 지어진 민자형 기숙사는 학기당 150만 원이 넘는 기숙사비로 학생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1인가구의 대안이라고 내놓았던 민자 도시형생활주택은 기존의 민간 원룸이나 오피스텔보다 더 비싼 월세로 외면 받았다. 민간자본방식은 당장 투입해야 하는 예산이 적지만 결국 비용이 세입자에 전가되어 정책으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청년주거정책을 제대로 하고자 한다면, 장기적인 주택 정책과 함께 공공기숙사와 주택 건설을 중·단기적 목표로 세우로 실천해야 한다. 대학이 몰려 있는 지역에 지역 기숙사를 짓고, 미혼(혹은 신혼)이 많은 지역에 1·2인 가구를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지으면 된다. 신축을 할 공간이 없다면 미분양 아파트나 다세대·다가구를 매입해 이용하면 된다. 이미 몇 개 대학들은 주변 아파트를 매입해 학생들에게 기숙사 형식으로 임대하고 있고, 어떤 지자체에서는 주택을 매입해 집을 나누고 있다.

청년을 위한 당장의 주거정책이라면 더욱 획기적인 예산 투입이 필요하고, 주택 정책이라면 더욱 근본적인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지금도 대형 아파트 현관 크기만 한 작은 반지하 방에서 눅눅한 빨래를 말리느라 고군분투하고 있을 한 청년의 주거환경이 바뀔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만, 그 청년과 다음의 세대의 청년들이 휴식의 공간으로서의 방이 아니라 생활공간으로서의 '집'에서 살 수 있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양호경 기자는 청년유니온 정책팀장입니다.



태그:#청년주거정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